104화. 본 스토리 (2)
“이제 좀 쉬려고 하는데 호출이라니.”
음무기는 한 사내의 뒤를 따르며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먼지가 뒤덮이고, 찢어진 상의와 새까맣게 탄 얼굴.
과연,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고된 수련을 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는 좀 쉬려고 했는데, 은영단 복장을 한 사내가 나타나 급히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자신을 부른 것이다.
“저기, 이보시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그는 길 안내를 맡은, 앞서 가던 은영단 복장의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답 없이 계속 앞장서 달려가자, 그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쯤, 야심한 장소에 도착했다.
꽤 음습한 숲속에 나 있는 길이었는데, 음무기도 한 번도 방문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 길로 쭉 이동하자 곧 허름한 건물 하나가 보였다.
“여깁니다.”
길 안내를 맡았던 사내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음무기가 한마디 하려는데 사내는 간단한 묵례를 마치고 곧장 사라졌다.
“거참…….”
음무기는 입맛을 다시고 허름한 목옥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앞에 나와 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이제 왔느냐.”
깡마른 체격에 부리부리한 눈. 상당히 큰 체격을 자랑하는 사내.
요림이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음무기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다급히 부르기에…….”
“빨리 들어와라.”
요림은 상대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뒤돌아섰다.
멍하니 서 있던 음무기.
그의 마지막 투덜거림은 혼자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여긴 정이란 게 없네.”
사령대 조장들은 이미 모두 도착해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음무기는 어색한 동작으로 그들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 갑자기 그들 쪽에서 말을 걸던 인물을 확인했다.
“그간 잘 지냈느냐?”
설휘였다.
그를 본 음무기는 그제야 얼굴이 밝아졌다.
“아, 예. 그렇습죠.”
“확실히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구나.”
“제가 원래 타고난 재능이 있는 편이지 않습니까?”
“…….”
“…….”
잠깐의 정적.
농담한 것인데, 어찌 어색한 분위기로 변했다.
“뭐, 다들 재능이 있으시겠지만요.”
음무기는 한두 명씩 자신을 노려보는 사령대 조장들의 시선에 주춤거리다, 어색한 동작으로 한쪽에 섰다.
그런 음무기를 보던 설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뭐라고 참…….’
감정이 참 미묘해진다.
들고 있던 재산이 늘어나면 이런 기분일까.
수하들은 모르겠지만, 설휘의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교차되고 있었다.
이들을 대동해 사천지역에 갔을 때의 기억.
수하들의 기억엔 없겠지만, 설휘의 머릿속엔 오롯이 남아 있다.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던지던 수하들.
특히나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던 이들의 충성심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찹찹했다.
이번 임무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이다.
모두 피해 없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젠, 수하들을 죽게 놔두지 않겠다.’
그간 강해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바로 이런 일을 맡기 위해서.
이제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시간이었다.
“너희도 이미 짐작하다시피, 이번에 임무를 받게 되었다.”
설휘의 말에 조장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곧장 의문을 표한 자가 있었다.
“무슨 임무인데 이리 급히 소집을 하신 겁니까?”
용진이었다.
두 달간 높아진 능력처럼 그에게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간단하다. 두 달 전, 본교의 무인 하나가 어느 지역에서 실종되었는데 생사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가 죽은 건지, 아님 어느 단체에 포로로 잡힌 건지 알아보는 게 우리 역할이다.”
“두 달이라면, 죽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소령이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두 달 동안 찾지 못했다면, 죽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리고 그 말이 내포하는 뜻이 하나 더 있었다.
생존과 죽음. 두 개 중 어느 쪽을 가정하고 추적할 것인지. 방향을 잡는 기준이었다.
“또, 이런 별 볼 일 없는 임무를 우리에게 준 겁니까?”
“상부에서 오는 지시가 뭐 다 그런 거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은 용진의 말에 요림이 화답했다.
사람 찾는 거야 밑에 애들한테 시켜도 되는 일이 아닌가.
굳이 자신들이 나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항변.
“아니, 이번엔 기대해도 돼.”
설휘가 짧게 대답하자 요림이 물었다.
“실종된 구역이 어디기에 그렇습니까? 뭐, 힘깨나 쓰는…….”
“화산파다.”
“……!”
“……!”
순간적으로 조장들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리고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음무기의 표정도 어느새 경직되어 있었다.
화산파.
말만 들어도 무게감이 엄청났다.
“아주, 이번에 그동안 밀린 업무들을 전부 맡긴 느낌이군요.”
계속 침묵하던 적송이 그제야 입을 열었고.
“그동안 쇠질만 한 것 같은데, 잘됐군요.”
“저 역시 기다리고 있었지요.”
차례로 용진과 요림이 호승심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게, 험한 임무를 맡겼다는 건 달리 말해 사령대를 인정해준다는 것이 아닌가.
“저기…… 굳이 싸우는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반면, 음무기는 심각한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했다.
이들과 달리 자신은 굳이 이런 위험한 임무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장. 그 앞에 그건 뭡니까?”
음무기는 탁자에 오른 기이한 문양의 물건을 가리켰다.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던 것이다.
“아, 얘기하지 않았군. 이건 화골산이다.”
“예?!”
순간, 그 말을 들은 음무기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곧장 알아챈 것이다.
“그럼 이 임무는…….”
“그래. 우린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만약 위험한 상황이 펼쳐진다면, 화골산으로 우리 존재를 감출 것이다.”
“…….”
이번엔 더 크고 무거운 정적이 일었다.
생사를 완전히 지울 정도의 임무.
그 말은 화산파 인물 중에서 최소 일대제자급.
나아가면 장로급이 온다는 얘기와 다름이 없었다.
‘흔적을 지우는 데 실패해도 다른 이에게 죽을 거고.’
설휘는 굳이 할 필요 없는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럼 이제 출발하는 겁니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소령이 물었고.
“아직.”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곧 우릴 목적지에 데려다줄 사람이 올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조장들은 다시금 침묵에 들어갔다.
‘선택창이 나타나지 않는구나.’
설휘는 지금 상황이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런 경우 선택창이나 지문들이 나타났다.
어떤 일정이 주어지거나, 상황이 급격하게 변할 때.
그런데 지금까지도 지문을 고르는 선택창이 나타나지 않는다.
‘개입하려 했다면 곤마와 대면했을 때 나타나야 했다.’
몇 시진이 지나도 눈앞에 뜨지 않는다.
전투방식 <자유제>
전투방식이 자유제로 변하니, 수하들의 능력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물론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다.
저 전투방식을 턴제로 바꾼다면.
그러나 그리되면 변수가 있는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이제는 자유제를 제외한 전투방식에 일각이란 시간제한이 걸려 있기에.
‘본 스토리라는 게…… 예전 상태창의 개입이 없던 시절을 말하는 것일까.’
설휘가 이것저것 고민하던 그때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복면을 쓴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난 고수!’
설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의 기도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내공을 가진 실력자일 터였다.
‘철군성일지도…….’
스윽.
“누군가?”
낯선 사내의 등장에 용진이 먼저 적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사내는 그에게 큰 관심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봐, 누구냐고 묻잖아.”
“이 자식이.”
수하들이 달려들 것 같은 자세를 취했지만, 설휘는 급히 제지했다.
그사이 그의 앞으로 다가온 낯선 사내가 물었다.
“네가 설휘인가?”
그 말에 설휘가 대답했다.
“그렇소.”
“준비는?”
“보시다시피 끝났소.”
“그래?”
거구의 낯선 사내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엔 한 명씩 수하들을 일별한 후.
“쯧쯧. 이 정도 수준으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그는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설휘의 제지 때문인지 수하들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복면인은 품속에서 양피지 몇 장을 꺼내 내밀었다.
거기엔 용모파기, 그리고 실종되기 전 소통했던 정보들. 그가 감시했던 지형과 행적들이 소상히 적혀 있었다.
“따라와라.”
그 한마디를 남기고 복면의 사내는 문밖으로 나갔다.
* * *
“여기서부터는 너희들이 알아서 가거라.”
본교의 경계초소를 넘었을 때쯤.
복면인은 그 말을 남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지만 설휘는 알았다.
그는 돌아간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을 감시할 거란 사실을.
어쨌든 그가 사라진 후 설휘는 앞장섰다.
황가산 위치가 어딘지는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를 수가 있는가.
거기서 두 번이나 개죽음을 당했는데.
이동 중 밤이 되자, 설휘와 일행들은 야영을 준비했다.
음무기만 멍하니 서 있을 뿐. 소령은 불을 피우고, 용진과 요림은 천막을 쳤으며, 적송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추적에 특화된 조장들답게 준비와 분담에 능숙했다.
목적지까지는 반나절 정도의 거리.
여기 산에서 하룻밤만 지새우면 내일 저녁까지는 목적지에 충분히 당도할 수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터라, 이동 속도는 말단 조장 때와 비교해 확실히 차이가 났다.
따따땃.
모닥불이 피워지고, 조장들은 한데 둘러앉았다.
임무 중이라 그런지 그들은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내로 인해, 무거웠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라졌다.
“어허. 사람이 어찌 손이 아기 손처럼 작아진단 말인가.”
“어허, 정말 된다니까 그러네.”
“한번 해봐. 그거 하면 내 돈 금 한 냥을 주지.”
“분명 말했소. 다들 들었지?”
모닥불에 한데 모여 있던 조장들 속에서 음무기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다들 주목하던 가운데, 그는 중얼중얼 뭔가를 외우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그런 낌새가 있는 줄 알았지만…… 확실히 바보군.”
“내 뭐랬나, 안 된다고 했지?”
시도하던 중에 요림과 용진이 핀잔을 줬다.
그때였다.
팟.
음무기의 손에 변화가 생겼다.
그의 말대로 점점 작아지더니 정말 아기 손처럼 변한 것이다.
“오오오!”
“잠영투체술! 진짜네, 저 녀석?!”
다들 경악스런 반응.
그중에 용진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몸을 들썩였다.
“내 말이 맞지? 자, 돈 내놔.”
“아니, 형장. 뭘 그렇게…….”
“사내가 쩨쩨하구만.”
용진과 요림이 한마디씩 했고.
“형장이라니. 우리 아는 사이던가?”
얼굴이 붉어진 음무기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바보들…….”
소령이 나직이 말을 했다.
하지만 음무기와 용진, 요림의 목소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다들 첫 임무라 신이 나는가 보군.”
그때였다.
설휘의 등장에 조장들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대장.”
“오셨습니까.”
“그래.”
설휘는 그런 그들을 웃으며 바라봤다.
“괜찮다. 뭐, 긴장을 푸는 방법도 있는 법이지.”
그리고 설휘는 음무기를 바라봤다. 그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헤헤거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내 너희들에게 부탁을 한번 해볼까 하는데…….”
“뭡니까?”
적송이 묻자, 설휘가 대답했다.
“오랜만에 실력 한번 볼까 해서 말이지.”
“……?”
의아한 시선을 조장들.
설휘는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부 덤비거라.”
설휘는 이동 중에도 머릿속으로 끝없이 생각했다.
단시간 내 강해질 수 있는 방법.
결국, 실전 경험으로 무공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단, 나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자는 두고 갈 생각이다.”
죽음에 가까울수록.
전투력이 상승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