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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40화 (141/379)

140화. 탈출 (3)

잠시 침묵이 일었다.

마태룡은 눈에 쌍심지를 켠 채 노려보고 있었고, 설휘는 설휘대로 가만히 마태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답변은 쉽지 않다.

이쪽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는데, 어설프게 거짓말로 답했다가 그조차 간파당하면 그때는 더욱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

“…….”

말 한마디 없는, 그런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마태룡은 칠사자 중 하나고, 설휘는 칠사자 중 하나를 꺾은 이다.

그러니 지금의 침묵이 어지간한 칼싸움보다 더 긴박하다는 건, 그의 수하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때문에 장내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에이…… 이번엔 사부님이 잘. 못. 아셨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칠사자가 어떻게 마후에게 도움을 청합니까?”

물론 어딜 가나 상식 밖의 놈이 있기 마련.

언제나처럼 분위기를 파악 못 한 음무기가, 이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지는 신경전에 재를 뿌렸다.

“…….”

“…….”

그럼에도 두 사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만, 마태룡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걸 보며, 설휘는 대충 그의 심사를 예상할 수 있었다.

‘머리가 복잡하겠지.’

마태룡은 질문을 받은 후,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정을 하려면, 설휘가 물은 직후 반박했어야 했다.

하지만 마태룡은 시기를 놓쳤다.

아마 어디까지 아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나온 것일 터였다.

결과적으로 이 정도로 침묵이 이어진 이상, 거짓말을 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억지로 발뺌할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가 이후에 문제가 벌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들이 퇴각하는 중에 이제자 마후의 병력이 몰려와 화산파 놈들을 덮치는 장면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신뢰를 잃게 될 터.

“……어떻게 알았나?”

그 짐작은 맞았다.

마태룡은 곧 잔뜩 피곤한 얼굴로 인정 아닌 인정을 했으니까.

“왜 그랬는지를 먼저 알려주시오. 듣고 나서 말해 주겠습니다.”

설휘는 여기서 더 밀어붙였다.

어쩌다 보니 칼자루를 쥐게 된 셈.

지금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닌, 마태룡의 얘기를 들을 때였다.

“후우.”

결국 마태룡이 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었다.

“난 넷째 제자께서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랐네.”

“……위험한 선택?”

모두의 시선이 마태룡에게로 향했고, 그는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냈다.

“그래. 여기, 아니 내가 갇혀 있던 곳에는 우리 쪽 사람들이 이길 수 없는 고수가 있었으니까.”

그 말에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종명 말씀이시군요.”

“……?!”

마태룡이 또 한 번 당황했다. 아마 그는 등골이 서늘했으리라.

“대체 넌 누구냐? 어떻게 이리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거지?”

“은영단이라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만.”

설휘는 목소리에 힘을 주고서 조금 더 캐물었다.

“이상하군요. 말씀대로라면 사제자 곤마 님이 아닌 이제자 마후 님이 당신을 반드시 구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건데, 그건 어떻게?”

“그런 확신은 없었다. 애초에 나는 나를 구해달라고 한 게 아니라, 그저 화산파 비밀분타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려줬을 뿐이지.”

그 말에 설휘가 아닌 소령이 흐음, 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일부러 잡힌 거란 말입니까? 이제자 마후의 전력을 깎아 먹기 위해서?”

“그게 무슨 말이야?”

이야기가 갑자기 비약되자 시선이 모두 소령에게로 쏠렸다.

소령은 그 시선을 받으며 하나하나 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마후 님에게 이곳 화산파의 비밀분타 이야기를 했다면…… 일제자를 넘고 싶어서 공적에 목마른 그는 곧장 쳐들어올 겁니다. 거기에 당신이 화산파에 몇 마디를 더 해줬다면…… 단단히 준비를 했을 테고요.”

마후의 세력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해도, 급습에 대비해 매복한 화산파와 충돌하게 되면 손해를 볼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마후의 전력이 깎이게 되면, 이제껏 이제자가 거슬려도 건드리지 않았던 일제자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게 된다.

사제자 곤마의 전력을 보존하면서, 일제자와 이제자를 서로 상잔시킬 수 있는 계획이었다.

여기에 화산파의 존재 여부를 알리는 것은 덤이고.

“그래서입니까? 곤마 님께 아무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건. 어차피 가만히 계셔도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니까.”

“너희들은 대체……?”

소령이 차곡차곡 짚어낸 말에, 마태룡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목숨을 걸고 나름 고심해서 짠 판이, 앉은 자리에서 다 까발려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자가 그걸 모를까 싶긴 해. 그는 머리가 비상하니까.”

적송이 말하자 이번엔 요림과 용진이 대답했다.

“내가 이제자라면 거기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은데. 화산파가 주는 무게감이 워낙 강해서 말이야.”

“내 생각도 같아. 이제자는 어떻게 하면 일제자의 힘을 빼놓을까에 혈안이 되었을 듯해. 아 참, 대장. 제 병기는요?”

그 말에 설휘가 병기를 건네자, 용진은 짧게 ‘감사.’하고 받아들었다.

다들 한마디씩 하고서 음무기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그도 뭔가 한마디 해야 할 듯싶어 입술을 오므렸다. 그러자.

“넌 말하지 마.”

“조용히.”

“분위기 안 보여?”

적송, 요림, 소령이 경고했다.

하지만 음무기는 기어이.

“삼제자는 여기에 왜 개입하지 않는 겁니까?”

산통 깨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 * *

설휘와 일행들은 잠깐 동안 휴식했다.

혹시나 몰라 적송과 요림, 용진은 전후방 경계를 나갔고, 소령은 송화의 상태를 살폈다.

그사이 음무기는 이곳에 계속 있을지도 모르기에 잎나무와 검불, 그리고 나뭇가지들을 가져왔다.

간이 침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설휘는 몇십 걸음 떨어진 숲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늘 그랬듯, 나무 둥치에 앉아 나뭇잎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설휘의 머릿속은 그런 모습과는 달리, 조금 전 치열했던 싸움을 떠올리고 있었다.

‘열 번 중 서너 번은 맞았다.’

화산파 장로들의 움직임 예상.

왼쪽일지 오른쪽일지, 뒤쪽일지 앞쪽일지.

그것도 아니면 도약하는지를 예상하는 것.

근래 들어 싸움을 하고 나면, 상대의 움직임이 머릿속을 계속해 맴돌았다.

‘좀 더 많이 예측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실 서너 번이 맞았다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곱 번. 아니 적어도 열 번 중 다섯 번은 움직임을 맞춰야, 제대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을 터.

그리된다면 싸움의 판도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과거의 AI가 보였던 움직임처럼.

“저기…….”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던 설휘 옆으로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다가왔다.

마태룡이었다.

그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눈에 띄는 외상도 그렇지만, 상당한 내상을 입 탓에 척 보기에도 지쳐 보였다.

그간 말 못 할 모진 고문들을 겪었을 터.

그럼에도 이렇게 스스로 걸을 정도로 회복된 걸 보면, 확실히 초마에 오른 고수다웠다.

“아직 난 대답을 듣지 못했소.”

마태룡이 한쪽 나무 둥치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에게 묻기만 하고 대답을 해주지 않은 게 떠올랐다.

그래서 넌지시 말했다.

“미래를 아는 어떤 녀석이 말해줬습니다.”

“뭐, 미래를 아는…… 녀석? 그가 누구요?”

“말씀드려도 모를 겁니다. 저도 그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니까요.”

대답이 영 시원찮아서일까.

설휘는 자신을 쏘아보는 마태룡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사실인 걸 어찌하겠는가.

“오해 마십시오. 정말로 난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그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말을 믿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 난, 이 상황을 혼자 헤쳐나갈 능력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노기를 띤 마태룡이 소리쳤다.

하지만 설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왠지 모르게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마침, 당신께 드릴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마태룡이 흠칫했다.

갑자기 선물이라니?

“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가능할 듯합니다.”

상대는 계속 이해하지 못할 말을 했다.

그래서인지 대체 뭘 말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네 번째 슬롯에 있는 만년순천단을 사용합니다.]

사아아아-

한순간 자신의 몸에서 청명한 빛이 새어나왔고, 이내 잦아들었다.

분노가 서려 있던 마태룡의 표정이 단숨에 싹 바뀌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요?”

그는 충격과 놀라움에 빠져 있었다.

정말 놀라운, 그런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제가 가진 능력 중 하나입니다. 여기 이 영약으로 운기조식 없이 즉시 사용해 회복할 수 있지요.”

조금 전.

설휘는 황금 벨트에 있는 영약을 사용했다.

[만년순천단을 누구에게 사용하시겠습니까?]

▶ 본인

▷ 마태룡

그리고 그것을 마태룡에게 사용했다.

체력과 내공을 무려 5,000만이나 회복해주는 효과를 보였다.

“아…….”

그로 인해 마태룡은 이전의 몸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단전이 일부 파괴될 정도로 내공이 소실.

몇 달간 요양을 해야 할 정도의 상태에서, 거의 완벽한 몸 상태로 탈바꿈한 것이다.

“사실, 이건 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대에게 더 필요합니다. 앞으로 제 힘보다 당신의 힘이 더 필요한 상황이 올 테니까요.”

“……아, 정말이지.”

“여전히 못 미더워 보일지 모르지만, 당신을 도우러 온 것, 이거 하나만은 믿어주시겠습니까?”

설휘의 말에 마태룡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온몸에 힘이 용솟음치는 것만으로도, 이미 화답이 된 듯했다.

“와, 그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송화는 한 시진 정도 지난 후 정신을 차렸다.

잠깐의 휴식이 도움이 됐는지, 몸 상태가 평상시처럼 활기차 보였다.

“아주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지. 뛰어난 두뇌는 덤이고.”

음무기의 손이 자신의 손처럼 작아지자, 송화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펴보고 만지기를 몇 차례.

그는 무릇 어린 소년처럼 속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저, 저도 ‘절세무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아서라. 아직 네 실력으로는 배울 수 없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고.”

“아…….”

그 말에 어깨가 축 처진 송화가 우물쭈물 댔고.

“하. 지. 만. 내가 누구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사람이 아니냐?”

“와! 역시!”

다시금 송화가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쯧쯧.”

한편, 소령은 뒤쪽에서 팔짱을 낀 채 혀를 차고 있었다.

뭐라고 끼어들자니 소년의 동심을 파괴하는 것 같고, 가만히 들어주자니 어이가 없어 그런 감정을 내비친 것이다.

“소령.”

그러던 그때, 설휘가 그녀를 불렀고.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얘기 좀 하자꾸나.”

설휘는 얕게 손짓을 하고서 뒤돌아섰다.

소령은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고는 그 뒤를 따랐다.

나무 밑동 몇 개와 주변을 뒤덮은 나무들.

거기서 소령이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네 출신 말이다. 혹시 물어봐도 되겠느냐?”

“그건 왜…….”

소령이 약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에 설휘는 담담하게 말했다.

“왠지 너에게도 송화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서.”

설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창에 적힌 특수 능력이 예지력이었다는 걸.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송화를 만나보니 알 것 같았다.

그녀 역시 그쪽과 같지 않을까, 하는 걸.

“뭐, 송화와 비슷하다고만 해두죠.”

조금 추상적이었지만,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신이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럼 너도 천문(天文)을 볼 수 있느냐?”

“천문이라면…….”

“송화처럼 말이야. 물론 송화는 점괘를 보지만, 천문도 읽을 줄 알겠지. 너도 그런가 해서.”

“그것 역시 비슷하다고 해두겠습니다.”

또다시 추상적인 대답.

설휘는 그녀의 대답에 뭔가 사연이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잠시 있던 중에.

“그런데, 묻고자 했던 게 이건가요?”

“아니.”

소령의 물음에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고, 한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번 임무 말이다.”

“……예, 대장.”

“모두 다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갑작스레 눈이 커진 소령.

“솔직히 말해다오.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으냐.”

설휘의 거듭된 물음에도 그녀는 침묵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 침묵을 할 수는 없었는지,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어 설휘의 시선을 느꼈는지, 다시 침묵하던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불행한 일이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게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

“고맙구나.”

그렇게 소령이 올라간 뒤, 설휘는 잠깐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뒤따라 수하들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마태룡은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고, 소령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다른 쪽 경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음무기와 송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에 대해서 좀 아나?”

“예? 여자요? 저는 아직 잘…….”

“역시 어리군. 그쪽은 이 형님의 전문분야다. 내 시간이 되면 확실히 알려줄 테니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도록.”

“가, 감사합니다.”

껄껄 웃는 음무기.

고개를 연신 꾸벅이는 송화.

그 모습을 보는 설휘의 표정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여기서 본교로 퇴각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경로를 알려줘.”

소령을 부르기 전에 시도했던 시뮬레이션.

이제까지 쓰지 않았던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설휘는 당연하게도 최적의 길, 그리고 안전한 길을 알려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았다.

그런데 알려준 동선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상한 게 하나 붙어버렸다.

선택하시면 상세히 알려드립니다.

▶ 1번 길

(조건) 송화는 죽습니다.

▷ 2번 길

(조건) 송화는 죽습니다.

▷ 3번 길

(조건) 송화는 죽습니다.

모든 선택에 걸려있는 조건.

그건 송화의 죽음이었다.

전생에서 AI가 왜 송화를 언급하지 않았던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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