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모든 능력치를 올린다 (3)
특강훈련이 석 달째 접어들 무렵.
쉬익. 쉬익!
산 오르기 출발 지점인 고갯마루에서는 한 사내에게 두 남자의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일원소마공의 초식을 펼쳤고, 이내 다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런 그가 다시금 움직였을 때는 검신에서 불꽃이 일었고, 이내 두 남자를 놀라게 하는 일격을 선보였다.
쩌저쩌저정! 쾅! 콰캉!
폭발이었다.
닿는 것이 무엇이든 공멸을 연상케 하는 그런 응축된 폭발.
기폭고열검은 귀청이 떨어질 듯한 굉음을 내며 두 남자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미, 미친……!”
그중 음무기는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쩌억 벌린 채 닫지를 않았다.
옆에 있던 요림과 달리, 적송이 펼친 신병이기의 힘을 처음으로 목도한 것이다.
그리고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이번엔 내 차례인가?”
스윽.
요림이 걸어나가자, 음무기의 시선이 그의 뒤를 쫓았다.
몇 주 전, 큰 깨달음을 통해 신체 능력이 진일보했다던 녀석.
그 성과를 인정해 설휘가 신병이기의 숨겨진 능력을 알려줬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녀석의 얼굴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신병이기 이능의 이름은 탈혼소마경(奪魂素魔驚)이라더군.”
“소마경…….”
음무기는 잔뜩 눈에 힘을 주었다.
이번엔 어떤 능력이 튀어나올지 자못 궁금해진 것이다.
설휘에게 하사받은, 철봉처럼 단단한 그의 창에서는 어떤 위력이 나올 것인가.
스윽.
적송과 음무기를 뒤에 두고, 휑하니 넓은 공터를 보며 자세를 취하던 요림.
그는 곧 몸을 좌우로 한 번 흔들더니 뒤로 쓱 빠졌고.
파앗.
다시금 앞으로 튀어나가며 창을 휘둘렀다.
그 순간.
지이이이잉-!
창촉에서 여섯 개의 기공이 일시에 퍼져나가더니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일순간, 일렁이듯 사라지더니.
창을 바닥에 찍고 곧게 서 있던 요림의 주변으로 우수수 파고들었다.
콰콰콰콰칵!
시전자의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창기(槍氣).
이 모든 것이 모두 무형화로 변해, 일그러지는 잔상을 제외하곤 눈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거, 이기어검 아냐!”
음무기는 기겁했다.
스스로 기를 통제하고 발출하는 수준을 넘어서, 기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경지.
이건 이기어검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건 아니지만…… 통제할 수 있더군.”
“허, 미친!”
음무기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강기(罡氣)가 나오는 이기어검이 아니란 건 그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를 통제한다는 건 절대적인 능력에 가깝다.
저 정도의 능력을 사령조장 따위가 혼자 독차지하다니.
음무기는 곧 설휘에게 받은 유엽도를 집어 들더니 외쳤다.
“제길! 나도 대장에게 가르쳐달라 해야겠어!”
그 말에 요림이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극적인 성취가 없다면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 때문에 용진이 지금 밤낮 안 가리고 훈련하고 있는 거고.”
“아…….”
“신병이기의 능력을 갖추고 싶으면, 빨리 산이나 타고 와. 운공을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백날 부탁해 봐야 대장이 들어줄 리 없다고.”
“젠장할!”
얼굴이 일그러지는 음무기.
그는 요림의 말에 뭐라고 변명하기도 힘들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틈만 나면 훈련에 집중하지 않고 빈둥거렸으니까.
“내 반드시 성장해서 신병이기의 능력을 알아낼 거다!”
그는 요림과 적송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산을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요림과 적송이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좀 정신을 차리려는가 보군.”
“그러게.”
삽시간에 사라진 음무기.
그런 뒷모습을 보던 적송이 나무 그늘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려던 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이내 요림을 보며 물었다.
“소령은 어디 갔어?”
* * *
설휘는 할 말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느리기는 했지만.
추가로 지문 선택을 요하는 걸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물론 지문을 보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아래 지문을 보고 선택하세요.
▶ 그래, 직접 보니 소감이 어떤가?
▷ 왜? 이제야 남자로 보이는가?
▷ 이리 가까이 오겠는가?
▷ 수련의 성과가 있었다. 가릴 것 하나 있으면 주겠느냐?
‘미친 지문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그냥 완전히 미쳐버렸다.
저런 지문을 선택할 리도 없거니와, 저건 그냥 대놓고 도발하는 짓이다.
물론 두 번째도 선택하기엔 아주 끔찍했다.
하지만 설휘는 지문을 쉽게 고르지 못했다.
‘아, 차악이 곧 최선이었던…….’
지문은 항상 최악, 또는 차악이 최선의 선택이 되고는 했었다.
만약 여기서 최악의 선택을 한다면?
최상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지랄. 저런 선택은 절대 할 수 없지.’
설휘의 선택은 네 번째였다.
‘수련의 성과가 있었다. 가릴 것 하나 있으면 주겠느냐?’를 선택하셨습니다.
“아!”
고르자마자 소령이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그녀가 외투를 재빠르게 벗어 자신에게 던져주었다.
‘정말 다행이다.’
설휘는 급히 그녀의 옷으로 하체를 가렸다.
그리고 멈췄다.
시간이.
아래 지문을 보고 선택하세요.
▶ 사실 가리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지.
▷ 소령아,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
▷ 이리 가까이 오겠는가?
‘와. 미치겠네.’
또다시 자신을 수렁에 빠트리는 지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셋 중 하나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중 세 번째는 그야말로 ‘미친 지문’.
‘사실 가리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지.’를 선택하셨습니다.
설휘의 선택에 소령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자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사실 낯 뜨거워 도망치고 싶었다.
“뭐, 그리 볼 것도 없던데요?”
그리고 이어진 말.
그 말에 설휘는 본능적으로 발끈했다.
“큼큼. 무슨 일로 왔느냐?”
허나,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래야 했다.
추가적인 선택 지문이 나오면, 이번엔 정말로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수련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리 보이는구나.”
그 말에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보고 직감했다.
확실히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래, 알려주마.”
* * *
그녀에게 준 것은 귀전(鬼箭)이었다.
외견상 보기에는 화살처럼 촉이 있었고, 길이는 붓대 정도였다.
흡사 단필(短筆)의 모양과도 비슷했다.
은밀성과 휴대의 용의성이 뛰어난 철필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 귀전 특성 기술표 ◆
[귀연전화(鬼連展花)] : ← (내공 싣기) → ← → A 또는 B
‘특이하군.’
설휘는 기술표를 보고도 한두 번 실패했다.
그러고 세 번째 되던 그때.
솨아아아아-!
정확히 구현했다.
설휘의 손에 있던 귀전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던 것이다.
“저게 뭐……아!”
빠르기만 할 뿐, 그다지 효용 가치가 없다고 말하려던 소령이 입을 틀어막았다.
콰앙!
시야에 거의 보이지 않던 거리에서 폭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설휘를 봤을 때, 놀랍게도 날린 귀전을 그가 들고 있었다.
“기공(氣功)만 날아갔다.”
“예? 방금 그게…….”
“그래. 형상화된 거지. 비슷한 모양일 뿐이야.”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암기를 던졌는데, 그것이 그저 기(氣)가 형체화된 모습이었다니.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거리까지 날아간 것도 그랬다.
“이 신병이기는 한 번으로는 감을 잡기 쉽지 않구나. 개별적인 수련이 필요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대장.”
소령은 감격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조금 전 민망했던 상황이 정말 있었나, 의심될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그럼 손에 익을 만큼 수련하거라. 최소 한 달은 여기에 더 머무를 테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는 소령.
설휘가 내미는 귀전을 환한 얼굴로 받아들었다.
“그런데 대장.”
그렇게 예를 갖추고 곧 하산할 것 같던 그녀가.
”언제 할 건가요?”
걸음을 멈추고 물어왔다.
“뭘 말인가……?”
“예전에 얘기 나눴던 거 말이에요.”
“무슨…… 아!”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얘기들.
천일관 때의 기억이었다.
“말해주세요. 전 언제든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산을 내려가는 소령.
설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설마…….”
- 나와 뜨거운 밤을 보내 주시겠소?
그때의 선택.
그것을 말하는 건가.
아님.
- 이 지옥에서 같이 탈출해요.
이것인가.
“그러고 보니…….”
앞서 나왔던 선택 지문.
최악의 지문을 피해, 최선의 지문을 선택했었다.
그래서 순탄하게 위기를 벗어났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건, 위기가 아니었던가.”
답은 알 수 없었다.
굳이 알고 싶다면, 죽어서 다시 이 시점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답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계속 이런 선택만, 아아아…….”
설휘는 스스로 머리를 쥐고 흔들었다.
이 변칙적으로 나오는 선택 지문은 항상 자신의 생각 위에 있었다.
그것이 너무 화가 났다.
[화온마공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수라폭열공을 익혔습니다.]
‘어?’
그렇게 머리를 쥐던 그의 눈앞에 나타나는 상태창.
[기 모으기 Lv2로 바뀝니다.]
계속 올라오는 정보들.
‘그러고 보니…….’
설휘는 문득 방금 전 자신이 어떤 벽을 뚫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초풍신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고대했던.
초풍신을 드디어 익힐 수 있었다.
[빙공극저화(氷功極低畵)를 익혔습니다.]
‘빙공극저화는 또 뭐야?’
뭔지 모르지만 좋은 걸 테다.
수라폭열공과 초풍신. AI가 이것만 있어도 웬만한 위기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장담했었으니까.
‘그럼 내 능력은…….’
설휘는 전투방식을 바꿔보았다.
전투방식 턴제
그리고 능력치를 확인했다.
[State, 상태]
설휘 [은영단 사령대장]
신체 정상
경지 초절정의 극(極)
체력 1550만/1550만
내공 2700만/2700만
전투력 ???
전투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측정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건지, 아님 본래 나타나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소신수마공 완벽 특성 기술표 ◆
[빙공극저화] : (두 눈에 피를 묻힘) ABCD (동시에)
“눈에 피를 묻힌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기술.
이게 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한번 해볼까?”
설휘는 검으로 손등을 살짝 그었다. 손목을 타고 뚝뚝 흐르는 피를 한 손에 묻혀, 눈에 발랐다.
그리고 나와있는 대로 두 손과 두 다리에 내공을 끌어올렸고.
“뭐 특별한 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팔을 바라보던 설휘의 눈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뚜-----욱.
바닥에 떨어졌어야 할 피가.
뚜-----욱.
거짓말처럼 공중에 뜬 채로 멈춰 있었던 것이다.
‘이 무슨…….’
설휘는 직감했다.
시간이 극한으로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머리를 들려고, 고개를 들려던 자신의 움직임 역시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아아아아-
다섯 호흡 정도가 지났을까.
한순간 바람과 함께 다시금 평소처럼 돌아왔다.
뚝. 뚝. 뚝.
그리고 멍한 표정의 설휘는 바닥에 떨어지던 자신의 피를 보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시간의 결박.
빙공극저화란 특성 기술은 흐르던 시간을 결박시키고, 동시에 자신에게 밀도 높은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조금 전에 경험했듯이, 극도로 느려지는 시간보다 설휘는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가 있었으니까.
“정말이지……. 이번엔 엄청난 걸 얻었구나.”
설휘는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수라폭열공, 초풍신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은.
어쩌면, 이것들보다 더 강력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게 아닌가.
“그럼, 이제 더는 주저할 필요가 없지.”
설휘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까, 그간의 성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지옥 같았던 몇 달간의 훈련.
그 대미를 장식할 녀석으로는…….
어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화산파 구염도장과 대련시켜줘.”
이놈이 제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