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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33화 (134/379)

133화. 더 높은 세상을 향하여 (1)

“주군, 마태룡이 실종됐습니다.”

상황은 이전과 똑같이 흘러갔다.

강건한 필체가 걸린 집무실 아래엔 녹정관 장로가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곤마가 있었다.

그리고 보고의 내용은 칠사자 중 하나인 마태룡의 실종에 관한 것이었다.

“마태룡의 생사는 중요한 일이나, 아무래도 이번 일은 여기서 손을 떼는 게 좋을 듯합니다.”

또한, 녹 장로가 우려를 표하는 것.

“마태룡은 극마를 눈앞에 둔 초고수. 그가 실종되었다면 분명 화산에서도 거물급 인사가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되면 태황각주 귀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그랬다면, 곧장 이곳으로 쳐들어왔겠지요.”

그리고 곤마의 반박까지 달라진 점은 없었다.

“우선 추적에 능한 자들을 선별하시지요. 황가산에 분명 예의 그 물자들이 있을 터. 민첩하고 상황판단이 빠른 자들이 필요합니다.”

“마침 준비해 놓은 자들이 있습니다.”

“사령대입니까?”

그런데 여기서 달라졌다.

과거에는 ‘은영단이군요.’라는 추상적인 대답이었다면, 지금은 사령대를 콕 집어서 말했다.

아마도 전생과 다른, 현재 사령대의 입지를 반증해주는 얘기일 터.

“그리고 만에 하나를 위해 철군성(鐵軍城)을 붙이시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달라졌다.

철군성을 붙이는 이유가 과거와 달리.

“만에 하나, 적에게 생포되었을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사령대장만큼은 데려와야 합니다.”

사령대장인 자신을 언급했던 것이다.

본래는 ‘만에 하나 생포당했을 경우’를 대비한다는 말뿐이었다.

그것이 다른 점이었다.

“사령대장을 불러 오너라!”

여기까지가 과거 곤마와 녹 장로가 나눈 대화와 차이점이었다.

“들어오너라.”

곤마와의 만남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몇 가지 상황 설명과 함께 당장 출발하라는 명을 받고, 수하들과 대기하라는 곳에서 복면을 쓴 자를 만났다.

철군성이다.

사군성 중 하나로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그 세 번째의 길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비밀 무사.

“누군가?”

낯선 이의 등장에, 용진은 이전처럼 적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복면인은 관심도 주지 않고 곧장 자신에게 다가왔고.

“몸은 좀 어떤가?”

과거 냉담하게 이름만 묻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좋습니다.”

“그래?”

그는 유심히 설휘를 쭈욱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툭 하고 어깨를 치며 말했다.

“가지.”

* * *

본교의 경계초소를 넘자, 예정대로 복면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동 중 밤이 되었고, 사령대 조장들은 능숙하게 야영을 준비했다.

따닥따닥.

각자의 침소를 준비한 후, 싸리를 한데 모은 공터에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픽!

그 가운데서 불을 능숙하게 피워내는 소년을 보며 음무기가 입꼬리를 올렸다.

“너, 제법인데?”

불 피우기.

무인에게 딱히 대단한 것은 아니다. 화섭자가 있으면 간단히 불꽃을 일으키고 숨만 불어 주면 된다.

혹은 작은 활을 만들어 반각만 나무를 비벼대면 금방 불씨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송화는 그저 허공에 손으로 몇 자 글을 쓴 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퍽! 하고 불길이 일었다.

무인이었다면 그냥 삼매진화나 열양공이구나 했겠지만, 이 아이는 무공도 모르지 않는가.

“기초적인 주술로……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 말에 사령대 조장들은 헤에, 하고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주술에 조예는 없어도 주술사들이 불을 불러내는 데 익숙하다는 건 어디서 들은 것 같았다.

“헌데, 꼬마 주술사.”

“네.”

때마침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걸 쳐다보던 적송이 송화에게 물었다.

“너, 능력이 뭐냐? 무인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그러게.”

사실 이건 여기 있는 모두가 궁금해했다.

송화가 기문둔갑이나 주술에 능통하다고는 들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솔직히 말해, 주술이나 기문둔갑 자체에 대해서 아는 자가 없었다.

그나마 아는 건 강시 정도?

“우리 기려사대…… 아니, 그러니까 저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한순간, 일제히 시선들이 쏠리자 송화란 아이는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말을 더듬고 이마에 땀도 흐르는 것이,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보지 않은 듯했다.

“괜찮아. 여기서 누구도 너한테 뭐라 할 사람 없으니까……. 천천히 말해.”

소령이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부드러운 말로 긴장을 풀어주었다.

스윽스윽.

심지어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자, 잔뜩 긴장해서 침만 삼키던 송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술법은…… 마흔 가지 정도입니다. 그중에 제 장기는 세 개 정도인데, 우리 어르신께서는 그보다 더 많다고 누가 묻거든 그리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오. 마흔 가지나!”

“그 뭐냐. 막 날아다니는 것도 있어?”

사령대 조장들이 하나둘씩 웃으며 반응했다. 반쯤은 허풍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송화는 그런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하나는 가속법(加速法)입니다.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빨라지게 하는 건데……. 저에게도 걸 수 있지만, 남에게도 걸어줄 수 있습니다.”

“가속법? 경신법과는 다른 건가?”

“빨라지니까 비슷한 거겠지?”

용진과 음무기가 말을 주고받자, 송화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경신법보다 훨씬 더 유용합니다.”

“……뭐 얼마나 유용한데?”

음무기가 곧장 물었고, 송화가 답했다.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몸의 움직임이 빨라져, 한 번 때릴 걸 두 번 때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뭐?”

“호오.”

“정말이야?”

“지금 한번 보여줘.”

다들 처음에는 웃고 넘겼던 것을, 이내 진지하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송이 제지하며.

“다른 건?”

화제를 돌리자 송화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사령술입니다. 죽은 자들의 원귀를 불러내 움직일 수 있고, 폭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강시도 부릴 수 있는데, 제가 한 번에 부릴 수 있는 강시는 오십입니다.”

“뭐? 오십?”

“그렇게 많나?”

강시란 말에 그다지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시체를 움직인다는 게 꺼림칙했으니까.

특히나 오십이란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강력한 전력인지는 감도 안 왔다.

대충 그냥 한 방향으로 펄쩍펄쩍 뛰는, 그런 강시를 떠올린 것이다.

그러다가.

“혹시 저번에 창고 안에 갇혀 있던 강시 수준으로 어느 정도야?”

요림이 묻자.

“어. 그런 녀석으로 오십이요. 요건만 갖춰지면 그때보다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

“……!”

“……!”

그 대답에 모두가 한 번에 얼어붙었다.

당시의 강시들. 그 수는 오십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부 도검불침 같은 위력을 보였고, 일부는 자폭도 했다.

그런 위험한 놈들을 모두 오십이라니.

아니, 그보다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니?

“그리고 세 번째는?”

이제 다들, 송화의 장기가 무언지 사령대 조장들의 흥미와 관심이 잔뜩 모였다.

“마지막은 공간이동입니다.”

“무슨 이동?”

“축지법이군…….”

그 말에 다들 끄덕였다.

축지는 도술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술수다. 그래서 나올 게 나왔다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조금 다릅니다. 어. 축지는 도술의 극한의 수법으로, 아직 제 경지로는 닿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 비슷하게, 정해진 장소에서 다른 정해진 장소로 한 순간에 이동하는 겁니다.”

“……나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그게 가능한 거야?”

음무기와 용진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일단, 그 가속법이라는 거 써줘 봐.”

“아니. 그보다 강시 한 마리 불러봐.”

“야. 공간이동이란 걸 해보자니까?”

다들 저마다 제각기 떠들어 대는 가운데, 적송 옆으로 다가온 소령이 물었다.

“그런데 대장은 어디에 있어?”

“글쎄…….”

* * *

설휘는 수하들과 조금 떨어진 공터에 홀로 앉아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침묵을 지키던 그는 여기 와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설휘의 머릿속은 온통 마선전기에 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 부적합을 받은 자.’

12명의 무인 중 마지막의 인물.

가장 큰 탄식과 좌절감을 소회로 밝혔던, 그의 목소리는 설휘의 머릿속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 써진 무인 중 유일하게, 마성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무사의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순간 찾아왔다. 왜 살인을 해야 하는 것인지. 왜 나와 상관없는 이들을, 착하게 산 이들을 죽여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명령은 거부할 수 없었다.]

[따르다 보니 나는 점점 죄책감이 쌓여갔다. 흔히 이것을 심마(心魔)에 빠졌다고 하던데, 대부분이 마성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생겨난다고 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자신을 공(空)이라고 소개한 이는, 다른 이들과 달리 대부분을 자책에 관해서 썼다.

특히 공은 마교인인 게 표가 났다.

[신교에서 마성에 적합한 자를 뽑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성에 물들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다는 걸.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인을 정당화해야 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게 불가능했다.]

공은,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그것은 그를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한 모양이다.

[너무 강해진 탓일까. 이렇게 가다간 결국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잠깐이지만 미친 적도 있었다. 광마의 조짐은 수시로 일어났으니까. 마공이란 것은 나의 이성을 송두리째 뽑아가기 위해, 뱀의 혀처럼 계속해서 노리고 있었으니까.]

너무 강해진 탓이라는 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휘는 알지 못했다.

강해졌는데 왜 이미 늦어버린 뜻처럼 쓰인 것인지.

[결국 나는 막다른 길에 와 있다. 마공을 쓰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고, 마공을 쓰게 되면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진퇴양난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까.]

[현 상황에서 해결 방법은 하나뿐이다. 극마가 되는 것. 마기를 쓰되, 완벽히 통제가 가능한 경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두 번의 경지를 한 번에 뛰어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여기서 설휘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마성에 부적합한 고수는 일정 경지 이상으로 오를 수 없다는 것.

공은 그걸 말하고 있었다.

“나도 그런 건가.”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았다.

본교의 고수란 자는 전부 마성에 적합한 자.

마성에 부적합한 자가 상승의 경지에 올랐다면 꽤나 회자될 터인데, 그런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때쯤 난 모든 걸 멈추고 사색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를 통제함과 동시에, 외부에 비치는 경물(景物)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면. 극마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움직임이라고?’

앞선 얘기야 전부 그렇다 쳐도, 설휘의 이목을 끄는 건 바로 이것이었다.

여기서 경물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

눈에 비치는 모든 사물의 움직임을 읽으며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앞서 읽었던 나뭇잎 개수를 세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너무도 광범위하며 추상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시도와 노력은 너무도 절실하게 와닿았다. 그리고 그것이 설휘가 사물을 달리 바라보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었다.

‘나뭇잎.’

설휘는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어디로 떨어지는 건지 한번 맞춰보는 것이었다.

휘이이잉.

때마침 바람이 불었고, 설휘는 나뭇잎을 보며 떨어질 곳을 예상했다.

‘이쯤.’

툭.

하지만 틀렸다.

나뭇잎은 암기나 정물이 아니었다. 가볍고, 기묘하게 뒤틀린, 바람에 크게 영향을 받는 물체였다.

심지어 제각각 생긴 모양도 조금씩 달랐다.

‘이쯤.’

툭.

‘이쯤…….’

툭.

그래서 아주 작은, 심지어 제가 흔들리며 일으키는 작은 공기의 움직임에조차 흔들렸다.

낙하 방향과 위치는 매번 틀렸고, 설휘는 수차례나 해 본 뒤에야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어찌 보면 참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

그럼에도 설휘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드릴까요?]

실은, 오면서 한 번 돌려본 적이 있었다.

개인적인 궁금증도 있었지만, 마선전기라는 책에 있는 내용이 정말 사실인지 어떤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내가 초마의 경지에 오를 방법은?”

[분석 중……◇]

설휘는 한참을 기다렸고, 거의 반시진이 넘어서야 결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거의 처음으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껏 어떤 답이든 다 찾아주던 만능의 시뮬레이션이, 처음으로 답이 없다는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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