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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39화 (140/379)

139화. 탈출 (2)

뭉게뭉게.

돌풍이 한바탕 지나간 일대는 뿌연 흙먼지가 가득했다.

그리고 먼지가 내려앉았을 때, 돌풍의 진원지에는 두 팔을 교차한 채 서 있는 노인이 있었다.

화산파의 구온진인이었다.

“쿨럭!”

“구온진인!”

“괜찮으십니까?”

그가 한 모금 피를 내뱉자, 항렬상 같은 급의 화산파 장로들이 그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척 보기에도 구온진인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고, 특히 입가로 흐르는 선혈은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괜찮소. 그보다…….”

커억. 퉤!

그는 피를 뱉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다 함께 처리합시다. 저기 뒤에 모여 있는 놈들이 뭔가 일을 꾸미는 듯하니.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장차 우리 화산파에 큰 후환이 될 것이오.”

다들 구온진인의 말에 동의했다.

빙공과 화공을 동시에 쓰는 초고수.

경천동지할 마공의 위력까지 갖춘 이를, 여기서 살려 보낼 생각은 결코 없었다.

“시간은?”

한편 노인들이 침중한 살기를 뿜어내는 사이, 설휘는 시선을 앞에 둔 채 수하들에게 물었다.

“…….”

기력 때문인지 송화가 읊조리듯이 답했고, 그 옆에 있던 용진이 그것을 대신 전달해 주었다.

“거의 다 되어간답니다.”

“좋아. 시간이 임박하면 숫자 열을 세거라. 나는 정확히 하나를 남겨 놓고 들어가겠다.”

설휘는 여전히 싸울 생각이었다.

여차하면 적당히 싸우고 몸을 피하는 전략을 세울 법도 했지만, 설휘는 그런 여지를 두지 않았다.

늘 그랬다.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흐를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최악을 가정하면, 그보다 더 최악이 항상 나타나곤 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퇴각 도중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에서 이 노인들과 다시 맞닥뜨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단번에 끝내버리겠다.’

설휘는 다시 손등에 상처를 냈다.

피를 사용한 특수 기술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가자!”

“쳐라!”

그사이 화산파는 나름 작전을 짠 듯, 진형을 짜서 설휘의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우루루루!

아마도 합공을 하려는 것이리라.

치잉. 트드득.

가장 전면에 있는 노인이 설휘의 틈을 노리며 칼날 같은 눈빛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의 좌우에 바로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두 사람이 서자마자.

“하압!”

“합!”

“으얏!”

노인들이 동시에 설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설휘는 즉각 특수 기술을 발동시켰다.

시간이 느려지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눈앞까지 와 있는 두 개의 검을 보았다.

‘남은 하나가…….’

쉬이이이---

검기를 쏘아낸 것인가.

극도로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한 가닥의 예기가 빠른 속도로 쏘아져오고 있었다.

스윽.

설휘는 우선 자세를 숙이며 검기를 피해냈고, 이어 자신 앞까지 다가온 노인 쪽으로 붙었다.

콰악!

그리고 하늘을 향해 검을 격하게 찔렀다.

퓨욱!

이번엔 실패하지 않았다. 자신 쪽으로 움직이는 방향을 읽었기에, 노인의 급소로 정확히 칼날이 빨려 들어갔다.

“크악!”

창졸간이었다. 시간의 결박이 풀리자마자, 노인 하나가 비명과 함께 절명했고.

“허!”

설휘를 노렸던 또 다른 노인이 허공을 찔렀다.

그는 뒤늦게 필사적으로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화온마공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설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재차 특수 기술을 펼쳐냈다.

[수라폭열공을 사용합니다.]

콰콰콰콰아앙!

폭발이 몇 번 일어나기도 전에, 노인은 이미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화산파의 장로 둘이 한순간에 사망해버렸다.

하지만, 그 희생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하압!”

구온진인이 설휘의 빈틈을 찾아냈다. 나름 회심의 일격. 각기 다른 크기와 방향의 검기 다발들이 쏟아졌다.

“흡!”

타악!

설휘가 회피하기 위해 무리해서 도약하자.

“걸렸다! 이노오옴!”

애초에 이걸 노렸다는 듯이, 맹렬하게 기광을 쏟아냈다.

검기를 뛰어넘은 일광(一光).

강기까지는 아니었지만, 그건 분명 검기를 아득히 뛰어넘은 기운이었다.

구온진인은 당연히 이번 일격으로 상대를 죽였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절세풍검을 사용합니다.]

쿠와아아아아앙-!

분명히 몸을 관통했음에도, 그는 살아있었다.

동시에 갑작스레 생성된 폭풍.

눈으로 볼 수 없는 기의 바람이 전방위로 쏟아지자, 구온진인은 속수무책으로 두드려 맞을 수밖에 없었다.

“으악!”

“악!”

도처에 있던 일대제자는 물론이고, 이대제자들까지 남김없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어마어마하게 광범위한 공격이 휩쓸고 지나가자, 그 일대에는 누구도 방비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아차!’

한편, 절세풍검으로 구온진인을 끝내버리려던 설휘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범위 공격의 단점.

적아를 가릴 수 없다는 것.

이 정도로 광범위한 공격이라면, 자신의 수하들까지 폭풍에 휘말리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그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어떻게……?’

조금 전 터진 기의 폭풍은, 설휘의 수하들에게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폭풍도 사람을 봐가면서 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태룡은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 의식을 차린 후로, 그는 전투 상황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령대는 분명, 고작해야 은영단의 일개 부대일 뿐일 텐데…….’

사령대장이라 불리는 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태룡 본인쯤 되어야 상대할 수 있는 화산파의 고수들.

그들의 합공을 간단히 파훼시켜버리고, 일격을 펼칠 때는 초월적인 힘을 내뿜었다.

특히 마지막에 그가 했던 펼친 무위는, 칠사자 서열 1위라는 구양륜도 펼쳐내지 못할 위력적인 기예였다.

상대의 초검기를 흘려내고, 더불어 수많은 검풍을 광범위하게 양산해 내는 무공은 거의 신(神)의 경지라 느껴질 정도였다.

“케헴, 저의 사부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경악하는 마태룡 옆으로 슬쩍 다가온 음무기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는 기분이 좋은지 코끝을 매만지고 있었다.

“자네가 사령대장의 제자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본래는 어떤 장로님의 수제자였으나, 그건 오래전 추억의 일부. 지금은 저분의 수제자이지요.”

“……?”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저에게도 아주 특수한 능력이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따로 한번 견식을 시켜드릴…….”

음무기가 여유롭게 말을 잇던 그때.

“…….”

“대장! 열을 세겠습니다!”

송화의 안간힘을 다한 속삭임을 듣고, 용진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 조장들은 일제히 긴장한 시선으로 전투 중인 설휘 쪽을 바라보았다.

“크윽! 어딜 가려 하느냐, 이놈!”

“……!”

용진의 말에 잠깐 눈을 돌린 것이 실수였을까.

구온진인이 지척까지 다가와 초식을 펼쳐냈다.

쉭! 쉭! 쉬각!

“윽!”

작정하고 진기를 끌어올렸는지, 날아드는 검격 하나하나가 전부 살초였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라붙어 공격을 쏟아내니, 맞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덟!”

멀리서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설휘의 눈이 빛났다.

휘리릭. 팍!

손 안에서 검이 빙글 돌았다.

예상 못 한 끈질김에 이제껏 뒤로 밀려나긴 했지만, 수세 속에서도 나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라폭열공을 사용합니다.]

콰콰콰콰쾅!

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펼쳤던 탓일까.

구온진인은 폭발의 범위를 예상했는지 곧장 횡으로 이동하여 피해냈고. 상대가 검을 회수하는 틈에 빠르게 다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건 설휘 역시 예상한 바였다.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또 한 번의 시간 결박.

이번엔 공격이 아닌 후퇴를 위해 사용했다.

설휘는 진법을 펼친 원 안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멀어지는 구온진인.

이대로라면 충분히 당도할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있던 설휘의 발이 주춤거렸다.

‘……?!’

용진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이 뭔가 낌새를 흘리고 만 것일까.

구온진인이 뻗어낸 검에서 눈부신 검광이 일었다.

결박된 시간.

느릿하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검기 다발이 와르르르 쏟아졌다.

그건 자신이 달려가는 동선과 그대로 겹쳐지고 있었다. 설휘가 퇴각할 것을 눈치채고, 구온진인이 선수를 친 것이다.

설휘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멈추었다.

휘이이익!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연달아 몇 번을 사용한 시간 결박은 생각보다 빠르게 풀렸다.

“어딜 가려고 하느냐!”

타닥!

전력으로 신법을 펼친 구온진인이, 설휘의 앞을 막아섰다.

어떻게든 이놈만큼은 잡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다섯! 대장! 빨리요!”

용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위기였다.

공간이동까지는 이제 단 몇 호흡밖에 안 남은 상황. 여기서 화산파의 장로에게 길을 막힌 것이다.

그런데.

“이봐.”

설휘는 전혀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순간을 즐기는 듯했다.

“내가 이런 최악의 순간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아나?”

“뭐?”

“이런 것에 대비도 안 했겠냐는 말이지.”

팟!

대답과 함께, 조장들이 아닌 구온진인을 향해 달려드는 설휘.

‘설마, 동귀어진?!’

구온진인의 뒷머리가 쭈뼛 솟았다.

과연 악랄한 마교도 다운 수법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죽어!”

그 역시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이놈을 끝장낼 생각이었으니까.

사력을 다해 화산의 검을 쏘아냈고, 상대는 거의 무방비로 그 공격에 맞았다.

‘잡았다! ……이?!’

그렇게 그는 필살을 확신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월하비행을 사용합니다.]

훅!

상대가 사라졌다.

신법으로 갑자기 빨라지거나, 어떤 계기를 통해 이동한 게 아닌.

말 그대로 완벽하게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뭔……?”

그렇게 당황한 그가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리자.

“잘 있어라.”

아슬아슬한 시간에 원 진으로 들어선 설휘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이노오오옴!”

울컥!

구온진인은 진원진기를 끌어내어 초검기를 날렸다.

쐐애애액!

그 기운은 설휘와 그의 수하들에게로 쏘아졌지만.

팟! 콰지지직!

허공을 가르고, 애꿎은 바닥만 부수고 말았다.

상대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 * *

“와.”

“어휴.”

시야가 갑자기 바뀌었다.

텁텁하던 공기가 갑자기 산등성이의 차가운 것으로 바뀌자, 몇몇이 신음을 내뱉었다.

아슬아슬했다.

마지막에 쏘아진 검기가 자칫 잘못하면 원 안으로 들어올 뻔한 것이다.

“정말 이런 게 가능하다니…….”

공간이동을 처음 겪어본 사령대 조장들은,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이건 그간의 상식을 부수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 여럿이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다니.

세상에, 이런 진법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너, 정말 천재구나.”

요림이 진심으로 놀란 듯 말했고, 송화는 배시시 웃으며 좋아했다.

“제가 가능하다고 말…… .”

꼬마는 하던 말을 채 잇지 못하고 푹 쓰러졌다.

이 정도로 심력을 소비한 적이 없었던 탓일까.

“호흡이 불안정해.”

급히 송화의 상태를 살핀 소령이 말했다. 이에 요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장.”

적송이 설휘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자꾸나.”

설휘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리고 마태룡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좀 어떠십니까?”

“……대체 너희들은 누구냐.”

마태룡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로서도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신교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그도 이런 공간이동 같은 술법은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으니.

“은영단이라고 했을 텐데요.”

“은영단이 이리 강하다고? 그걸 믿으란 말인가.”

설휘의 말에도 그는 콧방귀만 뀌었다.

“믿든 안 믿든 그건 당신 자유입니다. 우린 명을 받고 움직였으니.”

“명을 받아? 누구에게?”

“교주님의 사제자, 곤마 님이십니다. 정확한 내용은 당신이 실종되었으니 조사하라는 말씀이었지요.”

“…….”

“어찌어찌 구출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당신 같은 고수가 어떻게 화산파의 세력에게 납치된 것인지?”

“…….”

예의를 차린 질문에도 마태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껏 목숨을 걸고 구출해 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쪽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거야 사실 중요하지 않으니 다른 걸 묻겠습니다.”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적지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몸이, ‘아, 구출되었구나.’하고 바로 입을 연다면 그게 더 이상하긴 했다.

그러니 일단 그의 의표를 찌르기로 했다.

“당신은 왜 주군인 사제자 곤마 님이 아닌, 이제자 마후 님께 도움을 요청한 겁니까?”

“……!”

마태룡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도 그럴 게, 이건 AI가 전생에서 말했던 정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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