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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11화 (112/379)

111화. 잠입 (2)

설휘는 이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계속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마태룡이 화산파에게 포로로 잡혔다면, 왜 첫째 제자인 살마의 귀까지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포로로 잡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살마의 귀에 흘러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

설휘는 이런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었다.

사실 시뮬레이션의 능력을 받긴 했지만, 마태룡이 포로로 잡혀 있는지는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직접 발로 뛰는 게 아닌가.

“가정한 전제가 틀렸을지도 모르죠, 대장.”

야심한 밤.

모옥에서 나온 뒤, 목표로 짐작되는 곳 주변에 은신하고 있던 중이었다.

설휘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자, 소령이 곧장 응대를 해왔다.

“……무슨 말이냐?”

“여기 있는 이들은 애초에 누군가와 거래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변절자일 수도 있잖습니까.”

“변절자?”

그 말에 설휘의 눈이 커졌다.

소령의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가정이었다.

그리고 그게 진실이라면, 살마가 이 사건을 알고도 묵인하는 것이 된다.

“구대문파는 자긍심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얘기도 있던데, 설마 그러려고?”

때마침 옆에 있던 음무기가 끼어들었다.

설휘 역시 동의했다.

바닥에 기는 나려타곤 같은 걸로도 엄청난 모욕이라 여기는 녀석들이다.

문파의 자긍심이 있다 못해 넘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 의견을 요림이 대신 답했다.

“그러니까 문제지. 지나친 자긍심이 독이 되기도 하니까. 더군다나 화산은 실력에 비해 제일의 도가(道家)도 아니니. 늘 무당과 소림에 비교당하는 문파지.”

이번엔 용진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고 다른 곳도 아닌, 거악이라 생각하는 우리 신교와 손을 잡는다는 건 무모한 가정 같은데?”

“전부가 아닌 일부라면 또 다르지.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도 문파를 위한 것이라면 넘어갈 수 있는 인종들이 있으니까. 거기다 말이 거악이지, 우리 신교와 구대문파는 적대적 공생 관계가 더 어울려.”

‘호오.’

수하들의 대화는 설휘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리고 이들 가정의 일부는 어느 정도 사실과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곤마가 말하기로는 살마 쪽은 이들에게 돈과 장비를 받고, 화산은 이들에게서 실전 경험을 쌓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정도 관계만으로는 언제든 신뢰를 저버릴 수 있다.

수하들이 추론이 맞다 가정한다면, 자신이 모르는 더 큰 조건들이 오갔을 것이다.

그중에는 무공도 있을 것이다.

자신도 오늘 직접 경험하고 듣지 않았는가.

구염이란 노인과 싸울 때, AI설휘는 분명 ‘신교의 진법’이라고 했다.

그 말은 이미 진법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첫째 제자 살마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설휘는 머릿속에 드는 고민을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작전을 시행해야 할 정도로, 목표했던 민가에 도달했으니까.

* * *

경사진 지붕으로 잠입한 수하들.

다행히 이곳은 적송이 지도에 표시한 위험한 건물이 아니라 그런지 다들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설휘가 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요림은 한 손으로 품속에서 날카로운 소도를 꺼내고는 다른 손으로는 지붕을 만지기 시작했다.

건물 구조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끄덕.

그러다 이내 마음을 굳혔는지 그는 칼에 내기를 주입하여 그대로 찔렀다.

지이이잉.

그의 손길에 따라 지붕의 단면은 너무도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요림은 딱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의 사면을 잘라내고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차례로 들보를 밟고 안으로 들어간 설휘.

음무기가 얘기한 것처럼 확 트인 공간에, 민가 집이라 하기엔 화려한 장식품들이 보였다.

그리고 화산 제자로 보이는 다섯이 눈에 차례로 잡혔다.

‘근데, 여기가 진짜 맞는 건가?’

설휘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딱 봐도 장로급 고수는 없어 보였다.

여기에 중요한 진법이 펼쳐져 있다면, 왜 이렇게 경비가 허술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장로가 있다면 애초에 잠입할 엄두도 못 내긴 했겠지만.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단번에 제압해야 한다.’

설휘는 고개를 들었다.

아깝지만, 지금 여기엔 이걸 꼭 사용해야 했다.

전투방식 <턴제>

츠츠츠-

눈앞에 놈들의 능력이 뜨기 시작했다.

넷의 전투력은 고작 100만 대.

그들 모두 이대제자였다.

이 정도면 수하들이 기습해서 단번에 쓰러트릴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맡아야 할 인물은…….

[State Summary, 상태 요약]

명랑 [화산파 일대제자]

경지 초절정

체력 201만/201만

내공 188만/188만

전투력 443만

‘이 녀석이군.’

설휘는 빠르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역할을 분담시켰다.

그러자 사령대 조장 넷 모두 고개를 끄덕인 뒤, 목표한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움직였다.

- 저는?

어색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는 음무기.

하지만, 그에게 답을 알려줄 사람은 없었다.

- 시작.

설휘가 손짓하자, 조장들은 일시에 공중에서 수직낙하했다.

그럼에도 설휘는 곧장 움직이지 않았다.

조장들이 적들의 지척까지 다가간 이후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야 서로의 호흡이 맞아 들어간다.

<절호의 기회! 명랑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빈틈창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목표했던 적에게 접근할 수 있기에.

▶ 상대의 지척까지 다가간다.

선택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 명강의 등 뒤에 도착했다.

“……엇!”

당연하게도, 그가 반응할 때는 이미 늦었다.

설휘의 풍신권이 그의 머리를 빠르게 가격해 버렸으니까.

풀썩. 풀썩. 툭. 투욱. 투욱.

자연스럽게 쓰러지는 화산파 제자들.

세 배 이상의 전투력 격차가 있으니, 예상대로 손쉽게 제압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숨 돌린 후, 설휘가 고개를 들었을 때.

“저놈, 뭐하는 거야?”

용진이 음무기를 보며 물었다.

그는 한쪽 벽에다 귀를 대고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까 말한 숨겨진 통로 같은 걸 찾는 거겠지.”

“저런 식으로 해서 찾아지나?”

“난 모르지.”

용진의 말에 요림이 손바닥을 펴며 모른다는 동작을 취했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귀를 대고 계속 이동하는 음무기.

그러다, 혼자 뭔가 ‘아!’ 하더니 이내 한쪽에 손을 쑥 집어넣기 시작했다.

“여기다!”

그 순간.

기기기기긱.

벽의 한 면이 거짓말처럼 아래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계단식으로 변했고, 동시에 아래에 있던 계단들이 솟아오르며 계속해 계단을 만들어냈다.

“기관진식!”

보던 조장들이 감탄했다.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기관진식.

어떤 마력이 아니라 기관으로 움직이기에, 간단한 손동작만으로 열린 것이다.

“봤지? 여기가 가장 수상했다니까.”

음무기가 그제야 어깨 한쪽을 들썩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흥에 겨운지 말을 늘어놓았다.

“내 전 사부께서 기관진식에는 조예가 있으셨지. 나도 어깨너머지만 좀 배웠고.”

“네 전 사부가 누군데?”

“다들, 조용히 하고.”

설휘는 떠드는 수하들을 보며 주의를 줬다.

이제 막 이곳에 들어왔을 뿐이다. 이렇게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난 음무기와 내려갈 테니, 너희들은 주변을 감시해라. 혹여나 오는 이들이 있다면 모두 제압하고.”

“알겠습니다.”

“옙.”

조장들은 그제야 상황을 인지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설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음무기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넌, 나중에 기관진식표 같은 거 나한테 하나 만들어주고.”

“예? 대장…… 그런 건 보더라도 한 번에 익힐 수 있는 게 아닐 텐데요.”

“걱정 마. 난 보면 바로 익힐 수 있어.”

설휘는 씨익 웃으며 아래로 손짓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여담은 이쯤 해두는 게 나았다.

“자, 들어가자.”

* * *

계단을 내려간 설휘와 음무기가 마주한 곳은 거대한 벽이었다.

이곳도 기관진식이 아닐까 했지만, 음무기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냥…… 진법인 것 같습니다.”

“진법이라고?”

설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단순히 거대한 벽으로 보이는 이것이 진법이라니.

“진법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공간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길을 지나치게 하거나. 아님 환영까지 만드는 초자연적인 현상이지요. 지금은 미로진(迷路陳)으로 보입니다. 길이 막혀있지만, 실상은 앞이 뚫려 있는 그런 걸 말합니다.”

“그래?”

설휘는 그의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 이해가 갔다.

침입자가 온다고 해도 이런 벽을 진법이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터.

물론, 안다고 해도 웬만해선 파훼할 수 없는 진법일지도 몰랐다.

“그럼 이제 물러서라.”

“예?”

“어서.”

설휘의 말에 음무기가 급히 몇 발짝 물러섰다. 설휘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며 생각했다.

‘이번에도 될까?’

이건 기관진식이 아닌, 기공(氣功)을 써서 펼쳐낸 초자연적인 현상.

자신이 아는 한 시뮬레이션은 만능임에도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믿어보자. 방법이 없으니까.’

설휘는 고개를 들어 전투방식을 턴제에서 시뮬레이션제로 바꿨다.

그러자마자.

전투방식 <시뮬레이션제 Lv2>

<설휘 님의 무공 개수를 분석합니다.>

<설휘 님의 무공초식을 분석합니다.>

……

<분석 완료>

기다렸던 시뮬레이션이 등장했고, 질문을 해왔다.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눈앞의 진법을 파훼하는 방법을 알려줘.”

설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만약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곳에 잠입했을 때 이미 죽인 화산파 제자들이 있으니 다른 방식이 통할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한동안 자리에서 서서 기다리던 중에.

<분석 중……◇>

분석이란 글이 떴고.

<찾았습니다!>

‘와! 진짜 대단!’

설휘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토해냈다.

설마 했는데, 진짜 만능일 줄이야.

<자, 아래에 표시하는 위치에 손을 맞댑니다. 수열로 계산된 위치에 일정량의 내공을 주입하면 됩니다.>

‘어? 수열?’

설휘는 얘기가 무슨 뜻인지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여러 색으로 표시되는 위치가 하나씩 뜨자, 거기에 손을 맞댔고.

<여기에 내공 150을 주입합니다.>

<여기에 내공 5,000을 주입합니다.>

<여기에 내공 1만 2,000을 주입합니다.>

지시하는 바를 따랐다.

그렇게 열 번이 넘게 지시대로 했을 때쯤.

<목환상미로진(目幻想迷路陣)이 해제되었습니다.>

성공했다는 문구와 함께, 벽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안에 사람이…….”

음무기의 말대로 사람이 있었다.

쇠사슬에 두 손목과 두 다리가 고정되어 있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반쯤 주저앉아 있는 자.

머리가 산발에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설휘는 직감적으로 알 것 같았다.

이자는 분명 마태룡일 거라고.

“사, 살아 있습니까?”

설휘가 다가가 진맥하자, 음무기가 물었다.

이건 뭐, 척 봐도 죽은 사람처럼 보였기에 물은 것이다.

그러던 그때였다.

“대장! 대장!”

파파팟.

계단을 도약하다시피 하여, 급히 안으로 들어오는 인물.

그는 요림이었다.

“무슨 일이오?”

설휘가 진맥하던 중이라 음무기가 대신해 물었다.

그러자 요림이 답했다.

“방금 비상발령이 내려진 듯합니다. 사방에서 신호탄이 터지고, 일시에 모두가 달려 나와 천라지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도 못한 수많은 화산파놈들이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음무기는 화들짝 놀랐다.

아마도 진법이 해제되면서 자연스럽게 경계가 발동된 것처럼 보였다.

“대장, 빨리 빠져나가시지요.”

“대장! 어서!”

요림의 재촉에 음무기가 가세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에도 설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장!”

거듭된 외침.

그제야 설휘가 반응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수하들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두 지문을.

▶ 데리고 간다.

▷ 놔두고 간다.

본 스토리라 불리는 곳에서 처음으로 나온 선택지.

오랜 경험에 따라 설휘는 이 두 개의 선택지를 눈앞에 두고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선택이 가져올 파급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어떤 판단을 내리시겠습니까?>

바로 ‘당신의 미래’라는 선택지에 관한 질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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