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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25화 (126/379)

125화. 천미려의 제자 (2)

촤아아아아-

율사의 판단은 정확했다.

천균의 시야에는 이미 시뻘건 무늬들이 격자 모양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것이 혈금강마공에 깃든 강점 중 하나.

상대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을 넘어, 적의 약점까지 파악할 수 있다.

앞서 발산한 투기는, 단순히 기세를 뿜어낸 게 아니라 적의 심리를 옭아매는 역할 또한 하는 것이었다.

‘어?’

슬슬 움직이려던 천균은 한순간 의외라는 눈빛을 내비쳤다.

자신보다 사령대장이 더 빨리 움직였다.

아마 자신이 무슨 마공을 펼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허술한 놈.’

최악의 판단이다.

다른 무공도 아닌, 투기를 끌어올린 혈금강마공을 상대로 선공이라니.

지금 자신과 사령대장과 사이에 펼쳐져 있는 저 시뻘건 선(線)들이 무얼 뜻하는지 전혀 모르는 모습이지 않은가.

스스슥-

그렇게 상대가 움직이자, 허공에 그어진 선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상대가 어디로, 어떤 움직임으로 다가오는지 천균의 머릿속에 정확히 인식되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다가오던 사령대장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던 선들이, 아주 잠깐이지만 느리게 반응했다.

다시 촌극의 시간, 상대방이 한 번 더 이동했을 때에는 그 주변에 휘감겨 있던 선들이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

눈 깜짝할 시간보다 더 짧은 찰나.

상대의 움직임을 보기도 전에 천균은 눈앞의 상황을 목도했다.

사령대장이 이미 지척까지 다가왔다는 걸.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령대장이 밟았던 서너 번의 위치.

그곳에 펼쳐져 있던 죽음의 선들이 이제야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극한의 빠름.

아니, 상식을 부숴버릴 정도로 미친 듯이 빠른 신법이었다.

“커헉!”

펑!

천균의 복부에 설휘의 주먹이 꽂히자,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는 그대로 쭈욱 밀려나가 버렸고.

퍽!

무대 밖을 구르며.

퍽!

세워놓은 임시 가변대를 들이박았고.

구구궁.

뒤쪽 계단 아래의 벽까지 처박고는 겨우 멈췄다.

* * *

“허. 큰일 날 뻔했군.”

설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지막에 힘을 뺀다고 뺐는데, 저 정도로 멀리 날아갈 줄은 몰랐다.

다행히 내력이 거의 실려 있지 않아 큰 상처는 입지 않았으리라 예상됐다.

‘몇 번 해봐도 조절이 잘 안 되네.’

시간 결박.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극도로 느려지는 가운데, 자신은 그에 엮이지 않고 일반적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게 마지막에 조금 무리해서 달려 나갔더니, 내지르는 주먹까지도 빨라져 버린 것이었다.

‘저놈이 이상한 기운을 쏘아내니까.’

천균에게 쇄도하는 순간, 설휘도 분명히 느꼈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의 몸을 옥죄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빙공극저하를 발동시켰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혹여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하여 좀 빠르게 뛰었다.

그렇게 내지른 주먹이니, 내력이 실려 있지 않았다 해도 속도 자체가 있어 위력이 커졌다.

‘그런데, 내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린 거지?’

뒤이어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

그는 이제껏 빙공극저하를 이런 식으로 운용해 본 적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도 없었다.

자신이 어느 정도로 빨랐는지가 궁금했다. 당연한 의문이었다.

헌데, 좌중을 돌아보니 눈에 띄는 반응이 없었다.

슬쩍 바라본 자신의 수하들도 그저 멍한 시선으로 보고만 있을 뿐, 별 반응이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설휘는 놀라거나 당황하는 수준 정도로 반응을 예상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각하게 변해 있으니, 오히려 자신이 더 당황스러웠다.

“죽이진 않았군.”

그때였다.

진행을 맡은 율사가 말을 걸어왔다.

이자 역시 비슷했다.

이전과 달리, 자신을 보는 눈초리가 매우 서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력은 싣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상은 꽤 입었을 겁니다.”

“내력을 싣지 않은 게 그 정도라?”

“뭐…….”

놀리는 것이냐 묻는 듯한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설휘는 말끝을 흐렸다.

조금 전 상황을 복기해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사이 율사가 자신에게 다가오며 조용히 물었다.

“네 사부는 누구냐?”

“예?”

“사부가 있을 것 아니냐. 이미 초마의 반열까지 올라선 마인이라면.”

“초마?”

설휘는 뭐라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쏟아지는 글귀들이 눈앞을 가린 것이다.

현장 반응

[장로]

“방금 그 움직임. 보셨습니까?”

“갑자기 사라졌소. 은영단에 저 정도의 경신법이 있었다니. 마지막엔 대체 어떻게 한 거요?”

“내 말하지 않았나. 저 사령대장, 매우 훌륭한 녀석이라고.”

“대체, 저 아이가 누군지 아시는 분 있소? 사제자께서 직접 데리고 왔다는 얘기도 있던데…….”

장로들 쪽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이어졌고.

[칠사자]

“……술법인가?”

“아니, 무공이다. 속임수는 없었어.”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경신법으로 보여. 다만, 이형환위하곤 성질이 달라.”

“은영단 수준으로 가능한 건가?”

칠사자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사군성]

“저건, 은영단 일개 대장 수준이 아니다.”

“본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흠. 적어도 초마에 도달한 걸로 보인다. 방금 그 공격은 초절정에 올라서도 펼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이거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것 같은데…….’

설휘는 갑자기 뜨거워지는 머리를 식히기에 바빴다.

초마라니.

자신은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거 괜한 오해가 생긴 상황이 아닌가, 하고 난감한 표정의 설휘가 고개를 돌렸을 때.

“사령대장의 승리다.”

“와아아!”

“과연 사령대장이다! 사령대장!”

율사의 말과 함께 그제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이겼다!”

사령대뿐만 아니라 사적대에서도 열광적인 환호가 이어졌다.

완전히 박살이 난 사황대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이었다.

‘어? 뭐지?’

설휘가 간단히 예를 갖추고 시선을 돌릴 때였다.

칠사자 하나가 곤마 옆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승리하셨습니다.

그때쯤 이게 떴다.

그리고 눈앞의 글귀가 천천히 사라질 때쯤.

“그럼…….”

턱. 턱.

율사가 뭔가를 얘기하려 할 때였다. 무대 위로 올라오는 이가 있었다.

“어?!”

“뭐지?”

지켜보던 은영단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 이런 곳에 오를 리 없는 사람이 오르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무대 위에 있던 설휘가 더 놀랐다.

“자네. 나와도 한번 대련을 해주겠나?”

놀랍게도, 그는 칠사자 중 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자들.

[보조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칠사자 서무귀(徐無鬼)가 싸움을 걸어옵니다. 이에 응하시겠습니까?

[승리 시]

칠사자 중 하나로 활동하겠냐는 제안을 받음.

교단 내 입지 상승. 다수의 영약과 비급, 보물을 추가로 얻음.

[패배 시]

곤마 휘하 내 모든 고수의 관심을 받음.

‘이건 설마…….’

설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보조 이벤트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건 과거 곤마가 제시했던 운명의 길과 비슷한 경우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뜻했다.

‘아냐. 어쩌면 이게 곤마가 첫 번째로 제시한 길의 핵심일지도 몰라.’

잠시 당황했던 설휘는 예전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제시되었던 것은 ‘곤마의 핵심무사 되기.’.

하지만 지금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은영단은 핵심무사가 아니다. 사황대도 아닌 사령대가 곤마의 핵심무사일 리 없지 않은가.

물론, 이따금 사황대 쪽의 고수들이 핵심 무사로 활동하긴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일 때뿐.

냉정히 말하면 은영단은 칠사자 같은 핵심 고수들을 보조하는 부대에 지나지 않았다.

‘칠사자의 길이 열린다면…….’

처음 곤마가 말했던 핵심무사가 되는 것에 한층 더 가까워지는 것.

달리 말하면, 자신에게 내려진 ‘괴물’이 제시한 길을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걸 반증했다.

칠사자는 곤마의 핵심 임무를 가장 빠르게 수행하는 자들이다.

곤마의 선택을 받은 이들 중에서도 최상위로, 선발됨과 즉시 호법들에 의해 육성된. 그야말로 선택받은 자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이 아닌가.

‘가만. 그럼 내 수하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거기서 문득, 설휘는 고개를 돌려 자리에 앉은 수하들을 보았다.

“우와아아!”

“대장!”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주먹을 불끈 쥐거나, 밝게 웃거나, 소리치는 이들.

간간이 딴청 피우듯 앉아 있는 자들까지, 모두 자신이 데리고 가야 할 이들이다.

헌데 자신이 칠사자가 되면, 이들을 부릴 수 있을까?

임무 하나하나가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극악스런 상황을 맞이할 텐데?

“뭔가? 할 생각이 없는가?”

칠사자가 거듭 물어왔다.

그렇게 두 번째로 물어올 때, 그의 능력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State Summary, 상태 요약]

서무귀 [칠사자 내 서열 7위]

체력 4470만/4470만

내공 5200만/5200만

경지 초마

전투력 3000만/최소치/

‘태황각주보다 더 높아.’

전투력은 비슷했지만, 체력과 내공은 더 높다.

사실 전투력도 측정이 되지 않을 뿐, 태황각주보다 더 높을 수도 있었다.

설휘는 느꼈다.

이 싸움, 버겁다.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응하시겠습니까? 승낙/거부

재차 물어오는 질문 뒤에는, 직접적으로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설휘는 성공 시 아래에 적힌 글자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이라면…….’

결정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할 거냐 말 거냐를 물어보는 정도.

그 정도라면.

승낙하셨습니다.

“하겠습니다.”

상관없었다.

그보다 승패와 상관없는 싸움이다.

어쩌면 태황각주보다 더 강할 수도 있는, 그런 상대와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세 수를 양보하겠다.”

서무귀는 당연하다는 듯 제안했고, 설휘는 받아들였다.

그로서는 이런 제안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예를 갖추고 조금 물러난 설휘와 여전한 위치에 서 있는 서무귀.

기분 좋은 바람이 무대 위를 가볍게 지나갔고.

“가겠습니다.”

설휘가 자리를 박차며 먼저 움직였다.

세 번의 공격을 양보한다면.

그 양보 안에 이 싸움의 모든 걸 걸어야 했다.

‘우선 상대방의 발을 묶어야 해.’

거리를 좁히던 그는 한 가지 초식을 떠올렸다.

상대의 움직임을 무디게 만드는 소신수마공.

그중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지는 소하개동을 펼칠 생각이었다.

사아아아악-

아직 검이 닿기에는 먼 거리.

그럼에도 설휘의 검이 허공을 베자, 서무귀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 의아함은 곧 당황으로 변했다.

사사사삭!

광범위하게 퍼져 나온 냉기가 순식간에 자신을 휘감은 것이다.

“헛!”

급히 자리를 박차 벗어나려던 그때, 그는 더더욱 놀라고 말았다.

도처에 퍼진 희뿌연 냉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드드드득!

크고 작은 빙공(氷功) 수십 개가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며 쏘아지고 있었다.

기껏해야 검기나, 좀 강한 검격 정도만 생각했던 그에게는 너무도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쩌정! 저정! 촤아아아아-

한순간 무대 위가 한기로 뒤덮였고, 빙공이 쏟아지고 깨지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속에서.

쉬이익.

서무귀가 반쯤 얼어붙은 몸으로 뛰쳐나왔다.

‘왔다!’

설휘는 그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준비해 놓았던 화온마공의 두 번째 초식을 펼쳤다.

대라팔폭산화공(大羅八爆散火功).

이 역시 대규모 범위를 공격할 때 사용되는 초식이었다.

콰콰콰콰콰!

“윽!”

폭발과 열기가 무대의 반 정도를 뒤덮었다.

서무귀도 이번엔 약간의 신음을 흘렸다.

설마하니 직전에 극음의 마공을 사용하고서, 바로 강력한 극양의 무공을 연달아 펼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촤아아아-

그럼에도 칠사자는 칠사자. 그는 공격 반경에서 벗어났다.

다만, 범위가 너무 넓어서 전부 피해내지는 못했다.

치지직!

스쳤다고 생각한 열기가 불꽃처럼 다시 피어오르며 생살을 파고들었다.

서무귀는 이를 갈며 몸을 파고드는 불꽃을 자신의 화공으로 빠르게 지져버렸다.

‘마지막이다.’

그 찰나, 칠사자의 움직임이 살짝 느려진 순간. 설휘는 사대극마공의 풍환우(風環雨)를 펼쳤다.

검풍과 흡사한 위력이나, 유형이 아닌 무형. 거기다 소리도 없어 상대를 요격하기에는 충분했다.

휘이이이잉! 두두두두두!

‘……어?’

서무귀의 시선이 급히 위로 향했다.

이번에는 하늘이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직감이 자신을 향해 공격이 날아오고 있다는 걸 알려온 것이다.

그러나 늦은 듯했다.

두두두두두!

공중에서 한데 모였던 바람이 그의 정수리로 그대로 내리꽂혔다.

그리고 이내 바람결을 따라 생살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모습까지 보였다.

허나, 그 모습은 곧 흐릿해지더니 꺼져버렸다.

‘이형환위!’

설휘는 퍼뜩 깨달았다. 자신의 공격이 실체가 아닌 환영을 찔렀다는 걸.

팟!

거의 동시에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온 서무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느긋했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분노로 인해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세 번 끝났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검이 설휘의 몸을 관통했다.

퓩!

너무나도 빠르고 간결한 동작.

서무귀의 입가에 퍼지는 희미한 미소는.

“……!”

곧바로 경직되었다.

‘어찌?!’

분명 지척에서, 피할 수 없는 속도로 찌른 검인데. 손끝에는 당연히 걸려야 할 느낌이 없었다.

그로서는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설마하니 상대가, 이런 상황을 헤쳐나갈 최고의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어찌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앗!”

설휘의 검을 타고 절세풍검이 펼쳐졌다.

순간적으로 그 몸은 투명해진 듯 깜빡였고, 소용돌이치는 광풍은 무대를 넘어 관람석에 앉은 은영단원들까지 휩쓸 정도로 커졌다.

사아아아----

그리고 허공에서는 각기 제멋대로 움직이는 수백, 수천 개의 소용돌이가 메아리쳤다.

“크학!”

이번엔 서무귀도 막아내지 못했다.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알 수 없는, 찢어발기고 때리는 수많은 바람이 그의 몸을 하늘로 밀어버렸다.

그사이 설휘는 바닥을 딛고, 그대로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은 실패하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기술을 써야 했기에.

“하앗.”

[초풍신을 사용합니다.]

쿠르릉!

그리고 솟아나는 또 다른 기의 폭풍.

언뜻언뜻 새파란 빛이 감도는 질풍이, 공중에 떠 있는 서무귀를 연속으로 후려갈겼다.

“크아아악!”

제대로 먹혔다. 서무귀의 비명이 찢어지듯 커진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었다.

‘한 번 더.’

이어 설휘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떨어지는 지점을 포착…… 하지 못했다.

‘어?’

쉬익.

그렇게 연달아서 당하면서도, 서무귀는 떨어지는 순간에 몸을 비틀었다.

그러고는 공중을 한 번 밟으며 체공 시간을 늘려, 설휘의 공격로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투욱.

“크으으읍!”

그렇게 겨우 착지한 서무귀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한쪽 팔이 축 처져 있었고, 입가에는 선혈이 흐르고 있어 심한 내상을 입은 듯 보였다.

“후우…….”

그런데 웬일인지 설휘는 급하게 달려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서무귀의 낭패한 모습을 보고도, 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이제 알겠다.’

한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사실 대련 도중에 적을 쓰러트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전투방식을 시뮬레이션으로 바꾸었다면, 이미 진즉에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번 공방을 통해, 설휘는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건지 알 수 있었으니까.

‘너, 이 자식……. 그저 욕만 나불대는 놈인 줄 알았더니.’

바로 AI.

자신에게 거침없이 욕을 박아 넣던, 아니 훈계하던 놈을 떠올렸다.

“동료를 택한 거구나.”

이건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AI는 본 스토리에 가기 전, 초풍신과 수라폭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 말은, 이 싸움에서 이겨 칠사자의 신분을 얻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칠사자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그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저기 남겨진 수하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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