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53화 (154/379)

153화. 사제자의 입지 (2)

화산파.

바로 얼마 전 본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흐흐. 본교 근방에 비밀지부와 분타를 세웠더라고. 등하불명이라더니, 정말 이럴 때 보면 옛말이 틀리지 않아.”

마후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낄낄거렸다.

“그래서?”

이어지는 아령의 물음.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내 수하들을 보내 빠르게 처리했지.”

마후가 으스대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조금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대가리들, 좀 굵직한 놈들은 이미 퇴로를 만들어놔서 잡지 못한 게 한이야. 아참, 그리고 이번 일에 사제자의 수하가 도움을 줬어.”

“막내가?”

스윽.

그 말에 아령뿐만 아니라 살마의 시선도 움직였다.

시선을 받은 곤마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예. 제 수하였습니다.”

“하. 이봐, 사제. 너희 쪽에 제대로 된 애들이 있긴 했나?”

“저희는…….”

때마침 끼어든 살마의 노골적인 비아냥에, 곤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그가 뭐라 하기도 전에, 마후가 대신 받았다.

“대사형, 칠사자 모르십니까? 넷째 휘하에 있는 애들 중에서는 상당한 고수들이라고요.”

“아, 칠사자였어?”

아령이 알고 있다는 듯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름 칠사자쯤 되면, 제자들 사이에서도 거론될 만한 이름인 것 같았다.

물론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핫. 제 몸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놈들이 무슨 임무를 한다고.”

살마의 노골적인 비아냥이 또 이어졌다.

그러자, 곤마가 그의 말을 담담히 받았다.

“맞습니다. 칠사자의 대장이란 자가 변변치 않아서 그런 거지요. 안 그렇습니까? 대사형.”

발끈하지 않고, 오히려 밝은 얼굴로 대꾸한 것이다.

“……허.”

덕분에 살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치 ‘그래그래, 네가 하는 말이 다 맞다.’ 같은 비아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뭐라 지적하진 못했다.

상황이 모호했다.

어감이 그러했을 뿐, 살마 본인이 한 말을 부정한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여기서 더 시비를 걸었다간, 너무 억지를 부리는 모양이 돼버리니까.

“그리고 말입니다. 이번에 화산파가 이 근방에 터를 잡은 이유가…….”

곤마가 이제자 마후를 보며 말했다.

“실은, 본교의 특정 인물과 교섭하기 위해서란 얘기가 있었습니다.”

“교섭! 그랬지, 그랬어. 듣기로는 본교의 아주 높은 사람과 연결이 됐다고 하더라고.”

마후가 실실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그래요? 대체 누구였던가요?”

아령이 갸웃하면서 반문했다.

“누구라 말을 하긴 하던데…… 그냥 무시했어. 생각해봐, 사저. 정파의 위선자들이 하는 말을 어찌 믿겠어? 안 그래?”

“못 믿죠. 어쨌든 뭐라고 하던가요?”

“그건…….”

그때 곤마가 끼어들었다.

“대사형이랍니다.”

싸아악.

소리가 난 듯했다.

이제껏 천천히 고조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터진 듯이 냉기가 흘렀다.

정적. 말 한마디로 나머지 세 제자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곤마는 쏟아지는 시선을 느긋이 받으며 입을 열었다.

“제 수하가 그러더군요. 화산파가 손잡은 상대는 다름 아닌 본교의 일제자라고.”

“너…….”

당연히, 살마의 노기 어린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이런…….”

“끙.”

마후와 아령도 당황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도 대충 전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 안 나게 슬슬 말꼬리를 돌리면서 살마의 신경을 긁기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곤마가, 당사자 앞에서 빵 하고 폭탄을 터뜨릴 줄이야.

“이 새끼. 지금 한 말, 책임질 수 있겠지?”

살마의 표정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 마치, 한마디만 더하면 바로 베어버릴 것 같은 섬뜩함이었다.

하지만, 곤마는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말이 그랬다는 겁니다. 당연히 저는 사실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어찌 본교의 차기 교주가 되실 대사형이 그런 짓을 벌였겠습니까?”

“…….”

“그냥 사로잡아 취조한 화산파 놈의 말일 뿐입니다. 화산이 도가제일검이 아니기에, 본교의 도움을 받아 올라서려 한다고. 우리 신교가 강호의 중소 문파에 피해를 입히면, 화산파가 들이닥쳐 도움을 주어 명성을 얻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 그런 방식을 사용한다 하더군요.”

살마의 시선이 더욱 강렬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곤마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실로 졸렬한 이간계가 아닙니까? 어쨌든, 조사해보면 나올 겁니다. 최근 중원에서 본교의 병력들이 따로 움직였던 흔적들이 있는지,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면, 화산파와 내통한 반역도가 밝혀지…….”

촤아아아악.

거기서 곤마의 말이 끊겼다.

끔찍한 기세였다.

곤마는 자신의 몸 주위로 수많은 기류가 스쳐간 것을 느꼈고.

이제자 마후가 정자에서 몸을 빼자마자.

빠지지직. 츠으-- 쿠쿠쿵!

자신이 앉은 위치를 제외하고, 정자가 무너져 내렸다.

“어디 주둥이를 더 놀려 보거라. 화산파와 내통한 반역도가 누구라고?”

참다못한 살마가 결국 터졌다.

그는 극한의 살기를 곤마에게 노골적으로 쏘아대고 있었다.

쩌저적. 쩌저적.

항거할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이 파도처럼 곤마의 몸을 옥죄어왔다.

혈관이 부풀어오르고, 숨을 틀어막는 고통.

곤마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지만, 그는 바둥거리지 않았다.

숨을 쉴 수 없는 질식의 고통에 그저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던 그는.

핏.

갑자기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변했다.

촤라라라라라락!

그 순간, 주변으로 살벌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드드득. 드드드득.

바닥에 있던 자갈들이 튀어 올랐고, 인공연못의 물이 수많은 파동과 함께 치솟아 올랐다.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솟아오른 것은 물론이다.

‘허공섭물이야!’

이를 본 아령은 경악했다.

극마의 경지 중에서도 초입이 아닌, 통달에 가까워야만 펼칠 수 있는 허공섭물.

그녀가 알기로 곤마의 경지는 고작해야 절정이다. 고작 그 정도로는 이런 신위를 펼쳐낼 수 없었다.

‘분명히 그런데…….’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곤마는 허공섭물의 공능을 이용해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대사형이 쏘아낸 무형지기를 받아내는 것도 경악할 일인데, 그걸 되레 힘으로 꺾어 누르려는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뜻하는 의미에, 아령은 덜컥 겁이 났다.

‘설마…… 여기서 금제를?’

천살성.

다들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있던, 곤마의 잠재력.

단 하나뿐인 화살로, 썼다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곤마를 은연중에 깔보는 마음이 있었다.

세상에 진짜 죽고 싶어 하는 놈은 없는 법이니까.

‘미, 미쳤어! 너무 자극했어!’

하지만, 이 자리에서 곤마가 그 힘을 개방해버린다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극마고 뭐고 그런 건 상관이 없다.

천살성이 스스로 폭주를 선택하면, 현 교주 외에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재앙. 그조차도 열셋 정도에 마성이 폭발하는, 어린 천살성의 경우이고.

곤마의 경우는…….

나이가 무려 스무 살이 넘는다.

천살성의 흉악한 힘을, 근 10년 가까이 비축했다는 얘기다.

여기서 그가 진심으로 터뜨리면, 그 기세가 얼마나 강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지지직. 지지지지직.

곤마를 압박하던 무형지기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허공섭물의 회오리가 내가진기로 변해 살마를 압박하고 있었다.

공세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

살마는 그제야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꼈다.

설마설마 싶었다.

썼다 하면 무조건 죽는 힘.

천살성이라는 폭탄 심지에 스스로 불을 붙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두두두둑.

곤마의 얼굴에 실핏줄이 점점 두드러졌다. 눈동자는 더욱 진한 초록색으로 변했다.

콰드드득!

그와 함께 허공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허공섭물. 절대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펼칠 수 없는 힘이었다.

일렁일렁.

위험한 힘을 담은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며 다가오는 곤마.

저벅. 저벅.

얼굴 전체에 핏줄이 돋아났고, 눈동자는 검은색에 가까운 녹색.

사람이라 보기 힘든, 그 흉흉한 모습에 살마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갑자기, 왜? 평소하고 별로 다를 게 없었는데. 대체 왜?’

순간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였다.

언제나 적은 말수로 침묵했고, 또는 비굴할 정도로 몸을 낮추던 넷째.

그래서 은연중에 멸시하고 있었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천마의 제자쯤 되면, 지렁이가 아니라 이무기 정도는 되었기에.

“대사형.”

처억.

그렇게 살마의 지척까지 다가선 곤마.

얼굴이 서로 맞닿을 정도까지 다가선 그가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교주가 될 수는 없는 몸을 타고났습니다. 저주받은 체질이지요.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흉악하게 변해 있었다.

전승되기로는, 살아있는 재앙.

그 문구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교주가 될 사람을, 못 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같이 죽으면 된다.

흠결 있는 몸이기에 만인지상에 오르지는 못하되,

만인지상이 될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끌어내리는 건 가능하다.

“너, 이…….”

그 박력에 살마는 숨이 막혔다.

이제는 은은히 녹색 섬광마저 뿜어내는 곤마가 단언했다.

“제 몸에 있는 천살령의 금제를 해제하는 순간, 대사형은 제 손에 죽게 될 겁니다. 이건 경고가 아닌 사실입니다. 헌데, 그리되면 누가 가장 좋겠습니까? 저기 둘째 사형만 좋아지겠지요.”

“……크.”

“그게 대사형께서 원하시는 겁니까? 정녕 그런 겁니까?”

“……”

살마는 대답하지 못했다.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을 안고 있는 놈.

아니, 폭탄 그 자체인 놈이다. 천살성이 개방되면, 곤마는 분명 죽겠지만 자신마저 죽는다.

그러니 지금은 한발 물러서야 했지만, 그게……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내가…… 내가! 이딴 놈에게!’

물러서는 것은 굴복이다.

하늘같이 높은 그의 자존심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그리 보지 않겠지만, 상관없었다.

살마는 자신이 가장 중요했다.

자신이 죽는 것도 싫지만, 굽혀줘야 한다는 것 역시 싫었다.

그래서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지지지직.

두 사내에게서 엄청난 기류가 요동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기운을 회수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쩌어어어엉!

“……!”

“……!”

또 다른 기운의 개입. 두 사람은 뒤로 주욱 밀려났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서 있던 곳에는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서 있었다.

“실례, 갑작스럽게 개입해서 죄송합니다. 허나 주군, 부디 힘을 거둬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르륵.

그는 먼저 살마에게 고개를 숙인 다음, 뒤로 밀려난 곤마에게도 예를 갖췄다.

“사제자님께도 이 늙은이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힘을 거둬주시지요. 부디…….”

“향개(向開)…….”

살마는 그를 보며 말을 흘렸다.

자신을 따르는 가신. 극마고수로, 자그마치 마교 서열 10위다.

주로 살마의 참모 역할을 하는 그는, 흥분한 살마를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이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어떤 일에도 나서지 않아, 그가 살마의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게 만드는 그런 조용한 인물이었다.

스으으으.

두 사내가 기운을 모두 회수하자, 좌중은 고요하게 변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만한 정적.

“감사드립니다. 이 늙은이의 부탁을 들어주신 것, 나중에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에 향개는 다시금 곤마에게 예를 표했다.

“……별말씀을.”

“이번 일로 주군께서도 많은 생각이 드실 겁니다.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쯤에서 좋게좋게 물러난다는 얘기다.

“…….”

그 말에 살마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막 나가는 성미의 그라도, 지금 상황에서 곤마와 맞서기엔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그건 곤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시게.”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살마에게 다가가 뭐라고 짧게 속삭였다.

“알겠다.”

살마는 짧게 대답하고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곤마를 잠시 노려보고는.

홱!

그렇게 몸을 돌려 사라졌다.

“와…… 씨. 심장 떨려 죽을 뻔했네.”

분위기가 잦아들자, 마후는 겨우 살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로서는 전혀 손해 볼 것 없는 상황이라 그런지 오히려 즐거운 듯한 모습이었다.

“사제. 다음에 보자고.”

“맞아. 너무 성질 내지 마! 정말 놀랐다고!”

그렇게 마후와 아령이 사라지고.

곤마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처음이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저 두려운 대사형, 살마와 말하는 도중 손발이 떨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 견뎌냈다.

정말 오늘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곤마 님!”

멀리서 천광이 달려왔다.

그는 잔뜩 속을 태우고 있다가, 다른 제자들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서 이곳으로 온 듯했다.

“그래.”

곤마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쿠웩.”

다량의 피를 쏘아냈다. 몸속의 장기가 죄다 비틀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주군!”

“……괜찮다. 이 정도는.”

휘청이던 곤마는 다시 자리에 섰다.

그저 잠깐, 아주 잠시만 건드린 것인데도 천살성의 저주는 끔찍했다.

몸속의 장기라는 장기가 죄다 비틀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허나.

“더는, 이제 더는 웅크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걱정하는 천광을 향해, 곤마는 다짐하듯 말을 내뱉었다.

몸은 분명히 괴로웠으나, 마음은 하염없이 홀가분했다.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비굴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하하하…….”

곤마를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게 만들었다.

* * *

“일제자 살마의 병력을 친다는 말입니까?”

설휘는 곤마의 계획을 듣고서 반문했다.

지금 상황에서 삼제자도 아니고, 일제자의 병력을 친다.

말이 안 된다고,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래야 삼제자 아령의 병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

설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제자를 치면, 삼제자의 병력을 얻는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만답서생은 설휘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마치 그 정도는 스스로 깨달으라는 듯했다.

“……제가 아직 정국(政局)을 읽는 눈이 밝지 못합니다.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하긴. 천사령주께서는 아직 젊으시지요.”

만답서생은 조금 아쉬운 기색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삼제자 아령 소저의 핵심 전력은 은둔고수들입니다. 저는 그들이 천마님의 명을 받아 삼제자를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다시 말해, 삼제자 본인에 대한 충성은 없다는 것이지요. 그녀의 역할, 그녀의 위치 때문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 말인즉, 사제자께서 그녀를 대신할 수 있다면.”

“……!”

설휘의 목 뒤로 쭈욱 소름이 돋았다.

커진 그의 눈을 보며.

“삼제자의 핵심 전력들은 스스로 사제자께 오게 될 겁니다.”

만답서생은 말을 이었다.

넷째 제자 곤마. 그는 마교인들의 시각으로 보기엔 겁 많고 유약해 보이는 사람이다.

허나 무리도 아닌 것이, 이제껏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항시 일제자에게 숙이고 살 수밖에 없던 그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살마에게 휘청할 정도의 일격을 먹인다면?

은둔고수들의 실질적인 명령권자. 교주 천마가 관심을 보일 것이다.

시각이 바뀌게 된다.

이제껏 웅크리고 있었던 소극적인 모습이, 미래를 보고 절치부심할 줄 아는 인내로.

때를 맞이하면 뛰쳐나올 수 있는 대범함과 결단력으로 포장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껏 고르고 골라진 일제자의 세력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면, 그건 은둔고수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자아낼 것이다.

그들은 원래 그런 이들이다.

벽에 막힌 이들.

더 이상 무공에 진척이 없는 자들.

혹은 출신 때문에 더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없거나, 아니면 권력 자체에 관심이 없는 자들.

그런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자신만의 마공을 가다듬기 위해 폐관수련을 자처하는,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이다.

개중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상식을 벗어나는 고수도 있었다.

당장 설휘가 변명하기 위해 언급했던 천미려. 그녀 역시 개인적인 수련을 위해 은둔을 자처한 고수다.

따라서, 웬만한 일로는 세속에 관심 없는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마침 전체적인 형국은 꽤 괜찮은 상황이었다.

이제껏 거의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이가, 일제자에게 통쾌하게 일격을 먹인다면.

“누구나 환호하기 마련이지요. 이미 늙어버린 노인들조차 피가 끓어오를 것입니다.”

“상대적 약자이기에 효과가 더 크다는 말씀이군요.”

설휘가 중얼거리자 만답서생이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곤마께선 핵심고수와 비밀고수를 대거 투입해, 일제자 휘하의 수장격 인물들을 제압할 생각이십니다.”

“그러다 반격해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일제자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닐 겁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일제자는 핵심 전력을 쓰진 못할 겁니다. 그랬다간 전력의 공백이 일어날 테고, 그걸 이제자가 가만히 지켜보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후계자 쟁탈전이 치열하지 않았던 이유.

그건 바로 살마와 마후의 묘한 관계 때문이었다.

살마가 가진 4의 힘을, 마후의 3과 아령의 2가 합해서 버티고 있는 처지.

여기서 1에 불과한 사제자가 살마를 친다고 해서, 살마가 전력으로 사제자에게 보복할 수는 없었다.

이제자 마후의 존재 때문이었다.

“보복은커녕, 오히려 손을 잡자고 할 수 있습니다. 4에 1이 더해지면 확실한 5가 되니까요.”

“흐음.”

날카로운 칼은 적일 때는 위협적이지만, 아군일 때는 든든할 수 있다.

이제껏 위협적이지 않아서, 스스로 몸을 낮추었기에 곤마는 얕잡아 보였다.

“그만한 가치를 보인다면 적이든, 과거든 다 묻어두고 손을 잡으려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삼제자 휘하의 은둔고수를 포섭하고 나면, 기존의 세력 구도에서 일(一)이었던 사제자님은…….”

만답서생은 설휘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삼(三)이 될 겁니다.”

삼분지계.

마교의 세력이 셋으로 갈라져 안정이 되는 것.

삼제자 아령, 본래 그녀는 솥의 세 번째 다리 위치였다.

허나 그것은 천마, 교주의 의중이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안정이었다.

삼제자 본인의 역량이 받쳐줘서 이루어낸 안정이 아니니, 그러니 그걸 빼앗아 올 수 있다.

그것이 곤마의 큰 그림이었다.

“그럼 제가 상대해야 할 인물은 누굽니까?”

설휘는 이제 제일 중요한 얘기를 그에게서 들을 시간이었다.

“오각 중 둘입니다.”

만답서생은 잠깐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태황각주와 오천각주, 그 둘을 제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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