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80화 (181/379)

180화. 항주 (2)

펄럭.

바람이 불자 작은 깃발 하나가 나부꼈다.

우주상제 길흉화복(宇宙上帝 吉凶禍福). 황당하기 짝이 없는 문구였다.

편액이 걸린 집은 멀쩡한 계수나무로 지어진 전각인데, 그 깃발 하나로 마치 뜨내기 점복사의 집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수군수군. 쑥덕쑥덕.

그럼에도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실 이 집은 점복사의 집이 맞았고, 이들은 점을 보거나 방책을 얻기 위해 몰린 사람들이었다.

고작해야 보름.

처음에 저잣거리 좌판에서 점을 치던 소년은, 오는 족족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개중에는 큰 거래를 앞둔 상인도 있었고, 몇 년째 잔병치레로 고생하고 있는 고관대작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하루아침에 웃는 낯으로 나타나 거액을 쾌척하니, 소년의 이름은 크게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이 집은, 척 보면 척 맞춘다는 신내림 받은 소년무당의 점집으로 알려졌다.

“오라버니,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십여 명을 앞에 둔 길목의 한 줄에서, 한 여인이 잔뜩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점쟁이에 대한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좋은 편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천것이며,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들이 십중팔구였으니까.

가끔 정말로 신통방통하다는 이들이 있기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극히 소수. 당장 이 집은 걸린 편액부터가 가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런 미천한 이들에게 가문의 중요한 일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걱정하는 바는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닭 울음소리를 내는 재주도 중히 쓰이기도 하는 법이다.”

청년이 고개를 내저었다.

전국시대 신릉군의 일화를 입에 담는 것으로 보아, 학식이 적지 않은 사람 같았다.

“대상인 곽구가 고민을 하다, 점괘를 받고 큰 이익을 보았다지. 시름시름 죽어가던 이판댁(李判宅) 어르신의 딸아이를 단번에 치유해줬고, 유감서(柳監書) 어르신이 잃어버렸던 자식을 찾게 해주기도 했다. 이 정도면 한가락 재주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느냐?”

이판댁은 과거 조정에서도 한자리를 했던 만큼 항주 내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감서 역시 지역 유지로 불리며 발이 넓다고 알려져 있었고, 그를 통해서 이곳 소년무당이 크게 알려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 그건 그냥 운일 수도 있어요. 평소에 하오문 같은 삼류 정보 단체의 도움을 받았다든가, 혹은 의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든가…….”

“그렇다면 그 또한 재주가 아니겠느냐. 앞서 말한 저 사람들이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았겠느냐? 그들 또한 자기 능력이 닿는 중에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겠지 않느냐.”

여인이 반박했지만, 청년은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연유가 무엇이건, 수단이 무엇이건, 저 소년은 그들의 난제를 풀어주었지. 신분이 어떻든, 능력이 어떻든, 내가 보는 것은 결과다. 결과로 보는 것이지.”

“전 그냥 시간 낭비인 것 같은데…….”

“시간 낭비라고 해도 고작해야 한 시진이다. 그걸로 혹여 우리 일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면, 아니면 단초라도 찾을 수 있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알겠어요…….”

오라버니의 말에, 그녀는 결국 수긍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마뜩잖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돌아올 자신들의 순번을 기다리며 침묵했다.

“다음 분, 들어오십시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하인 하나가 나와 자리를 안내하자, 그들은 조심히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내걸린 구슬주렴을 치우고 들어가니, 벽에 붙어 있는 나무의자가 보였다.

“잠깐 기다리시지요.”

그의 말에 따라 둘은 의자에 앉았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아직 접대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듯했다. 덕분에 둘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소년 앞에 선 중년인의 표정은 절실했다.

그는 얼마 전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었고, 엊그제는 자살까지 시도했을 만큼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보약을 지어 주시게.”

“……보약이라고요?”

중년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남편을 두고 바람피운 아내. 헌데 하필이면 상대가 만만찮은 신분이었다.

마음 같아선 찢어 죽여도 모자랄 판에 보약이라니.

하지만 소년무당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네가 아내에게 보약을 건네주면, 그걸 어디다 쓸까? 당연히 아내는 바람난 상간남과 같이 먹지 않겠나.”

“그렇겠지요.”

“그걸 노리는 걸세.”

중년인이 오히려 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기운을 돋우려고 과한 약재를 쓰거나, 탕약이 몸에 맞지 않으면 탈이 나지. 이를테면 복통, 설사 같은 걸로 배출이 되지.”

“허면, 소년무당님께서는…….”

“그러니까 과하게 약재를 넣은 보약을 아내에게 가져다주게. 젊음에 대한 욕구가 강할수록, 외간 남자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그 보약은 둘이 나눠 먹게 될 거야. 하루 종일 설사하고 나면 둘 다 뻗을 거고. 그때!”

한순간 목소리를 높여 자신에게 집중시킨 소년무당이 씨익 웃어 보였다.

“고대하던 현장을 잡을 수 있게 될 거야.”

“아…….”

중년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두 놈의 범죄현장을 찾아다니려다 실패했던 무수한 나날들. 더욱이 상간남 놈은 싸움도 잘했다.

하지만 모두 뻗어 있는 상황이라면 그 현장을 잡아 둘을 족치든지, 관에 신고해 처벌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용하십니다. 정말 용하십니다.”

투욱.

중년인은 머리를 숙여 연신 절을 했다. 그리고 한쪽에 놓인 금고에 있는 돈을 다 털어내 집어넣기 시작했다.

“자, 다음.”

소년무당이 가라는 손짓과 함께 부채를 폈다.

잠시 뒤, 그의 앞에 남녀 한 쌍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남녀 둘은 입을 닫은 채 무슨 이유인지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소년무당이 피식 웃었다.

“나와 기 싸움을 하러 왔는가? 왔으면 말을 해야지.”

“맞춰보실 수 있으십니까?”

“뭐?”

소년무당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지만 사내가 빠르게 일어나 금고에 은 한 냥을 집어넣는 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가끔 내 도력을 시험하려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 정말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하고.”

“죄송합니다.”

“괜찮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럼 어디 볼까.”

촤라락.

부채를 접은 소년무당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을 보던 사내의 눈빛에 약간 당황함이 묻어났다.

소년무당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 보였기에.

그리고 눈망울이 너무나 맑았기에.

“무가 쪽 사람이구만?”

“……아!”

“그걸 어찌……?!”

사내는 놀랐고, 여인은 연유를 물었다.

자신들의 차림은 무인으로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년무당은 자신들이 무인일 뿐 아니라 무가 쪽 사람이라 말한 것이다.

“입은 차림은 흔히 볼 수 있는 조복(朝服)을 입고 있지만, 곤의(袞衣)에 쓰이는 비단 재질을 썼으니 나름 차림을 중시하는 집안사람으로 보였고.”

툭. 툭.

소년무당은 부채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둘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눈가 쪽 태양혈이 솟아 있지 않은 걸 보면 무공을 익혔다고 하기는 어려울 터. 그럼에도 남녀의 눈에 기광(氣光)이 형형이 서려 있으니 성취가 낮을 뿐, 정심한 심법으로 수련해온 흔적이 있어. 그래서 무가 쪽 사람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

“…….”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들의 반응이 사실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으니까.

소년무당은 거기서 한마디를 더했다.

“사람을 찾으러 왔지?”

“……?!”

“……허!”

남녀 둘은 이번엔 정말로 놀랐다.

마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너무도 정확했다.

“뭐, 이건 신력이니 뭐니 하는 걸로 본 게 아니니 너무 놀라지 말고. 얌전한 행장 차림에 가죽신에 흙이 묻어, 단시간 내 험한 지형을 이동했다는 걸 알 수 있지. 이곳에 온 것도 그렇고…… 당연히 사람을 찾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야.”

“모두 맞습니다. 다만, 우리가 찾는 자는 귀신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내가 드디어 속내를 털어놓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저희는 뛰어난 고수를 찾고 있습니다.”

“고수? 그럼 근방의 유망한 검문(劍門)이나 유명한 도장을 찾아야지, 왜 나를 찾나?”

“그것이, 저희 상황은 이렇습니다.”

그때부터 사내는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무남종가(武南鍾家).

소흥시(紹興市)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항주 남쪽에 있는 도시로 중원 8대 명주의 하나인 소흥주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이 무남종가의 가주는 종숙명으로, 한때 뛰어난 학사였다. 문일지십(聞一知十)으로 어릴 때부터 하나를 가리키면 열을 안다는 뛰어난 재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중원에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그의 명성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종숙명은 그런 그들을 매몰차게 내쫓지 않았다.

악행을 저질렀거나, 하는 짓이 나쁜 사파인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식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여 삽시간에 세가 불어나기 시작했고, 곧 성세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 건데?”

소년은 턱을 괸 채 부채로 목을 긁으며 대꾸했다.

“자비(慈悲)란 여인이 들어오고 나서부터입니다. 첩으로 삼았던 여인이 가주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혹시 그 여인에게 아들이 있어?”

“예.”

“첩이니까 첩의 아들을 내세운 거겠구먼. 그러는 그대는 가주의 아들일 거고.”

“예. 그리고 본래 우리 무남종가는 대부분 문가였습니다.”

“대충 그려지는구만. 문(文)과 무(武)의 대립이 일어난 거지?”

“그렇습니다.”

사내, 종리헌이 여기서 몇 마디를 더 이었다.

장로원에서 중재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비무대로 승부를 가르자고 제안했다.

보름 이내에 세 명의 고수들을 내세워 최종적으로 이기는 쪽이 승리하는 걸로 하자고.

“굳이 왜 비무여야 하는가? 그런 방법은 문가 쪽이 더욱 불리할 텐데.”

소년무당이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로 쪽 사람들도 그들의 손에 이미 장악당해 버렸으니까요. 표면적으로는 문파에 어려움이 닥쳤을 시 제대로 된 고수들을 초빙할 수 있는 역량을 시험하자는 것인데, 그건 허울 좋은 변명일 뿐이지요. 학문으로는 우리에게 이길 방도가 없어 그런 제약을 두었던 겁니다.”

학문을 주로 공부한 종리헌이 무림 성세를 잘 알지 못하는 걸 노렸다.

그리고 그 옆의 여인, 종리미 역시 무보다는 문에 치우쳐 있었다.

이제야 이들이 무공심법을 익혔음에도 성취가 미미한 이유가 납득이 갔다.

“흐음.”

모든 얘길 들은 소년이 턱을 쓸어내렸다.

뭔가 알 듯 말 듯한, 해결책을 내놓을 듯 말 듯한 행위를 계속 이어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싸움꾼이 필요하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정말 절실합니다.”

종리헌은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그간의 근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헌데, 앞서 세 명이라고 했는데……. 한 명도 구하지 못했나?”

“아닙니다. 두 명은 확보해둔 상황입니다.”

“오, 그래?”

소년무당이 고개를 끄덕이자, 종리헌은 내심 의아했다. 그래서 이번엔 그가 물었다.

“누군지 묻지 않으십니까?”

“왜? 어차피 별 볼 일 없는 놈들일 텐데…….”

그때였다.

“말씀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그분들은…….”

“그만.”

종리미가 끼어들자, 종리헌이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괜한 기 싸움은 피하는 게 좋았다.

“뭐, 나도 실력자 한 명을 알고 있긴 해.”

“정말이십니까?!”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며 말하는 종리헌.

눈가가 촉촉해져 있던 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네.”

“무슨 문제입니까?”

“돈이 꽤 많이 들어.”

그 말에 종리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혹시 그분께서 얼마를 원하실지 알고 계십니까?”

그 말에 소년무당, 송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절실하다면서, 어디서 자신을 상대로 밑장을 까는 제안을 하는 것인가.

송화는 그가 제시한 밑장을 걷어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나?”

받을 수 있는 금액이라면, 최대치로 받아주는 게 좋았으니까.

***

저녁 시간.

송화는 성도 근처에 있는 인근 역참에 들렸다.

역참은 지방 군현 간의 공문서를 전송하고, 왕래인의 숙박을 돕기 위한 곳으로, 많은 말을 관리하는 관리소다.

“오셨습니까.”

“여기 있네.”

“어이구…… 감사합니다.”

한 장년인이 마중 나와 고개를 숙였다.

역리(驛吏)의 직책을 가지고 역의 실무를 담당하는 이였다.

그런 그가 소년에게 이렇게 공손하게 예를 표하는 이유는 바로 기부금.

사흘마다 꾸준히 기부금을 내겠다고 한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로써 딱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그래. 혹시 매가 왔느냐?”

“붉은 매 말씀이지요? 예, 왔습니다. 잠시 여기 맡아두고 있었습니다.”

“그래?”

송화는 환한 얼굴로 그가 안내하는 곳까지 걸어갔다.

마구간의 역마들 사이로, 조금 높은 지대에 큰 철장이 있었다.

그걸 횃대처럼 붙잡고 쉬고 있는 매.

“저게 맞지요?”

“그렇네.”

송화는 그런 그에게 별도의 돈을 얹어 주었다.

“일 보게.”

“매번 고맙습니다. 소년무당님.”

그렇게 그가 사라지고, 송화는 붉은 매에게 다가갔다.

이 녀석은 천리응. 기려사대에도 몇 마리 없는, 하루에 천 리를 날아다니는 영물이다.

그런 녀석의 발에 걸린 양피지를 떼어냈고, 다시금 녀석을 꺼내 하늘에 풀어주었다.

“음.”

양피지 내용을 훑던 송화.

잠시 저편에 있는 건물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빨리 사부께 전달해 드려야겠군.”

그러고는 기척을 감추며 다시금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송화가 설휘, 음무기와 함께 항주에 온 지 정확히 한 달하고도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