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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43화 (144/379)

143화. 금선탈각(金蝉脱殻) (3)

사박. 사박.

요림과 용진이 정기적으로 숲을 돌았다.

계속해서 주변 수색을 멈추지 않는 그들.

처음에는 화산파의 접근만 경계하면 됐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본교의 부대, 마후의 세력인 기기아대가 접근하는 걸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삐르륵. 쉬익.

소령과 적송이 새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그들 역시 전방위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이곳으로 다가오기 쉬운 특정 길목을 우선적으로 보고 있었다.

“후아.”

송화는 음무기의 등에 업힌 채 꾸벅꾸벅 졸았다. 아무래도 큰 주술을 쓴 게 무리였던 모양이다.

초반에는 목숨의 위협을 느꼈던 탓에 바짝 긴장했지만, 곧 그 나이답게 금방 긴장을 풀고 말았다.

“…….”

그런 모두를 한 번씩 돌아보며, 설휘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스락.

새벽이 깊어 갈 무렵, 요림이 설휘에게 다가왔다.

“대장. 잠시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음.”

설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림은 냉큼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그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방법은 있으신 거지요?”

“…….”

설휘는 대충 이런 물음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사령대원으로 가장 오래 지낸 요림은, 사실상 사령조장들을 이끄는 실질적인 대장이었다.

그런 요림이 묻는다는 건…… 아마도 수하들 모두의 의견을 듣고서 대표로 온 것일 터.

“저는 뭐, 그렇습니다. 대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즐거움의 연속이기도 했고요.”

피식. 말끝에 요림이 웃었다.

“그중에서도 이번 임무는 더 특별했습니다. 처음부터 마태룡 님이 잡혀 있는 곳을 알아채셨고, 압도적인 무위로 적들을 섬멸하셨지요. 저는 대장님을 이제 진심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불가능하다 여겼던 일을 계속해서 이루어내고 계시니까요.”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설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여러 번 죽음의 위기를, 아니 죽음 자체를 겪으면서 죽지 않는 최적의 길을 찾아왔다는 걸.

“적어도 저희의 눈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게 수하들의 눈에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착착 대비해서 훗날까지 넘보는, 엄청난 사람처럼 보였으리라.

“지나친 기대는 실망만 만드는 법이다. 이제까지는 그저 운이었고, 나의 잘못된 이번 판단으로 이게 우리의 마지막이 되면 어찌하려 하느냐?”

“어우, 대장. 너무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요림은 한숨을 푹 내쉬고 설휘를 바라보았다.

“아시잖습니까. 우리 사령대는 본래 은영단에서도 허울뿐인 조직이었습니다. 말이 추적과 조사지, 실제로는 무위가 딸려서 매번 짬 처리만 해왔죠.”

“…….”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귀찮고 성과 없는, 그런 잡다한 일만 하던 그런 놈들. 그러다 상황이 변했잖습니까. 대장이 오고 나서.”

요림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이나 캄캄한 밤하늘과 그 가운데 밝게 빛나는 별을 보다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은영단의 다른 부대를 보고 고개도 들지 못하던 우리였습니다. 그랬던 우리를, 은영단의 다른 부대원들이 우러러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들어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걸 느낍니다.”

“…….”

“우리가 맡는 임무의 무게가, 그리고 상대할 적들이, 심지어 우리들의 무위마저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대장이 죽을 길로 내몬다고 해도 그에 따를 겁니다.”

“요림.”

“왜냐하면, 언제고 우린 죽을 테니까. 그렇기에 어떻게 죽느냐 하는 건 매우 중요한 겁니다. 대장이 명한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이제껏 우리가 봐온 대장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요림은 잠시 말을 끊고, 설휘에게 두 손을 모아 쭈욱 내밀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대장이 하는 일은 우리가 돕겠습니다. 그러니 그 짐을 이제 저희에게 나누어주시지요. 뭐든 개의치 말고 명하십시오.”

“요림…….”

설휘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아무리 마교가 수직적인 조직이라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렇게나 온전히 스스로가 부하이길 자처하는 충성심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껏…….”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뒷말을 그냥 삼키는 설휘였다.

이렇게나 맹목적인 신뢰를 이제껏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삐리릭. 삐릭.

“대장.”

사바박!

여운에 잠겨 있던 차, 적송과 소령이 나타났다.

그들의 굳은 표정을 본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기기아대가 기어코 쫓아온 모양이었다.

“송화. 신호를.”

“옙.”

설휘의 말에 송화가 급히 손을 품에 넣었다.

팟. 파삭.

그는 부적 한 장을 꺼내 들고, 다른 손으로 뭔가를 허공에 쓰기 시작했다.

“홍연진결(洪煙眞訣)의 술수를 빌어 명하노니…….”

설휘는 알 수 없었지만, 이는 꽤나 고위의 술법이었다.

거리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술사들의 눈에는 선명히 보이는 신호의 술수.

솨아아앗.

얼마 후, 송화는 숲에서 수백 개의 반딧불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걸 보았다. 허나 그러기가 무섭게.

“아…….”

슈슈슈슉.

때아닌 그림자가 몰려들었다.

가면을 쓴 채 흑풍의로 온몸을 가린 존재들.

언제 이리 모여든 것인지, 무려 서른에 가까운 숫자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누가 대장인가?”

그중 하나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 * *

벌레소리가 잦아들 때쯤, 좌중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설휘는 내심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다.

기기아대의 등장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령대 역시 명목상 수색과 추적이 전문인 이들이다. 당연히 흔적은 남기지 않았고, 최소 두세 번씩은 덧씌웠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허망할 정도로, 기기아대는 간단하게 따라와 버렸다.

“누가 대장이냐고 물었다.”

희미한 그믐달 아래,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한 인영이 거듭 물었다.

그의 얼굴은 가면으로 덮여 있었는데, 가면엔 뜻을 알 수 없는 붉은 색 글귀가 가득했다.

“나다.”

대장을 찾는 말에, 설휘가 한 발짝 나서며 입을 열었다.

기기아대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리고 앞서 물었던 이가 천천히 걸어왔다.

스윽.

가면을 벗자, 새하얀 피부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기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믐달의 빛 때문인지, 척 보기에도 핏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창백했다.

얼굴과 달리 몸집이 비대한 것이 또한 기묘했고.

“당신이 저희에게 화산파의 정보를 넘긴 분인가요?”

“아니오.”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니지만, 이곳에 있소.”

“……?”

“저분이시오.”

힐끗.

여인의 시선이 마태룡을 향하더니, 곧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

“여러 사람을 대신해서 감사를 전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

끄덕.

마태룡도 짧게 목례를 했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어째 이대로라면 대화로 풀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혹, 기려사대의 아이가 여러분과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까?”

“그건 왜 물으시오?”

“중요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저 아이를 저희에게 넘겨주시지요.”

스윽.

여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사납게 치뜬 그 눈은, 송화를 보며 독사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역시나.’

설휘는 얕게 한숨을 쉬었다.

예의를 갖춘 처음의 말투는 그냥 형식상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그녀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너희가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송화는 이번 작전에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소.”

일의 결말을 알고 있는 설휘는 일단 말을 돌렸다.

“그리고 우리 사령대 소속이오. 당신들은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대원을 내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예, 그러겠습니다.’ 하고 따르는 건가?”

“…….”

“신색을 보아하니 뭔가 있는 모양이군. 이 아이를 죽일 작정이오? 왜?”

설휘는 바로 핵심으로 찌르고 들어갔다. ‘죽일 거냐?’ 라는 말에 여인도, 사령대원들도 모두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보통의 술사라면 저희도 그냥 넘어갔을 겁니다. 저희에게 도움을 줬던 분들이니까요.”

여인이 잠시 고뇌하다가 입을 열었다.

“허나, 저희가 탐지한 바로 이번에 쓰인 술법은 대단한 고위급. 저 아이는 장차 이제자님이 그린 대계에 큰 방해가 될 것입니다.”

“방해라, 재밌는 말이군. 사제자 곤마 님도, 이제자 마후 님도 결국 본교의 인물이시지 않나? 모시는 분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교인을 쳐 죽이는 게 언제부터 당연한 일이 되었지?”

“사람에게는 죄가 없으나, 보물을 가진 사람에게는 화가 있는 법이지요. 오래된 인연도 아니니 저희에게 보내주시지요.”

노골적이었다.

설휘는 이미 하대를 하고 있었고, 상대는 꼬박꼬박 존대는 하고 있지만 반드시 송화를 데리고 가야겠다는 의지가 물씬 느껴졌다.

아니, 죽이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거부한다면?”

“…….”

여인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무미건조한 새하얀 피부의 여인이 그런 얼굴을 하자, 조금 이색적이기까지 했다.

“기어코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드시겠습니까? 저희와 싸우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십니까?”

강하게 나온다.

그런 경고 섞인 목소리에, 설휘는 전투방식으로 시선을 옮겼다.

전투방식 턴제 Lv2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능력치들.

여린 [기기아대 궐장(闕章)]

신체 정상

체력 80만/80만

내공 40만/40만

경지 수중무도 3단계

전투력 알 수 없음

놀라운 건, 흑풍의로 가린 몸에서 또 다른 능력치가 보였다는 점이다.

실혼인 전위(前衛) [8수]

신체 정상

체력 3500만/3500만

내공 2200만/2200만

투여 속성 무한성장, 주도학습, 가속법, 외공술, 축지술, 장신법 등 각종 영적, 물리적 술사 부여.

전투력 2999만

‘실혼인인가.’

설휘는 그의 능력 앞에 잠시 말문을 잃었다.

전투력이 2999만.

이 정도면 거의 초마 아닌가.

뿐만 아니라 투여 속성?

이건 기존에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거기다 다른 실혼인들의 전투력도 엄청났다.

‘제일 낮은 자가…….’

무려 700만이나 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기기아대만 서른.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실혼인을 가지고 있었다.

숫자만 해도 몇 배로 많은데, 여기에 추가될 수많은 영적, 물리적 능력을 가진 실혼인들이라니.

설휘의 눈은 주변을 바쁘게 살폈다.

턴제의 능력이 향상되어서일까.

부가적인 해설이 더해져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기기아대의 실혼인에 대하여]

○ 기기아대는 전문적인 사술 집단입니다. 이들은 특성상 후방에서 아군을 보호하고 적들을 혼란케 합니다. 또한, 아군이 없을 때를 대비해 실혼인을 두고 있습니다.

○ 술법가들이 각각 한 명의 실혼인을 두는 것은,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실혼인을 각종 주술로 보조하여, 보통의 무사보다 더 강인하고 지치지 않는 전위무사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

[등급, 3수에서 10수까지. 그리고 약점]

○ 실혼인의 등급은 최소 3수부터 시작해 최대 10수까지 있습니다. 9수에 이르면 초마의 경지가 되고, 10수는 극마에 달하는 힘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실혼인의 약점은 머리입니다. 머리통을 부수지 않으면 계속 움직일 것입니다. 상대의 신체를 잘라내 본인의 신체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설휘는 그들의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하며 물었다.

“품에 안고 있는 건, 실혼인인가?”

“그렇습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펄럭!

여인이 흑풍의를 펼치자, 그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실혼인 하나가 나왔다.

게에에에…….

온몸에 흰 천을 감은 이들.

우드득. 뚜드드득.

처음에는 작아 보였는데, 몸을 펴자 보통 사람의 체격보다 월등히 컸다.

기본적으로 축골공을 쓸 만큼 강하다는 것. 느껴지는 기세 역시 범상치 않은 상황이다.

처억. 척.

하나, 둘.

스물 아홉 명이나 되는 실혼인들이 걸어 나왔다.

온몸에 휘감긴 붕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기괴한 모습들이 드러나자, 삽시간에 분위기가 변했다.

“크읍.”

한 발 물러서 있던 마태룡이 신음을 흘렸다.

주술사 부대인 기기아대가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주술을 쓰기도 전에 이미 기세 자체가 꺾여버렸다.

‘척 봐도…….’

실혼인 하나하나가 상당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설휘와 자신 외에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

조장들의 표정에는 굳은 빛이 역력했다.

그들도 직감한 것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기존의 실혼인과,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들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이제 저항이 얼마나 덧없는 건지 아시겠습니까?”

여인이 훗, 하고 웃었다.

새빨간 입술을 훔치는 혀가 마치 피라도 묻은 듯 붉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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