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누굴 출전시킬 겁니까? (1)
본교로 돌아온 설휘는 곧장 침대에 누웠다.
늘 그랬듯 ‘저장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왔지만, 그는 시간을 기록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이번 회귀가 아마도 마지막이 되리란 걸.
만약 불가피하게 돌아올 수밖에 없을 때는, 그 지점은 지금보다 더 이전이 될 것이다.
‘그 특수훈련인가 하는 것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고.’
체력과 내공을 올리기 위해 겪었던 그 지옥 같은 훈련.
그 짓을 또 해야 한다. 그걸 떠올리니 괜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음 날 아침.
한 달 일정이 눈앞에 떴다.
[천력 98년 7월 일정을 정해주세요. (35/36)]
▷ 조장들과 임무수행[곤마의 임무 받기]
▷ 수하들의 일정 정하기
▶ 임무 받기
▷ 무사 수행
횟수를 가리키는 숫자인 35/36.
이제 기한은 두 달이 남았다.
이렇게 일정을 정할 기회는 두 번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음.”
설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아직 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한다고.
‘임무 받기’를 선택하셨습니다.
▶ 곤마(천마 넷째 제자)
▷ 흑구(은영단주)
한데 막상 흑구를 선택하려니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 한 달 내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대개의 경우, 어려운 임무일수록 시간이 더 걸렸다.
본래 세 번째였던 ‘교육관주의 임무’도 시간을 꽤 필요로 하지 않았는가.
보상을 생각한다면, 은영단주보다는 곤마의 임무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마음먹은 설휘는 첫 번째를 선택했다.
곤마(천마 넷째 제자)에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전과 같은 똑같은 질문이 이어졌고.
수하들과 함께 움직이실 건가요?
▶ 함께 간다.
▷ 혼자 간다.
그는 당연히 함께 가는 것을 선택했다.
홧!
그러자 곧 눈앞이 새하얀 빛으로 뒤덮였다.
* * *
[곤마]
“왔는가?”
곤마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상황인식만 존재했다.
[곤마]
“다름이 아니고, 이번에 내 휘하에 있는 수하들을 모아 자그마한 무투대회를 열려고 하네. 사기를 북돋고 단합할 기회가 되도록.”
‘무투대회라고?’
설휘는 일단 그의 말을 차분히 들었다.
[곤마]
“서로의 실력을 알 수 있게 되고, 소 닭 보듯 하는 사이를 개선하는 교류의 장이 되겠지. 또, 그동안 서열에 밀려 실력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이참에 큰 상을 내려 내실을 다질 수도 있을 테고…… 혹시 그대는 참가할 생각이 있는가?”
설휘는 잠시 고민했다. 곤마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하지만.
아래 지문을 선택해주세요.
▶ 수하들과 참가한다.
▷ 수하들과 구경한다.
생각해 보니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 또한 ‘곤마의 임무’ 중 하나일 수도 있으니까.
‘수하들과 참가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곤마]
“잘 생각했네. 그럼 순서가 배정되면 따로 알려주겠네.”
‘배정 순서?’
설휘가 의문을 가지기가 무섭게, 눈앞의 배경이 완전히 변했다.
“와아아아!”
“우오오오!”
함성으로 떠들썩한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마어마하게 너른 공간이 보였다. 이제껏 한 번도 와보지 못한 회장(會場)이었다.
‘여긴?’
평소에 쓰던 연무장보다 몇 배나 큰 시설이었다.
가운데에는 장방형으로 만들어진, 모두가 볼 수 있게 만든 비무대가.
그리고 그 주변으로 바글바글. 최소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인원들이 들어차 있었다.
‘중경대전(重慶大殿)이 생각나는군.’
아주 오래전, 설휘가 입교할 당시 총단에서 본 대회장이 생각났다.
비록 이곳이 그 중경대전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천 명은 너끈히 수용할 수 있어 보였다.
“흠…….”
설휘는 의전의 입구가 보이는 계단에 앉아 있었다.
마침 자신 옆에는 수하들도 함께 있었는데, 모두 다 남색의 사령대 복장을 맞춰 입고 있었다.
‘이들이 사령대원들이구나.’
자신이 앉은 쪽의 윗 열에. 육십 명가량의 무인들이 열을 맞춰 모여 앉아 있었다.
제각각 사령조장들의 뒤로 서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조장들이 직접 통솔하는 수하들일 터.
조장 하나가 열다섯 정도를 맡는 것으로 보였다.
‘대원들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군. 그리고 저 녀석들은…….’
설휘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갈색 무복. 척 봐도 자신들보다 인원이 두 배 정도 많은 이들이 있었다.
아마도 사적대일 터.
과거 일면식을 했던 사적대장 비군이 가장 앞 자신과 같은 줄에 앉아 있었으니까.
‘그럼 저들은…….’
그리고 맞은편.
설휘는 보자마자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 짐작이 갔다.
황갈색 복장. 은영단의 중심세력.
‘사황대인가.’
숫자는 대략 이백. 인원수가 사령대와 사적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묘한 것은 가장 앞 열. 아마 사황대장일 것으로 보이는 녀석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복면이라…….’
“대장. 대장. 저기 보이십니까?”
음무기가 어깨를 두들겼다. 설휘는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새카만 먹빛의 흑의.
그리고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좌정한 자들은, 딱 봐도 높은 위치의 인물들로 보였다.
“저들이 바로 소문의 칠사자입니다. 곤마 님 직속의.”
“음.”
“칠사자면 일곱 아냐? 한 명이 비는데?”
용진이 갸웃하자 음무기가 고개를 저었다.
“한 명은 파견이라도 갔나 보지. 확실해. 저 칠흑 같은 검은 옷은 아무나 입는 게 아냐.”
“……내가 봐도 칠사자가 맞는 것 같다.”
설휘는 음무기의 말을 긍정했다.
‘마태룡.’
전생에서 그는 두 달 전에 실종된 마태룡을 찾아 나서는 임무를 맡았었다.
두 달. 마태룡이 임무를 수행하다 포로로 잡혔을 시기다.
그러니 현재 이곳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 저들이 사군성(四軍城)이군요.”
소령이 중얼거렸다.
설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곤마가 앉아 있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곤마의 윗 열. 인원은 넷.
넷째 제자의 최측근에서 그를 호위하는 비밀무사.
오로지 곤마에게만 충성을 바치는, 그가 가진 최고의 고수들이었다.
“듣기로, 저들 중에 극마의 고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럴 리가. 다들 초마 수준이라고.”
요림이 하는 말에, 용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보통은 그게 맞는데, 모종의 이유로 실력을 숨겼다는 얘기도 있어. 만약 곤마 님이 극마고수를 가지고 있단 소문이 알려지면 어찌 되겠어?”
“그럼 제자들 간의 분쟁에서,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패로 쓰려고…….”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어?”
그럴법한 이야기에 소령이 끼어들며 궁금해 했다.
“어. 그게 실은…….”
요림이 조심스레 입을 열려던 차, 적송이 어어 하며 소리쳤다.
“음무기! 저기 저분. 네 전 사부님 아니냐?”
“뭐?”
주르르륵.
시선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곤마의 우측에 자리 잡은 한 무리의 노인들. 그중에 정말로 백혼 장로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음…….”
그리고 설휘에겐 낯익은 얼굴. 녹정관 장로도 있었고, 그 옆에는 세 명의 노인이 더 있었다.
“오! 정말이네. 사마 백혼 장로는 서열 31위 아닙니까?”
“그러게. 대장과 인연이 있으시다고 하던데, 정말이지 넷째 제자님을 지지하실 줄은…….”
용진도 적송도 크게 놀랐다는 듯 반응해왔다.
그러나 정작 음무기는 태연했다.
“저 노인네. 크게 도움 안 돼.”
“어? 네 전 사부라며?”
“그러니까. 성질이 고약해서 크게 도움 안 될 거라고.”
음무기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대체 누가 누구더러 성질이 고약하다고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뭐, 장로가 다섯이면 나쁘지 않군요.”
소령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쁜 거 아냐? 총단에 계신 장로분들은 서른 명이 넘는 걸로 아는데?”
적송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셋째 제자인 아령이란 분도 지지하는 장로는 다섯이야. 거기다 예전에 넷째 제자님을 지지하겠다고 한 장로는 세 명이었어. 곤마께서 두 분을 더 포섭한 거야.”
제자 간의 세력 구도에 대한 말이 나왔다. 설휘는 주변을 살피며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들이 여기 와 있는 이유.
그리고 대회라는 게 어떤 건지 더 궁금했으니까.
“그런데 대련은 어떤 식으로 한대?”
“어…… 대결은 한 번이고, 지위에 맞는 사람끼리 맞춰준대.”
“그럼 부대 조장들은 조장들끼리 싸우는 거야?”
“아하. 그럼 우리가 모두 이기겠군. 쟤들이 이백오십 리 달리기를 해봤겠어?”
그렇게, 수하들이 시시덕거리며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이. 중앙의 비무대에 한 노인이 올랐다.
- 모두 이 자리에 온 걸 환영한다.
쩌르르릉!
창창한 음성. 내공을 잔뜩 담아 퍼뜨린 말에, 좌중은 모두 소리를 죽였다.
“신교의 넷째 제자 곤마 님께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여. 그간 바쁜 업무에 충실하느라, 같은 곤마 님의 휘하이면서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는 그대들이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친교를 쌓게 하기 위한 자리다.”
“…….”
“…….”
노인의 말에 다들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말이 같은 소속이지, 이중에서는 이름만 듣고 있다가 처음 얼굴을 보게 되는 이들이 많았다.
교주 제자간의 분쟁이 점차 가열되고 있는 이상, 언제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니 서로 안면 정도는 진즉에 익혀놔야 했다.
“허나 그렇다고, 그냥 얼굴이나 보고 밥이나 먹으라고 하면, 그건 신교가 아니라 한량들의 모임이겠지? 다들 알겠지만 이 자리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자신 있는 자는 나서라! 노력했던 자도 나서라! 여기서 실력이 검증되고 뛰어난 솜씨를 보이는 이들은 곤마께서 크게 포상을 내릴 것이다!”
우우우우!
실력, 증명, 포상이란 말에 군중들이 끓어올랐다.
개중에는 벌써부터 팔을 걷어붙이는 자도 있었다.
“볼 만한 대결을 위해, 수준에 맞게 상대를 정한다. 소속된 대원들은 대원들끼리. 조장들은 조장들끼리. 대결은 한 번이며, 본인의 능력만 보여주면 된다. 상대를 죽일 만큼 몰아붙여도 상관없다. 불상사가 없도록 내가 개입할 테니까.”
노인은 그렇게 크게 외치고는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평가를 원하는 대원들은 앞으로 나오거라.”
그때부터였다.
[사령대원들이 자발적으로 도전합니다.]
[사황대를 상대로 패배했습니다.]
[사황대를 상대로 패배했습니다.]
[사적대를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사적대를 상대로 패배했습니다.]
……
……
시간의 흐름이 갑자기 빨라졌다.
주변이 휙휙 빠르게 지나갔다.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덜어내듯이.
그리고 다시금 시간이 멈췄을 때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도전한 사령대원 : 20여명
◐ 승리한 사령대원 : 4명
◑ 패배한 사령대원 : 16명
현장 반응
[곤마] 사령대원들에게 크게 실망합니다.
[칠사자] 평가를 거부합니다.
[장로] 사령대장의 역량을 의심합니다.
[사군성] 대결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적대장-비군] 사령대장에 대한 기대치가 줄어듭니다.
[사황대장-화순(化淳)] 없어져야 할 부대라 여기며 크게 분노합니다.
‘이거 참…….’
설휘는 떨떠름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도 그렇지만, 짜증 나는 건 현장 반응이라는 게 죄다 부정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조장만이 아니라, 대원들의 수련을 따로 시키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사령대 조장들이야 설휘가 시켜서 수련을 했지만, 그 아래 일반 대원들은 딱히 만날 기회가 없었다.
덕분에 조장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했지만, 설휘가 손봐주지 않은 대원들의 실력은 엉망진창인 것이다.
“자. 그럼 다음은 조장들의 대련이다. 자신 있는 자는 먼저 앞으로 나오거라.”
노인의 외침에 기다렸다는 듯, 무대 위로 올라선 자는.
“오오오! 사황대 1조 조장님이다!”
“역시! 홍지 님!”
도처에서 소리가 들렸기에 어디 소속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를 살펴보다 설휘는 조금 놀랐다.
‘어?’
전투방식을 턴제로 바꾸지도 않았는데, 그의 능력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State Summary, 상태 요약]
홍지(鴻志) [사황대 1조 조장]
체력 450만/450만
내공 420만/420만
전투력 622만
‘분명 조장이라 들었는데…….’
저 정도면 실력은 이미 대장급이다.
아마도 전생의 설휘 자신과 비슷할 정도.
저기 옆에 있는 비군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크…….”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군도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이, 딱 봐도 그의 능력을 알아차린 듯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군대는 소리.
[칠사자]
“호오. 조장 중에서도 제법 실력자가 있었군요.”
[장로]
“홍지란 아이. 들어봤습니다. 은영단 조장 중에는 제일 강하다고 평가받는다지요?”
[사군성]
“…….”
반응이 좋았다. 아까의 사령대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첫 번째 조장 출전자는! 사황대 1조 조장 홍지! 그와 겨루러 나올 자, 없는가?”
노인의 외침에 잠깐 침묵이 일었다.
침묵의 이유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누구를 출전시키시겠습니까?
▶ 요림 [전투력 663.6만]+신神 구겸창
▷ 적송 [전투력 633.7만]+신神 고검
▷ 용진 [전투력 521만]+신神 월도
▷ 소령 [전투력 491만]+신神 귀전
▷ 음무기 [전투력 455만]+신神 유엽도
각 조장들, 그리고 음무기의 이름.
그리고 훈련 마지막에 확인하지 못했던 수하들의 전투력.
여기서 한 명을 내보내야 진행이 되는 모양이었다.
‘전투력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설휘는 그간의 경험을 떠올렸다.
전투력은 그저 수치다.
큰 차이가 없는 이상, 결국 체력과 내공이 더 높은 사람이 이긴다.
단적인 예로, 사령조장들 중에서 전투력 수치는 요림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그보다 30만이 적은 적송이 우세를 보이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적송을 출전시킬까요?
“좋아.”
그에 설휘는 동의했다.
그는 이번 임무에 대해 감을 잡았다.
아마도 이건 ‘수하들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그런 조건이 있으리라.
“맡겨주십시오!”
선택하자마자, 적송이 기다렸다는 듯 무대로 올라갔다.
그와 함께 설휘의 눈앞에 지문이 떴고.
관전하시겠습니까?
▶ 본다.
▷ 보지 않는다.
‘본다.’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