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45화 (146/379)

145화. 기기아대의 위력 (1)

휙. 휙. 휙.

설휘의 도발적인 말에, 마태룡이 장내를 바쁘게 훑었다.

단번에 예상외의 피해를 입은 기기아대.

그들은 그다지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었다.

예상 못 한 피해에 당황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담담하게 전열을 가다듬는 것일까.

마태룡은 살아남은 다섯의 실혼인이, 흉포한 모습을 내려놓고 그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관찰했다.

“……별로 바뀐 것은 없는 것 같구나.”

“왜 그리 보십니까?”

“네가 쓰러뜨린 실혼인들을 다시 봐라.”

설휘의 물음에 마태룡이 무덤덤하게 가리켰다.

터지고 박살 나 죽은 실혼인들. 땅바닥에 널브러진 그 모습은 처참했다.

사지가 잘려나간 자, 머리가 터져버린 자, 혹은 폭열공에 산산조각이 난 자 등.

그저 보기 흉한 시체일 뿐이다.

“음?”

그때 설휘의 눈이 찌푸려졌다.

박살 난 시체 조각들이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부스스스슥…….

산산조각 난 시체 조각, 잘려나간 사지, 그리고 박살이 난 머리통 등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이이이이…….

그리고 연기들끼리 이어지기 시작하자, 깨져 나간 신체 부위와 잘린 사지들이 연기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연기의 그물과도 같았다.

“실혼인은 죽인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기기아대는 죽은 실혼인을 강시로 되살릴 수가 있지.”

부서진 꼭두각시가 서로 줄로 이어진 것 같은 광경을 가리키며 마태룡이 말을 이었다.

“지능이나 움직임이 떨어지긴 하지만, 몸은 더 견고하고 빨라진다.”

분명 설휘가 보인 무위가 대단하긴 했지만, 마태룡이 보기에는 그다지 큰 피해를 준 것이 아니었다.

기기아대가 뒤에 붙어 있는 이상, 실혼인들은 불사의 존재.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날 뿐이다.

“그리고 저기…… 한 놈이 보이느냐?”

마태룡의 손이 대장으로 보이는 여인, 그녀의 옆에 있는 인물을 가리켰다.

“기기아대는 3개의 부대 편제로 나눠진다. 부대마다 장(長)이 있지. 저놈은 저 대장을 지키는 호위다. 실력은 아마…….”

다른 이들과 달리 등에만 흑풍의를 걸친 자.

그를 보며 마태룡은 잠깐 생각하는 듯 입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최소 나와 동수. 아니면 그 이상.”

“……!”

설휘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이제껏 기기아대는 술법을 쓰는 자들이니, 직접으로 싸움에 나서는 자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들에게 마태룡, 칠사자급의 고수가 있었다니.

“이게 다가 아니야. 저들의 가장 무서운 공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저들은 무인이 아니다. 주술사지.”

이 정도만 해도 아찔한데, 첩첩산중이었다. 마태룡이 말을 이었다.

“그것도 주술의 대가다.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무력하게 만드는 사술의 전문가지. 혹, 이제까지 주술적인 공격을 당해본 적이 있느냐?”

“…….”

설휘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태룡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끄덕였다.

“사술을 처음 맞으면…… 아무리 너라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게다. 그리고 네가 뚫리면…….”

그는 ‘끝이다.’라는 말을 삼켰다.

살아남은 실혼인들과 강시들이 끝없이 들이닥칠 테고, 뒤에서 받친다고 있는 사령대 조장들은 삽시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

불 보듯 뻔한 결과를 예상하며 마태룡은 한숨을 쉬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다 죽을 거라고.”

* * *

“이건…… 놀랍군요.”

여린은 침음성을 흘렸다.

무려 스물이 넘는 실혼인들의 죽음.

하나하나가 군인 수백을 쓸어 담을 병기들이 한순간에 쓸려나가다니.

상대의 위력적인 무위는 놀라움을 넘어 충격 그 자체였다.

그건 그녀뿐만 아닌 기기아대 대원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사령대장이라는 자의 무위는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대체 저 경신법은…… 뭐지?”

특히 저 몸놀림.

마치 활개치는 새처럼, 사령대장은 공중에서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며 이동했다.

빠르기도 어찌나 빠른지, 대처도 제대로 못 했을 정도였다.

“눈속임도 환영도 아닙니다. 놀랍군요. 사제자에게 저런 실력자가 있었다는 게.”

“그렇군요.”

여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혼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 걸 보면, 저건 모든 움직임이 실체란 소리였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녀 옆으로 다가와 조심히 말을 건네는 남자.

놀라서 반응도 못 하고 있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표정은 매우 담담해 보였다.

복장도 조금 달랐다.

다른 대원들이 흑풍의로 온몸을 감싼 것과는 다르게, 그는 등 뒤에만 걸치고 있었다.

월사(月士).

기기아대의 대장을 호위하는 호교사자였다.

그는 실혼인과 강시를 조종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경우에 따라 적을 직접 타격해서 섬멸하기도 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방금 저 사내는 무엇을 펼친 것일까요?”

여린이 조금 전의 상황을 묻자, 월사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서 나직이 말했다.

“흐음, 제가 보기엔…… 경신법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술수를 쓴 것 같지도 않습니다.”

“무슨……?”

“신법이긴 하되,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특별한 이능이겠지요. 하지만 계속 펼치지는 못할 겁니다. 저걸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지금 바닥엔 모든 실혼인들이 누워 있어야겠지요.”

“하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월사의 말대로였다.

사령대장에게 그 정도의 여력이 남아있다면, 남은 실혼인들 역시 다 쓸어버렸을 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마지막에 스스로 물러섰다.

“걱정 마시길. 저쪽은 칠사자 마태룡과 사령대장이라는 신상 불명의 무인 하나뿐입니다. 마태룡은 제가 맡을 테니, 사령대장에겐 살아남은 실혼인들 다섯과 대원들 8명을 붙이십시오.”

“그걸로 될까요?”

“7수와 8수라면 가능합니다. 어차피 우리의 장기는 무예가 아니라 주술이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요.”

7수와 8수 수준의 실혼인 다섯.

거기에 뒤를 보조하는 기기아대 대원들이 직접 나선다면, 충분히 제압 가능하단 생각이었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이면 초마에 오른 고수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마태룡이 끼어든다고 쳐도, 옆에 있는 월사의 실력이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할 터.

그는 과거 극마의 고수와도 비등하게 싸운 적이 있었다.

초마에 오른 마태룡은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주술까지 더해진다면?

이미 지나칠 정도의 배치였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도 아니라 대포를 쏴 대는 격이었다.

“파괴된 실혼인들을 강시로 부활…… 이미 하고 있었군요. 대원들이.”

스르륵. 우득. 우드득.

죽었던 실혼인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철떡. 철떡.

터지고 뜯겨나간 부위의 살점들이 날아와 달라붙고, 완전히 증발한 부상 부위는 연기를 풀풀 남기더니 매끈하게 재생되었다.

크르르르.

강시. 실혼인이 죽자마자, 바로 다시 재생된 자.

주술사가 붙어 있는 이상, 강시는 불사의 존재다.

신체를 움직이는 뇌, 머리통이 완전히 날아가지 않고선 계속 움직인다.

그런 경우조차, 술사가 전력을 다해 통제하면 조정할 수 있었다.

실혼인일 때보다 움직임이 밋밋할 수는 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다.

이들로 뒤쪽에 남은 잔당들, 사령대의 조장들과 송화라는 눈엣가시를 처리하면 된다.

“대원들이 오랜만에 몸을 풀겠군요. 그럼 가기 전에…….”

여린이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범위형으로 주술을 한번 걸고 시작하죠.”

“뭐, 굳이 그러지 않아도 싸움 자체가 안 될 텐데…….”

월사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리 본교의 사람이라도, 사술을 상대로 싸워본 경험은 거의 없을 터.

까닥, 까닥.

여린이 손짓하자, 기기아대 대원들이 뭉쳐서 웅얼웅얼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대장이 명한 대로, 광범위한 사술을 펼치기 위해.

“그럼, 부탁합니다.”

여린의 명을 받은 월사가 흑풍의를 집어던졌다.

-아아아아아

기기아대의 주문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 아기의 울음소리와 흡사했다.

* * *

“저건 뭐야?”

“뭐지?”

소령이 먼저 발견하고, 용진이 다음으로 확인했다.

하얀 아지랑이, 혹은 안개 같은 것이 갑자기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척 봐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었다.

“저, 정신 계열의 사술입니다!”

의문스러운 현상을 파악한 송화가 곧장 외쳤다.

그 말에 사령대 조장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정신 계열의 사술?”

“그게 뭐야?”

“걸리게 되면…… 미치거나 스스로 자결하게 만드는 저주요! 이건, 아마도 감각 착란인 것 같습니다!”

송화의 말이 빨라지고 다급해졌다.

어리지만 그 역시 주술사다. 그것도 미래가 기대되는 상급의 주술사.

그러니 개체를 노리고 쏟아지는 저주, 주술이라면 그가 어떻게 상대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광역 저주…… 그런 게 가능해? 세상에…….”

지금 발동되는 주술은 범위 전체를 뒤흔드는 계열이었다.

원래라면 이런 건 불가능하다. 허나.

우우우우…….

손을 잡고 주문을 외는 주술사가 무려 스물아홉.

“……이젠 끝났어.”

이건 송화가 감당할 수 없는, 궤가 다른 공격이었다.

“시작인가…….”

마태룡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괴력난신, 저들이 펼치는 사술. 그 범위 안에서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물론 그는 초마. 그것도 극마의 벽을 바라보는 고수였다.

사술 정도야 정신력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했다.

하지만 그 외의 이들은 달랐다.

“이건…….”

벌써 설휘부터 매우 혼란스러운 듯한 눈빛을 띠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마태룡이 뭔가를 할 수도 없었다.

“오랜만이군요. 칠사자의 마태룡 님.”

투욱.

예상했던 바지만, 그의 앞에 호교사자인 월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군. 십 년 만인가?”

“예, 그간 별래무양. 큼큼. 그런데…… 결과가 뻔한 일에 꼭 끼셔야겠습니까?”

월사가 인사를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마태룡이 소매를 걷어붙이는 걸 본 것이다.

“뭐가 뻔하지? 내가 이전과 같다고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다.”

“확실히 그때보다 성취는 있어 보입니다. 그럼…….”

월사가 웃었다. 흘러내리는 달빛에 수려한 그의 얼굴이 언뜻 비쳐지고 있었다.

“한번 확인해볼까요?”

* * *

-----!

기기아대가 펼친 사술.

소리도 무엇도 없었다.

하얀 안개처럼 보이던 무언가는, 곧 눈으로 보이지도 않게 투명해졌다.

스륵스륵.

그리고 그 무형의 기운은 설휘의 몸으로도 스며들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전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세한 감각.

하지만 설휘는 그 이질적인 느낌을 알아차렸다.

‘이건 뭐지?’

술을 마셨을 때처럼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아니, 그것과는 달랐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생경함.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생긴 것이다.

마태룡이 말한 ‘처음’인 이상.

“크르르르.”

“크릉그그.”

저벅저벅, 앞으로 다가온 실혼인들.

이놈들은 앞서 빈틈창으로 처치하지 못한 놈들이다.

가속법에 시간 결박까지 걸고 날린 공격을 모두 피해낸,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처처처척.

‘전투력이 2999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덩치 큰 놈.

기기아대 대장 곁에 있었던 실혼인이었다.

척. 척. 척.

그 뒤, 손을 맞잡은 기기아대의 대원 여덟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번엔 다들 준비를 단단히 한 것 같았다.

힐끗.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 속, 설휘는 뒤에 있는 수하들을 살폈다.

타다닥! 크르르릉!

실혼인에서 강시로 변한 놈들이 괴성을 지르며 몰려들고 있었다.

‘조금은 버틸 수 있겠지.’

하지만 설휘는 비관하지 않았다.

자신이 제공한 신병이기, 그리고 자신이 전수한 무공으로 전투 경험을 충분히 쌓은 수하들이다.

전부 물리칠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터.

“카아아앙!”

그게 빈틈으로 보였던 것일까.

잠시 수하들을 돌아본 설휘를 향해 실혼인 하나가 달려들었다.

설휘는 즉각 특수 기술을 발동시켰다.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실혼인_12’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예상했던 대로 떠오르는 빈틈창.

‘스스로 결정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설휘는 단번에 끝낼 요량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휘청, 풀썩!

“……?!”

그런데 그 순간, 설휘의 몸이 땅을 굴렀다.

‘뭐야?’

분명 앞으로 달렸다. 아니, 달리려고 했다.

그랬는데 다리가 멋대로 뒤로 물러나듯 움직였고, 그래서 몸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었다.

‘뭐지, 이게?’

착각인가? 아니면 꿈인가?

몸이 머리의 신호를 거부하는 경우라니. 아니, 거부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휘청! 투욱.

일어나려던 설휘가 다시 넘어졌다.

분명 오른손으로 땅을 짚으려 했는데, 정작 움직인 것은 왼손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설휘가 뭔가를 알아차린 순간.

솨아아아-

시간 결박이 풀리고, 실혼인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설휘는 다급히 특수 기술을 재발동시켰다.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빈틈창.

[‘실혼인_12’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스스로 결정한다.’를 선택하고, 다시 한번 앞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결과는 아까의 반복이었다.

투다닥.

“이런……!”

휘적휘적.

앞으로 가려고 하면, 몸이 뒤로 물러선다.

적을 보려고 왼쪽으로 고개를 틀자, 엉뚱하게도 뒤쪽 사선 방향이 비치고 있었다.

‘사술에 걸렸구나!’

앞서 자신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던 이상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로 인해 자신의 방향 감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사아아아-

시간의 결박이 풀리자마자, 설휘의 눈이 커졌다.

감각이 완전히 꼬여버린 와중에.

[‘실혼인_12’가 ‘설휘 님’의 빈틈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위기였다.

전후좌우. 방향을 전혀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엔 자신 쪽으로 빈틈창이 떠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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