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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74화 (175/379)

174화. 또 다른 선택 (2)

- 대체, 어떻게 이 무공들을…….

AI가 불러온 무공들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마교의 기본 무공은 물론이고, 교주의 제자들이 익힌다는 사대극마공까지 얻었다. 그것들을 결합해 절대극마공이란 신공도 만들어냈다.

어디 그뿐인가.

소림, 무당, 화산의 절세무공을 모두 습득했다. 더 나아가, 천마의 무공이라는 천마잠형술과 천마군림보까지 불러들인 상황이었다.

“큭, 놀라기는……. 수천 번 죽다 보면 너도 이 정도는 익히게 될 거다. 그런데…… 어? 저놈, 덤비려나 본데?”

팟.

AI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분노하던 왕모력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전에 펼쳤던 천마잠형술을 쓴 것이다.

그리고.

‘……?!’

팟.

AI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 둘 다 천마잠형술을……?!

형체를 지우고 움직이는 신공.

본래는 은신술의 최상승 무공이지만, 지금 두 사람은 신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애초에 상대의 시선을 속이는 데 더 적절했으니까.

드드득. 사사사사사사사사삭.

천장이 부서지는 소리와 공기 가르는 소리가 가득했다. 누가 쫓기고, 누가 쫓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물고 물리는 추적 속에서 먼저 모습을 보인 인물은.

AI였다.

‘이런!’

초마 경지의 제약 때문인지, 아니면 부족한 내공 때문인지 몰라도 먼저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 지근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왕모력.

그는 이번엔 말도 붙이지 않고 그대로 장공을 발출해버렸다.

‘안 돼!’

피하기엔 늦은 거리. AI의 형체가 일그러지는 모습에, 온 신경이 곧추셨다.

그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그렇게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이상한 것이 보였다.

AI의 신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왕모력의 손에 복부를 관통당한 그의 모습이.

‘환영?’

사사사삭.

그러고 나서 AI 양쪽에 생성된 두 개의 환영.

나는 그제야 그가 무슨 무공을 썼는지 깨달았다.

바로 천마군림보.

본교의 사람이라면 귀에 따갑도록 듣던 게 있다.

강호 최고의 경신법이 무엇이냐는 논쟁 중에서, 세 손가락에 올리길 주저하지 않는 보법.

한 번에 열두 개의 환영을 생성해내는 보법으로, 이 보법의 진정한 위력은 환영이 그저 허상이 아닌 모두 실체라는 것.

드드득.

하지만 초마란 경지 때문인가. AI가 펼친 건 고작 세 개가 전부였다.

“이 녀석이 어디서 술수를 쓰느냐!”

왕모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AI가 펼친 걸 천마군림보로 보지 않은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마군림보는 마교 교주만이 사용할 수 있는 보법.

장로급에게는 전파되기도 한 천마잠형술과 달리 오로지 교주만이, 혹은 교주가 고른 소수의 사람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보법이다.

당장 그의 직속 제자들도 받지 못한 신법이니까.

사사삭.

두 개의 환영이 움직였다.

화르르륵.

왕모력이 두 손에 머금은 녹광이, 마치 화골산처럼 피어올랐다. 그는 그것을 자신에게 쏘아지는 환영을 향해 방출했다.

쿠와아아아앙!

변수는 없었다.

이번의 폭발은 이제껏 봤던 그 어떤 것보다 컸다.

삽시간에 환영이 녹아버림과 함께 지반이 붕괴되는 현상까지 보였다.

‘어?! 하나가 더!’

내가 본 것을 왕모력도 알아챈 듯했다.

“큭!”

하지만, 이번엔 그가 늦었다.

천마잠형술과 천마군림보를 동시에 운용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반호흡을 빼앗긴 왕모력은 AI가 다가오자 수비자세로 돌입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지만, 두 손을 이용해 몸을 교차로 보호하던 중에도, 손가락을 튕겨 사방에 탄지신공을 발휘했다.

‘탄지강(彈指罡)!’

나는 거기서 극마의 무서움을 보았다.

가슴을 두 손으로 교차해 막으면서, 동시에 손가락을 튕겨 무려 열 개의 강기를 쏘아내는 미친 무공.

초마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격차를, 그제야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휘리리릭.

탄지공을 마주한 AI는 검을 빙글빙글 돌려댔다. 그 대응은 더욱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휘이이잉.

검극에서 생성된 둥근 기류에 열 개의 지공이 휘말린다.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을 날려버릴 흉악한 지공들이, 무한한 원의 궤도에 휘말려 빙글빙글 맴돌기만 했다.

‘저것이 태극혜검?’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량발천근.

넉 냥의 힘으로 천근의 무게를 흘려버린다.

AI의 몸 주위를 흐르는 도도한 기류는 이제껏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무당의 무공? 너 이놈, 대체 정체가 뭐냐!”

왕모력은 소리쳤다. 그 역시 극마의 고수. AI가 쓰는 수법을 한 번에 알아봤다.

“놀라기는. 이제부터야.”

구구구궁.

천장은 이미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이번엔 AI의 공격이 이어졌다.

슈슈슈슉!

쾌검으로 내질러진 찌르기.

왕모력은 처음에는 쉽게 걷어냈다. 하지만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찌르는 방향이 파르르 떨리며 좌우를 노리자, 왕모력은 내공을 쏟아내 방어했다.

그 지점에서.

틱. 틱. 틱.

AI의 검에 내력이 맺히기 시작했고, 상중하를 바꿔가며 왕모력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는 걸리적거리는 찌르기를 단번에 파훼하려고 두 손을 뻗었다.

“이따위 잔재주를……. 헙!”

막 내기를 뽑아내어 밀어넣은 순간.

기민하게 딛고 있는 위치를 바꾼 AI의 검에서 초검기 수십 개가 쏟아졌다.

“익!”

위치가 달라지고 막을 방향이 달라지자, 왕모력은 급히 몸을 움츠렸다.

칙! 칙! 칙!

이미 금강불괴에 오른 데다가 방어력이 극강인 호신공으로 피해를 상당히 줄였지만, 무릎이나 어깨에 피가 흐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아마 이건 독고구검이겠구나.’

설휘는 생각했다.

화산의 독고구검.

공방이 일체이며, 상대에 따라 어떤 것이든 대응할 수 있는 무초식의 절정. 그 묘리가 발산된 것이다.

츠츠츠측.

또다시 두 사람의 경계가 팽팽해졌다.

그러던 중 AI가 말을 걸어왔다.

“야. 모자란 놈.”

- 어.

“생각을 좀 해봤는데, 여기 총 사무관이란 놈이 있거든. 그놈에게도 목숨이…….”

- 그놈, 이미 처리했는데?

“…….”

- 뭐야? 지금 너, 자신이 없어진 거냐?

“야, 당연히 가지고 놀지. 근데 지금 보니까, 저놈을 죽이려면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한 것 같아서다. 원래 초마로 극마를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 그럼 어떡하냐? 아, 너 아까 절대극마공을 얻지 않았나? 거기에 특수 기술이 있잖아.

“아, 말 안 했는데 그건 극마에 올라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야. 그게 있었다면 진작에 처리했지.”

- …….

“그래도 뭐. 방법이 하나 있긴 해. 네 맘에는 들지 않겠지만…….”

투투툭.

그러더니 AI가 갑자기 몸의 혈도를 짚어댔다.

나는 곧장 기함했다.

- 이 썅노무 새끼야. 사혈을 왜 짚는 거야!

“저놈 못 죽이면 너도 죽어. 그리고 어차피 이번 생은 망한 거 아니냐?”

- 안 망했어, 새끼야! 누가 망했다고 그래?

“이미 망했다니까? 아주 폭삭 망했고…… 일단 원기를 통해 수십 년의 생명 정도는 불살라야지……. 나중에 다시 키워라.”

드드드득.

사혈을 짚은 효과는 즉시 나왔다.

근원지기. 혹은 선천진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몸 내부에만 있는 미증유의 거력이 온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걸 위해서 사혈을 짚은 것이다.

- 아 진짜. 저 쌍도라이 새끼…….

그때 맞은편의 왕모력의 눈빛이 변했다.

그 눈에는 이미 분노가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이 실려 있었다.

“너…… 대체 누구냐? 본교의 무공과 정파의 무공을 동시에 쓰다니.”

“왜? 그게 궁금해?”

“당연히 궁금하지. 아무래도 넌 내가 데리고 가야겠다. 공들일 만한 실험 대상이군.”

“뭐라는 거야. 이 씹새끼가. 네 묫자리가 여긴데 뭘 데려가?”

“크큭.”

상대가 기운을 점차 뻗기 시작했다.

철컥.

그사이, AI는 풍운극마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두 손을 펼치기 시작했다.

- 야, 검 안 써?

“시끄러. 주둥이 좀 닫아.”

트드득.

그러고는 온몸에 잔뜩 힘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불끈불끈.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핏줄이 선명히 드러났다. 마치 외가기공만 수십 년 익힌 권사의 몸 같았다.

‘이번엔 소림오권을 사용하려는 건가.’

정확히 뭔지는 모른다. 그저 장공을 쓰려고 하는 것 같았기에 소림권이 아닌가 생각했을 뿐.

20…… 19……

‘어느새 시간이.’

때마침 시간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초조해졌다.

이번 싸움에서 승부가 나지 않으면, 그땐 어떻게 될까.

자신이 죽게 되지 않을까.

그때 AI가 우려를 날려줄 한마디를 해주었다.

“의심하지 마라. 난 이것보다 더 어려운 싸움도 셀 수 없이 해왔다. 그중엔 저놈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녀석도 있었지.”

그 말에 나는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구구구궁.

사방에서 천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차피 이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가볼까?”

이미 대비하고 있는 왕모력을 향해, 이번엔 AI가 먼저 달려들었다.

“무리했군.”

그 모습을 본 왕모력이 흘흘 웃으며 말했고. 곧장 두 손을 펼쳤다.

- 억!

그리고 나는 보았다. 지하를 온통 덮을 정도의 거대한 빛줄기를.

스오오오.

그리고 기도 안 차게도. AI는 그 빛줄기를 손등으로 쳐냈다. 기격(奇擊)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게,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권강을, 손등으로 쳐내며 달려가고 있었다.

“걸렸다.”

그렇게 거의 상대의 지척에 당도했을 때, 왕모력 역시 기세가 변했다.

두 손을 펼쳐, 수십 개의 탄지강을 사방으로 뻗었다.

더는 쳐낼 수도 없는 상황.

그런데 AI의 행동은 나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퍼억!

권강 몇 줄기가 몸을 관통했다. 나는 거기서 그대로 끝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두 번째 슬롯에 있는 설엽초를 사용합니다.]

- 뭣?

황금 벨트에 있는 영약. 그걸 써서 상처를 즉시 회복시켰다. 뻥하니 구멍이 뚫린 곳에 급속도로 새살이 차올랐다.

“엇!?”

그에 왕모력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무리 극마의 고수라도, 아니 극마의 고수이기에 오히려, 상식을 벗어나는 해괴한 회복력 같은 건 예상 못 한 것이다.

“끝이군.”

그 잠깐의 찰나.

지척까지 다가온 AI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생지멸절공을 사용합니다.]

‘어?’

순간적으로 글귀를 보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상대가 곧장 반격을 가하는 동작이 보였지만, 이미 늦었다.

쿠와아아-----------앙!

보라색 불꽃이 뿜어져 나가며, 앞으로 스쳐 가는 모든 것을 불살라버렸다.

그 위력은 왕모력의 안면이 순식간에 소멸될 정도였고.

콰콰콰콰콰콰캉!

지면에서도 퍼져나가는 보라색 불꽃은 이 지하를 모조리 파괴시켜버렸다.

***

구구구구궁!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내 눈에는 AI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하니 죽었나 하는 그 시점에.

[첫 번째 슬롯에 있는 감로수를 사용합니다.]

또다시 영약을 사용했다는 글자가 보였다.

‘살아있구나.’

구구구궁.

완벽히 주저앉은 건물 속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그제야 그의 마지막 행동을 떠올렸다.

조금 전, 그가 했던 동작.

몸을 공중으로 띄우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 모양은 몸을 위로 띄우며 고개를 숙인다는 동작을 흉내 낸 것 같았다.

- 정말이지…… 응?

3…… 2……

그때 나는 보았다.

시간을 거의 다 사용한 장면을.

그리고 또 하나의 글귀를 보게 되었다.

▶ 늘린다.(초당, 1일간 AI 불러오기 불가)

▷ 본래의 몸으로 돌아간다.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솔직히 너무 궁금했다.

<‘늘린다.’를 선택하셨습니다.>

이제껏 항상 시간의 부족으로 듣지 못했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를 몇 달간 불러오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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