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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07화 (108/379)

107화. 초반 보스 (1)

“어? 근데 명강 사형은 어디 갔어?”

식사를 마치고 수련장으로 돌아가던 명우(明宇)는 나란히 걷고 있던 사제들을 보며 물었다.

조금 전까지 뒷줄에서 걸어오고 있던 사형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저희도 모르겠는데요?”

“저도 잘…….”

다른 사제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본래 말수가 없었던 사형이었기에, 누구 하나 유심히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먼저 가신 건가?”

잠깐 자리에 서서 고민하던 명우는 곧 멀리서 걸어오는 명강을 발견했다.

“사형, 빨리 안 오고 뭐 하십니까?”

“하하. 소변이 마려워서.”

어색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는 명강.

그는 곧 무리 속으로 합류해 다시금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와, 방금 보셨습니까?”

음무기가 감탄을 내뱉었다.

설휘의 무위를 보고는 입을 다물래야 다물 수가 없었다.

조금 전, 그는 기억했다.

설휘가 아래로 툭 떨어지던 그때, 상대 역시 그것을 알아차릴 정도로 고수였다는 것을.

그 미세하게 떨리는 나뭇가지 소리를 듣고 반응한 것이다.

다만, 누군가 급습을 하리란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드는 반응이 늦었고.

그대로 절명했다.

음무기가 놀랐던 것은 바로 그 타격.

어떻게 손바닥으로 등을 툭 하고 쳤을 뿐인데 그대로 자지러진단 말인가.

“혈을 짚은 게 아닐까?”

용진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그 역시 조금 전, 설휘가 펼친 무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어떻게 강한 일격이 아닌,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 죽인 건지. 그 역시 감을 잡지 못했다.

“아니. 혈 자리를 짚은 게 아냐.”

“그럼?”

소령의 대답에 용진이 되묻자, 대답은 요림이 대신했다.

“손바닥.”

“……그게 가능해?”

용진은 곧바로 항변했다. 그러자 요림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눈으로 봤잖아.”

손바닥.

상대를 절명케 했다면 내기를 밀어 넣었단 얘긴데.

그렇다면 분명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런데 정파로 보이는 무사는 아무런 저항 없이 쓰러졌다.

설휘는 그런 명강을 붙잡아 재빨리 숲속으로 몸을 날렸고.

“자, 우리도 빨리 움직이자.”

상식을 벗어나는 설휘의 무위에 혀를 내두르던 조장들을 보며 적송이 말했다.

대장이 잠입해 들어갔으니, 자신들은 이곳 주변의 지형과 구조를 샅샅이 파악해야 했다.

* * *

설휘가 무리들과 함께 도착한 곳은 연무장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엔 그저 흔한 민가였는데, 직접 와보니 수십 명이 모여 활동할 수 있는 수련 공간이었다.

‘정찰 요원들이 여길 놓친 건가…….’

비밀분타로 지목되는 곳과 전혀 다른 방향에 있는 비밀지부.

무슨 이유인지 복면인이 건네준 밀지에는 이곳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칠사자라는 곤마의 핵심부대.

그중 마태룡은 초절정을 넘어서는 고수가 아니던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정도의 장소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의아했다.

‘아니지. 그가 이곳을 찾았기 때문에 내가 여기로 온 거겠지.’

시뮬레이션이 가리킨 위치가 바로 이곳이 아니었던가.

마태룡이 이곳에서 화를 당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하앗.”

“흐아압!”

안에는 서른 명이 넘는, 척 보기에도 수련생인 자들이 있었다.

대부분 젊은 얼굴이었는데, 그들은 나무로 된 막대를 들고 열심히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편에는 조교로 보이는 사내들이 서 있었다.

아마도 지도 교육을 하는 듯 보였다.

‘화산파가 맞구나.’

초식을 유심히 살펴보던 설휘는 이들의 검술이 매화검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매화검법과 동작과 자세가 조금 달랐다.

조금 지켜보니 이들이 구사하는 건 찌르는 공격과 휘둘러 방어하는 수비를 한 번씩 구사하는 것이었는데.

설휘가 알고 있는 매화검법은 공격이 세 번, 방어가 한 번이었다.

거기다 하체가 먼저 이동하며 검술을 구사하는 데 반해, 자신이 알고 있는 매화검법은 상체와 하체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하긴, 화산검법도 역사가 오래된 만큼 여러 검법이 있겠지.’

그때였다.

“넌 여기서 뭐 하느냐?”

‘……!’

설휘는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장년인이 뒷짐을 쥔 채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예?”

설휘가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대자, 그는 호통치듯 말했다.

“이놈! 여기서 요령을 피우려고 하는 것이냐! 어서 가서 사제들의 자세를 교정해 주지 못할까!”

“아!”

설휘는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좌측 가장자리에, 맞은편에 사람 없이 홀로 검을 휘두르는 이가 보였다.

설휘는 부리나케 움직여 그곳으로 갔다.

“오셨습니까!”

자리를 제대로 찾은 것일까.

청년은 밝은 얼굴로 마주했다.

“그래, 검무를 보여 봐라.”

설휘는 말을 하곤 옆을 돌아보았다.

자신을 혼냈던 장년인은 이쪽에 계속 시선을 두고 있었다.

‘이거, 재수 없으면 들키겠는데?’

설휘는 식은땀이 났다.

직감적으로 상대가 고수라는 걸 느꼈다.

초절정에 오르면서 마기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높은 수준에 도달한 고수라면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럼 해보겠습니다.”

휘이이익.

기수식을 취하는 청년.

나름 눈빛도 그렇고, 자세도 꽤 수련을 쌓은 티가 났다.

휘이이익!

한순간. 눈을 부릅뜨며 세차게 검을 찔렀고, 다시 회수하며 부드럽게 옆으로 휘둘렀다.

그렇게 대여섯 번을.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자세를 잡아갔다.

스윽.

그러고는 설휘를 향해 포권을 했다.

‘저 자식, 아직 있네…….’

설휘가 슬쩍 눈길로 흘러보니, 광대뼈 녀석은 아직 자신 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아니, 청년이 포권을 하자 자신 쪽으로 걸음을 떼는 모습까지 보였다.

툭. 투투툭.

설휘는 바닥에 놓인 막대기를 들어 어깨와 허리를 쳤고.

“여긴 힘을 빼야 하고.”

무릎을 치며.

“여긴 좀 더 굽혀야 하며.”

이번엔 바닥을 두 번 찍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나와야 한다.”

“……아!”

청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설휘는 다시 옆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신을 보던 광대뼈가 긴 수염을 매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휴…… 매화검법이 나를 살렸군.’

설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이 기억하는 매화검법서에 보면 정확히 적혀져 있다.

칼을 움직일 때의 자세와 보폭이 어느 정도인지.

또 칼을 눈앞의 청년처럼 찔렀을 때 어떤 보폭과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거의 각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정확히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헌데, 네 이름이 뭐냐?”

광대뼈가 밖을 나갈 때쯤, 설휘는 눈앞의 청년에게 물었다.

다들 열심히 수련 중이라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아진(我塵)입니다.”

“이대제자?”

“예.”

‘아(我)자 돌림이 이대제자군.’

이로써 설휘는 정보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 후 다시 물었다.

“너는 이곳에서 하는 이 수련의 목적을 알고 있느냐?”

“물론 알고 있습니다.”

“무어냐?”

“여기서 수련을 최종 점검하고 황가산에 올라 마교놈들을 죽이는 겁니다.”

‘……뭐라고?’

설휘는 속으로 놀랐다.

혹시나 했는데, 여기에서 수련하는 것이 정말 본교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니.

“네 수준으로 될 것 같다고 보나?”

“저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마인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디까지 교류를 한 것인가.’

그와 대화하는 설휘의 속마음은 타들어갔다.

이건 일방적인 살육이다.

마인들에게 등급을 정해 숲에 풀어놓고, 정파놈들이 그들을 사냥하는 것.

눈앞 놈의 실력이라면, 아직 마성에 이지(理智)가 제압당한 광마들도 아니다.

중원 어디선가 모르게 끌려오거나, 포섭당해 온 자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개 같은 자식들…….’

설휘는 이를 갈았다.

이들에게 도륙당하는 건, 어찌 보면 예전의 자신 같은 쓸모없는 녀석들이었다.

신교 내에서 소속 없이 떠돌아다니는 놈.

마성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자.

또는 어떤 이의 말을 거역한 자들.

그들 모두가 여기서 죽게 되는 운명인 것이다.

“헌데, 일대제자님.”

청년이 물어오자 끌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설휘가 대답했다.

“말하거라.”

“전과는 달리…… 목소리가 좀 변하신 것 같습니다.”

“어……?!”

순간, 설휘의 눈이 커졌다.

궁금한 점을 물어보다 보니, 너무 말을 많이 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설휘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고뿔에 걸렸다.”

“아, 그렇군요.”

어차피 눈앞의 녀석이 자신의 마성을 눈치챌 리는 없다.

그저 목소리가 변한 것만으로 의심할 수도 없을 테고.

“그나저나 한 가지 더 물으마.”

“말씀하십시오!”

설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최근에 이곳을 침입한 마인에 대해서 아느냐?”

“침입…… 마인이요?”

의아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청년.

설휘는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조금 고민하다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래?”

“예. 그런 건 구운(究雲) 장로님이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가장 아시는 게 많으신 분이니.”

“뭐, 그렇지.”

그 말을 들은 설휘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고.

빠르게 다시 물었다.

“그럼, 네가 기본적인 걸 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차 물으마.”

“옙.”

“내가 관리하는 명화지동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물론입니다. 여기서 나가 세 번째 건물을 지나쳐 우측으로 돈 뒤, 네 번째 건물입니다.”

“구운 장로가 기거하는 곳은?”

“교운전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이지요. 이곳 뒤로 나가 여섯 번째 가옥입니다.”

“잘 알고 있구만.”

“감사합니다.”

청년은 만족한 듯 예의를 표했고, 설휘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거라. 충분히 자세는 좋으니, 그렇게 수련하다 보면 벽을 뚫는 순간이 올 거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설휘는 수련이 끝나는 듯한 주변 분위기를 보고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으니까.

* * *

“여긴가.”

설휘는 민가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 구조는 이런 마을에서 보기 힘든, 삼합원으로 되어 있었다.

명화지동이라 하여 동굴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는 듯했다.

설휘는 안으로 들어선 뒤, 동쪽에 문 앞으로 다가갔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명강이란 아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명화지동이라는 것이 왠지 이곳 정보를 모아놓은 곳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글귀가 눈앞을 가렸다.

<저장하시겠습니까?>

‘이게 무슨……’

설휘는 당황했다.

갑자기 여기서 저장이라는 것이 뜨다니.

대체 이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이 안에 뭔가 있는 건가?’

그건 이 문을 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어쩌지…….’

4…… 3……

고민은 길게 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겠다.’

<저장하지 않습니다.>

설휘는 각오를 다지며 문을 열었다.

그 안은 수많은 책자가 놓여 있었다.

“그냥, 비급만 있는 건가…….”

잔뜩 긴장했던 설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려하던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서.

그렇게 안으로 들어설 때, 설휘의 몸이 굳어버렸다.

“재미있구만.”

“……!”

안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설휘의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공간에서 말을 걸고 있었다.

거기다.

“어떻게 마교 놈이 이곳으로 기어들어온 거지?”

상대는 자신의 출신까지 알아볼 정도의 실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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