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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10화 (111/379)

110화. 잠입 (1)

확실히 잘못됐다고 느꼈다.

시야가 점점 일그러지다 지진이 난 듯 흔들리더니, 이내 다시금 떨림이 멎었을 때쯤에는.

“후우우…….”

구염이란 노인이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원천진기를 태워 넣었는지, 온몸이 도드라진 힘줄로 울긋불긋했다.

“와, 진짜…….”

설휘의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깨끗하게 비워졌다.

전력으로 붙어도 밀리는데, 대부분의 체력과 내공을 허비한 상황.

상대는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진검승부를 원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지.”

“저기. 일단 대화를 먼저…….”

당연하게도 노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팟.

눈 깜짝할 사이 지척까지 접근해 왔고.

급히 화공축원보(火功築院保)라는 일 장 내에 모든 접근을 불허한다는 화온마공의 방어초식을 펼쳤지만, 오히려 그게 화근이 되었다.

노인은 빠른 경공술로 지척에서 한 발치 벗어나면서 검기를 구사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이건 화산 검종의 절기로 불리는 탈명연환삼선검(奪命連環三仙劍).

세 개의 초식 중 하나였다.

콰가가각!

설휘의 주변을 보호해 주던 화공(火功)은 상대가 쏘아낸 빛줄기에 단번에 와해되었다.

뿐만 아니라, 호심공으로 운영하던 빙원결갑까지 부셔버렸고.

쩌어어어엉-!

그대로 설휘의 왼쪽 어깻죽지를 관통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악-!

이어지는 또 다른 초식.

이번엔 거의 휘몰아치듯 아래에서 그어 올랐고. 몸을 틀던 설휘의 허벅지 아래쪽이 관통되었다.

패애애애액!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한번 밀리니 그다음은 셀 수 없이 많은 공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설휘의 머릿속에는 고통보다 더 또렷이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보검과 신발. 이 두 개는 도구함에 넣어야 하는데…….’

하지만 소용없었다.

전투 중에는 도구함을 열 수가 없었다.

“……!”

그렇게 잠깐 망설였을 때.

안 그래도 상대 초식의 움직임은 육안으로 파악할 수준을 넘어선 상황.

마지막 탈명연환삼선검의 초식이 쏟아지자 설휘는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더는 회복할 수 정도의 일격을 당한 것이다.

“뒈져라. 쓰레기 같은 놈.”

쓰러지며 보이던 구염의 미소.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서서히 흐려졌다.

‘AI 개새끼…….’

짤막히 한마디를 남기고.

[두 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

목숨을 잃었다.

남은 목숨과 늘 봐왔던 익숙한 지문이 보였다.

▶ 처음부터 시작한다.

▷ 계속 이어서 한다.

▷ 저장한 지점을 불러온다.

‘망할. 저 보검과 백혼 장로에게 받은 신발.’

예오후검과 진초혜.

이 두 개의 물건은 그동안 큰 도움을 준 물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무한히 도움을 받을 물건들.

만약 여기서 저장한 지점을 불러오게 되면, 이 물건들은 찾기 힘들어질 것이다.

저장한 시점부터 이 건물, 구염이라는 노인의 방에 놓이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설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 계속 이어서 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선택.

아니, 예전 구종명에게 죽음을 당했을 때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어가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었지.

‘할 수 없다.’

설휘는 결정했다.

이 두 보물을 놓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설사 여기서 다시 싸워 위험에 빠지는 일이 있더라도, 이 선택을 해야 했다.

그만큼 두 개의 보물은 앞으로의 적을 제압하는 데 중요했다.

[‘계속 이어서 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설휘는 잔뜩 긴장했다.

겨우 생명을 연명할 정도의 상태가 된다면, 또 어이없이 목숨 하나를 잃게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눈앞에 뜬 창(窓)은.

설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턴제, AI제, 시뮬레이션제가 다시 사용 가능해집니다.]

[모든 부상이 치유됩니다. 체력, 내공이 최대치로 올라갑니다.]

최상의 몸 상태. 뿐만 아니라 전투방식도 다시 돌아왔고.

[적의 능력을 보여드립니다.]

거기다 수치까지 보여주었다.

[State Summary, 상태 요약]

구염도장 [화산파 오리관주(五里關)]

경지 입신(入神) 초입.

체력 120만/600만

내공 202만/990만

목숨 Coin 1

전투력 1502만~2333만

‘하!’

엄청난 전투력.

이 정도라면 필시 제대로 싸웠어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코인. 저 녀석을 죽이면 얻게 되는 목숨의 수가 시선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100% 적중되는 공격을 펼칠 기회를 드립니다. 참고로 내공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공격하시겠습니까?]

▶ 무공 선택

▷ 직접 움직임

‘상대에게 일격을 날릴 수 있다고?’

설휘는 두 가지 지문을 보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이어가기’는 단순히 최적의 몸으로 되살아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적에게 일격을 날릴 기회까지 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무공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공은 소신수마공과 화온마공.

그중 소신수마공은 이번에 숙련도가 올랐기에 더 큰 일격을 가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 무공 선택 ▶ 소신수마공(고급)

설휘는 그것을 선택했고. 곧장 눈앞의 시야가 거짓말처럼 밝아졌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본인은 되살아났고.

“……익!”

졸지에 경악하는 구염과.

그에게 소신수마공의 초식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쩌저저적!

소신수마공 최강의 초식인 소상기변.

거기에 숙련도가 고급까지 오름으로 인해 부가적으로 생성된 수십 개의 빙공(氷功).

구염은 그걸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콰아아앙!

순식간에 얼어붙는가 싶더니, 조각조각 박살 나 버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구염은 이미 시체의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위력이 무시무시하구나.”

고급까지 올라간 소신수마공은 펼친 나조차도 눈을 의심할만한 위력을 뿜어냈다.

본래 소수마공이었던 무공이기에, 빙공 계열에서는 최상위일 터.

만약 여기서 더 올라간다면, 정말 웬만한 녀석들도 막을 수 없는 무공이 펼쳐질 것 같았다.

“이어가기라…….”

설휘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었다.

힘겨운 적도 목숨 하나를 바쳐 헤쳐나갈 수 있게 해주는 기회. 그게 바로 ‘이어가기’였다.

“응.”

드드드드득.

설휘가 잠깐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책장들이 다시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진법을 펼친 자가 죽었기에 다시금 본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서 빨리 벗어나자.”

설휘는 다시 명강의 모습으로 바뀐 뒤 건물에서 벗어났다.

* * *

민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지어진 모옥.

본래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쉼터로 만든 곳이었으나, 오늘은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었다.

설휘가 조장들과 모이기로 한 장소로 이곳을 택한 것이다.

“오셨습니까? 대장.”

“별일 없었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온 설휘를 향해, 사령대 조장들이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미리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사는?”

“전부 마쳤습니다.”

요림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사실 그들에게 이곳 지형을 조사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보통의 마을처럼 크지도 않거니와, 화산파로 보이는 인원들도 그리 많지 않았기에.

민가 내부를 모두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언덕진 곳에 서서 육안으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했다.

“헌데…… 한 녀석이 안 보이는데?”

“아, 음무기는 더 알아볼 게 있다면서 좀 늦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

용진의 말에 설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송을 바라보았다.

“파악한 지형. 그리고 조사한 정보 좀 듣자.”

“옙. 여기 있습니다.”

적송이 양피지를 꺼냈고, 설휘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거기에 그려진 건 지도였다.

이곳 민가 건물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외부의 지형도 촘촘히 그려져 있었다.

설휘는 민가보다 외부의 지형부터 확인했다.

사실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번 임무는 그저 마태룡을 찾기 위함만이 아니라, 원하는 정보를 획득한 후 제대로 퇴각을 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적송이 말했다.

“이곳 마을의 대각 지형에 흔한 민가로 보이는 건물 네 채가 있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이곳에 장로급 인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시간이 없어 그들이 인상착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설휘는 대각에 위치한 건물 네 곳의 모양을 눈으로 익혔다.

“일대제자들의 수는 열 명 정도.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를 합치면 백 명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보이구요.”

요림이 이어 말했다.

“상시 교류하는 인물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을 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화산파로 보이는 인물들이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겠지. 실전 경험을 끝낸 이는 또 다른 제자들로 교체될 테니까.”

순간, 설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힘없는 자들의 대우는 어디서나 똑같다.

칼받이가 되든. 혹은 누군가의 목적에 의해 제거가 되든.

“마태룡이 있는 곳으로 제일 의심되는 건물은 어딘가?”

설휘가 묻자, 이번엔 적송이 말했다.

“동북쪽 건물이었습니다. 경비가 가장 삼엄했습니다.”

“허나, 건물 크기를 보아하니 내부에 두고 심문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데…….”

“동혈을 팠을 가능성도 봐야 합니다.”

“하긴.”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용진이 물었다.

“결국 직접 안으로 들어가 봐야 알겠군요.”

“뭐, 그거야…….”

그때였다.

끼이익.

허름한 모옥의 문이 열리자, 설휘를 포함한 조장들의 얼굴이 급변했다.

“……!”

“……!”

“……!”

무명천을 입은, 낯선 얼굴의 사내가 등장한 것이다.

“저, 접니다! 저라구요!”

손에 암기를 잡은 소령이 던지려는 그때, 낯선 사내가 손사래쳤다.

그리고 사내는 천천히 낯익은 얼굴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알던 음무기였다.

“야이! 깜짝이야.”

“저런 정신없는 녀석!”

사령대 조장들이 한마디씩 불평을 했다.

그사이 용진은 소령에게 한마디 했고.

“그냥 암기 날리지 그랬어?”

“지금이라도 던질까?”

“좀 늦지 않았을까?”

한두 마디씩 주고받았다.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던 중 설휘가 물었다.

“그래. 조사는 좀 했느냐?”

“찾았습니다. 위치를.”

“어디냐?”

“서북쪽에 있는 건물요.”

“남쪽이 아니고?”

적송이 묻자, 음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냐?”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봤거든.”

그 말에 적송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직접 경험해 봤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수고했다.”

“대장.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설휘가 밝은 얼굴로 격려하자, 음무기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답했다.

“무슨 문제?”

다른 조장들이 묻자 그는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진법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용진이 나서서 묻자.

“무슨 진법인데?”

“나야 모르지.”

“모르는데 진법인지 어찌 알아?”

“조용히 좀 해.”

소령이 다그쳤다.

설휘가 별다른 말없이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휘는 잠시 뒤 입을 열었다.

“하긴. 마태룡 같은 자를 숨기기 위해선 충분히 그런 수단을 쓸 법하지.”

그 말에 조장들이 한마디씩 했다.

“대장, 그럼 어떻게 할까요?”

“보통의 진법이 아닐 텐데…… 저희가 파훼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내게 방법이 있다.”

그때 설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나름 확신에 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시뮬레이션이라고…… 만능한 녀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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