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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19화 (120/379)

119화. 모든 능력치를 올린다 (4)

설휘가 ‘이전과 달라졌다.’라고 느낀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청각이었다.

이번 심득은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변화했다.

바로 소리의 파동.

미세한 파동부터 강한 파동까지 세세히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류의 울음소리부터 시작하여 몸집이 더 작은 곤충. 파충류. 심지어는 무형의 바람 소리까지.

각기 다른 울음소리가 구분되어 전해지면서 설휘의 청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피부를 통해 느끼는 감각도 예전과는 달랐다.

딛고 있는 땅의 촉감.

하체에 걸친 옷뿐만 아니라, 숨 쉬는 호흡.

심지어는 맞은편에서 구현화되고 있던 화산파 구염도장의 숨소리까지 전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준비하세요.

5…… 4……

이전에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화산파 구염도장을 보고서도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시작합니다.

팟.

싸움은 이전과 비슷하게 진행됐다.

시작이라는 글귀가 나타나자마자, 상대가 자신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으니까.

‘신법이…….’

그럼에도 설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황했던 예전과 달리, 그저 자리에 선 채로 적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느려진 건가?’

처음엔 그리 느꼈다.

적의 움직임이 이전만큼 놀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각 자체가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상대의 그 빠른 움직임에도 대응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카아아- 쩌어엉!

한번 검을 맞대자마자, 한쪽에서 번갯불과 함께 공력(功力)이 터져 나왔다.

단순한 베기가 아닌 공력을 주입한 구염도장 나름의 한 수.

검에 내력을 실어 의도적으로 설휘의 검과 맞부딪친 것이다.

그런데.

“큭!”

뒤로 밀린 건 오히려 구염이었다.

그에 반해 공력을 전혀 싣지 않았던 설휘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감히!”

구염도장이 분노의 포효를 터트렸지만, 설휘는 눈 하나 깜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흥분하는 모습에 더 당황했다.

‘무슨 공력이 이리…….’

약한 정도가 아닌, 미약했다.

정말 의도적으로 공력을 실었다곤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내공이었다.

이젠 충분히 구염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이 정도로 격차가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저 노인과 나의 무공 경지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 대체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걸까?’

구염도장의 경지는 입신의 초입.

입신이란 보통 손발이 자유로운 일수 일체를 가리키는데, 초입이라면 아직 그 정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보통 정파에서 말하는 입신을 신교에서는 초마라고 일컬으니, 결국 그의 무공 수준은 초절정과 초마 사이란 걸 뜻했다.

‘결국, 체력과 내공 때문이라는 건가.’

지금으로선 그 이유밖에 없었다.

경지가 대개 비슷한 경우, 체력과 내공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이번의 전투가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아압!”

카카카캉!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구염도장.

설휘는 그가 무슨 무공을 펼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대응하기 어렵거나 예측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 검을 나눈 설휘가 보다 못해 말했다.

“야, 그냥 매화검법을 써.”

“…….”

“그래야 상대할 맛이 날 것 같은데.”

답답함에 꺼낸 말이었다.

그런데 그게 구염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나 보다.

“이노오오옴!”

눈가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흥분한 그가 내력을 끌어올렸다.

바닥이 움푹 파일 정도의 기공(氣功)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고.

그렇게 덤벼드는 상대에 맞서, 설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솨아아아아아-

셀 수 없이 많은 검선.

멀리서 본다면 황홀할 정도의 검무(劍舞)가 설휘 앞으로 휘몰아치며 지나갔다.

반면, 딱 한 걸음만 앞으로 움직였던 설휘.

그는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피…….’

매화검법을 펼친 구염의 검이 남기고 간 생채기였다.

아슬하게 설휘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이거였구나……. 매화검법.’

설휘는 내심 놀랐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매화검법이 구염에 의해 이런 식으로 펼쳐질 줄은 자신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매화검법은 화산의 수련법과 내공심법을 통해 다져져야만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생로(生路)라고 할까.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동선과 퇴로를 염두에 둔 검식이라 그런지 정작 설휘의 목을 베지는 못했다.

화려함과 현란함. 그리고 날카로움에 신경 쓰다 보니, 정작 대상의 목숨을 끊는 데는 소홀히 했던 것이다.

“제길.”

그리고 구염도장도 뒤늦게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분명 상대가 움직일 걸 예상하여 펼쳐냈는데, 미동도 없이 서 있었고.

마지막 생명줄을 끊는 절초를 펼치던 그때, 설휘가 한 발짝 걸어가며 피해낸 것이다.

“아쉽나?”

설휘는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화된 구염을 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한번 해봐.”

그 말에 구염이 자신의 입꼬리를 미묘하게 말아 올렸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자, 오히려 눈에 살의가 번들거렸다.

탓.

그렇게 다시 지척까지 다가온 구염.

하지만 이번에는 설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스윽.

손에 묻은 피를, 두 눈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매화검법을 한번 봤으니.

이번엔 자신도 한번 시험해 봐야 했다.

[빙공극저화가 발동합니다.]

한순간.

---쉬이이---

자신의 귀를 스쳐가는 구염의 칼이 보였다.

그리고 매우 느리게,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당기는 구염.

동시에 허리춤에서 번쩍이는 기운이 담기는 것까지도 보았다.

뭔지는 몰라도 저 심법운용이 매화검법의 쾌검을 만들어주는 비술(祕術)인 듯했다.

‘여기까지.’

쇄------

그렇게 느릿하게 자신에게로 쏘아지는 검을 보며.

그제야 설휘가 움직였다.

고개를 숙여 상대의 검을 살짝 피함과 동시에, 한 손에 쥔 검으로 그의 목을 그었고.

---애액!

순간적으로 시간이 다시 흘러감과 함께, 구염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승리하셨습니다.

승리를 알리는 상태창을 본 설휘.

스윽.

그는 검을 집어넣고는 담담히 내기를 갈무리했다.

* * *

설휘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오래달리기나 산 오르기 같은 지옥훈련은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명상은 꾸준히 이어나갔다.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체력과 내공에서 무려 열 배에 달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아직은 반쪽짜리 깨달음이라는걸.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전투력 1999만

첫째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난 자신의 전투력 수치.

초마에 오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3,000만은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그 예시가 바로 태황각주다.

당시에 능력치로 나타났던 수치는 3,000만이었다.

만약 전투력이 경지와 같이 올라간다고 가정했을 때, 그를 기준으로 3,000만이 넘어야 초마에 오를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됐다.

둘째는 운공이다.

설휘는 임독맥, 대맥에서 이어지는 충맥까지를 뚫어냈음에도 대주천을 이루지는 못했다.

대주천은 정수리에 있는 백회혈의 문을 열어야 비로소 시작되는데, 한두 개만 열려도 자연의 기(氣)를 흡수할 수 있다.

보통 그 단계를 본교에서는 초마. 혹은 초마의 경지라 부른다.

설휘는 백회혈의 문이 하나가 아닌, 반쯤 열려있는 상태였다.

그로 인해 초마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초절정의 극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게 사부가 있었더라면…….’

설휘에겐 아주 강력한 네 가지의 마공이 있었음에도, 성장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앞에 나 있는 길이 너무 많아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형국이다.

그러니 결국 정론이라는 체력 훈련, 내공 수련, 정신 수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태황각주와 싸우는 건 무리겠지?’

며칠이 지나고 시뮬레이션을 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설휘는 대련하지 않았다.

이전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보니, 초마가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 짐작이 간 것이다.

거기다 체력과 내공이 주는 차이도 있었다.

‘길을 찾아보자. 나만의 길을…….’

그렇게 하루하루 또 다른 깨달음을 위해.

백회혈을 뚫을 수 있을 만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명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해냈습니다아아아!”

“대장! 성취해냈습니다.”

이곳에 온 지 넉 달하고도 십 일쯤이었나.

운기조식 중이던 설휘를 향해 두 남자가 경쟁하듯 뛰어갔다.

용진과 음무기였다.

“왔느냐?”

설휘가 반갑게 물었고.

“예. 제가 먼저 왔습니다. 커헉. 컥.”

“무슨 소리. 제가 더 빨랐습니다. 하악, 하악.”

둘은 가쁘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런 그들을 보던 설휘는 내심 놀라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용진과 음무기. 둘의 기도가 예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휘, 본인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보니 이들의 성취가 더 확실히 보였다.

‘벽이란 게…… 이리 쉽게 깨지는 거란 말인가.’

그래서인지 설휘는 내심 허탈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악착같이 강해지기 위해 발악했던 날들.

거기다 엄청난 기연의 힘을 받아가며 성장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성장했다. 이러한 모습은 놀라움을 안겨다 주었다.

뭐,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아 사령대 조장이 되었다.

거기다 마성(魔性)에 적합한 체질 덕분에 스스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벽을 뚫는 게 가능했다.

소령이 이토록 무리하게 수련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도 바로 이점 때문이었다.

거기다 음무기는 어떤가.

오히려 재능 면에서는 사령대 조장들을 능가할 수도 있었다.

사고를 많이 쳐서 쫓겨나긴 했지만, 과거엔 무려 백혼 장로의 수제자였던 이다.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설휘가 손을 내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전에 받았던 신병이기를 내밀었다.

월도와 유엽도.

월도는 언월도(偃月刀)가 아닌, 여인들이 쓰는 월녀검(月女劍)에 가까웠다.

검신이 얇고 날렵해 기존의 검보다 가벼웠다.

유엽도는 흔한 병기 중 하나로, 도신이 버드나무 잎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기형도처럼 약간 휘어진 모양. 도신의 끝부분에 힘을 주면 흔들리지만, 심하겐 요동치지는 않는다.

“이거구나.”

설휘는 전투방식을 턴제로 바꿔서 특성 기술표를 파악했다.

◆ 월도 특성 기술표 ◆

[월하비행(月下飛行)] : ↓↑, AC

간단한 발동 방식으로 보인다.

◆ 유엽도 특성 기술표 ◆

[종횡비결도(縱橫祕訣刀)] : ← →, AB

유엽도도 비슷했다.

대체 이것들이 어떤 이능을 보여줄지 괜히 궁금했다.

“확실히 제 것이 더 낫지요?”

“대장. 저 형장의 신병이기는 별 볼 일 없는 것이지요?”

설휘가 두 병기를 보고 있을 때, 또다시 용진과 음무기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설휘는 그런 모습을 재밌다고 바라보다가, 문득 스쳐가는 한 생각에.

“헌데…….”

용진을 보며 물었다.

“너, 예전에 가지고 있던 도끼는 어찌했느냐?”

“예? 도끼?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묵운부인가, 그거 말이다. 예전에 네가 구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제가요? 그런 적이 없는데…….”

용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본 설휘의 눈이 커졌다.

“가만…….”

예전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없다는 것은.

‘회귀했을 때 잃어버린 거구나!’

최근에 죽었을 때, 수하들이 얻었던 병기도 잃은 듯했다.

자신이 들고 있던 것만 잃는 게 아니라, 수하들 것도 똑같이 적용되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신병이기들도…….’

설휘는 두 병기를 보며 생각했다.

이것 역시. 수하들이 죽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평범한 상황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병기들이.

‘그런 거였나.’

설휘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신병이기.

이건 신적인 능력을 주는 동시에, 의존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또한 구하기도 쉽지 않다.

잃어버린 병기들은 이전의 위치가 아닌, 죽음을 당한 그 위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먼저 죽는다면 수하들이 어디에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얼마나 살았는지를 알 수 없으니까.

‘그래, 이것으로 이제 더는 뒤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거야.’

설휘는 이 신병이기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본 스토리.

한 달 일정이 지나고 본격적인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하면, 이곳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수하들의 능력 또한 한참이나 하락할 테니까.

“이게…… 이게 마지막 회귀일 수도 있겠구나.”

설휘는 심장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내린 저주와 기연.

이것은 때론 허술하게 상황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의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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