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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42화 (143/379)

142화. 금선탈각(金蝉脱殻) (2)

“당신은……?”

“뭐, 뭐야. 어떻게 쫓아온 거지?”

수하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눈앞의 인물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곤마의 주변 호위뿐만 아니라, 필요시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자라는 것도.

“듣지 못했나? 어서 넘겨라. 시간 끌지 말고.”

복면인 철군성의 강압적인 목소리에 설휘는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으…….”

송화는 겁을 먹고 있었다.

마치 철군성이 등장했을 때부터 자신이 표적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마태룡의 표정은…….

꽤 복잡해 보였다.

상대가 사군성 중 하나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흥.”

설휘가 묻자, 철군성은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사령대장 따위에게 본인이 직접 해명해야 하는 모양새가 맘에 들지 않은 것이리라.

“현재 상황을 짧게 알려주마. 이제자 마후 님께서 이곳에 네 부대를 투입하셨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혈사단이 최선봉에 섰고, 혈황기(血皇旗)가 보조를 맡고 있지. 여기에 팔왕철마웅(八王鐵魔雄)과 기기아대까지 왔다. 이 정도면 이제자께서 이 사건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이해했을 것이다.”

수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복면인의 입에서 언급된 부대들 때문이다.

기기아대는 해괴한 비술과 주술을 무기로 삼는 술법가들이다.

그리고 팔왕철마웅은 수많은 전투 경험을 가진 여덟 명의 초인들.

여기에 혈황기는 2선 부대로 놓기도 힘든 이들이다. 이들은 보조하며 지원 부대 역할을 맡는데, 혈사단은 마후의 1선을 맡은 부대다.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최절정의 고수들.

‘마후의 전력 중, 최소 3할 이상이다.’

이 정도면 싸움의 결과는 뻔해 보였다.

화산파는 분명 작심하고 전투 의지를 불태우겠지만, 결국엔 퇴각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테니까.

“전방위로 화산파를 압박하는 가운데, 기기아대는 분명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그들은 곤마 님의 세력에 술법 전력이 더해지는 것을 허용치 않을 터. 머지않아 너희들의 위치를 찾아 죽이려 들 것이다.”

“고작 어린아이 한 명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고작 어린아이? 단신으로 공간이동의 술법을 펼칠 수 있는 술법사는 본교에서도 한 손에 꼽는다. 이 녀석의 전략적 가치를 모르고 하는 말이냐?”

“…….”

수하들은 그제야 뒤늦게 송화의 존재를 인식했다.

당장 마태룡을 구해오는 것에 바빠 잊고 있었는데, 원래대로라면 사령대는 화산파의 비밀지부 안에서 죽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런 사지를 거의 손실 없이 빠져나왔다.

이를 도주가 아닌 기습에 활용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일이 될 터였다.

‘단신으로 중요 인물 혹은 강력한 부대를 일시에 이동시키는 능력.’

송화의 존재는 전황을 삽시간에 뒤집을 수 있는 패와 같았다.

아군에게는 극히 든든하고, 적에게는 지극히 위협적인 패.

“그러니 순순히 그 아이를 넘겨라. 그러면 내가 저들과 협의해서, 너희들만은 안전하게 본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지.”

“…….”

“…….”

복면인의 권고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제자 마후가 이 사건에 얼마나 경각심을 느끼고 개입한 것인지, 새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송화를 여기서 넘긴다면…….’

분명 저 아이는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받으신 명령이, 정확히 어찌 되십니까?”

그런 상황에서 설휘가 다시금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곤마 님께서 귀하에게 송화를 마후의 세력에게 넘겨라, 그렇게 직접 말씀하셨냐는 말입니다.”

“너…….”

복면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대충 이쯤 설명했으면 넘겨야 함에도, 상대가 순순히 받아들일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이봐, 설휘. 내가 무슨 명령을 받았건, 그건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처억.

복면인이 설휘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서자, 분위기가 단번에 무거워졌다.

지켜보던 수하들이 한 발짝 물러날 정도의 위압감이 퍼져 나온 것이다.

“아뇨. 제가 상관해야 할 문제입니다.”

“뭐?”

그럼에도 설휘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별 볼 일 없어 보일 수 있어도, 저는 이들의 책임자입니다. 송화는 분명히 제 수하고요. 본인이 위태롭다 해서 수하를 내버리고 안정을 취하는 것이, 과연 한 무리의 대장으로서 할 일입니까?

“……정녕, 모두 다 여기서 죽고 싶은가 보구나.”

으득.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이를 가는 듯한 소리를 수하들은 들을 수 있었다.

“네놈의 알량한 무위 정도로, 기기아대를 막아설 수 있다고 보느냐? 그렇게 자신이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정 저희가 걱정되신다면…….”

설휘는 당당히 시선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를 도우시면 되지 않습니까.”

“뭐라? 내가 너희를 도와?”

“사제자 곤마 님께서, 그리 명하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만은, 사령대장 설휘만은 반드시 살려서 데려오라고.”

“……!”

철군성의 눈이 커졌다.

“무슨 말이야?”

“대장이 혼자…….”

“그건 어떻게 아신 거지?”

수하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곤마가 철군성에게 내린 명령은, 다른 이들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설휘 역시 제3자의 눈으로 ‘대화’를 듣지 못했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철군성은 동요했지만,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그래? 네 배짱의 근거가 그것이었던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곤마께서는 널 무사히 데려오라고 하셨지, 손끝 하나 건들지 말라고 하지는 않으셨으니까.”

차악!

그는 검을 뽑아 들고서 거침없이 송화에게 다가섰다.

타닥.

설휘가 다시 앞을 막자.

“비켜라. 끝까지 방해하겠다면 팔 하나를 날려서라도 치워버리겠다.”

화악!

무시무시한 살기가 폭사되었다.

“큽!”

설휘는 주춤했지만,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철군성에게서 살기가 피어나오자.

“거, 그쯤 하시지요. 보기 좀 그렇습니다.”

뒤쪽에서 누군가 철군성의 살기를 중화시켰다.

마태룡이었다.

이제껏 물러서 있던 그가 끼어든 것이다.

“이거 참.”

철군성은 묘한 눈빛으로 변했다.

목숨을 걸고 대계를 성공시킨 그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걸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 자신의 행사를 방해하는 무례한 행동에 화를 내야 하나 싶은 것이었다.

“칠사자의 마태룡. 포로로 잡혔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멀쩡하군.”

은근히 가시 섞인 물음에, 마태룡은 바로 대답했다.

“단전이 깨졌었소. 허나, 사령대장에게 도움을 받았지요.”

“그래? 그런 명약이 있었던가?”

철군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소. 한 식경 만에 깨진 단전을 회복시키는 물건이었지요.”

“흐음…….”

철군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태룡이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성미임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그라면 화산파에 붙잡혀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을 테고, 그런 과정에서 단전이 부서지는 일도 충분히 겪을 만했다.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령대장 설휘, 이자는 꽤 수완이 좋은 자요.”

이어진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본인은 이미 설휘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반드시 여기에 개입하겠다는 의도인 것이었다.

“그래서. 기어코 지금 내 행사를 방해해야겠다? 많이 건방져졌군. 칠사자가 내가 가는 길도 막아서고 말이야.”

자박.

철군성이 마태룡의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의 위치에서 두 남자의 시선이 잠깐 교차했고.

“막아선 게 아니라 제지한 겁니다, 철군성 님. 충성도 과도하면 독이 되는 법이니까.”

“뭐?”

철군성이란 말에 수하들의 눈빛이 변했다.

몇몇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 녀석이…….”

“곤마께서 관심을 가진 젊은이의 의지를, 굳이 여기서 꺾을 필요가 있소? 그가 이번 일로 낙심해서 쓸모없어지게 되면, 그래서 곤마께서 상심하신다면, 그때는 당신이 책임질 거요?”

“…….”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책임이라는 말에 상대가 멈칫하자, 마태룡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러자 두 남자의 얼굴이 거의 닿을 듯한 거리에 있게 되었고, 마태룡이 입을 열었다.

“시발, 네가 언제부터 나한테 반말했냐?”

“……?!”

“……!”

“……!”

순간, 두 남자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갑작스러운 으르렁거림에, 철군성도 당황한 듯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마태룡의 입지가 이 정도였나.’

설휘 역시 진심으로 놀랐다.

나름 큰 도움이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저 철군성 앞에서도 기가 죽기는커녕, 당당히 자세를 취하지 않는가.

하긴, 생각해 보면 무력 수준도 그다지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마태룡은 초마를 넘어 극마에 도전하는 이고.

철군성 역시 아직은 극마에 오르지 못했으니까.

“……그래, 알겠다.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 어디 원하는 대로 해봐라.”

철군성은 한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불쾌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다만, 이 순간부터 내게는 도움을 바라지 마라. 화를 자초한 건 너희들이니.”

타닥.

그러고는 이내, 삽시간에 몸을 감췄다.

“후…….”

“푸아아아…….”

철군성이 사라지자, 수하들의 가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초마를 넘은 고수의 위용이란, 그토록 대단했던 것이다.

“우리도 이동하자.”

설휘는 그런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짧게 말했다.

* * *

지형은 꽤나 험준했다.

크고 작은 기암괴석이 즐비했고, 엄폐할 수 있는 바위들이 많았다.

험한 절벽을 넘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설휘와 수하들은 지도를 참조해서, 미리 봐둔 곳으로 향해 몸을 쉬었다.

“아까는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다른 수하들이 주변을 수색하러 간 사이, 설휘는 홀로 앉아 있는 마태룡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두 시진 전.

그가 철군성을 막지 않았다면, 정말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글쎄다. 일단 편은 들어 주었다만, 난 바보 같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마태룡의 표정은 냉담했다.

자신이 내린 결단이, 여전히 맘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기기아대가 원하는 건 딱 하나다. 저 꼬마 놈. 물론 너에게 힘든 결정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피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제자와 사제자님 사이에 갈등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

설휘는 고개만 숙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마태룡은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던진 계교를, 자칫하면 설휘의 결정 때문에 다 망칠 수도 있었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이냐? 여기까지 관여했으니 나도 좀 알아야겠다만.”

“……본교를 둘러보면, 항시 소속 부대 없이 떠돌아다니는 자들이 있습니다.”

설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마성에 불합격 판정을 받았거나, 합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재지가 떨어지는 이들이지요. 태황각에도 그런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중 몇 명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외부로 나갔다가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유도 모르고 말이지요.”

“혹……?”

“예, 그때 그 대장이 저였습니다. 죽은 수하들의 시신도 수습해 주지 못한, 못난 녀석이지요.”

“…….”

마태룡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설마하니 수하들의 죽음을 품에 안고 사는, 그런 이인 줄은 몰랐으니까.

아니, 애초에 소속 없이 부대를 돌아다녔다는 것도 그의 무위를 보건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일은 너무도 흔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버려지는 자들. 반항이란 것도 힘이 있는 자들이나 한다는 걸, 윗분들은 그렇게 저희에게 가르쳐주었지요.”

“…….”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이제껏 나는 누굴 지켜본 적이 없구나. 어떤 이 한 명 지켜준 적이 없구나.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야만 했던 삶이구나, 하고.”

“이봐…….”

“그런 삶. 이제는 지긋지긋합니다. 살기 위해서 도망가야 하고, 당연히 버려야 하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설휘의 말은 담담했지만, 마태룡은 전혀 다르게 들렸다.

마치 그는 본인에게 할 다짐을 자신에게 말하는 듯했으니까.

“저는 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

마태룡은 잠시 설휘를 보다가, 그저 고개를 내저었다.

저런 눈빛을 가진 자는 말릴 수가 없다. 그걸 잘 아는 마태룡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조용히, 밤은 그렇게 더욱 깊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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