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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71화 (172/379)

171화. 잘못 찾은 길 (3)

태황각으로 잠입하던 중, 설휘의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하면 소리도 없이 태황각주를 단 일격에 죽일 수 있을까.

건물이 부서지거나, 요란한 싸움으로 번지면 안 된다. 그랬다간 구종명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장법으로.'

무극초풍신. 그걸 장법으로 펼치면 무극초풍신장이다.

상대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뒤 그의 복부에 무극초풍신장을 쏘아내면, 놈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설휘는 여기에 만약의 경우도 생각했다.

흡괴장도는 상대의 기공을 무효화할 수 있다.

혹, 태황각주가 불리함을 눈치채고 전력으로 대항할 수도 있다.

그의 화온마공은 열양공의 극의 정면으로 맞받았다간, 지난 생에서처럼 주변의 건물을 모두 날려버리는 충격파가 일어날 터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설휘의 손에는 흡괴장도, 지난 생에서 태황각주가 쓰고 있던 신병이기가 들려 있었다.

충분히 숙련해 두었으니, 이거라면 상대의 기공을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다음 문제에 봉착했다.

'흑비는 어떻게 하지?'

무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초고수 반열에 오른 여인. 그것도 잠입과 암습에 특화된 무인이다.

그런 이가 호위로 붙어 있으니, 태황각주를 암습해서 격살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도중에 그녀가 개입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먼저 처리할 수밖에 없겠구나. 참....... 이럴 때는 턴제가 아쉽군.'

놓친 고기가 더 크다더니, 새삼 예전에 유용하게 쓰던 기능이 아쉬웠다.

빈틈창을 띄우면 무조건 3초 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공격하기. 또는 지척까지 다가가기를 선택할 수도 있었던 턴제 공격방식.

이런 상황에서 거의 최적화된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저기다.'

대원들과 헤어진 후, 고민과 번민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태황각 집무실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히 접근해야 했다.

설휘는 은형술을 발휘해 조심히 지붕 위로 올라섰다.

스슥.

지붕의 기와가 작게 달그락거리다 말았다.

은형술은 몸을 감추는 데 특화된 무공이긴 하지만, 몸을 매우 가볍게 하는 데도 효과가 있었다.

‘우선은 흑비 먼저.’

습관처럼 기와를 벗겨내려다가, 설휘는 고민했다.

지난 생에서 흑비는 태황각주가 부르자마자 나타났다. 그렇다면 아마 천장에 있을 터.

여차하면 벗겨낸 지붕 바로 맞은편에 그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야 진입하기도 전에 발각될 터.

'음.'

제일 좋은 건, 지금 지붕 너머로 상대의 등에 칼을 박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단말마도 흘리지 않게.

하지만 상대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상태로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을까?

'가만, 기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을 이용하면 소리도 차단할 수 있을 듯했다.

기류의 층.

그걸 태황각주와 흑비 사이에 만들어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기류의 묘 같은 기술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설휘는 일원소마공의 특성 기술표를 확인했다.

◆ 일원소마공 특성 기술표 ◆

기류의 묘(妙) : (하루 세 번 사용)

- (눈을 세 번 이상 연속으로 깜빡임)

'어라?’

놀랐다. 이것도 경지 상승 덕분일까?

분명 하루 한 번 사용이었던 것이, 지금은 무려 3번이나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것 없지.'

설휘는 잠시 세 번의 횟수를 어디에 사용할지 생각해보고, 재빨리 눈을 깜빡였다.

[기류의 묘를 사용합니다.]

후웃.

설휘는 경산(破山 맞배지붕, 측면벽은 벽돌 사용) 모양의 지붕 아래, 집무실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중 태황각주 머리맡의 들보.

'저기다.'

그곳에 한 인영이 미동 없이 몸을 누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스르륵.

설휘는 기류를 들보 바로 아래로 흐르게 확장시켰다. 동시에 몸을 낮추며 검을 꺼낸 뒤, 흑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사박.

수직으로 완벽히 위에 선 설휘는 호흡을 골랐다.

화공이냐 빙공이다. 혹은 그저 맨 검으로 할 것이냐. 고민하던 설휘는 그대로 검을 쑤셔 넣었다.

슈슉! 퍽!

검끝에 기와가 뚫리고, 그대로 살에 박히는 촉감이 손에 느껴졌다. 설휘는 순간 빙공을 펼쳤다.

"......”

그러자 가느다란 떨림을 끝으로 흑비의 움직임이 멈췄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이어, 극한의 냉기로 인해 심장이 얼어붙어 아무런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한 것이다.

스윽.

설휘는 박힌 검을 그대로 둔 채, 옆의 기와를 조심스레 벗겨냈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팟-

기류로 만든 장막은 그때쯤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태황각주가 보였다.

흑비를 믿고 있어서인가. 아니면 그 흑비가 소리 없이 처단당했기 때문인가.

그는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흐읍.

설휘는 아주 미세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낮췄다.

기류의 묘는 사라졌다. 운 좋게 소리 없이 흑비를 제거하긴 했지만, 초마에 오른 고수라면 이변을 이내 알아차릴 것이다.

피 냄새.

설휘의 검은 정확하게 흑비의 심장을 꿰뚫었다.

어느 정도의 피 냄새가 허공에 퍼졌을지 모른다. 그러니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하다.

흐읍!

한 모금 더 숨을 몰아쉬고 설휘가 허공에서 떨어지는 순간.

“뭐냐!”

파앗!

태황각주 사마귀가 반응했다.

확실히 초마에 오른 고수다웠다. 창졸간, 그의 손에서 화공이 피어오르며 반격이 날아왔다.

[기공소멸이 발휘됩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바였다.

불길처럼 뻗어오던 기운은 설휘의 도에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소멸되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것일까. 태황각주는 주춤했고.

터억!

설휘는 그 찰나에 그의 지근거리로 파고들어 일장을 펼쳤다.

“잘 가라.”

[무극초풍신을 사용합니다.]

파파파팍!

장심(손바닥)에서 사방으로 뇌전이 뻗어 나갔다. 다음으로 검은 폭풍이.

고오오오.

손바닥 안에서 맴돌았다. 그 충격은 놈의 내장을 내부에서 찢어발기며 터뜨렸다.

"......!"

턱.

격통에 태황각주가 비명을 지르려는 것을, 설휘가 다른 쪽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리고.

으득.

“크읍!”

죽어가는 자가 마지막으로 깨무는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다행히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나 기운이 사라지자.

“후우우.”

설휘는 이마를 훔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후, 검과 도를 챙겨 빠르게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고 나니 뒤늦게 격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해냈어.”

설휘는 아무런 소요 없이, 특히 구종명과 마주치지 않고 일을 끝냈다는 것에 더 가슴이 벅찼다.

태황각주 사마귀.

그간 이어졌던 진한 악연의 마무리치고는 허탈한 일처리였다.

***

“그럼 일단 임무는 완수했고......”

집무실에서 나온 설휘는 다시 지붕 위로 몸을 숨기며 생각했다.

AI가 일러준 왕모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목숨은 몇 개일까?

우선 그의 말대로라면 상대는 태황각 인근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핵핵 잘 돌아갔다.

구종명과 마주칠까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났기 때문인가.

은거고수가 다른 곳도 아닌 태황각 인근에 있다는 건, 어떤 목적이 있을 터.

태황각주를 만나기 위해서일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극마에 달한 고수가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면, 진작에 태황각주가 응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은거기인들이 자주 부리는 기행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왕모력은 홍마원에 갔어야 한다.

거기엔 진기한 서역의 기구들이나 잘 조성된 인공호수도 있었기에, 무료함에 지친 기인들에게 적격이다.

'그런데도 굳이 태황각에 있다고 ......’

아마도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일 공산이 컸다.

극마에 달한 은거고수.

깨달음을 추구하는 기인.

아마도 그는 태황각에서 무공에 대한 어떤 실마리.

혹은 깨달음의 단서를 찾고 있을 것이다.

다른 오각에 비해서 태황각이 내세울 점이 하나가 있었다.

바로 천일관. 오각 내에 비치된 유일한 무공 서고.

총단에 있는 서고를 제하면 그 크기와 장서의 량이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니까.

드르륵.

“누구냐?”

문을 열자마자 세차게 반응하는 자는 사무관 두홍이었다.

이미 역용술로 변한 설휘는 두홍을 슬쩍 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안에 사람 계시나?"

“누, 누구 말이냐.”

스윽.

낯선 이가 너무도 당차게 말하자 두홍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설휘는 전생의 기억 때문에 순간적으로 죽여버릴까 생각했다가 생각을 바꿨다.

“네가 두홍이로군.”

“......예?”

“듣자하니 일 처리를 잘한다던데? 엊그제 곤마께서도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 하시더군. 지금 총사무관이 표감이지?”

“아, 예. 뭐, 그렇지요.”

“그래, 일 잘 보거라.”

“예! 들어가십쇼.”

두홍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말투와 행색을 보고, 상당히 높은 신분으로 평가한 봤던 모양이었다.

짐짓 거만하게 팔자걸음으로 걸어가던 설휘가 멈췄다.

“아참. 하나 묻자.”

“예? 무슨.......”

“얼마 전에 여기에 오신 기인이 있을 것이다. 딱 봐도 뭔가 이상하고, 경계를 넘어 여기저기 다니시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그런 분이 계시지 않나?”

설휘는 본론을 꺼냈다.

설휘가 왕모력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이름뿐.

적지인 태황각 안을 일일이 다 뒤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안 되면 말고 하는 식으로 물었더니.

“아...... 그 행색이 기묘한 분 말입니까? 지하 서고에 계십니다.”

바로 답이 나왔다. 설휘는 자리를 벗어나며 얼굴을 굳혔다.

'찾았다.'

상대는 극마의 고수. AI는 지금이라면 맞수를 이룰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말은 최선을 다해서 싸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두근두근.

그런 상대를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

지하에 들어갔을 때, 주변엔 사람은 없었다.

돌아보려고 책장 쪽으로 걸어갈 때쯤, 맨 끝 가장자리에서 인기척이 났다.

스윽 스윽.

책장을 펼치는 소리. 그리고 주섬주섬 뭔가를 먹고 있는 소리.

설휘는 맨 끝 열에서 바닥에 누워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투는 가죽옷. 안은 무명옷으로 보였다. 머리카락은 몇 올밖에 없고 신발은 오래된 가죽신.

그냥저냥 보기로는, 어디서 노숙하다 굴러들어온 거지 같은 차림새다.

저벅저벅.

설휘는 긴장된 표정으로 걸어갔다.

노인은 손에 쥔 무공서를 집어 들고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일 장 정도 거리가 좁혀졌을까.

“뭐냐?”

부드럽게 책장을 넘기던 노인의 동작이 멈췄다.

“혹시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이 맞나 싶어서.”

“그래서, 찾는 사람이면?"

“그게......”

잠깐의 침묵이 일었다.

설휘가 대답하지 않고 있자, 그는 책자를 바닥에 놓더니 스윽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던 노인이 갑자기 무언가를 본 듯 소리쳤다

“이거, 제법이구만! 태황각에 이런 고수가 있었나?"

“......?!”

설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민망하게 서 있었다. 뭐라고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툭툭.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몸을 일으켰다.

“내 이름은 왕모력이다. 본래는 은마원 북이촌(北離村)에서 지내다가 잠시 이곳을 들렸지. 그런데 날 본 적이 있나? 나를 왜 찾은 거지?”

'이 사람이 왕모력......’

설휘의 눈이 커졌다.

AI가 말했던 그자를 이곳에서 발견한 것이다.

“노부가 신분을 밝혔으니, 이제 네 차례인데?"

그 말에 설휘는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설휘, 곤마의 비밀무사입니다.”

“뭐? 사제자의 비밀무사? 헌데, 왜 나를 찾은 거지.”

그는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하하, 그것이........”

설휘는 몸이 으슬으슬해 오는 것을 느꼈다.

가까이서 보니 뭔가 다르다.

마기가 느껴지지 않고, 무공을 익혔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거의 보통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더 긴장했다.

이렇게 기를 완벽하게 갈무리하는 고수가 여기에 있다는 건.

‘싸웠다간 거의 죽는 수준인데?'

AI는 동수라고 말했지만, 직접 보니 이건 싸움 자체가 되지 않았다.

거의 구종명급. 아니, 그 정도는 아니어서 몇 대 때려보기나 하고 죽을 것 같다는 정도일까.

그래서 어물어물 뒤돌아서려고 하는데......

“아, 대충 알겠군. 뭐, 가끔 그런 게 있지.”

“......?”

“수련을 쌓기 위해 비무를 부탁하는 이들. 하지만 실상 목적은 알지. 그건 다 거짓말일 뿐. 살의가 피어오르는 걸 주체하기 힘들어, 화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죽이고 싶은 거야. 너도 그래서 온 거지?"

“.......그럴 리가요.”

“아니긴 뭐가 아냐. 들어와. 이리 들어와.”

주춤주춤 물러서려는 설휘에게, 실실 웃으며 손짓하는 왕모력.

그는 서고를 지나 이동했다. 이곳 천일관 지하에는 수많은 책뿐만 아니라, 한쪽에 큰 공터가 있다.

그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스윽.

그렇게 걸음을 멈춘 그는 손을 올렸다.

“거 참, 난감한 상황이긴 한데....... 재밌는 경험일 수도 있는 거니. 나도 그동안 좀 따분하기도 했고.”

“본교의 선배로서 네게 삼 수를 양보하마.”

“예?”

“덤비라고.”

확실하다.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 저는 어르신과 싸울 생각이 .........”

“아. 닥치고 덤벼, 이 새끼야.”

상대는 설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싸울 태세를 취했다.

츠츠츠츠츠츠.

그의 몸을 따라 서서히 생성되는 기류들.

그것들은 점점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더욱 강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안 그럼 나부터 간다?"

'미친!’

설휘는 그제야 느꼈다.

이 새낀, 또 다른 형태의 상또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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