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모든 능력치를 올린다 (5)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날이 밝아오는 시각.
지평선이 보이는 능선 아래. 평평한 지대에 올라선 소령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공터에는 두 사내가 무슨 얘길 하는지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왔어?”
“어이.”
먼저 와서 한쪽 자리에 앉은 채로 그녀를 반기는 요림.
그리고 우뚝 솟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던 적송이 한 손을 들어 인사했다.
“무슨 일인데?”
소령이 묻자, 적송이 담담히 말했다.
“자신들이 가진 신병이기의 이능을 보여준다고 하네.”
“그럼 알아서 보여주면 되지. 굳이 나까지 왜 부른 건데.”
“어느 신병이기가 더 나은지 우열을 가려 달라는데?”
소령의 불만에 요림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는 상황이 재밌는지,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사건은 이랬다.
아침부터 자신의 무기가 더 낫다, 자신이 가진 신병이기의 능력이 더 우월하다고 싸웠던 용진과 음무기였다.
결국 둘이선 판결이 나지 않아,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두를 이곳에 불러 모은 것이었다.
“다들 모였나?”
음무기가 물었고, 용진이 주변을 한번 둘러본 후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럼, 너부터 할래?”
“좋다.”
음무기는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모두의 이목을 받은 그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다들 이형환위라고 들어봤나?”
“…….”
“…….”
대꾸하는 이는 없었다.
이형환위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가 무슨 의도로 묻는지를 몰라서였다.
음무기는 그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자신 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형환위. 초마의 경지에 올라야 펼칠 수 있는 꿈의 경신법. 속도가 너무나 빨라 마치 한 사람이 두 사람으로 불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
여전히 사령대 조장들의 질문은 없었다.
“내가 왜 이런 애길 하느냐. 바로 내 신병이기의 이능은 무려 네 개의 이형환위를 만들어낸다. 그뿐이냐. 내가 목표로 하는 적에게 도를 휘두르는 순간, 무려 네 방향, 그것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적을 섬멸해버리지.”
“정말이야?”
“그걸 믿으라고?”
요림이 곧장 놀란 듯 물었고, 적송은 즉각 반박했다.
그 반응을 본 음무기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보여주마. 너희들 신병이기의 이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철컥.
그가 유엽도를 뽑아들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대수롭지 않게 보던 소령조차 꽤 집중한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기대에 찬 시선을 온몸으로 느낀 음무기는.
“간다.”
매우 비범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고는, 한 손으로 도를 높이 쳐들며 앉았다 일어섰다.
“흣자, 흣자.”
움직임은 소리에 맞췄다.
앉을 때는 개구리 다리처럼 벌린 모양. 설 때는 일반적인 자세.
다시 앉았을 때는 개구리 다리 모양. 섰을 때는 다리를 모은 일반적인 자세.
“…….”
“…….”
“…….”
사령대 조장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음무기의 행동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신병이기의 발동 동작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으니까.
“흣자. 흣자!”
그렇게 앉았다 일어섰다를 여섯 번 정도를 했을 때였다.
음무기가 급히 뒤로 물러서더니, 앞으로 튀어나가며 두 손으로 도를 잡고 외쳤다.
“종횡비결도(縱橫祕訣刀)!”
“……?!”
한순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눈이 커졌다.
음무기가 도를 휘두르는 지점.
그곳을 중심으로 무려 본체를 제외한 세 명의 음무기가 환영처럼 생겨난 것이다.
그러고는 음무기의 베는 동작을 그대로 따라했다.
쇄애액! 쇄애액! 쇄애액! 쇄애액!
“오!”
“우와아…….”
이쯤 되니 사령대 조장들도 더는 웃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아니. 누구도 믿지 못할 상황이 펼쳐졌다.
앞. 뒤. 우측. 좌측.
무려 적이라고 가정한 공간을 향해 네 방향에서 검이 그어졌다.
이는 어찌 보면, 정말로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음무기가 가진 신병이기를 모른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그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이는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곤.
“고작 그거냐? 다들 걱정 마라. 내 무기가 더 대단하니까.”
음무기의 신병이기 이능을 보고서도 용진은 자신 있게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그에게로 이목이 쏠렸다.
음무기의 능력이 워낙 놀라워서 그런지, 대부분의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윽고 펼쳐지는 용진의 신병이기 능력.
“자, 간다……! 둠칫. 둠칫.”
그는 흔들었다.
음무기처럼 앉았다 일어섰다가 아닌, 고개를 좌우로 흔든 것이다.
놀랍게도 몸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음무기와 흡사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꼭, 저런 소릴 내야 하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앞의 동작은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조금 전 놀라웠던 감정이 팍 식어버린 소령이 물었다.
그 말에 적송도 동의했다.
“내 생각도 같다. 저런 흉측한 동작은 신병이기 발동과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여.”
그러자 요림이 급히 말했다.
“다들 조용히 해. 그리 큰 소리로 말하면 저 바보들이 알게 된다고.”
“풉.”
“흡.”
그 말에 소령은 급히 입을 가렸고, 적송은 헛기침을 했다. 그럼에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둠칫. 둠칫.”
세 조장의 대화 중에도 용진의 움직임은 계속됐다.
대체 설휘가 몇 번을 저리 흔들라고 했는지, 그는 좌우로 흔드는 동작을 무려 열 번이 넘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팟.
용진이 공중으로 뛰었다.
한쪽 발을 굽힌 자세로.
“이제 하는가 보네.”
요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진이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팟.
용진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완벽히.
“허공답보다!”
적송의 외침에 소령과 요림이 고개를 더욱 들었다.
정말이었다.
더 높은 공중에서 그가 나타난 것이다.
“단순한 허공답보가 아냐. 저건…….”
소령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허공답보는 공중에서 계단을 밟는 듯한 동작을 해 더 높게 올라가는 경신법.
그런데 용진은 도움닫기도 없이 한순간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공간을 넘어 훨씬 더 높은 곳에서 나타난 것이다.
“순간이동인가…….”
“이거, 둘 다 만만치 않은데…….”
“결국,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요림과 적송. 그리고 소령이 한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발했다.
투욱.
공중에 있던 용진이 지면을 밟자, 음무기가 다가왔다.
“어떤가?”
용진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고.
“훌륭하군.”
음무기가 고평가했다.
그러자.
“너 역시.”
용진도 치켜세웠다.
이후, 둘은 서로를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기, 아무래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저들의 모습을 보던 요림이 슬쩍 말을 붙였다.
“가만 놔둬.”
“죽을 때 되면 알려주는 걸로.”
적송이 거부했고, 소령도 그에 동의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구구구궁.
굉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산이었다.
어떤 충격으로 인해 그중 일부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산사태는 아냐.”
무너지는 모양을 보던 요림이 말했고, 소령이 곧장 말을 받았다.
“대장이 있는 곳이야.”
* * *
설휘가 거대한 벽을 마주보고 펼쳐낸 무공.
그로 인해 큰 굉음이 일었고, 이내 쪼개진 암석과 일부 부서진 바위들이 지면으로 쓸려 내려왔다.
주변에는 폭발로 인해 생성된 뿌연 먼지가 가득했다.
잠열(潛熱)이라고 해야 하나.
절벽 위에 나 있는 목초를 타고 거침없이 올라가는 불길이 설휘의 눈에 보였다.
대지를 진동시킨 폭발에도 죽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
그 모습은 일반적인 불꽃과는 달라 보였다.
“이게 수라폭열공이구나.”
기술을 펼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것보다 쉬운 느낌이었다.
◆ 화온마공 기술 특성표 ◆
[수라폭열공] : (달려나가기)← → →, A
이 기술을 쓰며 설휘가 느낀 것은 화온마공의 무서움이었다.
공력과 정염(靜炎)이라는 두 가지 성질이 동시에 격발되니, 당하는 쪽에서는 피해가 두 배로 커지는 것이다.
새삼 화온마공을 익혀 초마에 오른 태황각주의 대단함이 느껴졌다.
‘이 위에 하나가 더 있어.’
더 놀라운 건, 이게 화온마공 최강의 초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수라폭열공 위에 하나가 더 존재했다.
지옥멸절공(地獄滅絶功).
책에는 본디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힘이라 적혀 있었다.
하여 극마에 올라야만 구현할 수 있는 마공으로, 본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화공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 이제 초풍신을 써볼 차례군.”
설휘는 AI가 펼친 초풍신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건물 일부를 통째로 뜯어내는 위력만 확인했을 뿐.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이번엔 확실한 위력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걸 쉽게 펼쳐내기는 힘들어.’
설휘는 이전과 달라진 초풍신 기술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실, 풍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사대극마공 風 특성 기술표 ◆
[초풍신(超風神)] :
→ N(중립)↓↘, A 25배속
25배속.
이것만 달라진 거니까.
25배속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상 평소 움직임보다 스물다섯 배만큼 빨리 움직이면 된다는 거였으니까.
사실 스물다섯 배 속도로 움직이는 게 가능할까 싶다가도, 더 문제가 되는 부분 때문에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백혼 장로에게 받은 신발.
이전과 달리 한 동작이 줄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신발을 다시 한번 벗었다 신어볼까?”
혹여나 싶어서, 백혼 장로에게 받은 신발을 벗었다가 다시 신어보았다.
그 순간.
어떤 특수 기술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초풍신
▷ 수라폭열공
▷ 빙곡극저화
▷ 절세풍검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설휘의 얼굴이 급히 밝아졌다.
특수 기술이 늘어나자, 사고가 정지된 듯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듯했다.
“그래. 이게 없으면 초풍신은 시도조차 못 하지.”
설휘는 망설이지 않았다.
초풍신에서 가장 어려운.
사실상 이해도, 파악하기도 불가능한 저 ‘N(중립)’을 지워야 했다.
[반영되었습니다.]
[초풍신(超風神)] :
→↓↘, A 25배속
“됐다.”
설휘는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만약 이 신발을 잃어버린다면.
초풍신을 시도조차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삶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겠지.”
투욱.
설휘는 먼저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신이 소유한 이 검은 초풍신의 위력을 두 배 가까이 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초풍신 본연의 힘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앗.”
첫 번째는 실패.
“하앗. 하앗.”
두 번째, 세 번째도 실패.
“하앗.”
그리고 네 번째는.
스아아아아-
펼쳐냈다.
[초풍신을 사용합니다.]
스아아- 파파팟- 파슈슉!
손목을 타고 생성된 바람이 풍세대작(風勢大作) 같이 거칠게 변하는 데에는 촌극보다 짧은 시간이 걸렸다.
이전이 흉포한 뇌전과 풍압을 몰고 온 바람이었다면, 이번엔 수많은 청광(淸光)이 바람결과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청광은 이미 무너져내린 암석과 기암괴석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고.
파파파파파팍!
더 깊숙한 바위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구구구구구구궁.
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산사태가 아니라, 산 내부의 일부가 소실된 듯한 반응이었다.
“설마, 강기(罡氣)…….”
설휘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부정했다.
방금 이것이 강기라면, 훨씬 더 밝고 영롱해야 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렇게 보였던 이유는 바로 위력.
청광의 바람이 스쳐 지나간 암석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분쇄되어 버렸다.
이는 초마의 경지에 올라서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어쩌면 극마의 고수 중에서도 펼칠 수 있는 자가 손에 꼽지 않을까 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 위기 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네 말대로다. AI.”
설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두려움이 앞서지만, 이 정도 힘이라면.
정말이지,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구구구구궁.
그사이 산의 일부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너지는 가운데서 설휘가 자리를 피했고.
“대장!”
“무슨 일입니까?”
급히 이곳으로 올라오는 수하들을 목격했다.
“본교로 돌아가자.”
“…….”
“남은 두 달을 헛되이 쓸 수는 없으니까.”
설휘는 그들에게 말한 뒤 고개를 들었다.
사실, 지시를 했지만 그다지 의미 없는 말이었다.
이미 복귀하라는 명령이 도달해 있었기에, 형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으니까.
본교로 복귀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