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59화 (160/379)

159화. 태황각 침투 (1)

전투방식

전투방식을 바꾼 뒤, 설휘는 잔뜩 들떠 있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눈앞에 갑작스런 글귀가 날아들었다.

[불가!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전투 중이거나 위험한 상황이 아닐 시, AI를 실행할 수 없습니다.]

“어……?”

예상치 못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AI는 다른 전투방식과 달리 한 가지 법칙이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나, 전투 상황이 아니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과거, 평상시에 그를 불러들인 적이 없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음.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던 설휘는 한쪽에 비치된 풍운극마검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이러면 될지도 몰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설휘는 검을 집어 들어 검집에서 검을 뽑아냈고.

철컥.

“흠.”

잠깐 주변을 둘러보며 망설이던 그는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통의 방식으로 불러들일 수 없다면, 위험한 상황을 만들면 될 것 아닌가.

휘익!

설휘는 들고 있던 검을 위로 던졌다.

빙빙 돌며 올라가던 검은, 천장에 닿을 듯한 상태로 더는 올라가지 않았고.

이내 회전하던 검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전투방식

변경이 되었다.

전투방식이 바뀌었고, 이전의 불가능하다는 통보가 날아오지 않았다.

‘해냈…… 어?’

그런데 설휘는 창졸간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껏 경험해 본 바로는, AI제로 바뀌자마자 몸이 위로 주욱 밀려 나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맞은 편, 천장이 아닌 자신의 몸으로 변한 AI를 정면으로 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지지직!

본래의 몸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었다.

허리와 가슴이 갈라진 모양이었고, 실제 몸도 환영처럼 변했다가 본래로 돌아오길 반복하고 있었다.

찌이이이잉!

심지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귓가에 이명까지 들렸다. 거기다.

콱!

검이 분명히 AI설휘의 몸을 가르며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 말은 아직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

보일 듯 말 듯한 환영과 본 모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 이봐. 뭐라고 말 좀…….

급히 말을 걸었는데, 때마침 자신을 보는 AI설휘 역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보며 눈을 껌뻑였고, 이내 몇 개로 갈라지는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게 무슨……. 너, 초마에 어떤 방식으로 오른 거야?”

- 뭐……?

지지직. 지지직.

이명과 함께, 또다시 몸이 반쯤 갈라지거나, 흐려졌다 나타나기를 몇 번.

그러다 어느 순간,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입을 열었다.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 아…….

확실히 이상했다.

AI설휘의 모습이 구현되지 않는 것도 그렇고…… 말의 의미도 잘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마기…… 마기가 부족하면…… 날 불러낼 수…… 없다고!”

이 외침이 마지막이었다.

슈르륵!

AI의 모습이 눈앞에서 확 하고 사라졌고, 다시 몸으로 돌아간 자신은.

“크헉.”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드드득. 우드드득!

진기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단전을 통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제멋대로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큰일이다!’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설휘의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드드득. 드드드득!

기경팔맥 내의 모든 혈 자리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다.

주화입마의 전조.

설휘가 기운을 제어하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이미 날뛰기 시작한 진기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설휘는 이를 악문 채 가부좌를 틀었다.

지금 이 기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기가 백회혈로 일시에 몰리게 되면, 그대로 인생은 쫑나는 것이었다.

“크으으…….”

설휘는 급히 기운을 다스리려 노력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를 않았다.

거대해진 하단전뿐만 아니라, 이미 중단전과 상단전까지 개안한 만큼. 통제해야 할 기운들이 너무 많았다.

그로 인해 우선 날뛰는 기운을 억누르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통제를…… 어떻게든 막아야…… 아!’

꾸르르릉!

백회혈에서 벼락이 치는 듯했다.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기운들이 설휘의 정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주화(走火)는 몸속 신기(神氣)가 범위를 넘어가 다시 연동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며, 입마(入魔)는 의식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설휘는 이미 주화를 넘어서 입마로 이어지는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이제 더는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대로 끝나는…… 어?!’

터억!

그때였다.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던 단전이 한순간 강력한 기운의 개입으로 인해 멈칫했다.

등 뒤의 명문혈. 그곳을 통해 들어온 낯선 기운 때문이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일단 집중하십시오.”

‘……마태룡!’

낯익은 목소리. 설휘는 자신의 등 뒤로 내력을 넣어준 자가 누구인지를 알고서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드드득. 드드드득.

천만다행이었다. 폭주하던 기운은 같은 성질의 기운이 들어오자,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구르르르릉.

그도 그럴 것이 마태룡은 마를 뛰어넘은 자.

제멋대로 날뛰는 설휘의 마기를 천천히 제압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뚝. 뚝. 뚝.

땀이 송글송글 맺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설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까지 오자, 이제는 반격이 시작했다.

드드득.

폭주하는 기운을 누르고 정제하여, 다시금 정상적으로 되돌렸다.

그렇게 일각 정도가 더 흘렀을 때 쯤.

설휘는 식은땀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사령. 덕분에 목숨을 구함받았습니다.”

“별말씀을. 제가 적절한 순간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후드드득.

설휘와 마찬가지로, 마태룡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초마의 고수인 그가 이런 비지땀을 흘리다니.

설휘의 상황이 그만큼이나 위험했었다는 것이다.

“혹여나 싶었는데…… 역시군요. 노파심에 찾아오길 잘했습니다. 어휴.”

“부사령. 혹, 제게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를 아십니까?”

설휘는 떠오르는 것이 있어 물었다.

생각해 보니, 마태룡은 이전에 자신에게 뭔가 말을 하려던 기색을 보였다.

천사령 대원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뒤로 밀려 버렸지만.

“령주님.”

마태룡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그는 조심스레 설휘에게 물었다.

“지금 익히시고 있는 것 중, 마공이 아닌 정종무공도 있으시지요?”

“예. 그렇습니다.”

“초마에 이르는 길은 보통 소유하고 있는 마기가 깨달음이나 무공을 통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열리게 됩니다. 헌데 령주께서는 그 전에 이미 정종무공으로 깨달음을 얻으신 겁니다.”

“……?”

“쉽게 말해, 본교의 초마에 오르신 게 아니라, 정파에서 말하는 입신에 오르신 겁니다.”

“아…….”

설휘는 무엇이 문제가 된 건지 깨달았다.

원래라면 마공을 연성해나가다 초마에 오르는 법인데, 어떻게든 살기 위해 수련을 하다 보니 영 이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마공을 담고 있는 몸으로, 정종무공이 경지에 올라 크게 대성을 해 버렸다. 이러니 탈이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럼 전 어떻게 하는 게 맞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스승님께서 이런 경우를 대비해 당부하신 말씀이 없으십니까?”

“스승님……?”

“냉철마녀 천미려 님 말씀입니다.”

“…….”

설휘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그가 천미려의 제자라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게 돌고 돌아 이렇게 되니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천사령주께서는 극양의 화공과 극음의 빙공을 동시에 익히고 계시지요?”

“아, 예.”

“그리고 그게 스승이신 천미려 님의 당부였다고.”

“그, 그렇습니다.”

주륵.

설휘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조금 전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식은땀이었다. 마태룡이 그를 보았다면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겠지만…….

“흐음…….”

다행히도 그는, 방금 일어난 사태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천생 무인인 그에게는, 이런 의외의 상황 자체가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었기에.

“부족한 제가 추정해 보기로,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이 있습니다만.”

한참 생각과 고민을 이어가던 끝에, 마태룡이 입을 열었다.

“고견을 듣겠습니다.”

“예. 아마도 음기와 양기의 충돌이 빈번한 령주님의 내공이, 내기의 성질을 변이시킨 듯합니다.”

“내기의 성질이…… 변한다고요?”

“예. 정파의 경우로 생각해 보면 쉽지요. 저들 말로는 안정적이고 심신을 맑게 해준다는 그 내공심법도, 가끔은 폭주를 해서 주화입마에 들게 하거나 아니면 심성이 변화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아.”

확실히 그런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역사가 오래된 정종의 무공이라 해도, 전해 내려오는 수련법을 정확히 따라 해도, 개인마다 심성이나 자질이 다르다.

정순한 정종의 내공을 수련하다 말고, 뜻하지 않게 주화입마를 일으켜 죽거나 미쳐서, 살육에 맛을 들인 강호 공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마태룡이 보기에는 설휘는 그와 정반대였다.

“아무리 기본이 마공이라 해도, 음공과 양공은 서로 상극이지요. 두 가지의 내공이 충돌하면서 전혀 새로운, 그러니까 마공이 아닌 정종무학의 내공이 자라나게 된 겁니다.”

“…….”

“이건…… 큰 발견입니다! 령주님께서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 전인미답의 새로운 길을 걷고 계십니다. 당장이라도 본교의 무공 연구기관에 보고를 하는 게…….”

“부사령, 안됩니다.”

설휘는 쓰게 웃었다.

잔뜩 흥분한 마태룡은 왜 그러냐는 듯 갸웃했지만, 애초에 그는 영 잘못 짚고 있었다.

설휘가 익힌 여러 마공은 출처를 댈 수 없는, 시스템이란 녀석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는 본시 천미려의 제자도 아니었다. 스승이라 둘러댄 그녀가 세상에 나오지 않아서 이제껏 거짓말이 통했지만.

정말 본교의 본단에 이런 이야기가 올라가게 되면, 천미려 본인이 흥미를 느끼고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녀가 제자로 들인 적도 없는 설휘에게서 자신의 무공을 보게 되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당당한 천마신교의 사람인 제가, 정파의 정종무공을 몸에 담은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제껏 저는 별 이름도 없는 무명소졸이었지만, 점점 주위의 이목을 끌게 되면 자칫 악의적인 소문이 돌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간…….”

“곤마 님께도 폐가 가겠군요. 저런…….”

마태룡이 알아들었다는 듯 혀를 찼다.

지금 설휘의 경우를 정파의 경우로 바꿔보면 이해하기 쉬웠다.

소림사나 무당파 같은 명문 대파의 후기지수가, 금지된 마공을 익힌 것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리되면 영 위험하십니다만…….”

따라서 비밀로 해달라는 설휘의 말. 마태룡은 납득하긴 했지만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전인미답.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이라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한 몸에 정종무공과 마교의 마공을 동시에 담은 설휘. 마태룡이 보기에는 마공도 이미 초마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아니, 어떤 건 초마를 넘어섰다.

심지어 그는 극음과 극양의 마공을 동시에 익혔으니.

어느 순간 어떻게 주화입마가 다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제 문제니까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어차피 본단에 보고한다고 해서 당장 풀릴 문제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아무리 고수와 기재들이 많은 마교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없던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설휘의 경우는 애초에 사례가 없던 일이니, 본단에 보고해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는 않을 터였다.

“그보다 어쩐 일이십니까? 이 야심한 시간에.”

설휘는 복잡한 머리를 털어내며 말을 돌렸다. 고민이 되긴 했지만, 당장은 이런 주제가 부담스러웠다.

“아. 그러고 보니.”

마태룡이 이마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심도 있었지만, 그가 이 시간에 설휘를 찾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노파심도 노파심이지만, 아마도 내일이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내일…… 혹시?”

설휘는 퍼뜩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에 마태룡이 끄덕였다.

“예, 저희 임무 말입니다. 곤마께서는 가능한 한 시간 끌지 않고 즉각 시행하실 모양입니다.”

설휘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태황각주.

결전의 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