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잘못 찾은 길 (1)
쉬이이이익!
떨어지는 속도에 가속이 붙는다.
몸을 날릴 때는 백 장 남짓한 높이의 절벽이었지만, 촌각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중 삼십 장을 지났다.
그리고 다시 삼십 장을 지나칠 때까지는, 촌각의 절반 정도가 소요되었다.
점점 다가오는 지면까지, 이제 남은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
그런 상황에서 내 의식은 몸과 분리가 되었다.
“야이이이이--- 씨바새끼야야야---!"
AI는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빠르게 인식한 듯 보였다.
하지만 딱히 뭔가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점점 가속이 붙어서 떨어지는 와중에서도.
이미 지면이 눈앞까지 가까워진 상황이었기에, 나는 덜컥 걱정이 되었다.
- 야,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남은 거리 십 장. 이제 막 지면에 몸이 처박힐 정도로 가까워진 그때, 눈앞에 한 가지 글귀가 나타났다.
[무극초풍신을 사용합니다.]
- 뭐?!
방금 전 경지 상승으로 인해 향상된 특수 기술 중 하나.
사대극마공의 능력을 꺼내든 것이다.
- ......!
- 푸우우웅!
그리고 나는 보았다.
칠 장 높이, 주먹에서 뇌전이 생성되었다.
오 장 높이. 뇌전이 지반에 빠르게 꽂혔다.
그리고 삼장 높이.
뇌전이 쑤셔박힌 지면에서 검은 바람이 생성되며 팽창하듯 커졌다.
콰가가가가가!!
- 위험해!
먹구름처럼 색이 짙은 폭풍이 지면으로 떨어지던 AI에게로 되돌아왔다.
초풍신보다 몇 배나 거대했고 괴이했다.
뿐만 아니라, 폭풍 주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뇌전까지 머금은 그것이 내 몸을 덮치고 있었다.
“시끄러........ 병신아!”
이를 마주하는 AI는 한마디 욕설을 내뱉고는 곧장 손을 펼쳤다.
그리고 발동된 특수 기술.
[기류의 묘를 사용합니다.]
휘르르릉!
지면까지 일 장. 그 위치에서 기류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니, 정확히는 땅으로 떨어지던 AI의 몸을 기류가 감싸서 추락 속도를 늦췄다.
- 우아......
나는 그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기류를 흐름을 되돌리는 기류의 묘. 돌풍을 일으켜 사방으로 밀어내는 무극초풍신의 힘.
그것을 일순간에 되돌려 떨어지던 몸을 보호하는 데 사용했다.
AI가 펼쳐 보낸 무위의 대단함보다, 그게 이런 식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하아아압!”
그리고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내려온 AI는 주변으로 기운을 날려 보냈다.
수십 개의 소용돌이로 변한 검은 바람이 사방으로 흘러나갔고,
콰콰콰콰콰콰 콰콰쾅!!
저편에서 수많은 폭풍이 터지며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AI가 있었다.
'내가 방금 뭘 본거지?’
나는 그저 감탄만 내뱉었다.
추락하는 중에 무극초풍신으로 강한 바람을 일으키고, 자신에게 쏘아지게 해서 저항을 만들어낸다.
허나 그것은 단순히 바람이 아닌, 뇌전이 섞인 흉포한 소용돌이였다.
그걸 기류의 묘로 세심하게 운용하여, 아무 피해도 입지 않고 멀쩡히 착지하다니.
백 장 높이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충격을, 2층 민가에서 훌쩍 내려앉은 것처럼 손쉽게 받아낸 것이다.
“개 또라이...... 정신 나간 새끼. 언젠가 벼락 맞아 뒈질 놈 같으니.”
AI는 씩씩대며 흥분해 있었다.
-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다. 너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말이야.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지. 이 정도일 줄은......... 내 살다 살다 너같이 답 없는 놈은 첨이다.”
- 뭐, 마음껏 욕해도 좋아. 그러고 나서 내 말 좀 들어줘.
몇 마디 더 욕설을 내뱉은 AI.
그러다 그는 조금 진정이 된 듯, 허공에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후우. 우선 보자....... 호오? 이놈 보소. 마공과 정공을 합일시켜서 몸속에 태극을 박아 넣었네? 이거, 전부 네가 직접 한 거냐?”
잠시 진정이 되자, AI는 갑자기 놀란 반응을 보였다.
- 어쩌다 보니.......
“허. 너 같은 멍청이가 이걸 해냈다고? 내가 3,212번 환생하고서야 겨우 펼친 걸 똑같이 구현하다니. 이 새끼 진짜 또라이네?"
'3,212번의 환생이라고?'
AI의 말에 나는 급히 되물었다.
- 너....... 너도 정말 시뮬레이션해본 게 맞구나?
“아. 됐고.”
나의 말은 단번에 무시했다.
“싸움 도중도 아닌데 날 왜 불러낸 거야?”
- 싸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네가 아니면 대답해 줄 수 없는 게 있어서 말이야.
나는 그간의 상황을 짧게 설명을 해주었다.
비밀무사가 되고 태황각주를 상대했던 것. 그리고 화산파 구종명이 튀어나왔던 것까지.
“뭐? 구종명이 거기에 있었다고?"
잠시, 당황한 듯 반문하는 AI. 그는 마치 예상에 없던 일인 듯 약간 당황한 것 같아 보였다.
- 그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그리고 나의 물음에, AI는 잠시 생각을 한 뒤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너 이 새끼. 송화인가 하는 애새끼를 구했구나?"
- 어. 맞어.
“에라이 바보 같은 놈. 내가 언제 그놈 구하라고 했어? 그냥 기기아대 놈들에게 넘겨줬어야지!"
- 하지만 송화는 나의 수하인데.......
“뭐, 이미 지났으니 됐고, 아니 근데, 송화를 적에게 넘겨주지도 않았는데 비밀무사가 된 거야? 너 목숨이 수십 개라도 돼?"
- 두 개 있었지. 그리고 죄도 없는 어린애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마음에.........
“그래서 유패를 불렀군.”
- ......!
그 말에 나는 직감했다.
이 녀석은 미래를 알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의 과정들, 내 선택에 따른 변수들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 유패를 불렀다면, 구종명이 태황각주에게 따지러 갔겠군. 그리고 마침 둘이 그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만나게 되었고........ 알 만해.”
- 설명 좀 해 줄 수 있겠어?
그래서 물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한 것이고,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를.
반응으로 보아, 나는 AI가 원래 생각했던 미래와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접어든 것 같았으니까.
“송화. 그 꼬마가 원인이다. 네놈이 송화를 구하면서부터 모든 게 뒤바뀐 거다.”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AI는 허공에 있는 나를 보며 고개를 한 번 흔들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마태룡이 황가산 인근에서 화산파에게 잡힌 뒤, 얼마 후 녀석은 이제자의 병력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 정보를 얻은 화산파는 공격에 단단히 대비하고, 나중에 찾아오는 이제자의 공격을 패퇴시키려고 했지.”
“그런데 네가 화산파 비밀지부를 습격해서 마태룡을 빼냈다. 그 때문에 화산파는 큰 혼란에 빠져서 지리멸렬하고 말았을 거다.”
-그 정도로 큰일이었나? 내가 마태룡을 데려간 게?
“큰일이지. 마태룡은 그들에게 단순한 포로가 아니라, 일제자에게 건네줄 협상 도구였으니까. 거기다 마태룡을 빼냈다는 건, 그 비밀지부를 지키던 장로 셋을 죽였다는 이야기잖아?"
- 아......
“갑자기 수뇌가 사라진 비밀 분타가, 제대로 방어가 가능했겠다. 물론 그들 역시 나름 대비를 했지. 그런데 이제자의 병력이 움직일 때, 원래 그들의 발목을 잡기로 약속한 일제자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어.”
AI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원래라면 화산파는 이로써 회생불가의 피해를 입게 된다. 이제자의 심복 유패가 전력을 다해 그들을 끝까지 밀어버리니까. 화산파의 구종명. 이제자의 유패. 동급의 고수끼리 격전 끝에 둘 다 극심한 피해를 입고 말지. 하지만 너의 선택으로 인해 그게 또 다른 식으로 꼬인 거야.”
- 꼬여? 어떻게?
“네가 송화를 구하기 위해 유패를 불러, 그가 도중에 철수한 거다. 그 때문에 원래 유패와 상잔하게 될 구종명이 멀쩡했고, 놈은 화가 나서 태황각주에게 책임을 물으러 본교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너와 만나게 되는 것이고.”
- 아.....!
나는 그제야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짐을 느꼈다.
송화라는 아이.
그 작은 목숨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 변수가 되어, 나중에 구종명이라는 괴물을 부른 것이다.
50...... 49......
'어?'
그런데 거기서, 줄어드는 숫자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AI의 남은 시간.
예전에는 90초가량이었지만, 이번에 경지 상승으로 인해 다시 300초 정도가 되었다.
쉽게 AI를 불러내기 힘든 상황에서 그를 볼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구종명을 만나지 않고.......
“포기해라. 네 이번 생은 망했다.”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네가 어떻게 하려는지 대충 예상이 된다. 단숨에 태황각주를 제거해서 구종명을 만나지 않으려는 거.그런데 그거, 그렇게 쉽게 끝나는 게 아니다. 이 스토리로 계속 가다 보면 구종명은 이제자와 협력을 하게 될 거다.”
'스토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대충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사이 AI는 잠깐 생각을 더듬은 듯 눈을 껌뻑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5, 6번째 비밀무사의 임무에선 구종명과 무조건 마주치는 상황이 나온다. 결국 넌 어떻게든 구종명을 쓰러트릴 수밖에 없는데, 그건 이 상태로는 불가능해."
- 열심히 수련해서 강해져도 안 되냐??
“망했다니까? 그놈은 유패랑 맞짱 떠도 쉽게 지지 않는 괴물이라고! 그냥 이번 생은 버리고 다음을 노려. 아, 이쪽 말고 다른 길로 가야 해.”
- 안 돼! 방법을 찾아야 해! 내 목숨은 이제 하나야.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답답해서 하소연했더니 AI가 벌컥 화를 냈다.
“뭐? 이 병신 새끼야. 왜 목숨이 하나야? 지금까지 대체 뭐했어?"
- 뭐, 뭐하긴, 이제껏 수련하고 경지 높이고, 계속 싸우고 그러느라 바쁘.......
20...... 19.......
설명할 시간도 부족했다. 남은 시간은 점점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 새끼 진짜 답이 없네. 아무튼 피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단시간 내 아무리 강해져도 구종명은 못 넘어. 그는 본교 서열 14위의 유패랑 맞짱 뜨고도 살아남는 괴물이라고!”
- 그, 그럼 방법이라도 알려줘! 최소한 여벌의 목숨을 얻을 수 있는 놈이라도........
“목숨? 음..... 어디 보자. 적명이랑 태황각주 가신은 이미 죽여봤을 거고, 맞아?"
- 맞아.
“누가 있지? 아 진짜.......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네........”
- 아니 제발 좀!!!
“조용히 해 병신아! 생각 좀 하자고!”
5...... 4......
그렇게 시간이 점점 다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AI가 이마에 주름을 잡더니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한 놈 있군. 왕모력. 그놈을 죽여라.”
- 그게 누군데?
“은마원(隱魔院) 내 은둔고수 중 한 명이야. 실력은 지금의 너와 비슷할 것 같으니 안심하고, 내가 알기론 이 시점에 태황각주 주변을 돌아다닐 거니, 그놈을........”
[AI의 개입이 끝났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다. 경지 상승으로 인해 처음으로 나눈 AI의 대화. 그리고 비밀임무 수행 전, 나눈 마지막 대화이기도 했다.
***
30일째.
만답서생은 이른 아침 천사령주를 찾았다.
이번 한 달간의 평가를 보고하기 위해 그를 찾은 것이다.
“어디에 있지?"
늘 그렇듯 전각에는 없었다. 그러다 그가 오라고 했던 정상 아래의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있군.'
만답서생은 절벽 위에서 운기하고 있던 그를 발견했다.
입을 열어 부르려고 했던 그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선은 그를 유심히 관찰할 생각이었다.
'어? 일어난다.'
하루 종일 운공을 하면 어쩌나 하는 와중에 천사령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들어 뭔가를 생각하는 듯 서 있더니.
이내 자리에 앉아 신고 있던 신발을 고쳐 신었다.
'뭐하는 거지?'
어떤 영문인지 몰라 그는 계속 지켜봤다.
다시 신발을 신고 자리에 일어선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러기를 몇 번.
다시 한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몸을 앞뒤로 왔다 갔다 흔들더니 검을 획 내밀었다.
"......."
그런데 어떤 변화도 없었다.
천사령주는 그런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저걸 왜 하는 걸까?'
무슨 어떤 무공을 익히는 동작 같지는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이상할 뿐이었다.
그렇게 여기던 어느 그때.
신비한 현상을 보았다.
스아아아아~
검 끝에서 생성되는 불꽃. 그리고 그 주위에서 이는 서리.
화공과 빙공이 동시에 운용되며 점차 기운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스윽.
검을 가볍게 그어내는 동작에 따라, 허공의 일부가 새하얀 얼음처럼 급변했다.
기류 자체를 얼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좌와아아앙!
뒤이어 따라온 화공이 부딪치자 갑자기 변화가 일었다.
극음의 새하얀 빙정들이, 극양의 화공을 만나 화약고에 불이 지펴진 듯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이 무슨......!”
만답서생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설휘도 처음 써보는 것이었다.
빙공과 화공의 결합.
그가 얻은 천어빙화폭의 위력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