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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46화 (147/379)

146화. 기기아대의 위력 (2)

▶ 스스로 결정짓는다.

▷ 시스템에게 맡긴다.

설휘는 여기서 잠깐의 망설임이 있었다.

감각 혼란이라는 저주에 걸린 거라면, 혹 ‘시스템’이란 녀석에게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왠지 ‘시스템’이란 녀석은 그런 술법은 무시해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일 뿐, 이내 첫 번째 지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설휘도 잘 알고 있다.

‘시스템’이란 것에게 의존하는 순간, 성장은 거기서 멈추리라는 걸.

위기라는 건 결국, 스스로 극복할 수 있냐에 달린 것이니까.

AI도 그렇게 말했다.

시스템에 잡아먹히지 말라고.

5…… 4……

설휘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여 대응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시뮬레이션을 잠시 떠올려봤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이런 것에다 그런 절대적인 능력을 쓸 생각은 없었다.

더욱이 시뮬레이션은 따로 사용할 곳을 생각해 놓지 않았던가.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선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스스로 결정짓는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슈아아아악-

어느 순간, 눈앞까지 다가온 실혼인.

그의 커다란 체구보다, 맹렬히 쏘아내는 쌍장이 더 눈에 들어왔다.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설휘는 특수 기술을 사용했다.

솨아아아---

한순간 모든 시간이 정지된 듯한 상황에서 설휘는 오른손과 왼손, 왼발과 오른발 등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이번에 시간 결박을 사용한 이유는 눈앞의 적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몸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몇 번의 움직임을 통해 두 손으로 가슴을 보호하는 동작을 찾아냈고.

쩌어엉!

시간 결박이 풀리자마자, 실혼인의 쌍장을 막아내며 뒤로 쭈욱 밀렸다.

“크아아앙!”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맹렬히 따라붙는 실혼인

2999만이란 전투력 수치를 증명하듯, 다른 실혼인들과는 움직임이 확연히 달랐다.

‘……!’

다시 두 손으로 가슴을 보호하려는 그때, 설휘의 눈이 커졌다.

실혼인의 두 손에서 쏘아진 공력이 자신의 하단을 노린 것이다.

설휘가 급히 두 다리를 쭉 빼며 피하자, 자세가 무너졌다.

해서 이어진 실혼인의 쌍장을 막아내지 못했다.

퍼어어어억-!

오 장을 넘게 날아간 설휘.

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워봤지만, 생각처럼 잘 서지지가 않았다.

호심공까지 뚫린, 제대로 된 일격을 받은 것이다.

“일단 막는 동작 몇 가지는 알아냈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 설휘는 이윽고 제대로 된 자세를 잡았다.

흔들리는 좌우 감각을 다잡는 법까지 터득한 것이다.

그때쯤 대기하던 실혼인들이 하나둘씩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한번 제대로 해보자.”

전투방식 자유제

설휘는 전투방식을 바꿨다.

이 싸움.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였다.

* * *

“막아!”

“이런!”

사령대 조장들이 있는 곳은 난리 그 자체였다.

감각 혼란은 설휘뿐만 아니라, 그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졌고.

수하들은 왼쪽 오른쪽이 정반대로 달라지고, 방향감각이 완전히 꼬여버린 상황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했다.

단숨에 수십의 강시에게 에워싸였음에도 대응하는 이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전멸이 불가피했다.

“사르디 발라…….”

그 순간, 송화가 기지를 발휘했다.

술력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었던 건지, 한 무인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준 것이다.

저주가 풀린 이는 1조 조장인 요림이었다.

“하앗!”

요림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는 저주가 풀리자마자, 특수 기술을 펼쳐냈다.

강시들은 이미 달려들고 있는 상황.

최선의 한 수였다.

사사사사사삭!

창 끝에서 여섯 개의 기류가 일시에 퍼져나갔다.

탈혼소마경.

보통의 검기보다 강맹할 뿐만 아니라, 시전자의 의지를 따르기까지 하는 기공.

그것은 근접해 있던 강시 여섯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고, 강시들은 곧장 쓰러졌다.

“하앗! 핫!”

요림은 쉬지 않았다.

이미 십여 마리의 강시들이 달려들었고, 그로 인해 특수 기술을 다시금 세 번이나 펼쳐냈다.

푸푸푸푹!

열여덟 개의 창기. 그것은 열여덟 방향으로 뻗어나가 그대로 강시들의 머리를 적중했다.

저항할 수도 없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데다가, 기공의 속도는 가히 전광석화였기 때문이다.

강시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광경에, 뒤에서 지켜보던 기기아대 대원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 무슨!”

“이기어검인가!”

그들의 눈엔 그리 보였다.

창 끝에서 발현한 기운이 시전자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강시들의 머리통이 죄다 작살 나 버렸다.

대원들이 주춤하자, 강시들도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그 틈을 타 사령대 조장들은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아, 이제 한 번 정도…….”

술력이 거의 떨어진 송화는 다음 대상을 누구로 정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딱 한 번.

저주를 푸는 걸 누구로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령에게 걸어.”

적송이 말했다.

용진은 접근전에 능했다.

자신은 그보다는 더 원거리 공격에 능했지만, 소령은 특수 기술부터가 완전한 원거리.

지금 이 상황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은 그녀였다.

“그래, 맞아. 지금은 그녀에게 걸어야 해.”

용진의 말에 송화가 주술을 외우고는, 이내 풀썩 쓰러졌다.

“송화!”

적송이 불렀고, 소령이 송화를 붙잡아 바닥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나도 풀렸어.”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싼 강시들을 둘러보고는, 요림에게 말했다.

“우리 둘만으로 해결해야 해.”

“차라리 저 대원들을 먼저 공격할까?”

“아냐. 그러다 분산되는 일이 생기면 더욱 위험해져. 지금은 자리를 지켜야 해.”

스륵스륵.

사방에서 연기가 피어 나오고 있었다.

머리통이 작살난 놈들, 혹은 손발이 날아간 놈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불사의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그들이었다.

그때였다.

“나도 조금만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

“…….”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령과 요림 곁으로 다가온 음무기.

분명 저주에 걸렸는데도, 그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푼 거야?”

“푼 거 아냐.”

적송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말했다.

“크큭, 예전에 전 사부께 배웠던 게 하나 있지. 아니, 배웠다기보다는 맞으면서 깨달은 방법으로…….”

음무기는 고개와 손 등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주먹도, 그리고 발차기도.

정확히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크하하. 그게 여기서 발휘될 줄은 전혀 몰랐는걸?”

‘저 녀석…… 천재 아닐까?’

‘누가 봐도 병신처럼 보여서, 우리가 놓쳤을지도…….’

적송과 용진이 눈빛을 서로 교환했다. 하지만.

“다만, 반응이 좀 늦네. 일반적인 움직임 정도로만 움직일 수 있겠는데.”

그 얘길 들은 적송과 용진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천재과는 아니었다.

그 정도라면 지금 상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속도니까.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그 사이, 소령이 요림에게 물었고.

“글쎄, 모르지. 여기서 또 저주가 들어온다면…….”

그는 뒤쪽에 있는 기기아대 대원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절망이겠지?”

“아마도.”

* * *

마태룡과 월사의 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사방에서 검기와 검탄이 때려 박히고, 가끔은 광선(光線)과 흡사한 빛무리가 주변을 수놓기도 했다.

“으윽!”

몇 번의 교전 후, 수세에 몰린 쪽은 월사였다.

마태룡의 움직임은 그가 예상한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고, 그가 펼치는 권각술 역시 맞상대하기 두려울 정도로 예리하며 위협적이었다.

“하앗!”

그래서 근거리보다는 원거리로 승부를 보려는 월사.

검기를 다발로 빠르게 날려, 상대에게 접근할 의지를 상실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자신의 예상보다 한 발짝 더 빨리 쏘아진 적의 권경(拳經).

실보다 예리하게 갈라진 권기의 일부가 자신의 복부를 먼저 강타했기 때문이다.

“크헉!”

월사는 급히 뒤로 물러나며 주춤거렸다.

다행히 상대가 더 압박해 들어오지 않아, 그는 한숨을 돌렸다.

그러곤 자신이 당한 것도 잊은 듯 그는 임기응변식 대응에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와, 거기서 권경을 쏘아낼 줄이야…….”

권풍이나 권기 같은 기운이었다면, 그 역시 즉시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운이 거의 없다시피 한 권경.

마치 권사를 펼치듯 위력을 축소해, 상대의 부주의를 이끌어낸 공격이었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

적당히 적을 몰아넣었음에도 마태룡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가진 본연의 능력이 어떤지를 알았으니까.

방금 공격도 보통이라면 상당한 내상을 입었어야 함에도, 그는 아무런 타격이 없어 보였다.

무슨 주술을 썼는지 모르지만, 금강불괴와 비슷한 효과를 보이는 것이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너무 그러지 마십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저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은 마태룡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월사 역시 상대 또한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그의 손에 창(槍) 하나만 쥐어졌더라면,

평소처럼 마태룡의 등 뒤에 예(乂) 모양으로 삐져나온 그의 애병이 있었더라면.

흑창마혼(黑槍魔魂)이란 별호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자신의 온몸으로 체감하게 됐을 것이었다.

“그런데, 얘기가 나온 김에 묻죠. 매사에 신중하다고 평가받은 분이, 뭘 믿고 이런 사태까지 만드신 겁니까?”

월사는 시선을 돌려, 한창 싸움 중인 곳을 보고서 말했다.

전황은 예상대로 마태룡 일행이 불리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사령대장이란 녀석은 계속 얻어맞기에 바빴다.

그는 저주를 스스로 극복해 내지도 못하는 듯 보였고, 파훼법 역시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술사 녀석의 활약으로, 몇 명은 저주에서 벗어난 듯 보였다.

그럼에도 숫자가 너무 적었다.

언뜻 수하 두 명이 기지를 발휘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거야 잠시일 뿐.

보조를 맡고 있는 뒤쪽 기기아대 대원들이 또 다른 차원의 저주를 걸 테니까.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다른 자도 아닌 천하의 마태룡 님이 이런 선택을 한 건,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지요.”

사제자가 아닌 이제자에게 정보를 건네줄 정도로 상황 파악을 냉철하게 하는 자.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이 희망 없는 싸움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너는 저게 믿기느냐?”

마태룡이 바라보는 곳.

시선을 따라가 보니, 사령대장이란 자가 보였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실혼인들에게 계속된 공격을 받고 있었다.

“……뭐가 말인가요?”

“저 나이에 저 정도로 높은 성취를 이룬 게 말이다. 사실, 나는 믿기지가 않는다.”

속으로는 조소가 나왔지만, 월사는 속내를 감추고서 물었다.

“나이에 비해 상당한 성취긴 하지만, 그렇다고 믿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요. 장로분들의 제자 중에서도 특출한 인물들이 꽤 있으니 말입니다. 더 넓게 본다면, 저 정도 성취의 사내는 꽤 많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 꽤 많은 놈들 중에 저런 선택을 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예?”

마태룡의 시선이 월사에게로 향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싸우는 걸 선택했네. 몇 번 보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난 알았어. 그는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거야. 내 눈에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길인데 말이지.”

“……그래서 덜떨어진 놈이란 게 증명됐군요. 지금 주위를 보십시오. 승산이란 게 어디 존재합니까?”

“그러니 함께 지켜보자고.”

마태룡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과연, 그는 어디서 답을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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