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이원마공(二元魔功) (3)
챙! 챙! 카캉!
태황소록비와 천사령의 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첫 수에 두 명을 날려버리긴 했지만, 이곳은 그들의 본진. 숫자는 태황소록비가 더 많았다.
그리고 요림의 특수 기술은 더는 이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하앗!”
“하앗!”
정확히 말하면, 요림을 전담한 태황소록비 두 명이 기술을 쓸 여유를 주지 않은 것이다.
“칫.”
요림은 신음을 흘렸다.
과연 태황각의 경비다웠다. 소록비 두 명이 함께 펼친 연합 공격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여왔다.
“너흰 지치지도 않냐!”
투욱.
양쪽의 공격을 막으며, 지붕 아래로 떨어진 요림이 소리쳤다.
어찌 된 게, 체력이 엄청나게 좋았다. 내력은 자신보다 부족한 것 같은데, 지구력만큼은 몇 배는 되는 것 같았다.
“하압!”
요림은 사방에 기공을 쏴버렸다.
큰 기술인만큼 이들은 피해버렸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다른 곳은…….’
싸움이 한창이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아, 송화!’
지붕 위에 홀로 서 있는 소년. 그리고 그를 향해 다가오는 또 하나의 소록비가 보였다.
“큭! 이런!”
주변을 살펴봤지만, 송화를 신경 쓰는 대원들은 없는 듯 보였다.
***
스윽.
송화의 눈에 한 명의 무인이 감지되었다.
소령을 집중 공격하던 두 무사 중 하나가, 잠깐 시간을 내어 빠져나온 것이다.
“애새끼가…….”
무사에게 송화는 너무도 만만한 상대였다. 그리고 반드시 죽여야 할 상황이었다.
전체적으로 치열한 접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에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적들 중 한 명이라도 죽인다면 기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렇게 다가오는 적을 보면서도 송화는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만만해 보였나요?”
“하, 애새끼가.”
소록비 무사는 어린애와 말을 섞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자세를 낮춘 그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고, 그대로 송화의 가슴에 검을 쑤셔 박았다.
‘어?’
훅.
헌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분명히 찔렀는데 손에 감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이 아이의 표정도 한없이 밝기만 했다.
“좌도의 기술 중 하나인 장안법(障眼法)이라는 겁니다. 상대의 시야를 가리는 수법이지요.”
“이, 이노오옴!”
그는 주변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사술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휘릭!
전력으로 휘두른 덕분에 술법이 풀렸는지 멀리 떨어져 있는 소년의 등이 보였고, 그는 지체 없이 달려가 그 등짝에 칼을 찔러 넣었다.
“흥! 젖비린내 나는…….”
“크헉!”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상하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소년의 모습이 점차 변하더니, 이내 큰 성인이 되었다.
“어…… 어?”
칼끝에 보이는 건 태황각의 무복.
소록비는 얼떨결에 아군 대원 하나를 죽인 것이었다.
“장안법에 대해 좀 더 높은 이치를 깨달으면 시야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요.”
“어, 어…….”
아무리 독한 무사라 해도, 같은 편을 죽였다는 충격은 컸다. 소록비는 본능적으로 몇 발짝 뒷걸음질 쳤다. 그걸 소령이 놓칠 리 없었다.
푸욱-
소록비 무사의 목이 너무도 쉽게 날아갔다.
“네가 한 거니?”
소령이 거칠게 호흡하며 묻자, 송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위를 한 번 바라보더니 짧게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가 유리해졌네요?”
남은 소록비 무사는 여섯.
천사령 대원 숫자와 같아진 것이었다.
“대장은 잘하고 계시겠죠?”
“당연하지!”
기세를 탄 천사령 대원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
‘이자가 어떻게 여길…….’
화산파의 구종명.
설휘는 눈앞에 있는 그를 보고서 혼란에 빠졌다.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정도 문파의 골수중의 골수인 화산파의 고수.
그가 무슨 이유로 태황각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만났다 하면 서로 적대시하며 쳐죽이기 바쁜 마교의 최중심에 말이다.
‘그간 일제자와의 교류를 생각해 보면…….’
설휘는 급히 생각을 전환했다.
이건 이제껏 듣고도 내심 반신반의했던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일어난 괴리일 뿐이다.
적대적 공생관계.
화산파와 손을 잡고 마교의 휘하 세력을 공적 거리로 내준 일제자 살마.
이들의 관계가 기존의 예상보다 훨씬 더 끈끈하고 단단하다면, 이야기는 맞아떨어진다.
“내 이름이 무언지, 그게 중요하오?”
“호오?”
구종명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에 설휘는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태황각주는 이번에 큰 실수를 했소. 일제자께서는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 거지. 목숨으로. 그만큼 그쪽과의 약속을 중히 여기신다는 거요.”
설휘는 머리를 굴렸다.
태황각주를 죽인 이유를 사제자의 것이 아닌, 일제자의 것으로 바꿔서 대답했다.
구종명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가 불쾌해하는 얼굴을 보며, 설휘는 속으로 애간장이 탔다.
‘제발. 제발 맞아야 하는데…….’
살마와 화산파는 거래 관계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거래.
헌데 이번 거래에서 화산파는 크게 손해를 보았다.
그 때문에 격분한 구종명이 태황각주에게 따지려고 들어온 것이라면.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자연스럽게 보일까?
“해서, 귀파의 요구사항은 어찌 되오? 과하지 않은 요구라면 들어드릴 테니 말씀하시오.”
“흐음?”
구종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태황각주의 시신을 보고 푸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구만. 아무리 마교라고는 해도, 타 세력과의 연락책을 이렇게 처죽이는 동네라니.”
“본교를 귀파처럼 생각하지 마시오. 이제 와서 생각이 달라지신 건가? 아니면 뭐요, 그간 태황각주와 정이라도 드셨나?”
“……말버릇이 참으로 더러운 놈이구나.”
화악!
구종명의 얼굴이 굳으며, 강렬한 살기가 설휘에게 퍼부어졌다.
찌리릿. 부들부들.
화경의 고수가 쏘아내는 살기에 설휘는 손발이 다 떨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다행히도, 이후에 나온 말은 부정적인 게 아니었다.
“하아, 그래. 마교놈들이지. 이 더러운 마굴에서 네놈들끼리 서로 얼마나 치고받든,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그것보다…….”
카악! 퉤!
태황각주의 시신에 가래침을 뱉어낸 구종명이,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을 보내왔다.
“죽은 본파 제자들의 목숨 값을 받아내야겠다. 이번에 너희가 처신을 잘못하는 바람에, 죽지 않아도 될 아이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
“그 점은 알고 있소. 그래서…….”
“이번 달 내로 삼백.”
투욱.
검집으로 땅을 짚으며 구종명이 말했다.
“칼받이 마인 삼백을 투입해라. 그게 본파의 요구사항이다. 쥐어 짜내든 어쩌든, 최소 삼백의 머리통이 필요하다. 알겠나?”
“알겠소. 그리 하겠소.”
“어?”
구종명의 찌푸려졌던 미간이 바로 펴졌다.
“삼백을 정말 보내겠다고? 이번 달 안에?”
그에 설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상대가 구종명이라서, 싸우면 무조건 죽는다 싶어서 너무 쉽게 받아들여 버린 것이다.
생각해보면 태황각주의 역할은 연락책. 그리고 교섭인이었다.
“내 말은…… 일단 상부에 그리 보고를 하겠다는 말이오.”
화산파와 일제자의 관계는, 하나를 내주면 하나를 받아야 하는 관계.
아마도 이제까지 거래를 할 때, 서로 밀고 당기며 흥정을 했을 터.
달란다고 덜컥 내주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여지가 있었다.
“본교도 이번에 피해가 커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애는 써 보겠소.”
“흐음.”
미심쩍어하는 구종명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그에 설휘는 화제를 전환했다.
“투입할 지역은 어디요? 삼백이나 되는 인원을 일시에 넣으려면, 보통 격전지로는 안 될 텐데?”
“장강 삼협 중 하나인 구당협(瞿塘峽)에서 남쪽으로 이백 리 떨어진 곳. 중산파(重山派) 주변의 지역이다. 그것도 모르는 건가?”
구종명의 눈매가 다시 사나워졌다. 덕분에 설휘는 다시 한번 식은땀이 흘렀다.
“내 전임자가 끝까지 말을 하지 않더군. 아마 제 목숨이 걸린 문제라서 그랬던 모양이오.”
“흥, 형편없군. 중산파 전선은 본파가 무당파와 경쟁하는 지역이니, 주의 깊게 밀어 넣어야 한다. 자칫 태가 나면 곤란하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시오. 이쪽도 목숨이 걸려 있으니. 차후에 다시 기별을 보내겠소.”
설휘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최대한 빨리 이자를 보내버리는 게 신상에 이로워 보였다. 어설프게 아는 척했다간 마각이 드러날 터.
기껏 태황각주를 죽여놓고, 잠입한 화산파 고수에게 죽는다는 터무니없는 결과를 맞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럼 살펴 가시오. 이쪽은 바빠서……. 이번 달 안으로 삼백, 숫자를 맞추려면 이쪽도 일이 많을 테니.”
“그래. 뭐 그럭저럭 말이 통하는 친구로군. 기껏 마굴까지 행차한 보람이 있어.”
고분고분한 태도가 구종명의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그는 흘흘 웃으며 설휘를 보내주었다.
‘살았다.’
지금 그는 일제자의 휘하를 사칭해서 선심성으로 빈말을 했다. 이대로라면 나중에 화산파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격분해서 다시 격돌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왜?
저 둘이 싸우는 건 오히려 환영할 일이었다.
살마와 화산파가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무슨 비밀을 더 감추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괜히 기웃거리다간 위험해질 수 있다.’
이 자리에선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는 게 답이었다. 설휘는 태황각주의 장도를 쥔 채 걸어 나갔다.
헌데.
“어이. 그런데 마교 친구.”
사삭.
어느 순간, 분명히 뒤에 있었던 구종명이 설휘의 앞에 나타나서.
“이제 보니 자네, 일제자의 수하가 아니구먼?”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
휘이잉.
순간, 고요하던 공기가 거세게 흔들렸다. 발각되었다는 생각에 설휘는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설휘는 우선 오리발을 내밀어 보았다.
들켰다. 하지만 어디서?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더군. 내가 마교놈들을 많이 처죽이긴 했지만, 내 얼굴을 아는 마교놈은 그다지 많지 않거든.”
저벅저벅.
한 발짝씩 걸어오는 구종명의 압박감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태황각주와는 비교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의 기세. 그런 것이 설휘의 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헌데 네놈은 날 보자마자 바로 알아본 기색이었단 말이지. 어디서냐, 어디서 날 본 거지?”
“그거라면 용모파기로 접했소. 당신에 대해선 본교에서 위험수위 1급으로 교육받은 적이 있지.”
“흘흘흘, 어설프구나. 넌 날 처음 본 순간부터 기맥이 요동치고 심박이 빨라졌어. 그 얘긴 날 보고 당황했다는 거야.”
구종명에게는 빤히 기색이 드러난 모양이었다.
‘제기랄. 어떻게 하지? 기습? 아냐. 그럼…….’
일제자의 수하가 아니라는 말.
그것은 다른 제자의 수하라는 뜻이고, 이것은 곧 본교에 숨어든 구종명의 존재가 알려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구종명이 그것을 허용할 리는 없었다. 그는 당연히 설휘의 입을 막을 생각이었다.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나?”
고민하는 설휘에게 그는 여유롭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도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확신에 찬 듯 보였다.
설휘는 거기서 흥정을 시도했다.
“날 보내준다면…… 말씀하셨던 화산파의 목숨 값을 몇 배는 더 쳐주겠소.”
“아니, 방금 더 좋은 게 생각났어.”
“……?”
“널 죽여서 일제자에게 가져다주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거든.”
“……!”
설휘는 직감했다.
구종명. 이자는 제자들 간의 권력 투쟁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
자신이 태황각주를 죽인 것도 그 일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설휘는 손등에 피를 냈다.
싸울 수밖에 없다면, 선공을 날리는 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가 방심한 채로.
저벅저벅.
그렇게 거의 지척까지 다가왔을 무렵.
설휘가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피해보시지요.”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순간적인 발동.
주위 모든 사물들의 움직임이 멎었다는 느낌이 드는 시간의 결박.
그 속에서 재빠르게 뒤돌아 그의 가슴을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그리고 느꼈다.
완벽히 성공했음을.
그런데, 갑자기 검이 더는 뻗지 못하고 어딘가에 걸렸다.
투욱.
“……!”
시간의 결박이 풀리고서, 설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이 내지른 검.
그것이 구종명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가로막혀 있었다.
“기습인가.”
설휘는 몇 번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간의 결박이 이루어졌음에도. 상대는 그 속도를 뛰어넘고 공격을 막았다는 걸.
“형편없군.”
그의 귓가로 상대의 감상이 뼈아프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