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본 스토리 (4)
설휘와 그의 수하들은 반나절 더 휴식을 취한 뒤 움직였다.
내상을 크게 입은 상태가 아니라 그런지 다들 빠른 운기조식으로 몸의 기운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황가산.
가파른 협곡 사이로 급류가 주변을 덮은 모양새의 이곳은 청해(靑海)와 경계를 이루는 산맥의 중심에 있다.
설휘의 일행은 강을 건너, 복면인이 건네준 밀지에 적힌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여깁니까?”
산에 오르기를 반 시진.
산 중턱 즈음까지 오르자, 소령이 다가와 물어왔다.
저편에 보이는 숲속에 자그마한 동혈이 보였는데, 그녀가 먼저 발견한 것이다.
설휘와 고개를 끄덕이자, 조장들이 빠르게 그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데요?”
안을 살핀 용진이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차례로 들어갔던 요림 역시 고개를 저으며 의사표시를 해왔다.
“실종된 사람을 찾는 게 참 그렇군요.”
“여기 산을 다 뒤져볼 수도 없고…….”
옆으로 다가온 적송과 음무기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추적에 달인이라 하더라도 실종된 위치도 모르는 상태에서, 산중에 없어졌다는 추측만으로 사람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고 하지 않았는가.
흔적들이 있다 해도 그 정도 시간이 되었으면 거의 다 사라졌을 터였다.
“이곳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화산파 비밀지부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길 집중 수색해야겠습니다.”
소령도 그런 의미에서 한마디를 했다.
이런 곳에서 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떻게 합니까, 대장?”
적송이 설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설휘는 무슨 생각인지 대답 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뭔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런 그의 물음에 음무기가 대신 답했다.
“딱히 방법이 없지 않겠소? 그냥 주변 좀 둘러보다가 화산파 비밀지부란 곳을…….”
“모두 여기서 잠시 대기해라.”
“……예?”
의아하게 묻던 음무기가 설휘를 바라볼 때였다.
파파팟.
거의 눈 깜짝할 사이, 하늘로 솟구치듯 설휘가 산을 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라질 정도로 아주 빠른 속도였다.
“뭐 하시려는 거지?”
그걸 보던 음무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령대 조장들에게 물었다.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 역시 음무기와 같은 생각이었다.
파파파팟.
거의 일 각 동안.
쉴 새 없이 산을 오르던 설휘의 눈에 정상이 보였다. 그러자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투욱.
그렇게 조금 정도 지났을 때, 설휘가 산의 마지막을 밟았다.
거기에 있는 너럭바위를 밟은 뒤, 몸을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를 찾을 수 있을까?’
어제 온종일 고민했었다.
실종된 자를, 그것도 두 달이나 지난 자를 어떻게 추적할지.
결과적으로는 밀지에 적힌 화산파 비밀지부 내부를 뒤지는 것이 가장 빠른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이 드넓은 산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다.
그동안 마태룡이란 자를 찾기 위해 추적조를 보내지 않았겠는가.
녹 장로가 칠사자란 말을 했다면, 분명 그들을 보내 어느 정도 확인은 해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온 게 없었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니, 곤마의 조직 중 하나인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의뢰를 한 것일 터.
그럼에도 미심쩍어하는 것을 보면, 전문가란 생각은 하지 않는 듯 보였지만.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설휘는 시선을 들었다.
이곳 정상까지 올라온 이유는 이 능력을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서였다.
될지 안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운 좋게 이것이 가능하다면.
마태룡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설휘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소지한 능력 중 가장 강력한 형태를 꺼내기 위해서.
전투방식 <시뮬레이션제 Lv2>
<설휘 님의 무공 개수를 분석합니다.>
<설휘 님의 무공초식을 분석합니다.>
……
<분석 완료>
전투방식을 바꾸자마자, 눈앞의 활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설휘가 시도하려 했던 이유를 보여주었다.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바로 질문하는 시뮬레이션.
이 시뮬레이션이 계산할 수 있는, 아니 구현할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설휘는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곤마의 수하, 마태룡이 마지막으로 이 주변에서 이동한 경로를 찾아줘.”
말을 하면서도 설휘는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간 경험했던 시뮬레이션이라는 건, 최선의 방식을 찾는 것.
Lv2로 올라서면서 광범위한 범위까지 계산해낸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내린 명령은 세상의 인물들을 모두 파악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무모한 도전이었다.
‘반응이 없네?’
잠시 기다렸음에도 시뮬레이션은 반응해오지 않았다.
설휘는 자신이 제대로 말하지 않은가 싶어 한 번 더 목소리를 높였다.
“곤마의 수하 마태룡…….”
그때였다.
<분석 중……/>
“헉!”
설휘는 눈앞의 활자를 보고 기함했다.
이게 진짜 되는 건가?
아니면, 이렇게만 보이다가 다시 본래대로 돌아오는 건가.
<분석 중……>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분석 중이란 글귀만 뜰 뿐, 그 이외에는 어떠한 글귀도 보이지 않았다.
‘안 되는 거 아냐?’
설휘는 괜스레 초조했다.
본 스토리란 방식으로 흐르면서 전투방식이 지속되는 시간은 고작 일각에 불과하게 됐다.
지금 보니, 거의 그 시간까지 흘러간 듯 보였다.
“이거 안 되는 거면 왜 계속 분석 중이…….”
<찾았습니다!>
그 순간.
설휘의 눈이 부릅떠졌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곤마의 칠사자 중 하나인 마태룡! 그가 마지막으로 이동했던 동선을 붉은 선으로 표시해드립니다.>
촤아아아아아-
설휘의 발아래, 산 밑의 전경이 변화했다.
그리고 거기서 몇 가지 색채가 덧씌워졌다.
하나는 어둠.
또 하나는 마태룡의 이동로로 보이는 붉은색.
마지막은 그의 동선이 끝나는 지점 즈음에 펼쳐진 녹광.
그걸 본 설휘는 급히 밀지를 펼쳐 대조해 보았다.
“화산파 비밀지부와 다르잖아?!”
그랬다.
세 번째 장에 그려진 지도와는 전혀 다른 위치. 그리고 거리였다.
팟.
빛과 함께 눈앞의 색채는 본래대로 돌아왔다.
결국, 시뮬레이션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설휘는 그 지점이 어딘지 대략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산 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를 가늠하는 건.
사령대라면 기본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니까.
“어, 대장?”
설휘가 내려오자, 용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바닥에 뭔가 떨어진 게 없나 수색 중이었다.
“대장, 뭐 좀 알아냈습니까?”
다른 이들도 물어오자 설휘가 짧게 말했다.
“실종된 마지막 위치를 찾았다.”
“예? 어떻게?”
“따라오너라. 가면서 알려주마.”
설휘는 그 말과 함께 곧장 도약했다.
그의 행동에 수하들은 뭔가 직감했고,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곧장 뒤를 따랐다.
* * *
설휘가 본 건, 화전민이 세운 것으로 짐작되는 민가였다.
임시로 세운 가옥들도 보였고, 어떤 곳은 꽤 큰 전각 크기의 건물도 있었다.
마을이라 하기엔 작고, 보통의 민가가 모여 있다고 하기엔 큰 그런 곳이다.
설휘와 일행들은 꽤 오랫동안을 내달렸다.
정상에서는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 도착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다 마태룡이 실종된 곳으로 보이는 민가에 들어서자, 다들 움직임이 느려졌다.
투툭투툭.
절벽처럼 가파른 곳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조장, 여기가 정말…….”
“쉿!”
음무기가 말을 걸어오자마자, 설휘는 검지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손짓하며 숲속으로 급히 몸을 날렸다.
사사사사삭-
과연 수련을 받은 조장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오직 음무기의 움직임만 둔탁할 뿐이었다.
그렇게 설휘와 조장들이 나무에 몸을 숨긴 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이, 오늘은 별다른 얘기 없어?”
“글쎄. 명훈 도장께선 별말씀 없으시던데…….”
다가오는 사내가 둘 있었다.
무명천으로 지어진 복장이었지만, 걸음걸이가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스윽. 스윽.
조장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동 중인 사내 둘이 보폭이 일정하다는 걸 본 것이다.
무공을 익힌 자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설휘에게 마지막으로 향하는 시선과 몸을 이용한 수하.
-처리할까요?
이동 중 이미 약속된 얘기다.
우리가 이동하는 목적지에 적이 있다면, 그곳을 잠입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거고.
그래서 적송이 대표로 나서서 물었던 것이다.
-아니.
설휘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의사표시를 했다.
이유가 있었다.
‘잠입하는 대상을 잘 골라야 한다.’
이것 역시 자신을 포함한 사령대원들도 잘 알고 있는 얘기였다.
누구로, 어떤 대상으로 잠입하는가에 따라 행동반경이 커지고 자유로워진다.
무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손을 대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한 명씩, 또는 둘이나 넷이.
그렇게 걸어가는 무리들이 보였다.
때마침 꽤 강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가 지나가자, 조장들 전원이 설휘를 쳐다보았다.
그럼에도 설휘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놈들은 아냐.’
그들은 몰랐지만, 설휘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전투방식 <턴제>
턴제를 사용할 시, 설휘에게 독심술 능력이 부여돼 상대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속속들이 들어오는 적들의 전투력을 보며 차분히 기다렸다.
저편에서.
아직 여기까지 오고 있지 않지만, 분명 굉장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State Summary, 상태 간단 요약]
명강도사 [화산파 일대 제자, 명화지동 관리자]
경지 초절정
체력 60만/60만
내공 99만/99만
전투력 702만
전투력이 무려 702만.
수하들보다 월등히 높은 능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설휘는 기다리고 있었다.
‘온다.’
한순간, 설휘의 눈빛이 빛났다.
무리들과 뭐라고 얘기를 나누던 그가 이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설휘는 고개를 돌려 수하들을 보며 손짓했다.
-모두 귀식대법을 펼쳐라.
모든 동작을 멈추는 대법.
숨소리, 심지어는 심장 박동 수까지 정지시키고 체온까지 떨어뜨리는 고도의 은신 수법이었다.
[은신술이 발동됩니다.]
설휘가 은형법과 비급의 내용을 떠올리자마자 활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건 다른 무공이나 비급과 다르게 꼭 이렇게 해야 반응을 보인다.
‘일격으로 끝낸다. 그리고 곧장 역용술과 잠영투체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나중을 노릴까 생각했지만,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왜냐하면 지금이 잠입하기 가장 최적인 조건.
무공도 고강한 데다, 한데 모여 있는 동료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무공은.’
전투방식 <자유제>
서서히 주변까지 다가오는 다섯의 무리를 보며 설휘는 전투방식부터 바꿨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무공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한 가지로 좁혀졌고.
팟.
그대로 수직하강했다.
설휘가 선택한 것은 무공이 아닌.
↓ ↘ → 이런 간단한 동작만으로 펼칠 수 있는.
풍신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