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44화 (145/379)

144화. 금선탈각(金蝉脱殻) (4)

슈으으으으.

공기가 일변했다.

몇몇을 제외하면 전투력 천만이 넘는 초절정의 괴수들이 기세를 뿜어냈다.

“으윽…….”

“크…….”

사령대 조장들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나름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지만, 이쪽을 적으로 간주하는 순간 실혼인들이 드러낸 위압감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대장님, 저를 보내주십시오.”

“……?”

보다 못한 송화가 제 발로 걸어 나왔다.

두려운 것인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서린 결의는 단단했다.

“저들을 상대로 승리를 점치기는 힘듭니다. 그저 저 하나면 끝날 일이지 않습니까.”

자그마치 스물아홉의 실혼인.

이들만 해도 감당 못 할 전력인데, 그들을 뒤에서 받치는 주술사들이 서른이나 된다.

반면 이쪽은 설휘와 사령대 조장 넷, 음무기가 전부다.

마태룡은 상관없는 사람이고, 자신은 어린 데다 술력도 태반을 쓴 상태. 전력으로 둘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간 즐거웠습니다. 부디 대장님의 무운을 빌…….”

“송화야.”

투욱.

설휘는 송화의 말을 끊고,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눈길만은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그때 네가 본 점괘는 역천이었느냐, 아니면 순리였느냐.”

“대장, 그때 그건…….”

“네가 본 게 맞다면…… 지금 난 순리를 걷고 있는 거겠지?”

“대장…….”

“내가 판단하고 가는 길이 순리라면, 지금 상황을 이겨내는 것도 순리일 터.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냐.”

툭. 주르륵.

송화의 눈에 맺혔던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이제껏 그를 지켜주겠다고 이렇게나 확연하게 나서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기에.

설휘는 무릎을 굽혀 송화와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이전에 말했던 술법, 지금 해주겠느냐.”

“……네?”

“가속법 말이다.”

“지, 지금요?”

“그래.”

잠깐 망설이던 송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내 송화가 손을 들었고.

휘이잉-

자그마한 손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 아지랑이는 곧 설휘에게 옮겨져, 두 발 주위를 감싸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준비되었습니다. 내력을 일으키면 바로 발동될 겁니다.”

“좋군. 이거 몇 번 더 사용할 수 있느냐?”

설휘가 발치를 툭툭 걷어차보며 물었다.

“네. 술력은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럼 다른 이들에게도 걸어주거라. 너 자신에게도 잊지 말고 걸어야 한다.”

휘이잉-

송화가 끄덕인 뒤 주변인들과 자신에게 술법을 걸었다. 흐릿한 아지랑이가 모두의 발아래를 맴돌았다.

“좋아. 그럼.”

툭툭.

설휘는 그런 송화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사박.

이제껏 신고 있던 신발을 벗었다.

“……대장이 뭐 하는 거지?”

“나도 몰라.”

수하들이 수군거리는 사이, 설휘는 빠르게 다시 신발을 신었다. 그러자 시야에 문구가 떴다.

어떤 특수 기술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초풍신

▷ 수라폭열공

▶ 빙공극저하

▷ 절세풍검

진초혜는 벗었다가 다시 신을 시, 삭제할 특수 기술의 요구 동작을 변경할 수 있었다.

설휘는 이 기능을 불러서 빙공극저하를 선택했다.

[어느 부분을 지워드릴까요?]

빙공극저하(氷功極低下)

■ [두 눈에 피를 묻힘] [ABCD(동시에)]

두 가지 중 설휘의 선택은 ‘두 눈에 피를 묻힘’이었다.

그렇게 하나가 지워졌고.

빙공극저하(氷功極低下) : ABCD(동시에)

특수 기술이 간략화되었다.

나름의 준비를 마친 설휘는, 기기아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거절하겠다.”

“……!”

“……!”

“……!”

설휘의 발언에 기기아대 대원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이런 전력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우리가 우습게 보인 모양이군요. 뭐, 차라리 잘되었어.”

백지장처럼 하얗던 기기아대의 대장, 그녀의 얼굴에 요사스러운 웃음이 서렸다.

“이제자께 위협이 되는 놈들은 미리 밟아 두는 게 나으니까. 다들, 시작하세요.”

척. 타다닥.

그녀가 명을 내리자마자, 실혼인들이 그 자리를 박차고 도약했다.

“읏.”

“으윽!”

차라라락!

사령대 조장들이 무기를 빼어 들었다.

무려 스물아홉이나 되는 실혼인들. 강대한 적에 대한 절망을 이를 악물며 마주했다.

“걱정 마라.”

하지만,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설휘는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준비를 마친 특수 기술을 발현하기 전,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그 순간, 물밀듯이 몰려드는 빈틈창들.

실혼인_13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실혼인_25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실혼인_7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실혼인_16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

……

예상했던 빈틈 표시들.

그리고 이어지는 이전과 다른 빈틈창까지.

………도합 모두 24마리. 실혼인들의 빈틈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모두를 한데 모아 반응을 묻는 빈틈창.

턴제가 Lv2가 되면서, 이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모든 수하의 위험에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지금은 다섯을 제외한 적 대부분의 실혼인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있던 것이다.

▶ 실혼인 24마리를 향한 타격을 직접 결정한다.

▷ 시스템에게 맡긴다.

조건을 만족하면 결과를 만들어내는 법.

원래라면 이 정도의 위력은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빙공극저하의 시간 결박과 송화가 펼쳐준 가속법.

이 둘이 동시에 적용되니, 일반적인 턴제의 범주를 넘어버렸다. 한순간에 24마리를 공격할 수 있는, 절대적 능력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설휘가 믿고 있었던 세 개의 안배 중 하나였다.

[‘실혼인 24마리를 향한 타격을 직접 결정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패액!

선택하자마자, 설휘의 몸은 이미 도약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의 시야에 가장 가까이 있는 실혼인 하나가 들어왔다.

‘폭열공.’

첫 수로 선택한 무공은 이것이었다.

과거에 초극마공에 있었던 초식 중 하나. 그것이 지금 화온마공으로 변화면서 1초식으로 바뀌었다.

스물아홉 중 빈틈창에 걸린 상대는 무려 스물넷.

스물네 번의 필살 공격이 이루어져야 한다.

설휘로서는 가장 빠르고 간결하며, 충분히 강력한 초식이 필요했다.

그것이 폭열공을 선택한 이유였다.

쩌정!

검탄처럼 쏘아져 나간 화염은 단번에 실혼인의 머리를 관통했고.

[실혼인_13 사망]

한 줄기의 글귀를 남긴 뒤, 이번엔 다른 위치의 실혼인에게로 시야가 옮겨졌다.

쩌정! 쩌정! 쩌정! 쩌정! 쩌정--

[실혼인_25 사망]

[실혼인_7 사망]

[실혼인_16 사망]

[실혼인_21 사망]

……

상식을 벗어나는 움직임. 회심의 일격 적중.

폭열공에 머리가 뚫린 실혼인들은 순식간에 시체가 되었다. 찰나의 시간에 열이나 되는 전력을 없앤 것이다.

“흐읍!”

가속법. 그리고 빙공극저하의 시간 결박.

이 둘의 조합은 최고였다.

세상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설휘 혼자 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쏘아냈다.

[실혼인_23 치명적 피해]

[실혼인_4 사망]

[실혼인_2 치명적 피해]

[실혼인_18 사망]

[실혼인_19 사망]

반응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

11번째 실혼인부터 15번째 실혼인을 공격할 때쯤, 조금씩 근소한 차이로 죽지 않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절반 이상은 사망이었다.

[실혼인_1 상당한 피해]

[실혼인_3 치명적 피해]

[실혼인_29 사망]

[실혼인_9 사망]

[실혼인_20 사망]

그리고 16번째를 넘어서면서부터, 조금씩 공격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폭렬공 자체가 내공을 꽤나 잡아먹는 데다, 처음에 잡힌 빈틈창과 지금의 빈틈창은 차이가 제법 나는 듯했다.

---!

또한, 설휘의 공격을 본 기기아대의 주술사들이 실혼인들의 방비를 갖추었을 터.

그렇게 마지막 남은 넷은.

[실혼인_5 소소한 피해]

[실혼인_28 팔 한 짝 날림]

[실혼인_11 회피]

[실혼인_12 회피]

모두 죽지 않았다.

그리고.

솨아아아-

예상치 못하게 빙공극저하가 풀렸다.

“음…….”

원래 설휘가 알고 있던 유지 시간보다 빨리 끝났다.

가속법으로 더 빨라진 것은 좋았으나, 그만큼 뭔가를 소모한 것일까.

‘아니면 턴제 Lv2의 다수 공격 때문일지도.’

혹은 빈틈창이 더는 발생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것 역시 설휘는 대비하고 있었다.

시간 결박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그가 싸움 전에 신을 고쳐 신은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죄다 죽여주마!”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발동 조건 하나를 지움으로써, 혹여나 발동이 불발할 가능성을 없앴다. 그리고 더 빠르게 발동시키게도 된 것이었다.

………도합 모두 13마리. 실혼인들의 빈틈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이전과 달리 이번엔 모든 실혼인이 빈틈창 영역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에 살아남은 녀석들, 그리고 처음에 잡히지 않았던 녀석들까지 모두.

* * *

피시식! 파가각! 화아아악!

“저. 저런……?”

마태룡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설휘의 무위를 보고서 그저 입을 쩌억 벌렸다.

순식간에 몸이 십여 개로 불어난 듯한 현상.

그리고 사방에서 쏘아지는 불기둥.

마치 검탄과도 흡사한 일격필살의 화공을 수십 차례나 펼쳐냈고, 그에 맞은 실혼인들은 우후죽순으로 비명횡사하고 있었다.

‘설마,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인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천마의 절대경신법 중 하나.

극에 오르면 신체가 열둘로 불어나는데, 그건 환영이 아닌 실제.

또한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모두 잠영처럼 스쳐가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런 만큼 선택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절세무공.

설휘는 교주의 제자가 아니니 배웠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훔쳐 배웠다고 해도, 천마군림보는 제대로 쓰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었다.

극마에 오른 이가 펼쳐도 불어나는 신체는 고작 여덟뿐이지 않은가.

‘그럼, 대체 저건 뭐지?’

그래서 알 수가 없었다. 가정을 하나 지워내자, 머릿속엔 더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대체 저런 절세의 경신법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퍽! 퍽! 파각!

송화는 그저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빠른 속도로 하나하나 격살되어가는 실혼인들.

저들이 평범한 놈들이 아니란 건 그가 제일 잘 알았다. 각종 주술로 강화된, 기기아대의 으뜸 패라 할 수 있는 괴수들.

그런 녀석들이 순식간에 제거되는 것은, 정말이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 녀석아. 그러게 내 걱정하지 말라 했지?”

스윽스윽.

그때 음무기가 송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대. 대장은 대체…….”

“그래, 어떠한 상황도 돌파하실 분이야.”

음무기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 사부를 두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고.”

요림과 적송, 용진과 소령 역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기기아대라는 이름, 그리고 압도적인 위압감에 짓눌려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용진이 기가 막혀 하자, 요림이 대꾸했다.

“꿈이 맞아. 우린 늘 이런 걸 바라왔으니까.”

그는 다른 이들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이런 사람이 대장이기를 말이야.”

투욱. 투투투투투툭.

설휘가 바닥을 딛는 순간, 실혼인들이 떨어져 내렸다. 죄다 주검이 된 놈들이었다.

퍼걱. 퍼벅.

더 이상 달려드는 놈은 없었다. 그저 조금 늦게 바닥을 디딘 녀석들이 남았을 뿐.

“일곱이라…….”

설휘가 말을 내뱉었다.

남은 것은 일곱.

그중에서도 둘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온전한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다섯뿐이었다.

“너, 괜찮은 거냐?”

마태룡이 물었다.

설휘는 단순한 검기도 아닌, 검탄에 육박할 화공을 마흔 번 가까이 쏘아냈다.

그가 아무리 많은 내공을 쌓았더라도, 지금쯤이면 거의 고갈되어 기진맥진하는 게 당연할 터.

“물론이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설휘는 여전히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약간 불안하게 느껴진 마태룡. 그의 눈에.

‘어.’

또다시 당혹스러운 장면이 잡혔다.

츠츠츠츠측.

설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의 파동.

그것이 고리를 감고 계속해서 피어올랐으며, 삽시간에 눈빛에 기광을 만들어냈다.

“이건 또…….”

마태룡이 어이없어하는 사이, 설휘는 눈앞에 펼쳐진 문구를 보고 있었다.

[기 모으기 Lv2]

(발을 세로로 벌리고) ABCD (내공을 끌어올린다)

체력과 내공이 오르고 있었고, 종국에는 모두 다 차버렸다.

[참고하세요.]

첫 번째 시도 100%

두 번째 시도 80%

세 번째 시도 70%

※ 그 이후로는 50%로 고정됩니다. 사용 이후 일 각(15분)이 흐른 뒤 위처럼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등급이 오르니, 전부 다 회복됐구나.’

설휘는 완벽히 회복했음에도 기뻐하거나 좋아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살아남은 실혼인들이 있었다.

팔다리를 다친 두 놈은 1천만대.

온전한 몸 상태를 자랑하는 녀석들은 모두 2천만대로, 그 수가 무려 다섯이었다.

“이제 칠사자께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듯합니다.”

설휘는 마태룡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고는 검을 세우며 다짐하듯 말을 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버티느냐. 그게 이 싸움의 향방을 가를 테니까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