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이원마공(二元魔功) (4)
“으윽!”
설휘는 있는 힘을 다해 검끝에 화염 마공을 밀어넣었다.
뚜둑. 찌익!
과연 구종명도 이건 경시하지 못했는지 빠르게 설휘를 밀어냈다.
츠츠츠측.
졸지에 대여섯 발짝 밀린 설휘.
“……!”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과 구종명을 바라보았다.
실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자신의 최고 절초를 두 손가락으로 간단히 막아내다니.
이건 상대의 무위가 이제껏 겪은 그 누구와도 차원이 다르다는 걸 의미했다.
시간 결박을 쓴 이래, 이토록 손쉽게 공격을 받아넘긴 건 구종명이 처음이었다.
“아, 그렇게 형편없는 건 아니었나?”
할짝.
구종명은 상처 입은 손가락을 들어 혀로 핥았다.
조금 전, 설휘가 밀어낸 마공에 검끝이 흔들리며 그걸 잡고 있던 손가락이 살짝 베인 것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게 전부였다.
‘대체…….’
설휘는 머리가 복잡했다.
시간 결박과 그에 이어진 화온마공으로도 겨우 손가락을 약간 베는 정도의 상처밖에 주지 못했다. 상대의 수준은 그야말로 천외천.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안 오는 게냐? 그럼 이번엔 내가 갈까?”
철컥.
구종명은 허리춤에 있던 서슬 퍼런 칼날을 꺼내 들었다.
찌르릇!
보기만 해도 압박이 느껴지는 강대한 위압감.
검도의 극한에 이른 고수는, 그저 검을 들기만 해도 온몸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바로 신검합일.
검이 곧 몸이며 몸이 곧 검인 경지로, 검도의 고수는 검을 드는 순간 진정한 실력이 드러난다.
그런 실력을 드러내기도 전에, 이미 빙공극저하로 빨라진 찌르기를 두 손가락으로 막아낸.
괴물 같은 자가 본격적으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상황은 극단적으로 암울했다.
승리 자체를 상정하지 못할 정도로 실력차가 났다.
그럼에도 설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고 구종명의 검에 목을 들이밀 수는 없었다. 그는 사선을 넘어온 경험이 무수하게 있었다.
지금 이길 수 없다면, 지금이 아닌 ‘다음’을 대비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파앗.
눈앞에서 구종명이 사라졌다.
설휘는 기감을 바짝 끌어올렸다. 지금은 오로지 버티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빙공극저하를 사용합니다.]
“……!”
급히 특수 기술을 발동시킨 설휘의 눈이 커졌다.
시간의 결박이 이루어지자마자, 저편에서 쏘아지는 검기가 보였다.
슈욱. 슈욱.
연거푸 두 번의 검기가 쏘아졌다.
그것도 설휘의 머리를 겨냥해서.
쉬잇.
다행히 느려진 시간 덕분에, 설휘는 두 줄기의 검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뒤이어 세 번째로 날아온 검기는, 방향을 읽고 미리 옆으로 피해냈는데.
오싹!
소름이 돋았다. 설휘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휘, 휜다!’
휘르르륵.
분명히 피해냈던 검기가, 자신을 쫓아 구불거리며 이동해 왔다.
본래 한번 뿌린 검기는 쏘아낸 화살과도 같아, 다시 움직이거나 할 수 없는 법인데.
‘설마…… 어검술인가?!’
결국 설휘는 몸을 완전히 뒤집어 구르다시피 하며 피해냈고.
-----솨아아
그때쯤 시간의 결박이 풀렸다.
“……!”
가까스로 피해낸 설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이잉.
새하얀 광채.
검기, 초검기를 뛰어넘는 강대한 기운이 구종명의 칼에 맺혀 있었다.
“허허, 쥐새끼 같은 놈이로고. 어디 이것도 한번 피해보거라. 끌끌.”
그의 비웃음과 함께 쏘아지는 광채를 보면서, 설휘는 피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결국 마지막 남은 수단. 설휘는 눈을 깜빡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인지했다.
[기류의 묘가 발동됩니다.]
수많은 기류가 설휘의 몸을 타고 맴돌았다.
쏴아아악!
구종명이 쏘아낸, 실명시킬 듯 눈부신 광채가 설휘의 몸에 닿기 전 기류들이 모여들었고.
거의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기공의 방향을 비틀어 놓았다.
하지만.
쩌어어엉!
기류가 광채를 뿌리는 기공을 전부 돌리진 못했다. 정확히는 너무나도 빨라, 설휘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것이었다.
쿠아아아앙!
기공이 훑고 지나간 방향으로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쫘악 하고 끝도 없이 지면을 긁고 지나간 파괴의 흔적.
그걸 돌아본 설휘는 기가 막혀 입을 벌릴 뿐이었다.
“호오. 이놈 봐라?”
구종명은 이번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가 쓴 것은 현천기공(玄天氣功).
빠르고 강렬하여, 일시적으로 검강에 필적하는 위력을 내는 화산파의 신공이었다.
진지하게 박살을 낼 작정으로 쓴 건데, 상대가 잘도 막아낸 것이었다.
“사술을 쓰는 녀석인가? 아무래도 살려둬선 안되는…… 어?!”
차분하게 검을 잡는 도중, 그의 눈에 황당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타다닥!
갑자기 상대가 어디론가 냅다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쯧쯧.”
혀를 차며 바라보는 구종명.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무릎을 굽혔다가 일어서는 동작을 해 보이고는 피식 웃었다.
“이 몸 앞에서 경공술이라…….”
상대에겐 안된 일이지만, 그의 주력 무공 중 하나가 바로 경신법이었다.
***
‘저놈은 인간이 아냐!’
구종명에게서 등을 돌린 설휘는, 꽁무니가 빠져라 뛰고 있었다.
아무리 정도의 명문이라 해도, 강한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지.
저놈은 그냥 무의 화신이다.
시간 결박조차 받아내는 절대고수와는 상종하지 않는 게 답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그렇게 전력으로 뛰어가던 설휘는, 한순간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휘익!
한 줄기 묘한 바람이 불더니, 사람이 아닌 괴물 새끼가 어느새 나타나 떡 하니 앞을 막았다.
“잡았다, 이놈.”
“와…….”
설휘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그는 진신 내공을 격발시켜 거의 전력으로 도망가고 있었는데…….
그런 자신의 움직임보다 몇 배는 빠르게 움직였다.
“고작 이 정도밖에 못 도망칠 거면서…….”
파팟.
설휘는 방향을 바꿔 또다시 달음박질했다. 그걸 본 구종명은 피식 웃으며 칼끝에 내공을 모았다.
파파파팟.
“헉, 허헉.”
눈썹이 휘날리도록 죽어라 달려가는 설휘.
그런 그는 어느 순간, 무엇인가가 뒤에서 거의 지척까지 다가온 걸 느꼈다.
“뒈져라!”
거리는 지척. 심지어 빠르기도 지독한 검강.
아니, 그 비슷한 무엇이었다.
방향을 트는 정도로는 피해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설휘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절세풍검을 사용합니다.]
우르릉!
사방에서 기류가 생성되며, 격렬한 파동이 일었다. 그것은 구종명이 쏘아낸 광채의 기공을 단번에 소멸시켰고.
쿠우우우우-
뒤이어, 너른 범위에서 수십 개에 달하는 소용돌이가 나타나 그를 보호했다.
“……!”
이번만큼은 구종명도 놀랐다.
그는 설휘의 주변에서 피어난 소용돌이가 자신을 향해오자, 전심전력을 다해 그에 맞섰다.
“하압!”
드드드득!
절세풍검은 나름 회심의 한 수였다.
이제껏 설휘가 싸워왔던 모든 상대를 날려버린 기의 파동이었다.
그럼에도 절대고수 구종명은 버텼다.
“으읍! 이익……!”
강렬한 회오리가 그를 허공으로 띄워 올리려고 몰아쳤으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천근추.
경신술은 몸을 가볍게 하여 빠르게 움직이는 종류의 절기다.
그렇기에, 경신술의 극성에 도달한 이는 반대로 몸을 무겁게 하는 천근추에도 조예가 있는 법.
쫘아아악! 부지지직!
결국 몰아치던 소용돌이가 힘을 잃고 잠잠해졌다. 구종명은 끝까지 버텨냈지만, 대신 꼴이 엉망이 되었다.
“이노오옴…….”
머리는 풀어져 산발이 되고, 화산파의 도복은 갈기갈기 찢어진 몰골이 되어, 구종명이 이를 갈았다.
녀석은 또다시 멀찍이 도망가고 있었던 것이다.
낭패한 차림을 다듬을 틈도 없이 따라가려는 순간.
쿠우우우우-
또다시 소용돌이가 피어올랐다.
“이 새끼가!”
구종명이 처음으로 악에 받쳐 노호성을 터뜨렸다.
***
‘저, 저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설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기어코 적당한 목적지를 찾은 것이다.
[향락실]
다른 곳에서는 해우소라고 불리는, 똥간이었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문을 열고 검과 도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서 내던졌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것들은 건져야 해.”
어차피 구종명의 눈에 걸린 이상, 살아날 방도는 없다. 도망치려고 해도, 상대는 경신술 역시 극성으로 익힌 이였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설휘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이런 신병이기는 착용자가 죽는 순간, 그 자리에 놓이게 된다.’
원래라면 안전하게 도구함에 넣을 생각이었지만, 구종명을 만난 이후로 도구함은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싸움 중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인생이…… 똥간에서 영영 헤어나지를 못하는구나…….”
냄새나고 더러운 배설물에 잠겨드는 장비들.
이러면 일단은 안심이다.
향락소를 찾는 배설이 급한 이들이, 설마하니 신병이기가 있을까 하고 똥오줌의 늪 속을 뒤져볼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그렇게 한숨을 돌리며 문을 열고 나오자.
“……설마하니 볼일이 급했던 거냐?”
이미 도착한 구종명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좀 그랬지. 영감.”
설휘는 여유를 되찾았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장비들은 여기에 있을 테니까.
다시 회수할 때 대단히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되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자. 후련해졌으니 이제 맘대로 하시지. 구워먹든 삶아먹든.”
“……정말이었나. 허어, 이것 참.”
그 말에 구종명은 그만 맥이 풀려버렸다.
돌발적인 행동력. 기이한 사술. 그리고 잠깐이지만 자신을 속여넘길 뻔했던 말빨. 마지막의 결사적인 도주까지.
짜증나지만 나름 한가락 하는 놈인 줄 알고 무인으로서 기대했건만, 그게 다 볼일이 급해서였다니.
이제껏 전력을 다해서 달려온 자신에게 환멸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혹시 살려줄 생각이 들었나?”
“……그럴 수는 없지.”
구종명은 한숨을 푹 쉬며 검을 들어 올렸다.
실망감이든 자괴감이든 놈을 여기서 살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군. 기왕 죽일 거라면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여줘. 가급적이면 그 강기인가로 여기 목에…….”
설휘가 자신의 목을 가리키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다만…… 네가 원한다고 하니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천참만륙까지는 아니라도 팔다리를 다 잘라낸 후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겠다, 라고 구종명이 말하자.
“거, 강호의 선배가 너무 야멸차시군. 마음대로 하시고.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거부하지.”
“아. 그래.”
설휘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죽음을 대비하는 와중에.
‘아, 씨발. 혁대.’
번뜩!
남은 장비 하나가 생각났다. 다름 아닌, 자신의 허리에 매여 있는 황금 벨트!
“자, 잠깐!”
“늦었어.”
촤악.
구종명의 검이 발현하고, 설휘는 혁대를 급히 풀어서 던졌다.
순간 어두워진 시야 때문에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 목숨입니다.]
■ 천력 95년, 제2장-1. 곤마가 제시하는 세 가지의 삶.
□ 천력 98년, 7월 마지막 날.
□ 천력 98년, 본 스토리_운명의 날.
세 지문만이 눈앞을 가렸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