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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56화 (157/379)

156화. 마를 뛰어넘는 경지 (3)

설휘는 눈앞에서 마태룡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잔상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신법에 의해 생긴 환영 같은 게 아니었다. 바로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는 기류다.

그걸 본 설휘는 하루 전날, 만답서생과의 일을 떠올렸다.

* * *

“뭘 보고 계십니까?”

설휘가 뒷산의 어느 한적한 숲에 앉아 있을 때였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만답서생이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뭇잎요?”

만답서생은 약간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도 이제껏 들를 때마다 설휘가 가만히 숲에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을 보긴 했었다. 그런 행동을 거의 한 달 가깝게 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뭔가 상승의 무리를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한데, 뜬금없이 나뭇잎이라니.

“정확히 말하면, 떨어지는 나뭇잎이 어디로 향할지를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허, 왜 그런 걸 하고 계십니까?”

“처음엔 그저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게 어느샌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보는 게, 뜻밖에도 수련이 되더군요.”

“수련법이…… 독특하군요.”

만답서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기류를 헤아리며 조용히 집중하는 것.

이는 일종의 명상과 같다.

그리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명상은 수련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특히 고수일수록 그런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인에게 경험은 중요하다.

하지만 실전에서 얻는 경험, 무공을 수련하며 얻는 경험이 전부가 아니다.

그간 쌓인 경험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에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명상과 그 명상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다.

정. 기. 신.

신체의 움직임이 마음먹은 대로 향하며, 내력이 자유롭게 수발되고, 무엇보다 의식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야, 그제야 경지의 상승을 노려볼 수 있다.

무릇 더 높은 단계로 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자신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정파의 가르침 중에 그런 것이 있더군요. 계(戒)와 정(定), 혜(慧)를 닦으면 능히 해탈에 이를 수 있다.”

만답서생은 조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도와 마공을 다루는 마교에서는, 정파의 무공이 오히려 방문좌도의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계(戒)는 허공과 같이 마음을 텅 비우는 걸 말하는데, 염불을 계속 외우다 보면 일념이 만념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만념은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일종의 공부(功夫)로군요.”

“그렇습니다. 한없이 고요함을 유지하는 마음을 추구하는 것. 그리 볼 때 천사령주께서 하시는 수련은 나쁘지 않습니다. 매일 나뭇잎이 어디로 떨어질지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검이 향할 위치 역시 알게 될 테니까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만답서생이 본교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불가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는 않지만, 그런 그가 듣기에도 만답서생의 말은 불가의 가르침에서 상당히 깊은 부분에 닿은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개는 맞췄습니까?”

만답서생의 물음에, 설휘가 대답했다.

“도통, 제 예상과 맞지를 않네요.”

“허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작기는 하나 이곳은 숲입니다. 흘러가는 바람, 나무에 부딪혀 흩어진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나뭇잎의 궤적을 한순간에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지요. 그러니 단순히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건…….”

“눈으로는 보고 있습니다.”

“예?”

놀란 목소리로 묻는 만답서생에, 설휘는 잠깐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실은 얼마 전부터 나뭇잎을 살피는 중에, 눈앞에 미세한 기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희미한 잔상이 섞여 보이고 말입니다.”

“기류, 잔상이라…….”

만답서생이 그 말을 따라했다. 설휘는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그런데 이게 좀 왔다 갔다 합니다. 어떤 때는 선명하게 다음 순간의 움직임이 느껴지다가, 어떤 때는 아지랑이처럼 언뜻 비치긴 하는데 자세히 보다 보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합니다. 뭐, 아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만.”

“허어…….”

만답서생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설휘를 빤히 쳐다보던 그가 잠시 뒤 입을 열었다.

“혹, 령주께서는 일원소마공을 익힌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끔 기류와 잔상이 보인다고 하셨고요.”

“그렇습니다.”

“음.”

만답서생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한참 동안 뭔가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내일 시간이 되신다면, 부령주인 마태룡 님과 비무를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예?”

설휘는 다소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 특수 기술을 제외하고는, 아직 마태룡과 겨룰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알고 만답서생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비무라니.

“한번 시도나 해 보시지요, 천사령주. 이 사람이 짐작하는 것이 맞다면.”

만답서생은 설휘의 우려스런 표정에도 고개를 저어 보였다.

“분명 중요한 걸 얻게 되실 겁니다.”

* * *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휘이익!

설휘는 앞서 뻗어 나간 기류가 자신에게로 쏘아져 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대응하기에는 상대가 너무도 빨랐다.

다행히 그 기류를 따라가니, 당장이라도 자신의 몸을 덮칠 듯하다가 마지막엔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게 보였다.

“하압!”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마태룡.

때마침 설휘의 검 끝에서 초검기처럼 보이는 내공이 치솟았다.

캉!

동시에 맞부딪친 칼날을 타고 강력한 힘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크…….”

어떤 무공이 담긴 것인지, 온몸에 저릿함이 느껴질 정도의 충격에, 설휘는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카카카카캉!

몰아치는 검격으로 인해 설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 호흡에 스무 번을 넘게 휘두르는 상대의 공격은, 육안으로 보고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주춤. 주춤.

결국 뒷걸음질하며 이를 악물고 방어했고, 일순 상대의 검이 멈칫할 때.

반격을 위해 상대의 눈을 속일 의도로 살짝 횡으로 이동했는데.

쩌어어어엉!

“…….”

말문이 막혔다.

조금 전, 자신이 있던 자리의 지면이 완전히 깊이 파여 버린 것이다.

가만히 있었다면 즉사할 정도의 초검기였다.

“역시, 제법이시군요.”

휘르륵!

마태룡이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러고는 흐뭇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충분히 몸을 풀었으니,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

그 말에 설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마태룡의 파상공세를 쉽게 막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 *

“저기다.”

설휘와 마태룡의 대련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소령이었다.

주변 부지가 제법 넓긴 했지만, 두 고수의 부딪힘으로 소란이 이는 곳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원들은 차례차례 두 사람의 비무로 몰려들었고, 나름 잘 보이는 위치에 앉아 상황을 지켜봤다.

“이제 막 시작했나봐.”

용진과 같이 움직인 음무기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비무를 지켜보는 것에 매우 신나 있었다.

용진이 그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말했다.

“누가 이길 것 같아?”

“당연히…… 령주님이지.”

“하지만 마태룡 님은 칠사자 중에서도 2번째의 강자야. 실력대로 붙으면 령주님은 절대 못 이기셔.”

“아니라니까. 제대로 싸우면 그냥 쉽게 이긴…… 어? 장비들을 안 가지고 오셨네.”

수하들은 대강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나눠 받은 신병이기로 특수 기술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설휘에게도 그만의 전용 신병이기가 따로 있다는 걸.

“왠지, 본인의 능력을 다 사용하지 않고 상대하시려는 것 같은데?”

소령이 두 사람의 대결을 살피며 말하자, 요림이 씨익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 얘길 들으니 더 재밌겠는데?”

“나 역시.”

적송도 묵묵히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마태룡은 몸속의 진기를 대부분 끌어올렸다.

보통은 상황에 따라 내기를 끌어올리지만, 이번 무공은 미리 예열해 놔야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일격을 펼칠 때만해도 상대가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막상 휘두르고 보니 그건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설휘는 생각보다 잘 막아냈고, 그래서 조금 더 강도를 높이기로 한 것이었다.

‘무슨 생각이지?’

그렇게 마태룡이 나름의 한 수를 준비하는 동안, 설휘는 그다지 태세의 변화가 없었다.

이제껏 그가 주로 사용한 화염이나 빙공 계열의 무공을 펼칠 줄 알았지만, 그런 조짐도 없었다.

뭔가 다른 수를 준비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본 실력만으로 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그런 생각이라면, 지는 거지.’

마태룡의 주력 무공은 크게 세 가지.

그중 가장 애용하는 것은 구천마검(九天魔劍)의 쾌신(快身)이라는 무공이다.

구천마검은 마교를 대표하는 무공 중 하나로, 초식 하나하나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거기에 마태룡은 쾌신이라는 절초에 특히 통달했다.

“후읍.”

진기로 몸의 근골을 이완시켰다가 급수축하는 것으로, 한순간 평시보다 몇 배나 빠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앞서 설휘에게 보인 속도와 힘이 일(一)라고 한다면, 지금은 오(五)에 해당하는 속도와 힘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갑니다.”

“옙.”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마태룡이 움직였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설휘에게 접근해, 그의 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이런.’

검이 허리를 베는 순간, 마태룡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손에 감촉이 있었다.

이번 공격을 설휘가 막지 못하고 베이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스윽.

뜻밖에도 마태룡의 칼에 잘려나간 건, 허리춤의 옷뿐. 설휘는 여전히 굳건히 서 있었다.

“음…….”

약간 상기된 얼굴의 마태룡.

그는 다시 빠르게 검초를 펼쳐냈다.

패배배배백!

찰나에 여섯 번의 초식이 설휘를 향해 펼쳐졌고, 그러고는 검이 멈추었다.

투욱.

“허…….”

검을 되돌린 마태룡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자리에 서 있는 설휘를 보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보고 피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헌데…….”

그 말에 설휘가 멋쩍게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왠지 검로가 보여서 먼저 움직였는데, 그 덕분에 미리 피할 수 있었습니다.”

“보였다고요?”

꿈틀.

마태룡의 눈썹이 움직였다.

설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얼핏…….”

“분명, 초마에 오르지 못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습니다.”

“헌데 어떻게…….”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황당해하는 그를 보며 설휘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군요.”

마태룡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방금 자신이 펼친 공격은 초마에 오르지 못했다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호흡을 끊고, 나아가 상대의 움직임까지 예측하여 펼쳐 낸 초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 움직였다?

검로를 예측하고 미리 피했다?

구천마검은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특히, 빠르기에 한해서 쾌신보다 더한 초식은 없다시피 했다.

“알겠습니다. 이젠 정말 제대로 상대해 드리지요.”

그렇게 몇 발짝 물러나는 마태룡.

분노인지 호승심인지 모를 열기로 그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고, 설휘는 덕분에 당혹스러웠다.

‘기류가…… 살아 움직이고 있어.’

생경한 기분이었다.

비무 중에 깨닫기로, 기류가 먼저 자신에게로 쏘아지고, 그다음에 마태룡의 공격이 들어왔다.

이게 대체 무슨 현상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이제껏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아…….’

뜨끔!

순간 정수리 쪽에서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몸속을 흐르는 진기가.

뚜두두둑.

운기조식을 하는 것처럼 설휘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으…….”

그 순간, 설휘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개안이다.

더 높은 경지로 오른다는 신호였다.

문제는……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이었다.

“갑니다.”

단단히 각오를 다진 마태룡의 얼굴이 보이자, 설휘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큰일이야.’

마태룡은 한층 더 예리한 검초를 퍼부을 터였다.

조금 전 운 좋게 빗겨 낸 회피 동작으로, 자신의 역량을 너무 높이 평가한 모양이었다.

사실 설휘 자신은 긴가민가하는 애매한 감각에 몸을 맡겼고, 운 좋게 피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걸 모른다.

‘말해야 하는데…….’

그래서 그걸 표시하려는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전신 경락에는 간질간질한 감각이 느껴졌고, 반쯤 열렸던 백회혈이 지금은 완전히 열려버린 상황.

여기서 억지로 입을 열어서 말을 하다가는, 겨우 찾아온 깨달음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 터였다.

그렇다고 어떻게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자니.

쩌어어엉.

마태룡의 검에 기(氣)가 담겼다.

검기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였다.

‘이를 어찌!’

그럼에도 설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적어도 일각은 홀로 운기조식을 해서 지금의 내기 흐름을 완전히 습득해야 했다.

“하앗.”

그 상황에서 마태룡이 움직였다.

설휘는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라,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

이렇게 개죽음을 당하는 건가 싶던 그때였다.

[일원소마공 '기류의 묘'를 익혔습니다.]

이 상황을 구원해 줄 뭔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사대극마공의 풍과 관계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잠시 제쳐 놓고 있었던 일원소마공에서 특수 기술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 일원소마공 특성 기술표 ◆

‘발동의 조건이……?’

기류의 묘(妙) : (하루 한 번, 1회 사용)

(눈을 세 번 이상 연속으로 깜빡임)

참으로 뜻밖이었다.

특성 기술표는 설휘가 즉시 펼칠 수 있는 조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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