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퇴각 (2)
‘초마라니. 무공 경지가 올랐단 말인가.’
무공 이해도가 올랐다는 글이 올라오는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표시.
거기엔 AI설휘가 초마에 올랐다고 적혀 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표시 중 마지막에 나타난 글귀는 나의 시선을 더욱 사로잡았다.
‘시뮬레이션과 비슷한 기호다!’
Lv2라는 표식.
저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바로 저 ‘2’라는 숫자.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한다는 의미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제약도 있었다.
시간 : 900초 → 300초
300초란 숫자를 이해하긴 쉬웠다.
300…… 299……
이전처럼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 대강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으니까.
“똑같은 술수는 이젠 통하지 않는다.”
한편, 두 노인은 강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이전 AI설휘의 무위를 알기 때문인지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았다.
더욱이 천장에 선 앙상한 체구의 노인.
한 손으로 소령의 목숨을 앗아간 그 녀석의 태도는 더 가관이었다.
“네놈 술수에 우리가 똑같이 당할 것 같으냐. 죽은 이년처럼 네놈의 몸도 갈가리 찢어주겠다!”
이전보다 더욱 길길이 날뛰며 AI설휘의 분노를 자극했다.
스윽. 스윽.
이윽고, 두 노인이 서로 시선을 맞췄다.
척 보기에도 동시에 합공을 하려는 모습이었다.
‘반드시 이겨다오.’
나는 AI설휘를 보며 진심으로 바랐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지만, 저 녀석은 달랐다.
저 녀석은 두 노인을 찢어발길 힘이 있는 자니까.
파팟.
두 노인, 그들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눈 깜짝할 사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보였고, 속도는 가히 경악할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AI설휘는 뒤늦게 움직였는데, 그 녀석의 움직임이 어떤지 가늠하기 이전에.
“쾅!”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 일어난 광경은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방 중앙이 아닌, 구석진 곳에서 나타난 AI설휘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다른 이의 머리가 잡혀 있었는데, 놀랍게도 앙상히 마른 노인.
소령을 죽였던 그 노인이었다.
‘이, 미친!’
분명 두 눈을 뜨고 지켜봤음에도 그 장면을 놓쳤다.
미칠 듯이 빠른 노인들의 속도와 달리, AI설휘가 움직이는 건 아예 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AI설휘는 이제껏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녀석들보다 빨랐기에.
“다시 지껄여봐. 뭐라고 그랬지, 네가?”
“꺼꺼어…… 꺼거…….”
AI설휘가 손에 힘을 주자, 노인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물들어갔다.
움푹 파인 바닥에는 노인의 혈흔 자국이 가득했다.
“대답을 안 하네. 제 정신이 아닌 건가.”
쾅!
AI설휘는 다시 한번 앙상히 마른 노인의 얼굴을 바닥에 짓이겨버렸다.
“크아아아!”
그제야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노인.
“구양진인!”
그 모습에 AI설휘의 움직임을 쫓지 못한, 풍채 좋은 노인이 소리쳤다.
파팟.
동시에 그는 설휘에게 달려들었지만, 허사였다.
콱!
정말이지 엄청난 속도로 내지른 노인의 검을, AI설휘는 무려 맨손으로 잡아버렸다.
반쯤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에서 말이다.
“순서를 기다려. 너도 곧 지근지근 밟아줄 테니까.”
“……이익.”
노인이 검을 회수하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AI설휘는 그의 검을 놓아주지 않았다.
상대의 칼 때문에 손바닥을 타고 피가 줄줄 흐르는 모습을 보던 AI설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쾅!
한순간 크나큰 울림을 그에게 선사했다.
퍼억!
AI설휘의 주먹질에 풍채 좋은 노인은 주욱 밀려나며 바닥을 뒹굴었다.
계속 굴러가더니 벽에 맞고 그제야 멈췄다.
주먹으로 냅다 갈긴 위력이 딱 그 정도였다.
“이익! 네놈이 무사할 것 같으냐!”
한편, 바닥에 머리가 파묻혔던 구양진인이라 불리는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하지만, 그건 딱 거기까지였다.
뻑! 뻑! 뻑!
또다시 검이 아닌 주먹으로 내리친 AI설휘.
그렇게 서너 번을 맞고, 그는 몸이 죽처럼 흘러내렸다.
퍼억!
그대로 발로 걷어찬 뒤.
툭툭.
온몸에 묻은 피를 털며 말했다.
“일어나. 다들 살아 있는 거 아니까.”
“……너, 너는 누구냐.”
풍채 좋은 노인은 당황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실력자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외가기공이었다.’
나 역시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방금 상대의 검을 손으로만 잡아챈 걸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이건 철사장 같은 외가기공을 익히지 않고선 절대로 펼칠 수 없는 무공이었으니까.
대체 AI설휘라는 녀석의 존재가 무엇이기에 이런 무공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너 같은 버러지들이 알아서 무얼 할까?”
“이이익!”
풍채 좋은 노인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그는 마지막 필살 일격을 가하기 위해, 접근하기도 전에 매화검술을 펼쳤다.
그 찰나.
아주 잠깐의 시간에 AI설휘는 나를 슬쩍 보았고, 말을 걸었다.
“화온마공을 고급까지 익히면…….”
쇄애액! 쇄애액!
노인의 매화검법은 가히 화려함의 극치였다.
보고 있음에도 저걸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만큼 수많은 검이 찔러댔다.
“나오는 특수 기술이 있다. 바로…….”
그런 상대의 검을 피하는 AI설휘는 더더욱 괴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틈을 노리며 찔러대는 상대의 검격을.
캉!
의도적으로 맞부딪쳤고.
좌우로 보폭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외쳤다.
“수라폭열공(修羅暴熱功).”
……!
쿠아아아앙!
폭발이었다.
처음은 그저 공기를 태우며 파고드는 불꽃이었다.
형(形)이 없는 불이라 상대에게 접근해도 노인은 막아낼 수 없었고.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몸에 불이 붙는 걸 지켜봐야 했고, 이내 그것이 폭발로 터져나갔을 때는.
노인의 외형 자체를 볼 수가 없었다.
건물의 반이 통째로 터져나갈 위력이었으니까.
‘저게 화온마공의 극의…….’
나는 화온마공을 익혔기에 저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화온마공 9성에 도달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일격.
단순히 이론상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실제로 보니 경악할 힘이었다.
그걸 AI설휘는 너무도 손쉽게 펼쳐냈다.
“이건, 화온마공의 기 모으기에 이은 두 번째 특수기술로 나올 것이다. 어떻게든 화온마공 숙련도를 고급까지 올려둬라. 이걸 얻기만 하면, 저따위 노인들에게 절대로 지지 않을 테니.”
…….
“그리고 또 하나.”
스윽.
뒤에서 일어나는 노인.
AI설휘에게 맞아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있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난 그 눈빛이 의미하는 걸 알고 있었다.
예전 구염이란 놈처럼 사혈을 짚은 것이다.
“이번에 보여줄 건 초풍신이다.”
‘초풍신!’
나는 직감적으로 그게 무언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사대마공의 숙련도가 더 높아졌을 때 나오는 기술일 터.
“이건 능력을 얻어도 펼치기가 쉽지 않다. 요구 조건이 전투력이 아닌, 일정 이상의 체력과 내공을 요하는 거니까. 그래도 무조건 익혀놓거라. 그래야…….”
노인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는 검이 아닌 두 손을 펼쳤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스쳐 가는 전법 하나가 떠올랐다.
‘동귀어진이다!’
그때 AI설휘의 검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우우우우웅-
하늘에서 뇌전이 떨어져 AI설휘의 몸을 직격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검으로 이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광채를 뿜어냈다.
그 광채를 맞은 노인은 빛과 함께 공멸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생성된 폭풍이 치솟으며 건물 반쪽을 모조리 박살 내버렸다.
- 하…….
지켜보고 있던 나는 기가 막혔다.
이게 사람이 쓴 것인가 싶을 정도의 무위.
AI설휘는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사대극마공 중급에 올라서면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방금 내가 말한 이 두 개를 익혀라. 위기 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박살 난 건물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100…… 99……
그리고 무너진 건물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화산파 제자들이 있었다.
“자, 그럼. 마지막 할 일.”
AI설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내 말이 맞는지 확인하러 갈 차례군.”
- 무슨 소리야?
“말하지 않았나. 네놈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자고.”
* * *
AI설휘는 움직임은 거의 전광석화와 같았다.
한달음에 수십 장을 이동했고.
파파파팟.
화산파로 보이는 무사들을 너무도 쉽게 지나쳤다
그들의 무공으로는 AI설휘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그렇게 꽤 많은 거리를 이동했을 때였다.
“하앗!”
“어딜!”
대치 상황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적송!’
그는 수많은 화산파 무사와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도움은 포기해야 했다.
몸 상태를 보니 이미 적들의 칼에 당한 상처가 너무 많았다.
“보이냐? 수하 한 놈은 여기서 죽었다.”
- …….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 있지.”
파파팟.
이동하는 AI설휘의 시야에 또 다른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루와! 드루와!”
한 사내가 적들에게 에워싸여 있었다.
‘요림.’
언행과 달리 그는 적들의 공세를 막아낼 힘이 없었다.
이미 어깨가 부러진 상황이었고, 다리도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I설휘가 말했다.
“전투력 600만이 넘으면, 화산파 놈들의 경공술로는 네 수하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일대제자들은 그렇다 해도, 장로들은? 그들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잖아?
“바보 같은 놈. 너, 이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냐? 여기에 제대로 된 화산파 장로들은 없다. 네가 상대한 구염 정도의 수준이 전부다. 모두 다른 비밀분타에 몰려있지.”
- 왜 그런 건데?
“시간이 없으니 그건 마태룡에게 물어보고…… 지금 중요한 건.”
AI설휘는 고개를 돌려, 저편의 언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둘째 제자, 마후의 수하들이 이곳을 덮친다.”
-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마태룡은 스스로 사로잡혀 화산파의 비밀지부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넷째 제자가 아닌 둘째 제자에게 넘겼다. 그래서 그놈들이 이곳을 공격하러 오는 거야…….”
- 대체 무슨 말이야?
“그건 네가 또 알아보도록.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중요한 건데.”
- 뭐?
20…… 19……
AI설휘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아까 흥분을 해서, 모든 잠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다 보니 원천진기까지 써버렸지. 아마도 우리가 교체되고 나면, 넌 목숨을 잃게 될 거다.”
- 야, 그게 무슨 말이야. 목숨을 잃게 된다니.
“걱정마라. 내 친절하게 보검과 신발은 도구함에 넣어두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미안해서 이것저것 알려준 거야. 아, 그리고 말이야.”
-…….
“당분간 넌 나를 불러낼 수 없을 거다. 내 레벨이 올라서. 물론 네가 초마의 경지까지 도달하면 그땐 다시 날 불러낼 수 있게 된다.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 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냥 그렇게 알아둬. 그럼 안녕.”
AI설휘가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야이 씨…….’
[두 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
이게 떴다.
두 번 남은 나의 목숨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