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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54화 (155/379)

154화. 마를 뛰어넘는 경지 (1)

두근. 두근!

설휘는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태황각주와 자신은, 악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사이다.

시작부터 한쪽 팔을 스스로 잘라 내밀어야 했고, 몇 차례나 목숨을 날아가게도 만들었다.

그 두 놈을 이번에 제거할 수 있다면…… 정말로 가슴이 후련할 터.

하지만 마음이야 어쨌건,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저 둘은 초마의 고수다. 명실공히 마(魔)를 뛰어넘은 실력자들이다.

거기에 혼자 움직이는 개인도 아니다.

각주는 각(閣) 세력의 주인.

그들을 항시 둘러싸고 있는 비밀무사나, 혹은 주변의 이목까지 생각해야 했다.

이전에 태황각주가 곤마를 보러 왔을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더욱이 설휘는, 난이도 상승으로 인해 피 같은 전력들을 잃어야 했다.

시뮬레이션제와 턴제.

시스템이 강제로 회수해버린 능력들.

그걸 쓸 수 있다면, 손바닥 들여다보듯 쉽게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능력들이 사라진 상태이기에, 지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예, 이번 일을 위해 준비한 안배입니다.”

터억.

만답서생이 품속에서 서책 한 권을 꺼냈다.

파락.

그는 그중 몇 장을 펼치며 설명을 이어갔다.

“보통 각(閣) 내에는 각주를 보좌하는 가신 하나. 그리고 건물을 수호하는 비밀무사들이 있습니다. 태황각의 비밀무사들은 태황소록비(太皇所麓秘). 인원은 모두 열이고, 무위는 초절정에 오른 고수들입니다. 이들을 모두 죽여야 합니다.”

“음.”

태황각주와 그의 가신 흑비.

그리고 태황소록비 놈들.

설휘는 그 이름들을 머리에 단단히 새겨 넣었다.

“오천각은 오천각주와 그의 가신 하나. 이 둘만 처리하면 됩니다.”

“거긴 건물을 수호하는 비밀무사들이 없습니까?”

“오천칠비(五天七秘)가 있습니다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째서…….”

설휘가 의아해하자 만답서생이 다시금 설명했다.

“투입하는 사람이 다르기에, 목표 또한 다르게 적용할 예정입니다.”

작전은 한날한시에 진행된다.

태황각주 사마귀는 천사령주 설휘가.

오천각주 당초인은 천부사령주 마태룡이.

“천사령주께서는 초마에 오른 고수임에도 무공에 따른 실력 편차가 큰 편입니다. 특정 상황에서는 실로 놀라운 힘을 발휘하나, 어떤 상황에서는 기대했던 것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지요.”

설휘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그간 자신을 지켜봤던 인사들의 평가인가.

만답서생은 설휘의 들쑥날쑥한 무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태룡 부사령주의 실력은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편입니다. 아무래도 연륜이겠지요? 그러니 대비만 철저히 하면, 표적인 오천각주만 죽인 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허면, 저는……?”

“천사령주께서는 이제껏 대단한 실적을 보여 오셨지만, 그간의 성과는 기습과 선제공격에 국한되어 있지요. 태황각주의 무위는 오천각주보다 더 뛰어납니다. 천사령주께서 기습에 성공하시면 문제가 없지만, 실패하신다면 반드시 싸움이 길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태황소록비가 반응할 것이고, 천사령 대원들, 사령대 조장이던 이들이 합세해서 그들을 상대하게 된다.

“음…….”

그 말에 설휘는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표적에 왜 태황소록비 열이 추가되는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곤마께서도 여유가 없으시군요.”

“사실 그렇습니다.”

만답서생은 순순히 인정했다.

표적은 태황각주.

그를 확실히 척살하기 위해서는 설휘와 마태룡이 동시에 투입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허나, 그래서야 가진 힘이 많지 않다는 걸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설휘와 손발이 맞는 천사령 대원들을 묶어 태황각주를 잡는 곳에 투입한다.

그리고 마태룡을 오천각에 투입한다.

곤마의 패가 많은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다.

그건 거꾸로 말하면, 믿을 수 있는 고수가 없다는 뜻이다.

병법상 위병, 허장성세는 가진 병력이 적을 때 쓰는 전략이지 않던가.

“헌데, 왜 제가 태황각주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설휘가 묻자, 만답서생이 서책을 품에 넣고 지그시 그를 응시했다.

“첫째로 천사령주께서는 얼마 전까지 태황각에 계셨지요. 그 구조를 잘 아는 분이십니다. 지리를 알면 기습에 용이하고, 혹 여차해서 상황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시 빠르게 퇴각할 수 있으니까요.”

“으음.”

“둘째로, 오각은 본교의 무사들이 등용문을 거쳐 처음으로 배정되는 장소입니다.”

오각(五閣).

태황각과 오천각을 비롯한 비상각, 운영각, 서정각.

마교 무인들의 대부분이 본교의 임무를 수행하고, 안면을 익히고, 분위기에 적응하는 곳이다.

당장 설휘만 해도 천향소에서 훈련을 받고 태황각에 배치가 되었다.

물론, 특채의 경우도 있다. 훈련소에서부터 출중한 능력을 드러낸 자는, 따로 간택을 받아 다른 곳으로 차출되기도 한다.

그 외에는 구당(九黨)이 있다.

여기는 평범한 자들이 아닌, 특수 목적으로 영입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당주마다 지지하는 제자들이 달라 굳이 손을 쓸 필요는 없었다.

“태황각주와 오천각주. 그리고 다른 세 명의 각주도 비밀무사들이 제거하게 될 겁니다. 그리되면 당연히 자리가 비겠지요. 그럼 그 빈자리에 곤마께 우호적인 사람을, 혹은 적어도 중립적인 인사를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아하.”

이런 것이 책사일까. 설휘는 만답서생의 큰 그림에 감명을 받았다.

적을 치는 한 수에 여러 가지 요소를 넣고, 돌 하나로 새 여럿을 잡는 계획.

‘그저 일제자의 전력을 깎는 게 목적이 아니다.’

특히 오각을 대표하는 태황각주와 오천각주.

일제자 살마의 지지세력인 둘이 동시에 살해되면, 이는 엄청난 파급력을 낳는다.

그건 삼제자 휘하의 원로 고수들에게 큰 감흥을 주는 것이다.

결행 시기를 대낮, 사람들이 눈 벌겋게 뜨고 있는 때로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날한시에, 동시에 작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대로 된다는 가정하에, 이제껏 침묵하고 있던 사제자 곤마의 입지가 급속도로 커지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원로 고수나, 어쩌면 교주의 흥미를 끌어 후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장래를 위한 포석도 깔고 있었다.

마교의 신입 무사들은, 은연중에 상관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곤마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이 오각의 각주가 되면, 그 아래 무사들까지 자연스레 그리될 것이다.

“오각에서 실력을 쌓은 무인들은 자연스럽게 홍마원으로 올라가며, 거기서 더욱 실력이 오르게 되면 총단까지 오를 수 있게 됩니다.”

“……대단하십니다.”

설휘가 혀를 내두르며 만답서생의 큰 그림에 감탄했다.

* * *

“백유(白柔)라고 합니다.”

“저는 우금(禹今)이라고 합니다.”

이른 아침.

설휘의 수하들에게도 장년인과 중년인이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천사령 대원들의 훈련을 맡은 담당자라고 했다.

두 사람은 대원들을 데리고, 서산 내 중턱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평지가 나오자, 그들은 준비해둔 열 명의 용모파기를 건넸다.

“이건 누군가요?”

요림의 말에 우금이 대답했다.

“태황소록비. 태황각주의 수하들입니다. 미리 숙지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용모파기 밑에는 추가로 이들의 이름, 주로 쓰는 병기와 무예가 적혀 있었다.

검을 쓰는 이가 여섯, 도를 쓰는 이가 둘, 그리고 암기와 기이한 병기를 쓰는 이가 각각 한 명씩이다.

“이거 우리들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거 맞아?”

용모파기 밑에 적힌 ‘초절정’이라는 항목을 보고서 용진은 혀를 내둘렀다.

흔히 초절정이라 함은, 내기 발현이 자유자재로 되는 경지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초식은 일반적인 찌르기나 베기처럼 자연스럽고, 신법은 육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며, 상대의 약점을 재빨리 파악하며 없는 빈틈도 만들어낼 줄 아는 강자.

자신들은 아직 초절정이라 하기에 미숙했다.

그런데 초절정을 한 명, 그 이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어떻게든 해야지. 두 녀석을 못 맡으면, 누군가 세 명을 상대하게 돼.”

소령이 그런 그에게 한마디를 했고.

“뭐, 여차하면 대장께서 도와주시겠지?”

애써 안심하려고 요림이 말을 꺼내자 적송이 고개를 내저었다.

“초마에 오른 태황각주를 상대하셔야 하는데, 여력이 있을까.”

그렇게 모두가 불안 반, 기대 반으로 말을 할 때. 음무기가 심각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역시 이 몸이, 태황소록비 세 명을 상대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

“…….”

다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한 것이다.

“그냥 모두 모여서 태황각주를 먼저 죽이고, 그다음에 이 녀석들을 상대하면 되지 않나?”

“그리되면 좋겠지만, 상황이 좋게만 흘러가라는 법은 없지. 최악의 수도 생각해야 해.”

다양한 말들이 나왔지만, 그런 대화 내용 중 공통된 것이 있었다.

설휘가 태황각주를 죽인다는 것.

거기에는 모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어진 설명의 끝자락.

“자, 그럼 한 분씩 나와서 초식을 펼쳐 봐주시겠습니까?”

파견 나온 백유와 우금에게로 대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앞선 설명 중 나왔던 발언들을 상기했다.

평가 점수는 상(上), 중(中), 하(下)로 나뉜다.

상은 태황소록비 두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

중은 태황소록비 한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

하는 태황소록비 한 명도 제대로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을 말했다.

작전에 나서기 전, 전력의 객관화는 필수. 이들의 능력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저부터 하겠습니다.”

다들 눈치를 보고 있을 때, 홀로 자신 있게 나가는 이가 있었다. 음무기였다.

그는 칼날을 소매로 슥슥 닦은 뒤.

“평가단께서는 아주 놀라운 걸 보게 될 겁니다.”

자신감 있게 엄지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중년인 우금과 한마디 대화를 나눈 음무기가 평온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몸 주위로 기류가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사사사삭.

그가 주로 펼치는 무공, 마령지도법(魔靈池刀法). 과거 갈염 장로가 그에게 하사한 마공이다.

슈슈슉! 사사사삭!

초식은 부드러웠다.

때론 번쩍일 만큼 빠른 쾌도도 섞여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운율처럼 부드럽게 초식을 운용했다.

그리고 종국엔.

솨아아아-

무려 한 지점을 향해 음무기가 네 방향에서 나타나 베는 수법을 보여줬다.

설휘가 준 신병이기의 특수 기술, 종횡비결도였다.

스으윽.

초식을 끝내고 산들바람이 사람들의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

음무기는 바람에 편안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답을 기다렸다.

“훌륭합니다.”

“음.”

예상대로다.

평가단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등급은요?”

“하(下)입니다.”

“……예?”

그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여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자 평가단이 다시 말했다.

“하입니다.”

똑같은 평가단의 말에, 음무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저, 이런 것도 할 줄 아는데요?”

스슥.

순간 잠영투체술로 몸 크기를 줄이는 음무기.

졸지에 아이처럼 작아진 그가 씨익 웃었다.

“하입니다.”

“……이건요?”

손바닥이 갑자기 음무기의 머리통처럼 커졌다.

“하.”

“야이 씨…….”

그때였다.

“역시…… 내가 나설 때인가.”

보고 있던 용진이 이윽고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용진의 초식.

쉭! 쉭! 쉬쉬쉭!

일원소마공을 신속하게 펼친 뒤, 시선을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기대하는 눈빛의 그에게.

“하.”

평가단의 말은 추상과도 같았다.

“……설마요. 잘못 보신 것 아닌지?”

“하입니다.”

용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그리고 그 불편한 정적을 깬 자는.

“하! 하하하! 하!”

“…….”

먼저 하를 받고 쭈그러져 있던 음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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