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누굴 출전시킬 겁니까? (2)
적송과 사황대 1조 조장이 마주 서자, 설휘의 눈앞에 창 하나가 떴다.
[임무란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상황도 익숙했다.
애초에 구경만 해서는 모든 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까.
[Mission, 임무]
○ 최소 세 명의 수하가 대전에 참여해야 합니다.
○ 대장급 대결에서 설휘 님은 반드시 출전해야 합니다.
○ 수하 모두가 패배했을 시, 임무 실패로 이어집니다.
○ 설휘 님의 패배 시, 임무 실패로 이어집니다.
두 가지 참조 사항과 두 가지 경고.
사실, 별것은 없었다.
대련에서 죄다 이기면 그만이니까.
[임무 성공 시]
소정의 금, 황금 벨트(네 칸)
[임무 실패 시]
주변 무사들의 멸시와 무시
‘황금 벨트?’
헌데 보상에서 눈길이 가는 게 하나 있었다.
소정의 금은 돈인 걸 알겠는데, 황금 벨트는 뭔가.
‘네 칸’이 의미하는 건 또 뭐고.
한편, 설휘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무대에서는 기 싸움이 한창이었다.
“내 상대로 고작…… 사령대? 어이가 없군.”
사황대 1조 조장 홍지는 노골적으로 짜증을 드러냈다.
은영단의 사령대. 추적에 특화된 부대.
그러다 보니 추종술이나 잠입 내지 암습, 이런 잔재주나 부리는 놈들이다. 제대로 된 무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래서 그나마 좀 한다는 사적대 조장들 중 하나가 나올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별 관심도 없는 부대에서 하나가 튀어나와 버렸다.
단 한 번뿐인 대련 기회를 이런 약해빠진 조무래기 상대로 날리게 되었으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뭐 항상 그렇더군.”
“……?”
상대가 입을 열자, 홍지의 거만한 시선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적송은 그의 시선을 담담히 받으며 말을 이었다.
“비아냥과 조소가 날아오곤 했었지. 하지만 이 싸움이 끝나면 좀 달라질 거야. 믿기 어려운 표정. 그리고 근거 없는 분노로 가득할 테니.”
“하이고. 기본도 모르는 새끼가 허세는…….”
“누가 기본을 모르는지 모르겠군. 대보기도 전에 긴지 짧은지를 멋대로 판단하다니. 조장이 이래서야 사황대 수준도 알 만한데.”
“아니 이 새끼가……?”
적송과 홍지가 서로 으르렁대자, 진행을 맡은 노인이 끼어들었다.
“둘 다 준비됐나?”
그 말에 홍지와 적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빠르게 물러났다.
“시작해라!”
시작과 함께 먼저 움직인 쪽은 홍지였다.
파파팟!
이목이 확 쏠릴 정도의 현란한 신법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곧장 직선으로 내달리는 게 아니라, 좌우로 움직이며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아마 실력 차이가 압도적이라 생각해서, 신법을 펼치는 모양이었다.
반면 적송은.
빙글빙글.
적송이 상대의 움직임을 쫓는 대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자, 설휘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파악했다.
‘벌써 그걸 쓸 생각인가?’
기폭고열검.
적송이 가진 신병이기의 이능을 쓰려는 것이다.
‘하지만, 맞추지 못하면 허점이 크게 드러날 텐데…….’
눈앞에서 상대가 달려오는데,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는 쓸데없는 동작을 한다. 당연히 적은 빈틈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 빈틈을 놓칠 리 없을 터.
‘그만큼 숙달이 되었다는 건가? 적송이?’
특수 기술은 초식으로 시선을 뺏고, 그다음에 틈을 노려 연계 동작으로 구현한다.
혹은. 적당한 초식을 쓰는 가운데, 그중에 자연스럽게 연계 동작을 집어넣어 펼친다.
자신의 경우에는 그랬다.
하지만 적송은 그만큼 숙달하기에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데다,
↘ ↓ ↙ ← → ↘ ↓ ↙ ← A.
필요한 연계 동작은 이 정도로 복잡하다.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적이 기다려줄 리가 없었다.
‘이런!’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신법으로 상대의 시야를 어지럽히던 홍지.
기회를 엿보던 적송이 검을 휘둘렀지만 허공만 그어버렸다.
아슬아슬하게 상대가 피해낸 것이다. 그로 인해 생겨난 빈틈.
타닷!
홍지가 놓치지 않고 파고들자, 적송이 검을 세워 방어했다.
캉!
상대의 일격이 거셌던 것일까.
검으로 맞받아냈지만, 그로 인해 적송의 신형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위험!”
옆에 있던 음무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빈틈은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
땅을 디디지 못한 적송이 공중제비를 하며 몸을 돌리고는 있었지만, 지상에서 틈을 노리는 홍지가 훨씬 더 공세의 우위에 있었다.
파팟.
득달같이 달려들 것처럼 보이는 홍지.
허나, 이것도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거의 달려들 듯하다 상대의 검이 나오는 순간 속력을 줄였다.
그로 인해 적송의 검은 또다시 허무하게 빗나갔다.
그런데.
“……!”
쩌어어엉!
다음 순간, 강력한 폭발이 지축을 흔들며 무대 위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홍지의 몸이 멀찍이 떨어져 나가버렸다.
“기폭고열검!”
“저걸 어떻게 쓴 거야!”
용진과 요림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그랬다. 신병이기의 이능이 발동된 것이다.
‘적송 이 녀석. 처음부터 이걸 유도한 거군!’
설휘는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홍지가 신법으로 달려들 때, 적송은 일부러 틈을 보였다.
그래서 일격을 당해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그건 상대의 일격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적송 스스로가 일부러 공중으로 몸을 날린 것이었다.
‘기폭고열검을 쓰기 위해서!’
이유는 그것이었다.
지면에서 발이 떨어지면 당연히 불리한 법이다.
보통은 그렇지만, 적송은 신병이기의 발동을 위해서 일부러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 ↓ ↙ ← → ↘ ↓ ↙ ←
연계 동작은 그 위력만큼 사전 동작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지상에서라면 몸을 같이 움직여야 하니, 오히려 틈이 더 커질 수 있다.
반면 공중에선 몸만 이리저리 비틀면, 바로 동작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설휘도 생각지 못한 응용 방법이었다.
‘다들 놀라는 눈치로군.’
홍지는 만만치 않았다. 적송이 휘두르는 검의 반경보다 훨씬 더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폭고열검의 거리는 자그마치 이 장.
홍지는 그대로 거기에 휘말렸다.
“크악!”
홍지는 바닥을 구르고 다시금 일어서는 듯하다 주저앉았다.
팔을 추욱 늘어뜨리고 있는 게, 스쳤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중상을 입은 듯 보였다.
“허…….”
지켜보던 진행자, 율사(率絲)는 당황했다.
조금 전 적송이 보여준 위력은 자신도 예상치 못한 힘이었다. 고작 조장 수준에서 펼칠 수 없는 공력이었다.
덕분에 개입할 시기를 놓쳤다. 자칫 잘못하면, 홍지가 죽어버릴 수도 있었다는 것.
파파팟.
적송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상대방이 내상을 추스르기 전에 달려들었고,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는…….
“여기까지.”
터억.
바람처럼 나타난 율사가 그의 손을 막았다.
이미 싸움이 끝났다고 본 그였다.
그 순간.
설휘의 눈앞에 지문들이 와르르 떠올랐다.
현장 반응
[곤마]
“무위가 대단하군요. 조장급이 펼쳐낸 게 이 정도라니.”
[칠사자]
“처음으로 재미가 있었군.”
[장로]
“어. 사령대 조장이 펼쳐낸 폭발, 본문 최고의 화염탄 수준으로 보였는데, 맞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저런 위력을 보이다니. 쓸 만한 인재군요.”
[사군성]
“신병이기. 아마도 저 검.”
“그런 듯해.”
“그 점 외에는 크게 별 볼 일 없군.”
[사적대장-비군]
“적송이라……. 설휘, 이 정도로 뛰어난 수하를 데리고 있었던가.”
[사황대장-화순(化淳)]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각각의 반응들이 설휘의 시야로 들어왔다.
“역시.”
“잘했어.”
“믿고 있었다고!”
다른 수하들도 반기고 있었다.
그중에서.
“역시. 나의 경쟁상대!”
음무기 혼자만 딴소리를 했고.
“뭐래.”
적송이 핀잔을 주며 자리에 앉았다.
“조장급 대결 두 번째. 누가 이 앞으로…….”
파라라랏.
율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조장이 뛰어나왔다.
그러자 펼쳐지는 그의 능력치.
[State Summary, 상태 요약]
악호(岳虎) [사황대 2조 조장]
체력 370만/370만
내공 380만/380만
전투력 511만
사황대 2조 조장이었다.
이번에도 사적대 쪽에서는 나오는 이가 없었다.
그랬으니 이런 게 뜨는 걸 테지.
누구를 출전시키시겠습니까?
▶ 요림 [전투력 663.6만]+신神 구겸창
▷ 용진 [전투력 521만]+신神 월도
▷ 소령 [전투력 491만]+신神 귀전
▷ 음무기 [전투력 455만]+신神 유엽도
요림을 출전시키겠습니까?
“저놈은 제가 제압하겠습니다!”
파팟.
선택하자마자, 요림이 뛰쳐나갔고.
관전하시겠습니까?
눈앞에서 묻는 질문에 설휘는 ‘본다.’를 선택했다.
이로서 두 번째 대련이었다.
* * *
“더러운 술수를 썼군. 그런다고 너희들 따위가 우리를 이길 것 같으냐?”
악호라는 녀석은 첫 만남부터 도발이었다.
그는 조금 전 적송이 홍지를 패퇴시키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어떤 장비를 썼거나, 은밀하게 화약을 숨겼다가 그걸 터뜨렸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그런 추측의 반은 맞았다. 화약은 아니었지만, 적송이 쓴 것은 신병이기의 능력이었으니까.
“애초에 사령대에 제대로 된 무공이 있을 리가 없지. 만약 제대로 된 무공이 있었다면 왜 사령대가 은영단에서 그런 취급을 받고 있었겠나?”
그는 요림을 앞에 두고 계속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도발인지 한탄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이봐.”
결국 듣다 못한 요림이 말을 끊었다.
“혀가 왜 이리 길어? 그동안 무공 수련은 안 하고 주둥이 수련만 했냐?”
“뭐? 이 자식이!”
그때였다.
“시작해라!”
율사가 대련의 시작을 알렸고, 이번에도 사황대 쪽에서 먼저 움직였다.
휘이이익!
지근거리보다 조금 더 긴, 근거리에서 공격해오는 병기.
그랬다.
요림과 마찬가지로 상대 역시 창술을 쓰는 자였다.
‘상대의 움직임이 좀 더 예리하다.’
지켜보던 설휘의 생각이었다.
이전처럼 시선을 뺏는 신법이 아닌, 정직한 창술.
헌데 조금 특이했다.
무게 중심이 요림과 달리 뒤축에 있었다.
그로 인해 내지르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지만, 힘이 실려 있었고.
변화에 매우 능숙했다.
“탈흡마창술(奪吸魔槍術). 사황대의 무공이에요.”
찌푸리던 자신의 표정을 본 걸까.
옆에 있던 소령이 친절히 알려줬다.
창술의 정석.
이는 은영단 내에서만 쓰이는 무공이 아니라, 총단에서도 흔히 쓰였다.
바로 본교 서열 12위.
창술의 대가인 탈혼마창(奪魂魔槍) 요문귀(曜紋歸) 장로가 추구하는 창법이 아닌가.
기본을 중시하는 창술이기에, 상대의 변화에 능한 데다 기공을 운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디 그뿐인가.
마창보법이라 하여, 신법에도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스윽. 스윽. 스윽.
몇 번의 부딪침 후, 요림은 자세를 낮게 취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잠시 동작을 멈췄던 상대가 이제 짓쳐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 생각은 적중했다.
파파파파팟.
갑자기 빠른 속도로 요림의 주위를 도는 악호.
빈틈을 찾던 요림이 창을 내리쳤고.
쾅! 쾅! 쾅!
공력이 실린 창으로 내리치자, 바닥이 쩍쩍 금이 가며 파였다.
하지만 위력적이건 말건 공격은 계속해 실패했다.
그것은 적에게 있어 빈틈이었다.
“이런!”
설휘의 침음성과 함께 상황이 급변했다.
파팟.
원형으로 돌던 악호가 갑자기 요림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 그보다 더욱 빨리 당도한 한줄기의 창.
보통의 대응으로는 방어할 방법이 없었다.
휘리릭.
그럼에도 요림은 대응했다.
몸을 재빠르게 비틀면서 적의 일수를 피해냈고.
집고 있던 창을 휘두르며 상대의 이어지는 공세를 저지시켰다.
그 순간 이미 상대는 공중으로 도약해 있었고, 긴 창대를 내려찍었다.
쩌어엉!
이번엔 요림이 창대를 들어 막아냈다.
파파파팟.
그리고 다시 둘은 물러섰다.
그렇게 짧았지만 몇 번의 합을 겨룬 싸움의 첫 대결이 지나갔다.
“오오오!”
“대단하다!”
“사령대도 대단해!”
여기저기서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앞선 대원들 간의 투닥거리는 싸움은 그냥 개싸움 같았고, 홍지와 적송의 대결은 한순간에 번쩍하고 끝나 버리는 바람에 뭘 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백중세. 치열하게 주고받는 고수들의 대결이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대결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휘도 간만에 집중했다.
남의 전투를 많이 보지 못한 그는 이런 전투를 보며 큰 자극을 받고 있었다.
“왜 적의 전법에 대응만 하는 거지?”
“맞아. 요림답지 않네.”
한편, 수하들은 요림의 대응을 보며 의아해했다.
본래 요림의 창술은 상대에게 근접전을 허용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적이 접근해오면 거리를 벌리거나, 오히려 먼저 공격해 주도권을 잡는 전법을 썼다.
“아마. 그걸 쓰려고 유인하는 걸 게다.”
설휘의 말에 조장들의 시선이 쏠렸다.
“……어떤?”
그중에서 용진이 먼저 물었고.
“그건 음무기가 잘 알 테니.”
시선이 다시 음무기에게로 갔다.
“……제가요?”
물론 본인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내가 줬던 두 가지 마공 중에 말이다. 요림이 뭘 선택하던?”
음무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화온마공. 그걸 선택했습죠.”
그 말에 조장들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적을 유인하는 이유.
바로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