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더 높은 세상을 향하여 (2)
다음 날.
설휘는 수하들을 이끌고 이동했다.
마태룡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아는 터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산길을 헤치기를 세 시진.
“숨 좀 돌리도록. 여기서 잠시 쉬어간다.”
휴식을 지시한 설휘는 그 와중에도 주변을 살폈다.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위치를 확인하고, 인기척이 없는지 주의 깊게 살폈다.
파삭. 사삭.
이내 안전함을 확인한 설휘가 내려왔다.
“저기. 대장.”
“음?”
요림이 다가와 물었다.
“대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혹 짚이는 곳이 따로 있으신지요?”
“음.”
설휘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수하들이 말은 안 했지만 다들 의아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보통 실종자 수색이란, 마지막으로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을. 그리고 그가 어느 정도 무위를 가졌는지, 어떤 임무를 맡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헌데 설휘는 전후사정을 빤히 아는 만큼, 그런 과정을 다 건너뛰고 계속해서 직선으로 내달리기만 해왔다.
당연히 수하들로서는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화산파의 비밀분타가 나온다.”
“예?!”
“……!”
“……!”
갑작스런 말에 수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그 정보는 혹시 복면인이 알려준 겁니까?”
“……뭐. 그런 셈이지.”
설휘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사실 지난번에도, 지금도, 복면인 철군성은 이 근처를 지목했다.
허나 그가 마태룡이 잡혀 있으리라 판단한 건 아니었다.
철군성은 이번 일에 어떻게든 화산파가 연관되어 있으리라 보았고, 그래서 그가 아는 화산파의 비밀분타를 밀지로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설휘는 안다.
비밀분타에는 마태룡이 없다는 걸.
그걸 알면서도 이곳에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사령대 조장들은 하루 동안 지형을 샅샅이 조사하라. 당장 우리가 밟고 있는 이곳부터 시작하여, 내가 다시 이동할 곳까지.”
“예? 그게 무슨…….”
“설명은 후에 해주마. 시간이 촉박하니 우선적으로 이동하는 길목부터 파악해라. 특히 임시로 닦아놓은 소로길을 놓치지 말도록.”
“어…….”
이상하게 들릴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일일이 설명하기엔 상황이 너무 복잡했다.
그리고 시간이 없었다.
‘사흘째 저녁.’
설휘는 이후에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여기서부터 사전작업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임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바로 시간이다.
분명 AI는 설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오늘 저녁에 교주의 둘째 제자, 마후의 수하들이 이곳을 덮친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마태룡은 그가 사로잡힐 때, 화산파 놈들의 정보를 마후에게 넘겼다. 그래서 그놈들이 이곳을 공격하러 오는 거야.”
사흘째 저녁.
전생에서 마태룡을 구했던 것도 그때다.
당시에는 둘째 제자의 휘하 세력이 올 줄 몰랐으니, 해가 중천에 떠 있던 낮에 임무를 수행했다.
그때를 기준으로 어제 하루를 보냈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다.
이틀.
그 시간 동안 도주로를 확보해야 했다.
철군성이 지목한 화산파 비밀분타와, 과거 자신이 시뮬레이션으로 찾은 화산파 비밀지부.
이 두 곳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샅샅이 찾아 외워둬야 했다.
이틀 뒤 마후의 수하들이 화산파를 덮친다면, 그들은 이 두 곳에 병력을 모을 것이고, 싸움의 무대는 지금 수하들이 조사하는 이 지역이 될 것이다.
어부지리.
마후의 수하들과 화산파가 충돌하는 그때를 맞춰 마태룡을 구해 탈출한다면, 자신들은 무사히 돌아갈 확률이 높아질 터였다.
“어. 대장? 저는 빠집니까? 사령대 조장이 아니니까…….”
음무기가 눈치 없이 손을 들어 묻다가, 주변에서 짜게 식은 눈초리를 받고서 쭈그러들었다.
송화를 제외한 다섯 명의 수하들은 설휘가 정해준 지역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지역은 한 사람당 이십 리씩. 총 백 리에 달하는 넓은 지형을 조사하게 된 것이다.
* * *
“허억……. 허억…….”
수하들에게 수색을 맡긴 다음, 설휘는 송화를 데리고 다시 이동하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닿아 있긴 했지만, 송화는 설휘를 놓치지 않고 어찌어찌 따라붙었다.
“생각보다 잘 따라붙는구나.”
하얀 얼굴. 왜소한 체구. 저 작은 몸에 어디 그런 힘이 숨어있었는지 용할 정도였다.
설휘의 강행군은 무인으로 단련된 조장들도 꽤 힘들어 보였는데 말이다.
“하. 하하. 저는 어릴 적부터 체력훈련을 게을리 않았습니다!”
송화가 과장되게 팔을 걷어붙이며 자랑했지만, 설휘는 그저 피식 웃었다.
‘뭐. 술법을 썼겠지. 그 가속법인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가 없다. 뭐, 어쨌든 지쳐서 퍼지지 않는 것만은 다행이었다.
타닥. 타닥.
반 시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설휘는 꽤 높은 봉우리에 도착했다.
문제의 비밀지부가 보일 만한 곳.
지형이 지형인지라, 인근에는 민가로 보이는 곳은 없었다. 험하고 미끄러운 지역이라, 무인이 아니면 올라오기도 힘들 터.
“여기는 어딘가요?”
“네 공간이동으로 와야 할 장소다.”
설휘는 송화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어제 밤.
수하들이 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는 쉽게 믿지 못했다.
어떻게 사람이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전설상의 축지법도 아니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송화는 기려사대 출신이다.
온갖 술법과 주술을 다루며, 애초에 시체를 강시로 만드는 일도 가능한 녀석이다.
그렇다면 믿음을 가져도 좋으리라.
“의식의 기간은 하루라고 했지?”
“예. 거리는 백 리를 넘을 수 없습니다. 또…….”
“들었다. 한 번 사용하는 데 많은 주술력이 들어간다고.”
공간이동.
가능하면 사전에 시험을 해 보고 싶었지만, 일단 쓰게 되면 송화가 하루 이틀은 뻗어 버린다. 우선은 믿고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바로 의식을 거행하거라. 여기가 도착지다. 아마 출발할 장소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는…….”
[분석 중……◇]
설휘는 이미 시뮬레이션을 돌렸었지만, 다시금 확인했다.
-찾았습니다.
- 거리 31.4km, 화산파 비밀지부의 입구부터 현 장소까지. 이 시대의 측량법인 리(里)로는 대략 80리입니다.
“팔십 리 가량이다. 가능하겠나?”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대장님?”
“말하거라.”
“왜 제 공간 이동술을 쓰려고 하시는지요? 대장님과 저 조장님들이라면, 제 주술의 힘 없이도 뭐든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송화가 갸웃하고, 설휘는 쓰게 웃었다.
“적이 강대하니까.”
“……예?”
“설명할 틈이 없었구나. 간단히 말해서 지금부터 우리가 잠입해야 할 곳은 적지다. 그것도 화산파. 본교와 적대하는 구파일방 중 하나.”
꿀꺽!
설휘가 짧게 한 말에 송화는 침을 삼켰다.
“무위가 강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애초에 적의 수 자체가 많을 것이다. 이대로 우리만 잠입했다간, 전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임무를 왜 받으셨습니까? 아니. 그 정도라면 다른 지원 부대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사정이 좀 있단다.”
처음엔 그저 수색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태룡.
그를 데려가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또한, 나름 계획도 있었다.
교주의 둘째 제자 마후. 그의 수하들.
애초에 이 임무는 그들이 난입해 올 것을 알기에 받아들인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미리 말해서야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라는 질문만 붙을 따름.
“……죽을 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임무라는 겁니까.”
“……?”
헌데, 그렇게 애매하게 답했더니, 송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대장께서 저를 믿고 목숨을 맡기셨으니! 이 송화가 반드시! 그 신뢰에 보답하겠습니다!”
펄럭!
꼬마가 품속에서 부적 한 무더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치덕치덕.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닥이니 나무니 벼랑 등에 하나하나 붙이기 시작했다.
“……허.”
작은 몸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부적을 붙이는 송화.
단 한치의 빗나감도 없어야 한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부적 붙일 자리를 가늠한다.
그 모습이 설휘의 눈에는 그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
하지만, 그 웃음은 바로 굳었다.
부적으로 일대를 도배해버린 다음, 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는 송화.
지익. 지익. 뚝. 뚝.
조막만한 꼬마에게, 혈서를 쓰며 피를 바르는 모습은 심히 어울리지 않았다.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묵직해졌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아. 아직 제가 미숙해서요.”
보는 설휘가 다 아픈데, 정작 피를 흘리는 송화는 대단치 않다는 얼굴이었다.
“술수에는 술자와의 매개가 필요합니다. 그 매개로 피만 한 것도 없지요. 피는 생명 그 자체니까. 그리고 대장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사실이라면.”
스윽. 스윽.
송화는 몇 차례 더 피를 뿌리고, 부적 위에 그림을 그린 다음,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 목숨도 걸린 문제 아니겠습니까? 제가 살기 위해서라도, 이 술수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지요.”
“네 목숨?”
“적지에 잠입하는 거. 저도 함께하는 것 아닙니까? 저 없이 어떻게 공간이동술을 쓰시려고요?”
“……!”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설휘는 새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송화. 이제 얼굴에서 솜털이 보송보송 나는 아이.
이 아이에게 지나치게 막중한 짐을 지우고, 자칫하면 함께 죽을지도 모르는 험지로 끌고 가게 되다니.
“……송화야.”
“예. 대장!”
그게 좀 미안해서일까.
천진난만한 눈망울로 기대를 잔뜩 하는 꼬마에게 설휘는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느냐?”
“뭐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그 얼굴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철부지 어린아이의 맹목적인 신뢰. 그게 더더욱 부담스러워서 설휘는 이참에 물었다.
“너는 왜 나를 따르겠다고 한 것이냐?”
송화가 사령대에 들고 싶다고 했을 때, 설휘는 처음에 거부했었다.
앞으로 그가 맡을 임무는 험하기 짝이 없을 것이고, 그런 위험 중에 어린애를 지키는 건 힘든 일.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혹은 위험에서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을 터였다.
“어……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으로 아는데요?”
“듣긴 했다만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아서 말이다.”
이해득실.
수하들이 이 꼬마를 통해 앞으로 기려사대.
본교에서 가장 강한 주술사 부대와 이어진다는 말에 받아들였지만, 지금 와서 보니 영 못할 짓을 한 것 같았다.
송화는 어린아이다.
이 녀석이 자신의 뭘 보고 따르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자신이 겪을 위태로움에, 이런 천진한 꼬마를 끼워 넣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음…… 대장님. 대장님은 제게 하늘이 정해준 사람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술사이고, 그래서 앞날에 대해 점을 치곤합니다.”
송화가 머리를 긁으며, 살짝 부끄러운 기색을 보였다.
“사실, 그날 강시들과 실혼인들이 폭주했을 때, 저는 얼핏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점괘를 보았으니까.”
“……그래?”
그 말에 설휘는 내심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그래서 그렇게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거구나.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술사가, 기려사대의 대주만큼이나 강한 구속진을 설치했다는 건, 앞일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니까.
“그리고 저는 원래 그 자리에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
설휘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도 여상스럽게 말하는, 송화의 얼굴이 지나치게 진지했기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점괘로 미리 알았다면 강시의 폭주를 알리고 피했으면 될 것 아니냐?”
“글쎄요. 말했으면 어르신들이 제 말을 들었을까요? 제 외견이 어떠합니까?”
송화가 제 어린 얼굴을 가리켰다. 그에 설휘가 할 말을 일었다.
“제 명운. 그리고 운수. 이것저것 다 따져보아도, 저는 그 날 주변으로 명을 달리했을 겁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이었지요. 창고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강시들의 손에 죽고, 그걸 피해서 달아났다면, 본교의 중요한 병기를 관리 못한 책임을 물어 죽는…… 그런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거기서 대장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제 점괘에 나오지 않은 사람. 운명. 그러니 제가 따를 수밖에요. 사령대장님. 실은…….”
송화가 잠시 말을 끊고, 소리를 낮춰서이었다.
“사령대에 온 이후로, 제 점괘는 더 이상 제 죽음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모두 대장님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분. 본래의 미래를 비틀 수 있는 분. 그러니 따를 수밖에요. 제가 살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황당무계한 운명론에 설휘는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웃지는 못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이의 말처럼 대비되는 것만 같아서.
“네 말대로라면, 이번 임무는 어찌 될 것 같으냐? 그것도 점괘로 읽을 수 있겠느냐?”
그래서 설휘는 물었다.
왠지 자신이 행하는 미래도 알 것만 같아서.
“예. 실은 이미 쳐보았습니다. 헌데…….”
송화가 가늘게 눈을 뜨며 조심스레 되물었다.
“대장께서는 마태룡, 칠사자의 하나를 그저 구출할 뿐이 아니라, 아예 수하로 두고 싶으신 것이지요?”
“……뭐?!”
그 말에, 이번에야말로 설휘는 놀라고 말았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완벽히 읽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