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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57화 (158/379)

157화. 마를 뛰어넘는 경지 (4)

일원소마공.

은영단의 모든 대원에게 내려지는 무공으로, 후발선제의 묘를 활용하는 기본공이다.

상대가 쓰는 병기, 동선 등을 예측하며 대응하는 수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허나, 이 무공은 특이하게도 그 원류가 마교에 있지 않았다.

과거 설휘를 가르친 교육관주의 말로는, 도술과 무공을 함께 익히는 옛 고대 문파인 전진파의 일원공이라는 무공을 마교의 무공에 접목시킨 것이라 했다.

전진파.

분명 도교의 맥을 잇지만, 그들은 도인답지 않게 성정이 거칠기로 소문이 났는데, 그중 구처기라는 도인의 행보는 특히나 유명했다.

강호를 활보하다가 악인이나 탐관오리를 보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고, 심장을 뽑아서 소금에 절여 술안주로 씹어 먹었다고 하니까.

일원소마공은 그런 자유로운 성정을 가진 전진파의 무공을 원류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정파의 무공이면서도 거칠고 광포한 구석이 있었고, 마교의 무공과 섞이기 좋았다.

그러면서도 근원은 달랐는데, 일원공은 후대의 손길이 가해진 마공이 아니라, 태초에 생명과 죽음에 근원을 둔 일원지기의 형태였다.

이런 복잡한 이유와 여러 우연 덕분에, 설휘는 깨달음을 얻었다.

예측.

바람결에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낙엽이 향할 경로를 예상하는 것.

제대로 된 수련이라고는 생각 못 했던 이 습관은, 사실 일원소마공의 원류인 일원공의 전통적인 수련 방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어쩌다 보니 설휘는 이미 익혔다고 생각했던 일원소마공을, 한 단계 더 원류에 가깝게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가 ‘기류의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기류의 묘가 발동됩니다.]

눈을 세 번 깜빡이자마자, 설휘의 몸에서 확 하고 이변이 느껴졌다.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느낌과 함께, 단전이 활짝 열렸다.

내기가 임독양맥의 통로를 따라 소주천으로 흘러 한 바퀴 휘돈 다음, 단번에 중단과 상단이 열리며 대주천을 이루었다.

꽈르릉!

그 순간 한 가닥 뇌성과 함께, 눈앞에 희미하게 보였던 기류들이 수백, 수천 개의 가닥으로 늘어났다.

이제껏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었던 것이 이제야 확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건?!’

하지만, 그런 조화를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반월을 그리며 이동한 마태룡이 허공에서 나타났고.

그의 검에서 수십 가닥의 초검기가 발산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망할.’

설휘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이제 막 한 단계 경지 상승을 한 찰나에, 하필이면 전력을 다한 기공 발현이라니.

피하기엔 늦었고, 막아선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나라면 어찌해보겠는데, 쏘아지는 초검기는 무려 수십 개에다가 노리는 범위가 너무나 광범위했다.

‘오질라게도 운이 없지.’

설휘는 자신의 죽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몸을 앞으로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

기껏해야 팔 하나 들어 올릴 수 있는 상태에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손 놓고 죽을 수는 없다 싶어, 뭔가 해보겠다고 검을 위로 드는 순간.

콰콰콰콰쾅!

설휘가 있던 일대의 지반이 무너져 내렸다.

검기보다 더욱 강력한 초검기는 지반을 예리하게 뚫고 상당한 깊이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거대한 파동과 흙먼지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쿠르르르릉!

‘……!’

마태룡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설휘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쏘아낸 십수 개의 초검기도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휘이이이이잉!

설휘의 몸에서 생성된 기류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드드득. 드드드득.

무형의 초검기를 막아내는 것과 동시에, 그것들을 한데 묶어 버리는 변화를 만들어냈으며.

쐐애애액!

급기야 날아온 방향으로 다시 되돌려 날려 보내는 기예까지 보였다.

“……헉!”

그 모습에 마태룡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생각도 못 한 광경이었다.

자신이 쏘아낸 초검기가, 외려 다시 자신에게 날아올 줄은.

“으압!”

마태룡이 전력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패애애액!

십여 개의 초검기가 하늘을 수놓았다.

이제는 설휘가 아닌 그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버린 것이다.

***

“뭐,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음무기와 용진이 눈을 껌뻑였다.

설휘와 마태룡.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서 마태룡의 한 수가 터져 나왔다.

그가 끌어올린 내력은 실로 거대했고, 일순간 시야에서 놓칠 정도로 빨랐다.

이후, 반원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에서 나타난 마태룡.

음무기와 용진이 그의 움직임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그의 검에서 수십 가닥의 초검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 저…….”

대장이 죽는다!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고, 지켜보던 이들이 모골이 송연해질 만했던 상황.

그런데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충격이었다.

휘이이이익!

사방을 수놓은 초검기는 설휘의 몸에 닿지도 못했다.

강맹했던 움직임이 잠깐 사그라들어 멈추는 듯하더니.

쐐애애액!

다시금 공력을 쏘아낸 마태룡 쪽으로 날아가 그를 공격해 가고 있었다.

“기. 기운을 돌려버렸어?”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두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 옆에 온 적송과 요림의 반응도 비슷했다.

다른 기운도 아닌 초검기다.

내기에 빛이 살짝 감도는, 일반적인 검기보다 몇 배나 강한 기공이다.

그런데 그 파괴적인 기공이.

상쇄되지도 공멸되지도 않고서 기류에 휩쓸리더니, 멋대로 방향을 바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설마…… 건곤대나이?”

요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소문만 무성한 전설적인 신공이다.

적의 공격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아치는, 마교의 호교신공.

“아니. 야, 아무리 그래도 건곤대나이는 좀…….”

“나도 같은 생각이야.”

적송이 고개를 저었고, 소령도 동의했다.

건곤대나이는 마교 최대의 비전절기.

교주, 혹은 극히 일부의 원로들 빼고는 전해지지 않는 비전이다.

그런 걸 설휘가 익혔을 리가 만무했다.

무엇보다, 건곤대나이는 위력만큼 숙련하기가 괴랄하여, 초마에 오른 자가 썼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극마쯤 되어야 겨우 흉내 정도만 낸다고 했으니.

“아닙니다. 제 눈에는 매우 흡사해 보여요.”

“……!”

“……!”

“……!”

순간 요림과 적송 소령이 펄쩍 뛰어올랐다.

대체 언제 와 있었는지, 조그만한 소년이 어색한 동작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소. 소. 송화……?”

“너, 계속 거기 있었어?”

“아. 예. 죄송합니다. 몰래 보느라 은폐술을 사용 중이었는데, 괜히 말을 붙이기가…….”

요림의 말에 송화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들 한참 집중하는데 괜히 저 여기 있어요. 하기도 애매해서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렇고 건곤대나이와 비슷하다고?”

적송이 다시 묻자, 송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장님은 마태룡 님의 초검기를, 단순히 되돌리는 수준을 넘어, 한동안 그 힘을 묶어놓았습니다. 이건 원하는 대로 기류를 흔든다는 뜻인데…… 제가 알기로 본교에서 그게 가능한 무공은 건곤대나이뿐입니다.”

“그럼 대장은 설마 교주의…….”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그보다, 네 말은 우리 대장이 극마에 올랐단 말이야? 언제?”

“어…… 그건 아닐 겁니다. 극마에 오른 느낌은 아니라서.”

다들 의아해했다.

다만 확실한 건, 설휘가 펼친 무공은 자신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설휘의 검이 느리게 반응해서 망정이지, 빨랐다면 마태룡은 즉사했을 거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스스스스-

때마침 설휘의 몸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송화가 신음을 흘렸고.

“이건……?”

소령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경지 상승 때 나타나는 변화야.”

***

“후우. 후욱.”

거친 숨을 내쉬던 마태룡은, 뒤늦게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쏘아오는 초검기 탓에 어찌나 급했던지. 제대로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냅다 몸을 날리고 굴려 피해냈다.

“다행이구나. 후아아.”

전신이 말짱한 걸 느끼고서,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 기분이었다.

처음에 천사령주에게 공격을 가했을 때, 그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너무 많은 힘을 퍼부어서, 자칫 그를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헌데, 아차했더니 이게 웬걸? 령주의 몸에서 괴이한 조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어진 반격.

자신이 쏘아낸 기공. 그것도 초검기를 그대로 자신에게 되돌려줄 줄이야.

덕분에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

마태룡은 다짜고짜 따지기 위해서 성큼성큼 걸어가다 흠칫했다.

“려, 령주?”

설휘는 어느새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어른거렸다. 마태룡은 그게 무슨 현상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초마에 오르고 있다.’

내공이 극한에 달해, 일시적으로 정수리 인근에서 몇 줄기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정도문파에서는 이를 삼화취정이라 말한다.

물론 마교의 내공은 그와 살짝 성격이 달라, 꽃 같은 영롱한 기류 대신 사나운 야수의 형상이나 새카만 검은 기운이 먹구름처럼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어?’

과연 설휘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하고 지켜보던 마태룡의 미간이 좁혀졌다.

스스스스.

빛무리는 점점 강해졌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마성이 폭주하여 광폭한 기세를 뿜어내고, 그다음으로 내공이 증폭하기 마련인데.

그런 기미가 일절 없었다.

스르륵.

그렇게 너무도 얌전하게 머물러 있던 빛무리는, 얼마 후 설휘의 머리 안으로 다시 들어가며 잠잠해졌다.

번쩍.

그와 함께 가부좌를 틀었던 설휘가 눈을 뜨고 일어섰다.

“초마에 오르지 못했다는 말씀이…… 사실이었군요.”

마태룡이 어이가 없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거짓말이겠습니까?”

설휘는 가볍게 웃었다.

완전히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다.

온몸이 너무도 가벼웠고, 주변의 사물도 훨씬 더 또렷이 보였다.

이런 것이 경지 상승이라니.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헌데…… 령주님. 이상하게도 마기가 짙어지지 않고, 오히려 옅어졌습니다만?”

“그런가요?”

설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예전과 달리, 난폭하게 움직이던 진기의 흐름이 오히려 안정되어 있었기에.

“아마도 제가 마성에 부적합 판정을 받아서 그런 듯합니다.”

“예? 아니…… 설마 정종무공으로 경지의 벽을 부쉈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일원소마공……?”

“아마도요.”

“아…….”

마태룡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성에 부적합하다고 평가되었는데도, 초마에 올랐다니.

그런데 그 수단이 하필이면 정종무공이라니.

마태룡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설휘가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그것이…….”

잠깐 침묵한 마태룡. 그가 뭐라고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령주님.”

“령주!”

때마침 나타난 천사령 대원들.

“그래. 왔느냐.”

설휘와 마태룡은 그들이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다.

“마지막에 쓴 건, 대체 어떤 무공입니까?”

음무기가 다짜고짜 물었다.

“그거, 저도 익히게 해 주십시오.”

“저도요.”

이리저리 말하는 수하들을 보며 설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마태룡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일단.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룡은 슬쩍 예를 차리며, 그렇게 자리를 벗어났다.

뭔가 중요하게 말할 게 있지만, 꺼려진다는 인상을 내보이면서.

‘뭘 말하려고 한 걸까?’

설휘는 그 모습이 신경 쓰였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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