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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09화 (110/379)

109화. 초반 보스 (3)

나는 환각에 빠진 것처럼 뭔가에 덧씌워진 느낌을 받다가, 몸이 쑥 하고 빨려 나갔다.

그리고 곧, 천장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한 채 서 있는 AI설휘를 목도할 수 있었다.

“오. 드디어 본 스토리로 왔는가?”

초반부터 욕지거리를 할 줄 알았던 AI설휘는 의외로 나를 반기듯 말을 건넸다.

그러고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 건물 내부에 둘러쳐진 게 심마환요진(心魔幻妖陣)이니 틀림이 없네. 저 화산파 늙은이를 상대로 싸우다가 날 소환한 것 같고. 말년에 반짝하는 다 늙어가는 노인네를 상대하려고 부른 거겠지.”

AI설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정보들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았다.

뭔가 차분히 말하는 듯 보여도 나는 알았다.

말투에서 저 더러운 성질머리가 여실히 보인다는걸.

“화산파 늙은이 새끼가 우리 신교의 진법을 사용하는 건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군. 뭐, 좋아. 우선 네놈의 능력부터 보자면…….”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말투가 저리 거친 건지.

“오? 기 모으기 기술은 익혔네. 그래도 역시 병신답게 체력과 내공은 형편없고…… 전투력 천이백…… 뭐? 천이백만이나 올렸어? 야, 모자란 병신아. 너, 체력과 내공의 도움도 없이 이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올렸냐?”

그가 물어봤지만,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정보라도 얻을까 싶어서 말을 걸려고 했는데.

“아, 이해한다. 원래 무식한 놈일수록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법이거든. 거기에 운빨까지 더하니, 뭐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내는 거지.”

다시금 혼잣말을 시작했다.

말투가 거칠긴 했지만, 그래도 AI설휘는 예전과 좀 달라 보였다.

더욱이 지금은 자신을 의도적으로 꾸짖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이루어놓은 것들을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다음 말처럼 말이다.

“야, 이 병신아. 본 스토리 정도 되려면 체력과 내공은 확실히 키워 놨어야지. 그리고 의뢰는 왜 다 안 했냐? 어라? 초풍신은 아직도 못 배웠네?”

계속되는 중얼거림.

나는 지금 AI설휘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 녀석은 분명 나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초풍신을 듣고 든 생각이다.

‘풍신보다 한 단계 위의 기술을 말하는 걸지도…….’

확실치 않지만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물으려고 했는데.

“초반 보스에서 헤맬 정도라면, 그냥 너 뒈지는 게 어때? 괜히 목숨 개수만 늘려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보려고 애쓰지 말고 말이다.”

- 이 새끼가…….

“어쭈. 무식하게 전투력만 높인 녀석이 발끈할 줄도 아네? 야, 내 눈에는 네 미래가 보여서 하는 말이다. 저번에 내가 말 안 하던? 결국, 넌 이 시스템에 이용당하다가 버려질 거라고.”

- 야, 앞을 봐! 말 걸잖아.

“이봐.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구염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져 있었다.

저 AI설휘의 혼자서 구시렁거리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든 저럴 것이었다. 정상적이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AI설휘는 노인이 아닌 나를 보며 말을 걸고 있었다.

“뭐 대단한 녀석이라고. 어차피 저 녀석은 연속기 몇 번이면 그냥 끝나.”

- 연속? 연속기?

“연계 초식 말이다.”

- 야, 온다! 온다고!

노인은 더는 기다리지 않았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장 달려든 것이다.

그 모습을 본 AI설휘가 뒤늦게 공중으로 도약하자.

- 아 망할!

나는 그대로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저렇게 빠른 신법으로 다가오는데 공중에 떠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더욱이 화산파 노인은 자신과 싸울 때보다 족히 두 배는 빨라진 듯한 신법을 펼쳤는데 말이다.

“새끼. 쫄기는.”

AI설휘가 말을 툭 내뱉으며, 거의 지척까지.

아니, 이미 다가와 검을 휘두르고 있는 상대를 보고는 검을 휘둘렀다.

헌데, 특이하게도 화산파 노인이 다가온 방향이 아닌, 아래 방향이었다.

- ……엇! 이건!

콰아아아아앙!

기의 폭풍이 불었다.

방사형(放射形)처럼 중앙에서 퍼져나간 공기의 파동이 전방위를 뒤흔들며 건물을 날려버릴 듯 터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설휘는 분명히 보았다.

구염이 휘두른 검이 AI설휘의 몸을 이등분하는 것을.

그런데 거짓말처럼 AI설휘의 몸은 베어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당한 건 화산파 노인이었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검풍(劍風)들이 난마처럼 얽히며 공간을 뒤흔들었고.

그로 인해 노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빠악!

그의 몸은 절세풍검에 의해 공중으로 솟아올라 천장에 부딪혔고.

이내 힘없이 떨어져 내리던 그를 AI설휘는 놓치지 않았다.

“합!”

다시금 생성한 폭풍.

이번엔 풍신검이었다.

거대한 풍압과 함께 생성된 뇌전의 힘이, 떨어지던 구염의 몸을 한 번 더 솟구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파파팟.

또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던 노인을 향해 AI설휘가 강력한 초식을 펼쳐졌다.

- 소상기변이다!

AI설휘의 검 끝에 맺힌 물방울.

소신수마공의 가장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초식을 사용하려 함이었다.

“하아압!”

AI설휘의 외침과 함께 새하얀 서리가 뻗어 나왔다.

해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닿기만 해도 얼어붙는 극음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마공.

쩌저저저저적!

노인의 몸을 완벽하게 덮쳤고. 그는 그대로 끝나는 듯 보였다.

“크아아압!”

하지만 상대는 화산파의 고수.

분명 정통으로 맞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광채가 뻗어 나오며 일부의 마공을 불식시켰다.

그로 인해 온몸의 반이 얼어버렸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는 듯.

독기가 새어 나오는 눈으로 AI설휘를 노려보았다.

“이, 이이익…….”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AI설휘에 대한 분노보다, 자신을 향해 표출하는 분노 같았기에.

그러자 AI설휘는 다시금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거라. 본래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놈인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살아났다. 네놈의 내공이 모자라니까 한 번에 안 죽은 거잖아. 시간 끌면 귀찮아지는 녀석인데…….”

‘내공으로도 부족했다고?’

나는 그제야 AI설휘의 말이 무언지 완벽히 이해했다.

내공과 체력이 부족하다는 말.

방금 일격에서 그 조건이 충족됐다면, 훨씬 더 강력한 일격을 넣었을 것이다.

그는 그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AI를 부르기 전에 체력과 내공 손실이 있었지.’

거기다 나는 체력과 내공이 완벽한 상태에서 부르지 않았다.

그러니 절세풍검의 위력이 전력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최고의 초식 중 하나인 소상기변을 썼지만, 적은 가까스로 목숨을 보전한 것이다.

“야, 그렇다고 긴장은 하지 마. 설마 내가 질까 봐? 그냥 좀 귀찮아졌다는 말이거든.”

츠츠츠츠츠측.

AI설휘의 발밑에서 강한 열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난 그가 무얼 하는지 곧장 알아챘다.

기 모으기.

소실되었던 내공을 보충하려는 생각이었다.

“쿠엑. 쿠웨에엑!”

다행히 구염이란 노인은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피를 몇 번이나 토해내고 난 뒤에 AI설휘를 향해 말을 걸어왔으니까.

“대체…… 대체…….”

구염은 피가 묻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믿기 힘든지, 손을 떨다시피 하며 말을 걸었다.

“어떻게 검으로 벴는데도 베어지지 않을 수가 있는 거지?”

나는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절세풍검은 내가 보기에도 좀 사기적이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말에 AI설휘는.

“몰라도 돼. 빨리 덤벼. 발로 지근지근 밟아줄 테니까.”

역시나 화통했다.

그의 도발을 들은 노인이 진심으로 분노했으니.

“하아아압!”

파아아앗.

노인이 다시 움직였다.

대체 어떤 경공술인지, 한달음에 거리를 좁히는 경공술은 가히 육안으로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AI설휘가 그걸 보지도 않고 너무도 쉽게 피해냈다는 사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쩌어어엉!

상대의 검과 부딪치자, 화온마공을 이용한 강한 불꽃으로 노인을 밀려나게까지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풍신검.

콰아아앙!

정말이지, 풍신검의 활용도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펼쳐 초식인지 그냥 찌르기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노인은 풍신검을 간단히 몸을 트는 것만으로 능숙하게 피해냈다.

동시에 빠르게 일격을 가했고.

카카캉! 카카카카카캉!

그때부터 무려 이십여 번의 공방이 일어났다.

‘저 녀석. 확실히 나와는 달라.’

나는 싸움을 보며 생각했다.

AI라 불리는 녀석의 움직임은 한마디로 간결했다.

검을 움직이는 것, 몇 발짝 이동하는 것까지 거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가져갔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자신이 알던 무공 자체를 주력으로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초식을 쓰기는 썼다.

그래서 그런지, 기본 검술을 펼치다 쓴 무공의 초식들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결국 기본기의 차이인가.’

종합해 보면 찌르기와 베기에 주안점을 둔 검법.

거기에 아주 최소한으로 보폭을 가져가는, 너무도 효율적인 검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매화검법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아압!”

계속해서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한 구염.

그는 노여움에 상대를 몰아넣은 뒤 무리하게 공간의 거리를 벌렸고.

“아주 지랄을 해라.”

매화검법을 펼칠 걸 안 AI설휘는, 그대로 풍신권으로 빠르게 밀어버렸다.

“이노오오옴!”

피해냈음에도 일부 피해가 있었는지, 아님 아까 극음의 마공을 맞아서인지.

얼굴 한쪽이 피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이봐, 구염. 이만 좀 뒈져주시지.”

AI설휘의 말에 노인의 눈이 커졌다.

“날 아는가?”

“잘은 몰라. 굳이 기억할 만한 상대는 아니잖아?”

“…….”

노인, 구염은 잠깐 말이 없었다.

반쯤 눈을 감은 채 멍한 시선으로 AI설휘를 바라봤다.

“이, 이놈. 마인 주제에 내 자존심까지 건드리는군.”

“……?”

“그래. 다짐했다. 내가 죽더라도 너만은 데려가마. 그래야 죽은 명강에게 면이 설 테니.”

그 말과 함께 노인은 자신의 혈을 몇 군데 찍었다.

그리고 두 손을 내밀고 뭔가를 읊조리자, 노인의 얼굴이 점점 시뻘게졌다.

“오. 화산의 숨겨진 비전 무공을 쓰려는 건가?”

대충 어떤 무공인지 알겠다는 듯 AI설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혀를 차며 재미있다는 웃어 보였다.

“근데 이걸 어쩌나. 그 무공을 파훼하는 법을 내가 모를 줄 아나. 불안정한 네놈의 몸 상태로는 펼치지도 못할…… 어?”

그때였다.

주저리 말하던 AI설휘가 갑자기 놀란 사람처럼 자리에 서 있었다.

눈도 휘둥그렇게 변해 있었다.

- 무슨 일이냐?

나는 급히 물었다.

그러자.

“아, 깜빡했다.”

- 뭘?

“시간 제약이 있었네.”

- 뭐라고?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말인가.

“참고로 저거 말이야. 죽음을 도외시하고 사혈을 짚은 건데…….”

AI설휘는 어색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야, 이거 큰일 났다. 저놈이 저 무공을 쓰면 너는 못 이길 것 같은데…….”

나는 노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인은 이미 준비를 마친 듯, 시뻘겋던 얼굴은 차츰 가라앉아 있었고.

두 눈에는 기광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 야, 이 개 같은 자식아! 그럼 난 어떡하라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상대가 사혈을 짚을 정도로 미치게 만들어 놓은 다음에 하는 말이 큰일 났다라니.

“그러니까.”

AI설휘가 한 손을 들었고.

눈앞의 시야가 점점 흔들리는 것이, 일각이 끝난 듯한 징조가 보이는 그때.

“미안.”

AI설휘는 짧은 사과를 남겼고.

몸이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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