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모든 능력치를 올린다 (2)
기폭고열검(氣暴高熱劍).
동작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물레방아 돌듯, 머리를 부드럽게 뒤로 한 번.
다시 앞으로 움직였다가 뒤로 이동하며 가볍게 오른손을 뻗으면 되었으니까.
스스슥.
설휘는 특성 기술표를 보며 머리를 ↘ ↓ ↙ ← 방향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시연하려는 그때.
자신이 쥐고 있던 검신에서 미약하게 피어나는 불꽃이 보였다.
“대장, 저거였습니다. 저게 한 번씩…….”
적송이 급히 불꽃을 가리키자 설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중을 눈치챘다.
수련 중에 몸을 계속 움직였고, 그러다가 고검 특성 기술표 동작에 어느 정도 맞아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이 불꽃을 적송도 보았을 거다.
기폭고열검은 절반 정도만 따라 해도 불꽃이 검에 맺혔으니까.
“나중에 알려주마.”
설휘는 짧게 말하고, 다시 처음부터 머리를 움직였다.
모든 동작을 따라 한 설휘는 마지막으로 검을 내지르며 오른손(A)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
“……!”
두 사내의 눈이 부릅떠졌다.
쩌저쩌저정! 쾅! 콰캉!
검 끝에서 일어난 폭발이 설휘가 딛고 있는 발아래부터 시작하여 무려 세 장까지 뻗어나갔다.
거기다 한 번이 아니었다.
무려 여섯 번의 크고 작은 폭발과 함께, 마지막은 어떠한 대상이든 공멸하게 만들 정도의 살광(殺光).
공중으로 얼마나 솟구쳤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저 바닥이 깊게 파일 정도의 충격과, 귀가 얼얼할 정도의 굉음이 귀청을 때렸다는 것밖에.
“대장, 방금 건 대체 어떤 무공…….”
적송이 당황한 얼굴로 물어왔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기운을 사용할 수 있냐는 것.
그사이, 설휘는 이 기폭고열검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분석하고 있었다.
‘이건, 벽력탄이다.’
벽력탄의 폭발과 흡사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합쳐진 위력.
벽력탄을 넘어, 열 개 이상의 위력을 응축해 펼쳐내는 화염탄(火焰彈)이나, 또는 초열뇌화탄(焦熱雷火彈)에 가까웠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약간 시간이 흘렀는데도 귀청이 계속해 먹먹했다.
“대장,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잠깐의 침묵 뒤, 적송이 다가와 거듭 물어왔다.
그는 방금 일격이 검과는 전혀 상관없는, 설휘의 능력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 정도 위력일 줄은…….”
설휘는 적송의 외침에도 기폭고열검이라는 특수 기술에 정신이 뺏겨 있었다.
방금 보여준 폭발의 힘은, 자신이 펼치는 풍신검과도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아니, 위력 면에서는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으나, 일격을 정통으로 맞으면 웬만한 고수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사라질 정도였으니까.
“대장…….”
“그래. 이제 가르쳐 줄 테니, 이 동작을 따라 해 보아라.”
설휘는 적송에게 말하며 검을 건넸다.
그리고 조금 전 눈앞에 나타났던 기술표의 동작을 보여주었다.
적송은 어설프지만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마지막 동작을 펼치는 순간.
쩌저쩌저정! 콰캉!
검 끝에서 실로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오는 걸 직접 목격했다.
“이게 대체…….”
적송은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자신이 이런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도 그러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내공도 싣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정도의 위력을 뿜어낼 수가 있는 것인가.
“신병이기(神兵利器)다. 잘 소지하도록 해라.”
“정말입니까? 이게…….”
적송의 얼굴에서 감탄과 흥분이 피어났다.
괜히 머쓱해진 설휘는 손짓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
‘가만, 상인에게서 구한 병기들이 다 이런 거라면…… 다른 수하들의 것도!’
설휘의 눈이 커졌다.
생각해 보니 병기 하나 바뀌었다고 수하들의 전투력이 그 정도로 오를 수는 없다.
적송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결국 자신이 건넨 것이 전부 신병이기일 게 틀림없었다.
“헌데, 적송아.”
적송이 예를 갖추며 물러서려는 그때, 설휘가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예? 또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의 물음에 설휘는 대답 대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적송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적송(赤松) [사령대 2조 조장]
신체 정상
경지 절정
체력 515만/515만
내공 280만/280만
전투력 533.7만(+투기) 건령패, 고검 착용
‘이 녀석의 체력과 내공이 언제 이렇게 오른 거지.’
처음엔 잘못 봤나 싶었다.
자신이 기억하기로, 이곳에 오기 전 적송의 체력은 300만 대. 내공은 200만이 채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큰 폭으로 올라와 있었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이 정도로 성장했단 말인가.
“너, 신체 능력이 이전과는 좀…….”
“아, 그게 말입니다.”
설휘의 말에, 적송은 어색한 자세로 머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게, 다 대장님 덕입니다.”
“……뭐가 말이야?”
“요 몇 달간 풀리지 않던 심득. 그 벽을 며칠 전에 넘었습니다.”
“벽을 넘었다고? 그러면……”
“예. 운기조식으로 인한 체력과 내공의 증가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 훈련이, 제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되어 돌아온 것이지요. 체력과 내공이 바닥난 상황에서 소주천을 운기하자, 기경팔맥의 활로가 평소보다 더욱 높아지며 새로운 경험을 했으니까요. 아, 제가 너무 들떴나요? 대장께서는 이미 거쳐온 길을 가지고 말입니다.”
“…….”
설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거쳐온 길이라고? 아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런 현상을 느끼지 못했다.
일시적으로 내공이 증대되거나 감각이 예민해질 때, 도움을 받았던 건 영약뿐이었다.
스스로 기감을 확장하고, 기경팔맥을 열고, 기의 순환을 통해 뭔가를 얻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면, 혹 다른 대원들도 효과를 보고 있느냐?”
“예. 요림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령과 용진도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곧 효과를 볼 것 같습니다. 음무기는 아직 제자리지만요.”
“그렇구나.”
설휘는 밝게 웃어보였다.
이게 도움이 될까 걱정했는데, 수하들에게는 이미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대장, 수고하십시오.”
적송은 예를 차리며 힘찬 목소리로 말한 후 돌아섰다.
그런 당당하고 즐거운 걸음과 달리, 설휘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강해지지 않은 대가를…… 지금 치르는 건가.”
전투력이 높은 대가.
기초가 부실해 성과를 낼 수 없는 몸.
그동안 싸움이 아닌, 제대로 정직하게 수련을 해 성과를 낸 적은 없었다.
아, 하나가 있긴 했다.
일원소마공을 익혔을 때.
다만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오히려 그 뒤부터는 그 이상의 깨달음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기본 훈련이라……..”
설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저편에 있는 산맥을 바라보았다.
계속 의아하게 여기며 의심했던 훈련.
그것이 수하들에게는 올바른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해보자. 나도.”
그렇다면,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다 보면, 자신에게도 분명 성과가 나타날 테니까 말이다.
* * *
설휘의 훈련은 매우 고강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산 오르기를 하루에 두 번. 많으면 세 번이나 오르내릴 때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투력이 쓸데없이 높아서인지, 고된 훈련을 해도 체력과 내공이 생각보다 줄지 않았다.
그래서 산을 타는 일을 반복했고, 도중에 무공을 무리하게 써가면서 내공을 소모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운기조식 때문이었다.
모든 체력과 내공이 바닥 난 상태에서, 기(氣)를 생성하고 몸의 회복에 주력하는 게 상당한 수련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설휘는 매일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선을 그리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별거 없어 보이는 행동.
그럼에도 필요한 행동이라 여긴 것은, ‘완벽한’이라는 의미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게 더 반듯하게 보이지?”
그렇게 여러 날 동안 바위에 그은 선을 보던 설휘는 문득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체력이 가장 바닥이었던 날.
그리고 내공이 거의 없었던 날에 그었던 선이 더 반듯해 보였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거지?”
처음엔 그저 기분 탓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검을 들 정도의 힘조차 없던 날일수록 선이 반듯하게 그어지는 걸 보고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고, 온몸에 힘이 빠졌을 때. 최적의 효율이 나온다는 걸 느낀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운공을 하면 어떨까.”
그리고 생각의 꼬리는 여기까지 이어졌다.
평소 소주천의 운기하던 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단전에서 뻗어 나오는 강한 진기로 돌파하려고 했던 네 번째 관문인 충맥.
이곳을 아주 잔잔한 힘으로 뚫어버리자는 생각에 미친 것이다.
대주천.
임독맥, 대맥에서 이어지는 충맥을 뚫어야만 운공할 수 있고, 또한 완성하게 된다.
여길 통과하면 기경팔맥의 힘이 폭주할 정도로 강해진다.
사대극마공에 나와 있는 바, 흔히 이 정도 단계를 초마라고 한다.
소주천과 대주천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백회혈.
정수리에 있는 이 혈이 운공의 중심에 있었다.
‘더욱 약하게. 더욱 미약하게 건드려보자.’
그렇게 또다시 며칠을 반복하던 설휘.
바닥을 길 정도로 체력과 내공이 떨어졌을 때마다 이것을 뚫기 위해 시도했다.
이게 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저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혼자만의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
설휘는 운공하던 중 머리 위로 극도의 차가운 기운이 몰려듦을 느꼈다.
단 한 번도 뚫지 못했던 경혈이라 그런지, 처음엔 이것이 대주천의 신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엉덩이인 회음혈로 도착하자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기운이 제멋대로 날뛴 것이다.
‘이거 이러다 주화입마에 빠지는 거 아냐!’
하지만 설휘는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체력도 소진된 상태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기운이 날뛰던 도중.
[초절정의 극(極)에 오르셨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성취를 표현하실 겁니까?]
갑자기 이런 게 떴다.
▶ 자신감 있게 기운을 발산한다.
▷ 소극적으로 기운을 감춘다.
‘자신감? 소극적?’
영문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설휘에게는 좋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자신감이란 말이.
‘자신감 있게 기운을 발산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지문.
아니나 다를까, 몸 안에 있던 뜨거운 단전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몰려와 옷을 모두 태워버렸다.
뿐만 아니라 신체에는 새살이, 또 근육이 다시금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공의 진일보로 몸까지 달라진 것이다.
“자신감이라는 게…….”
그리고 설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자신감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말이다.
“대, 대장…….”
언제 왔는지 모를. 한 여인이 자신의 나체를 보고 당황한 듯 서 있었다.
소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