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67화 (168/379)

167화. 태극(太極) (2)

태극심공(太極心功).

정파의 태두. 소림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무당의 무공이다.

강자존의 분위기가 강한 마교에서도 이를 구해 연구한 적이 있지만, 애저녁에 내버렸다.

마공은 기본적으로 거칠고 사나운 성미를 지닌다.

그런데 정파의 심법, 특히 소림이나 무당의 내공심법은 그 추구하는 길이 고요함이나 무욕을 향하니.

말 그대로 상극인 셈이 되는 것이다.

연구한다고 익힌 마인들이 오히려 마공의 쇠퇴를 경험하니, 하등의 쓸모도 없는 상극의 내공이라고 판단. 그래서 거의 취급도 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 태극심공을, 다른 사람도 아닌 곤마가 소지하고 있다니.

“설휘야. 너는 내 출신이 어딘지 아느냐?”

“…….”

“어이없겠지만, 무당이다.”

“예?!”

화들짝 놀라는 자신을 보며 곤마는 씨익 웃었다.

“본래 나는 무당파에 입문했었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명민하고, 나름 무재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 하지만 그 무재가 천살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당연히 내쳐지고 말았다.”

“…….”

“뭐. 정도문파라는 곳이 그렇지. 어쨌든 저주받았다느니 불길하다느니 하며, 저잣거리에서 굶어죽어 가던 몸이었다. 교주께서 나를 이곳에 데려오지 않았다면, 이미 진즉에 죽었을 처지였지.”

“그. 그렇군요…….”

설휘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곤마의 출신이 무당이라는 것과, 교주가 직접 마교에 데려왔다는 것. 이런 이야기는 이제껏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뭐, 내 옛 이야기 같은 건 나중에 나눌 기회가 있을 거고……. 어서 받거라. 태극심공은 무당에선 기본공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무당의 모든 것이 담긴 내공심법. 신공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태극심공을 얻었습니다.]

[태극심공을 익혔습니다.]

비급을 받는 순간,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글귀.

생소한 단어인 무극(無極)에 관한 설명도 있었고, 음양도 있었으며, 오행도 있었다.

그중에서 설휘가 당황했던 건, 그동안 자신이 익힌 마공의 구결들과 상충되거나 대치되는 것들이 꽤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말이다. 이번에…….”

설휘의 머리가 어떻게 복잡하든, 곤마는 입을 열었다.

대부분은 지난번의 삶과 같았다. 그리고 비밀무사로 임명되는 것까지 한 치의 다름도 없었다.

<축하합니다. ‘곤마의 비밀무사 되기’를 달성했습니다.>

소속은 천사령. 설휘는 천사령주가 되었고, 현재로서는 무공이 부족하니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도.

심지어 마태룡이 그의 수하가 된다는 것까지.

설휘는 들을 말을 다 들은 후, 예를 표하고 빠져나왔다.

당장 챙겨야 할 것이 많아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

“천사령주님. 새 거처는 이쪽으로…….”

“아니, 나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소.”

“네?”

다다다닷.

설휘는 안내를 맡은 시비에게 그 말만 남기고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새로 내려진 거처? 지난 삶에서 이미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바로 잃어버린 신병이기.

혹 누가 채어가기 전에 서둘러 회수해야 했다.

은영단 영역을 벗어나 신나게 달려가자, 저 멀리 태황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담 위에 경계를 선 무사 두 명이 보였고, 주변에는 망을 보는 이들도 있었다.

파팟.

기회를 엿보던 설휘는, 망을 보던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릴 때쯤 담을 넘어 경계무사들을 덮쳤다.

“……?”

“……!”

단번에 두 명을 쓰러트린 그는 빠르게 안으로 침투했다. 건물 지붕을 밟으며 목적지까지 거의 전속력으로 이동했다.

‘향락소.’

자그마치 다섯 개의 신병이기가 던져진 곳.

혹여나 공교롭게, 누가 청소라도 해 버리면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진다.

“헉. 헉.”

그렇게 내달리던 설휘의 눈에 곧 향락소가 보였고, 그는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활짝 연 문으로 설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마침 안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사내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낯이 익었다.

“어?”

“너, 넌……!”

적명이다.

원래 똥을 오래 누는 놈이라서 그런가, 이 시간에도 향락소에 앉아 있었다.

설휘는 심히 민망하여 고개를 돌렸고, 적명은 수치심으로 노기가 등등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이 자식 사람이 볼일을 보고 있는데…….”

닦지도 못하고 급하게 바지를 올린 적명이 버럭 달려들었다.

빡!

“억!”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적명의 주먹을 깔끔하게 피한 설휘는, 손도 대기 싫어 발로 후려쳤다.

쿠웅! 와당탕!

적명은 향락소 무벽에 부딪혀서 신음을 흘렸고, 이내 바지춤을 올리며 다시 한번 덤비려 했다.

퍽. 퍽.

“악! 크악!”

하지만 얼굴 한 번, 그리고 복부 한 번을 걷어차이자 그의 몸은 곧 축 늘어졌다.

부글부글.

그러고는 게거품을 물었다. 어쩌다가 영…… 안 좋은 곳을 맞은 것이다.

“아, 바지는 좀 올리게 놔둘걸.”

설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눈 버렸다. 마음이 급해서 서두른 바람에 못 볼 것까지 보고 만 것이다.

“아니, 아니지. 차라리 잘됐나?”

잠시 생각해보니, 덕분에 더러운 걸 피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설휘는 문을 닫고, 기절한 적명이 깨서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부석. 부서석.

반 각 정도 지났을까. 끙끙대는 신음, 옷 추스르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그가 개처럼 벌벌 기어 나왔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설휘가 씨익 웃었다.

“오랜만이야, 적명.”

“너 이 자식. 언제 이렇게 강해진…….”

짜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휘가 뺨을 후려쳤다.

“형님이라고 해야지. 본교의 규율 몰라? 너보다 강하잖아.”

“……아. 예, 형님.”

적명은 태도가 급변해서 존댓말을 내뱉었다. 물론 불만스런 표정은 여전했지만.

“그래. 오랜만에 보는데, 마침 너에게 시킬 일이 있다.”

“일이라면, 어떤?”

“저기 아래로 내려가.”

“……예?”

적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휘는 그런 그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내가 지난번에 저 똥통에 물건을 몇 개 빠트렸는데, 이참에 네가 좀 건져 와라.”

“제, 제가요?”

“그럼, 내가 할까?”

설휘가 일어나 발을 들자, 그는 눈이 커졌다.

거기서 여러 감정이 보였다.

죽더라도 한번 제대로 싸워 볼까 하는 생각과, 조금 전에 얻어터진 걸 생각하면 쉽게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직감. 대체 어떻게 강해진 거지 하는 호기심.

이렇게 세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중일 터.

처억.

“아, 진짜 도저히 안 되겠네.”

설휘가 손바닥에 불꽃을 일으키자, 적명은 화들짝 놀랐다.

그도 무인이었다. 경지 높은 화공이란 사실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

“아, 찾았습니다!”

“아차차! 하나가 아니었습니까?!”

“손이 썩을 거 같습니다……. 잠시 숨 돌릴 시간을 주십쇼!”

“찾았습니다…….”

“더는 못합니다! 차라리 죽겠습니다!”

“또 찾았습니다!”

똥통에 들어가는 게 어지간히 싫었던 적명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노력은 했다.

정확히는 설휘가 노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풍운극마검과 태황각주의 장도. 그리고 신발까지 되찾은 설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하나가 없는데?”

“그럴 리가요. 더는 없습니다.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으음…….”

설휘가 미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믿어 주십시오! 손으로 바닥까지 구석구석 다 더듬었습니다. 더 남은 건 절대 없습니다!”

“그래? 아, 그렇군. 그건 위로 던졌지.”

적명의 격한 주장에, 설휘는 뭔가 기억났다는 표정으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벨트는 던지는 와중에 죽어서 그런지, 향락실 뒤 숲에 있을 수도 있었다.

그에 설휘는 향락실 뒤쪽을 뒤졌다.

“어딨지?”

사박사박.

설휘는 주변을 더듬었다. 풀숲을 뒤져보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훑어보았다.

그러던 가운데 손에 이질감이 느껴졌고, 황금 벨트가 손에 쥐어졌다.

“와, 있어! 다행히…… 음?”

그 순간, 등 뒤에서 싸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죽어!!!”

이제껏 얌전히 기세를 죽이고 있던 적명. 그가 등을 보인 설휘에게 기습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퍼억.

하지만 너무도 쉽게 막혔다.

아니, 그것을 넘어, 막아내며 휘두른 설휘의 손에 그대로 몸이 접히며 날아가버렸다.

“아…… 힘 조절을 못했네.”

급히 적명의 상태를 살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설휘는 그의 몸을 어깨에 들쳐 메고 뒷간으로 향했다.

첨벙.

“좀 미안하게 됐다.”

적명의 사체가 똥 무더기 속에 잠겨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과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어차피 내가 죽으면 넌 살아나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전생의 악연을 뒷간 똥통에 넣어놓고서, 설휘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본인 것을 찾았으니, 이제 수하들의 신병이기를 찾을 시간이었다.

***

“음…… 대체…….”

전생에서 수하들이 싸웠을 것으로 예상한 장소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몇 번을 둘러보아도 병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수하들이 가진 신병이기는 총 네 개.

‘누가 가져갔다고 해도 한 개쯤은 나와야 하는데…….’

근 한 시진 가까이 탐색했지만, 결과물이 없다. 이건 무슨 뜻일까? 전부 다 다른 놈들이 가져갔을까?

그러다 문득, 설휘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느꼈다.

‘아! 모두 살았다면 상관없잖아?’

장비를 떨어뜨리는 건 소지자가 죽었을 때다.

자신이 죽을 때 대원들은 여전히 살아있었다면?

신병이기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수하들의 손에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확인해봐야겠구나.”

설휘는 재빨리 발걸음을 돌렸다.

시비를 붙잡아서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배정받은 거처가 어디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

“대장?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와, 여기 엄청 좋은데요?”

아니나 다를까. 새로 배정받은 거처에 가 보니, 수하들이 설휘를 웃으면서 맞이했다.

‘들고 있구나.’

설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과연, 지난번 삶에서 죽은 것은 자신뿐이었던 모양이다. 수하들은 제각각 신병이기를 본인이 소지하고 있었다.

“킁킁. 그런데 어디서 무슨 냄새 안 나냐?”

“그러게…… 구린내인데, 이 무슨.”

음무기의 말에 용진이 반응했다. 그 모습을 본 설휘는 급히 몸을 숨겼다.

‘어이구야.’

아직 병기들을 제대로 씻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삼 죽여버린 적명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

“후우…….”

이리저리 일이 많았던 그날의 밤.

설휘는 방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태극심공의 묘리를 운행하여, 지금 자신 앞에 놓인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마성을 끌어내 모두 하나로 이루면, 난 어떤 길을 걷게 되는 거지?”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자신의 몸에는 마공과 정순한 기류가 동시에 흐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태극심공으로 마공을 통제하면 입신, 나아가 화경에 오르게 되는 걸까?

아니면 두 성질의 마기가 정순한 기의 결합에 의해 더 득세하여 초마, 또는 극마에 오르게 되는 걸까?

당연히 그건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됐든 간에, 완벽한 초마가 되어 AI를 만나야 해.”

구종명이라는 다시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인지하고서도, 이 시기로 돌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모든 열쇠는 그가 쥐고 있다.

아마도 그라면 구종명이 이곳에 온 이유부터 앞으로 어떤 위기가 찾아오는 것까지, 또 자신은 어떤 길로 가는 것까지도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후우. 그럼 천천히 운기해 보자.”

설휘는 태극심공의 특성을 떠올렸다.

발경 위주의 내가공부(內家功夫).

구결을 읊으니 단전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정기가 일어나며 점차 활동하기 시작하자 생기(生氣)가 왕성해지는 효과가 보였다.

기본 단전 수련의 연정화기(練精化氣) 현상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느 시점부터 빠르게 순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점차 더 빨라지는 게 아닌가.

‘이거, 순식간에 끝나는 건가?’

설휘는 몸속에 있던 여러 잡스런 기운이 한데 어울리며 돌기 시작하니, 자신의 방향이 잘 맞아 들어갔다 싶었다.

구르르릉.

그리고 순환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기대가 되었다.

이전에 송화가 말했던, 조화 속에서 합쳐진다는 것과 거의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열심히 대주천을 하다 말고 떠오른 의문.

이걸 대체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몇 번을 돌아야 끝나는 거지? 4만 번이면 되려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설휘는 송화가 말했던 겁(劫)에 대한 의미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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