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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27화 (128/379)

127화. 천미려의 제자 (4)

우와아아, 우우우우…….

좌중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곤마. 이 대회의 주최자이자,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통솔하는 주인.

그가 남을 시키지 않고 직접 무대 위에 올라섰다는 것은 보통 의미가 아니었기에.

“잘했다. 정말 훌륭하구나.”

곤마는 그윽한 눈길로 설휘를 바라보며 웃었다.

뛰어난 재목이라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칠사자 중 하나를 쓰러트릴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고작 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기간에 이토록 눈부신 성장을 이루다니.

기분 좋은 놀람이었다.

“감사합니다.”

설휘는 급히 고개를 숙이고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대련은 끝났다. 이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설휘, 은영단의 일개 대장이 칠사자를 꺾었다는 사실을.

“그런데 말이다.”

곤마의 온화하던 표정이 조금 미묘하게 변했다.

“마지막에 펼친 화 속성의 마공. 그건 어디서 배운 것이냐?”

그가 직접 무대에 뛰어든 까닭은 이걸 묻기 위해서였다.

빙공의 강력함이야 설휘가 천미려의 제자라 했으니 그러려니 해도, 화염의 마공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건 대충 모양새만 따라 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진전을 이은 것이었다.

극음의 빙공에 이어, 극양의 화공이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화공과 관련된 무학 서적들이…….”

잠깐 숨을 한 번 내쉬며 상대의 반응을 살피던 설휘가 입을 열었다.

“천일관에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게 하필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설마하니 그것들로? 흐음.”

곤마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혈수마공을 근원으로 하는 몇 가지 변형된 마공을 천일관에 두라 하기는 했지. 허나, 나는 조금 전 확실히 보았다. 자네가 사용한 건 그것보다 훨씬 상위 계열의 화공이었어.”

“하위 계열이라 하더라도, 화공은 어떻게 연성하느냐에 따라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극양의 무공과 극음의 무공은 오히려 연성 방법이 비슷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아실 겁니다. 극양과 극음. 성질은 서로 반대이나, 연성하는 방식과 운용의 묘가 그렇습니다.”

설휘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화온마공에 수록된 글과 소신수마공의 내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양쪽의 수련 방법에서 비슷한 구간들을 찾아 그것이 일치한다고, 자신은 그렇게 느꼈다고 슬그머니 끼워넣었다.

그런데, 곤마는 가볍게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글쎄……. 내가 알기로 본디 두 심결은 서로 상충될 수밖에 없다. 상생의 기가 오르면 양기가 동하여 음기가 소멸하고, 하생의 기가 오르면 양기가 소멸하며 음기가 동하지. 호흡법이 이리 다르니 심법도 다를 터인데, 자넨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는 것이다.”

다시 이어진 질문.

지금 건 이전보다 한층 더 예리하고 구체적인 물음이었다.

하지만 설휘는 당황하지 않았다.

화온마공의 상급을 익혔을 때부터, 언제고 이런 질문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분

석 중……◇]

설휘가 조금씩 시간을 끄는 사이, 시뮬레이션은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곧 결과가 눈앞에 나타났다.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저희 사부께서는 소수마공을 통해 극에 오르시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높은 한계에 봉착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벽은 이제껏 경험했던 벽보다 높고 단단하여, 감히 넘을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시길, 나는 너무 멀리 왔지만 설휘 너는 아직 기틀이 딱딱하게 굳지 않았다. 그러니 빙공뿐 아니라 화공 또한 수련을 게을리하지 마라. 두 속성을 비교하며 음양의 조화를 구하거라. 그러면 내가 본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설휘는 시뮬레이션이 제공한 답변을 그대로 읽었다.

곤마의 번뜩이던 눈빛, 처음에는 의혹이 가득하던 시선이 이내 흥미로움과 놀라움으로 변하더니.

“아…….”

하늘을 향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놀랍고도 놀랍도다. 실로 일대 종사는 되어야 가질 수 있는 시각이구나. 우리네 한낱 범인들로서는, 하늘 높이 솟은 봉황의 시야를 헤아릴 수가 없으니…….”

그러고는 뭔가가 떠오른 듯, 혹은 막막한 듯 혼잣말로 읊조렸다.

그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설휘가 한 말이 설령 이치에 안 맞다 해도, 천미려라는 절대 고수가 그렇게 말했다는데 어찌할 것인가.

일일이 심법을 캐물어서 본인이 익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설휘야.”

곤마가 시선을 내렸다.

다시 마주 본 그의 얼굴은 이전처럼 온화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혹 칠사자로 들어오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

“예?”

“칠사자, 내 핵심 무사로 말이다. 너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는 것 같구나.”

그때였다.

곤마가 한 가지 제안을 해옵니다.

[직책을 ‘칠사자’ 중 하나로 전환하시겠습니까? 승낙/보류/거부]

칠사자인 서무귀와의 싸움에서 이겼으니, 그만한 위치로 신분을 올려주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설휘는 담담히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그만한 인물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 대결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의 실제 무공은 칠사자와 겨루기엔 모자람이 있었다.

특수 기술이란 기연 덕분에 우세를 점했을 뿐.

그런 그가 칠사자, 곤마의 핵심 무사가 되어 버리면, 언제 바닥이 드러날지 모를 일이었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수련할 게 많은데, 그럴 시간을 가지려면 지금의 사령대장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허, 참.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구나. 칠사자의 한자리를 권유받고도, 일말의 아쉬움조차 없이 거절하다니. 이유가 무엇이냐?”

“…….”

설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뭐라고 더 입을 열다간, 자칫하면 중책을 권유한 곤마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조용히 머리만 조아리고 있자.

“혹, 지금의 수하들 때문이냐?”

“어…….”

곤마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했다.

설휘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곤마는 슬쩍 관중석의 한 자리, 사령대가 앉은 곳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하긴, 그간 네가 조장들을 마치 제자처럼 각별히 아끼고 가르친다는 것을 들은 바 있었지. 네가 칠사자에 들게 되면, 저들이 어찌 될까 그것이 염려되느냐?”

“…….”

“좋다. 그럼 내 다시 제안을 하마. 네 수하들과 함께 내 주위를 호위해라. 그렇지 않아도 인원을 좀 늘릴 생각이니 잘 되었다. 이렇게 하면 너도 조금은 생각해보겠지?”

곤마가 또 다시 제안을 해옵니다.

[‘1급 호위무사’로 직책을 전환하시겠습니까? 승낙/보류/거부]

설휘는 그것을 보고서 눈을 의심했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어!’

애초에 이 싸움에서 빙공뿐만 아니라, 화온마공까지 펼쳐낸 이유.

만약 그가 칠사자를 능가하는, 혹은 그에 걸맞은 무위를 보이게 되면 칠사자라는 첫 제안을 거절했을 시 또 다른 제안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대회에는 칠사자뿐만 아니라 장로들, 거기다 곤마 최고의 비밀무사인 사군성까지 있다.

항상 인재에 목이 마른 곤마다.

여기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직책을 주고 싶어 할 터.

‘지척 호위는 곤마가 제시하는 삶에서 두 번째의 길이었다.’

설휘는 ‘곤마가 제시한 세 가지의 삶’을 떠올렸다.

만약 두 번째 길을 정상적으로 밟았다면, 그 길의 끝에는 ‘호위무사’가 있었을 것이다.

곤마의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임무로, 그 숫자가 몇 명인지, 단순 호위 외에 어떤 임무를 하는지 무엇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왜 대답이 없지?”

설휘가 가만히 있자, 그는 다시금 물어왔다.

승낙, 거부를 따로 선택하는 게 없는 것으로 보아 이렇게 대화가 가능한 듯싶었다.

“조금…… 고민을 더 해봐도 되겠습니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수하들과 함께 한다는 점은 나쁘지 않았으나, 그 직책을 맡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려워서였다.

무엇보다 ‘본 스토리라는 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하긴. 이런 제안이 당혹스럽기도 하겠지. 나도 너무 즉흥적이었군. 그래, 며칠의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결정할 수 있도록.”

곤마는 그 말과 함께 돌아섰다.

그리고 주변이 환해짐과 동시에, 눈앞에 몇 가지가 나타났다.

[5,000G를 얻었습니다.]

[황금 벨트를 얻었습니다.]

[갑자연단(甲子鍊丹)을 얻었습니다.]

[무생성수(無生聖水)를 얻었습니다.]

……

……

* * *

어두워졌다가 다시 시야가 밝아졌을 때, 설휘는 처음 보는 건물 안에 있었다.

예전에 있던 거처보다 훨씬 화려하고 넓은 방이었다.

창가 밖으로 정원이 보이는 곳.

그리고 눈앞에 떠오르는 몇 가지 글귀들.

[상처로 인해 이십여 일을 요양합니다.]

서무귀와의 싸움으로 인해 입은 부상.

생각보다 상처가 컸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다치면 본래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며 눈앞으로 정보가 떠올랐다.

[상으로 받은 영약 몇 개를 수하들에게 지급합니다.]

[적송, 요림, 소령, 적송]

“수련에 더 정진하겠습니다.”

[음무기]

“사부. 언제든 전수해주실 무공이 있다면 기다리겠습니다. 아, 영약은 잘 사용하겠습니다.”

수하들의 정직한 반응과 함께 눈앞이 다시금 환해졌고.

다시금 시야가 돌아왔을 때는 저녁 밤.

자신이 생활하던 거처였다.

“다른 부대로 전직을 할 수 있다라…….”

설휘는 본래의 방으로 돌아와서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곤마가 한 제안이 떠나지를 않았다.

호위무사.

분명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보다 더 곤마의 신임을 받고, 대우나 위치도 훨씬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설휘가 전직하지 않은 이유는.

‘그 녀석. 분명 이 길을 지나본 적이 있었을 거야.’

바로 자신이 경험했던 AI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분명 본 스토리로 가기 전에 초풍신과 수라폭열공을 익히라 했다.

그리고 그 두 무공을 익혔던 이상, 지금의 자신처럼 곤마가 주최한 대회에서 크게 눈에 띄게 되었을 터였다.

어쩌면 AI는 곤마에게 호위무사 이상의 자리를 권유받았을지 몰랐다.

어떤 길을 갔든, 중요한 건 직책이 아니다.

과거, AI는 자신이 화산파와 싸우던 것을 두고 왜 이런 선택을 했냐고 비난하지 않았다.

AI의 직설적인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왜일까.’

설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자신이 보기에 AI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간 선택한 삶의 기로뿐만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미래의 삶에 대해서도 예측하는 듯한 발언을 했었다.

그 많은 혹평과 잔소리들은, 아마도 본인이 경험했었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일 터.

그렇다면 그 녀석이 왜 이 방향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혹시 지금의 경우는 그도 예상 못한 일이기에?

AI조차도 칠사자나 호위무사에 속하는 일 자체가 없었기에?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굳이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평소대로 진행하는 것이 더 낫다는 ‘확신’이 있었던 거지. 난 그 확신의 근거를 알아내야 해.”

설휘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다른 길이 있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가는 이유.

그만한 가치가 무얼까 하는 것.

전직을 하게 되면, 임무가 지극히 어렵다는 예상되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었다.

오히려 칠사자든 호위무사든, 부족한 부분은 따로 교육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전직보다 지금이 더 나은 이유가 필요했다.

“서, 설마!”

그 순간, 설휘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가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유추였다.

“마태룡이, 내 수하가 되는 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했다.

자신이 생각한 AI의 ‘확신’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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