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51화 (152/379)

151화. 운명의 날 (2)

‘전투방식을 지우라고?’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전투방식.

그게 하나도 아닌 둘이나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였다.

어느 것을 지우시겠습니까?

우선은 생각을 해 보았다.

턴제를 버리게 되면, 상대방의 능력치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전략을 짤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싸우는 도중에 도구함을 쓸 수도 없게 된다.

‘다행히 지금은 황금 벨트라는 특수 물건이 있기에, 필요성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게 또 아쉬울 수 있었다. 황금 벨트에 채우는 영약은 주로 최상급이다.

본인보다 약한 상대와 싸울 때도, 체력을 회복하려면 최상급의 영약을 써야 한다.

가성비가 엄청나게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턴제가 Lv2로 등급이 오르면서 수하들이 위기일 때 구해주던 것을 못 하게 된다. 다수의 적을 상대로 동시에 공격하는 것도 막히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시뮬레이션이나 AI를 지우는 건, 더 속이 쓰려.’

다수를 상대하는 순간이 아니면, 저 둘보다는 싸움 중 활약도가 높지 않다.

그리고 턴제의 공격하기나 무공 쓰기가, 지금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예전처럼 절실하지 않은 것도 사실.

“후우…….”

정 어쩔 수 없으면 턴제를 지우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고 진행하려 하자.

[전투방식 ‘턴제 Lv2’를 제거하시겠습니까?]

※ 참조하세요.

턴제가 사라짐으로 인해, 머리 위에 떠 있던 정보(예 : 목숨의 수)도 표시되지 않습니다.

‘아니, 이것도?!’

난이도 상승이라는 게 어떤 청천날벼락인지 실감이 왔다.

목숨에 관한 정보가 없어지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목숨을 얻으란 말인가?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 그럼 시뮬레이션과 AI 중에서는…….’

우선 턴제 삭제를 보류하고, 이번엔 다른 선택지로 시선을 옮겼다.

시뮬레이션제 Lv2.

전능하진 못해도, 만능하다고 볼 수는 있었다.

특히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나 현재 상황에 있어서는 최적의 수, 최적의 답을 찾아주었다.

문제라면 미래를 내다보는 수에서는 취약점을 보인다는 건데, 달리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자신의 돌발적인 행동.

그런 경우의 수까지는 계산하는 게 불가능했다. 거기까지 예상한다면 한 가지 선택이 나중에 수백, 수천 가지 형태로 달라질 수 있기에.

‘결국, 과거와 현재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미래를 선택할 것이냐, 라는 건가.’

시뮬레이션이 과거와 현재라면, AI는 미래였다.

실제 미래를 경험한 듯한 그 녀석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에게 정보를 얻는다면 나아지긴 하겠지만.

[전투방식 ‘시뮬레이션제 Lv2’를 제거하시겠습니까?]

※ 참조하세요.

시뮬레이션제가 사라짐으로 인해,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정보들을 사전에 알아낼 수 없게 됩니다.

“끄응…….”

이것 역시 쉽지 않은 문제였다.

시뮬레이션제가 없어진다면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위험을 안고 가야 했다.

AI는 지난번에 초마에 오르지 못하면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구함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능력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미래의 AI를 만나러 갈 것인가.

아니면 목숨에 대한 정보를 얻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턴제를 남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과거와 현재의 정보를 종합해 최적의 수를 찾아,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을 알려주는 시뮬레이션제를 남겨둘 것인가.

‘내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설휘는.

[턴제 Lv2를 제거합니다.]

[시뮬레이션제 Lv2를 제거합니다.]

결국, 턴제와 시뮬레이션제를 제거하는 판단을 내렸다.

그 순간 곤마가 바로 입을 열었다.

“소속은 천사령(天事令). 너는 령주가 되고, 부령주는 네가 뽑는 자가 될 것이다. 그 외의 이들은 천사령의 대원들이다. 직위는 칠사자와 동급. 부령주는 호위무사 1급과 동급이다.”

직위를 부여한 뒤, 곤마는 세력에 대한 서열을 정해주고 있었다.

“참고로 비밀무사는 오로지 무공만 높아서 되는 게 아니다. 냉정한 판단력이 요구되고, 때론 뭔가를 희생하는 과감함도 필요하지. 대부분 한두 명으로 움직이지만, 이제껏 세운 실적과 능력을 보아 너는 특별히 조직으로 움직이는 걸 허락한다. 물론 네 수하들은 별도의 훈련을 거쳐야겠지만.”

“……감사합니다.”

이건 설휘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무력을 확실하게 갖추지 못한 수하들을 육성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가르칠 사람은 장로급일 가능성이 높았다.

“설휘. 앞으로 넌 본 세력의 최고 서열로, 나의 모든 무공을 전수받을 것이며 내가 아는 모든 것을 함께 알게 될 것이다.”

천사령.

처음 들은 것이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대강 가늠할 수 있었다.

곤마의 명을 직접 받으며, 필요에 따라 살인도 서슴없이 해야 하는 존재.

이전과는 임무의 질 자체가 달라질 것을 뜻했다.

“그리고…….”

곤마는 잠깐 생각하듯 시선을 들어 올린 뒤, 이윽고 말했다.

“마태룡을 수하로 삼지 않겠느냐?”

“예? 제가 마태룡 님을…….”

“그래. 보통 비밀무사는 2명이 한 조가 되며, 최소 초마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천사령에는 오로지 설휘, 너밖에 그만한 실력자가 없다. 아무래도 한 명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사실, 설휘는 초마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곤마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설휘가 이미 초마의 경지에 올랐다고 여기고 있는 듯했다.

이제껏 펼쳐냈던 특수 기술들 때문이리라.

“저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다만, 이건 나 혼자 결정지을 사안이 아니니, 마태룡을 만나보고 최종 결정을 하마.”

“감사합니다.”

“그럼. 지낼 방을 배정해 주마. 시비가 안내해 줄 테니, 거기서 쉬고 있거라.”

곤마의 말은 여기까지였다.

* * *

시비가 안내해 준 건물은 이전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전혀 갈 일이 없던, 북쪽 끝 위치.

주변을 둘러보면 앞에는 경관이 펼쳐져 있었고, 뒤에는 나무들이 치솟아 있었다.

건물 앞, 잘 닦인 공터 외에는 자연 경관이 적절히 잘 스며든 곳.

“오……. 우리 이제, 여기서 사는 겁니까?”

음무기가 건물을 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2층 전각처럼 규모가 커서, 수하들마다 배정된 방이 따로 있었다.

“와…… 여기 봐.”

한편, 창고를 열어본 용진은 들뜬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그 안은 잘 벼려진 병기들과 약재들이 가득했다.

총단 내 장로들이 묵는 숙소처럼, 별도의 무기고와 약방이 함께 있던 것이었다.

“외진 공간에 이런 훌륭한 시설이 있었다니…….”

적송의 말에 소령은 짧게 대답했다.

“누구 한두 명 죽어도 찾는 이도 없겠군.”

“에이, 불길한 소릴.”

음무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용진과 함께 건물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 입구에서 그런 그들을 보던 요림은, 공터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는 설휘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장, 우리 모두 비밀무사가 된 게 확실합니까?”

사실, 오면서도 한 번 건네왔던 질문이었다.

“왜, 믿기지 않느냐?”

“솔직히…… 그렇습니다. 저희는 아직, 사제자님이 내리시는 비밀 임무를 수행할 정도로…… 강하지 않으니까요.”

“걱정 마라. 너희들을 수련시켜줄 인사들이 곧 올 테니. 그리고 비밀무사는 무공만 강해서 되는 게 아니다.”

설휘는 슬쩍 시선을 흘렸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소년을 보며 말했다.

“어쩌면 송화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나.”

“아…….”

요림은 탄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사제자에겐 이제까지 술법가가 없었다.

어리고 재능이 충만한 술법가가, 또 무위 하나는 수위급인 대장이 있다.

여기에 무위는 조금 부족하지만 충성스럽고 추적술의 전문가인 이들이 모였으니, 제법 괜찮은 조합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다.

‘이제까지 쌓은 실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들이 해온 일들이 보통 일들이던가.

7할은 설휘의 활약이었지만, 그런 그를 계속 따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젠 죽어도 때깔은 곱게 남겠군요.”

요림은 장난스럽게 한마디 하고는 뒤돌아섰다.

참고 있었지만, 그 역시도 다른 수하들처럼 건물을 둘러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남은 것은 설휘와 송화 둘뿐.

“송화야.”

“예. 령주님.”

령주가 되었다고 벌써부터 깍듯이 예의를 표하는 아이.

고사리 같은 손을 보니, 왠지 모르게 송화를 잘 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의 내 점괘는 어떻게 나오느냐?”

“……예?”

“그냥, 왠지 궁금해서 말이다. 내 앞길에 길흉은 어떤 게 있는지, 또 그게 언제 오는지. 오늘일지 아니면 내일일지…….”

“역술의 괘는 엄밀히 말하면 미신입니다. 우연일 가능성이 좀 더 높은 것이지요.”

송화가 갑자기 그렇게 말하자, 설휘가 약간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령주님은 잘 해내실 겁니다.”

“……그래.”

어색한 분위기.

설휘는 자신이 너무 티를 낸 것을 알아차렸다.

송화는 술법가, 점괘를 믿지 못하게 된 술법가다.

그러니 지금의 자신처럼 어떠한 사유로, 전투방식이 없어지면서 불안해하게 된 사람의 경우를 바로 알아차렸으리라.

“술법을 사용할 때에는 역술에 포함된 우주 만물이 변화하는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운명이란 건 수많은 경우의 수 중 가장 높은 확률일 뿐,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

“순리라고 믿으면 순리가 되고, 액운이라고 여기면 액운이 되는 법. 모든 것이 다 정해져있다면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러했지.”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화의 말대로였다. 어느 날 ‘시스템’이란 녀석이 눈앞에 온 게 운명이라면, 이 운명을 따르는 것도, 또 바꾸는 것도 자신이 할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역시, 지금 이 상황은 원래 내게 정해진 운명이 아닐 수도 있겠어.’

설휘는 기억했다.

핵심무사, 호위무사, 그리고 비밀무사의 길.

본래 곤마가 제시했던 세 가지의 길 중 첫째를 선택했을 때.

최종적인 목표는 핵심무사였다. 아마도 운명은 그 길을 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 제안을 거부했다. 그뿐만 아니라, 송화를 구하지 말라는 상황까지도 거부했다.

그로 인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비밀무사, 세 번째 길로 와 버린 것이다.

‘만약 송화를 이제자의 수하들에게 건네줬다면…….’

기기아대와 싸울 때 보였던 활약이 곤마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터.

그렇다면 비밀무사가 아닌 호위무사를 강요받았을 수도 있었다.

그리되면 수하들과 함께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것도 그저 가정에 불과하다.

설사 비밀무사 제안을 받았더라도, 지금처럼 수하들과 함께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송화가 없으면 술법 능력을 활용할 수 없기에, 임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비밀무사가 됐을 수는 있다.

만약 그랬다면…….

“령주님을 뵙습니다.”

때마침 눈앞에서 말을 거는 한 사내.

머리를 단정하게 한, 정감 가는 얼굴의 사내가 자신을 향해 웃음 짓고 있었다.

‘우리 둘만 비밀무사가 됐을 수도.’

그랬다.

눈앞의 사내, 마태룡.

그와 자신만 비밀무사가 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게 AI설휘가 생각하고 있었던 미래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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