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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84화 (185/379)

184화. 무남종가 (3)

“아, 죽이자는 건 아닙니다.”

한순간 분위기가 싸해지자, 음무기가 손을 내저으며 오해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런데 왜…….”

송화가 물었고 곧장 음무기가 답했다.

“생각해 보거라. 그놈들도 우리처럼 다 돈을 받고 하는 녀석들 아니겠느냐? 그런데 분명 우리보다 실력이 떨어질 거다. 실력도 안 되는 자들이 비무에 나가면…… 여기 소가주께서 매우 난처한 상황에 빠지지 않겠느냐?”

“뭐, 그렇긴 하겠지만…….”

송화도 그 점에 대해선 동의했다.

석정과 추야경이란 자.

얼핏 듣기에도 절정에 못 미치는 실력자로 보였다.

그런 이들이 나가면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음무기뿐만 아니라 사부님까지 나서면, 이 문제는 완벽히 해결된다.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설휘 역시 동의 의사를 내비쳤다.

“오면서 보았는데, 종리헌이라는 사내. 심성이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우리에게 좀 실망한 기색이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그는 끝까지 예를 지켰으니까. 그러니 도와줄 생각이다.”

“돕는……다고요?”

돕는다는 의미가 원래 이런 것이었나 생각하는 송화를 보며 설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참으로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셋이지. 저들이 나가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것이야. 종리헌에게 반드시 필요한 승리를 안겨다 줄 것이고, 그들은 그에 걸맞은 돈을 우리에게 줄 것이지. 즉, 서로가 서로를 돕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냐.”

“아……!”

송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말이 된다.

물론 앞서 있는 녀석들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그건 대의를 위해서는 버리는 게 맞다.

이 비무, 반드시 승리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던 차에 음무기가 한마디 더 했다.

“아니지요, 사부. 실제로는 우리가 손해를 본다고 해야 합니다. 저들이 우리 몸값을 너무 싸게 쳐서 그렇지, 만약 사부님을 돈으로 부리려고 한다면 그 금액이 얼마겠습니까?”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겠지.”

“그겁니다! 감히 돈만으로 부릴 수 있겠습니까?”

“훌륭하다. 넌 나의 제자가 맞구나.”

“역시, 저의 사부가 맞으시군요.”

서로 한마디씩 하면서, 또 헤헤 거리며 맞장구치는 음무기와 설휘.

그걸 보던 송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헤이유.”

제자 된 입장에서 사부의 몸값을 운운할 수 없으니, 괜히 끼어들 상황도 아니었다.

그리고 둘은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럼 손을 좀 써야겠군. 송화야. 종리헌의 손님 둘이 어디에 있는지 거처를 확인해 보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송화가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내일 아침.

기겁하는 종리헌을 어떤 말로 달래 줘야 할지 하는 그런 고민이었다.

***

같은 시각.

다른 객방에서는 조용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장삼을 걸쳐 입은 스님.

허나 스님으로 보이지 않는 거구의 사내는 종리헌의 설명을 들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개의 패 중 하나가 강남삼검이었군요. 확실히 쉬운 상대는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역시 그렇습니까?”

종리헌은 담담히 반응했다.

예상대로 상대의 이름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승산이 낮다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자신이 초빙한 고수의 반응을 들으니 속내가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준은 아닙니다. 영환검법은 신비의 검법이라 불리지만, 조금 부풀려진 감이 있지요. 흔히 환검이라 불리는 검술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는 무공에 조예가 깊지 않은 종리헌을 향해 쉽게 풀이한 설명을 곁들었다.

“붕검, 변검, 쾌검, 살검, 환검. 어떤 것은 빠르고, 어떤 것은 초식의 기묘함을 살립니다. 허나 그 모든 것은 결국 눈의 착각. 소승이 배운 것은 소림의 무예, 허실을 파악하는 데 특히나 강점이 있습니다. 어려운 싸움이 되겠으나, 약점을 찾는다면 오히려 승리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좋은 말씀 못 드린 제가 오히려 죄송합니다. 방심은 금물. 그와의 대결을 위해 단단히 마음을 다져두겠습니다.”

오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담담한 태세.

그에 종리헌은 한 가닥 희망을 걸었다.

석정은 말이 소림의 속가제자이지, 실제로는 본산에서 배운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그가 세속에 관심이 많고, 아직 젊은 터라 출가를 단념하여 직계가 아닐 뿐.

실력만 놓고 보면 직계 제자 중 일대에 달하는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럼 살펴 가십시오. 저는 운공을 좀 하겠습니다.”

“예. 그럼 믿고 일어나겠습니다.”

종리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았다.

“강원태라…….”

그제야 석정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강남삼검 중 하나.

이 정도의 강자를 상대로 싸울 줄은 몰랐다. 더구나 그런 인물보다 더한 강자가 있다는 말에 조금 주눅이 들긴 했다.

“뭐, 길고 짧은 것은 대어봐야 아는 것이거늘.”

그래도 딱히 비관적이지는 않았다.

그 역시 소림에서 오랜 시간 수련한 몸. 특히 소림오권에는 나름의 조예가 있었다.

드르륵.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객방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다. 석정은 그 가운데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상의 적을 상정하며 빠르게 움직임을 가져갔다.

“소림오권은 만물에 대항할 수 있는 모든 초식을 가지고 있다.”

슈슉!

그는 자세를 잡고 단전의 기를 끌어올려 손을 내질렀다.

소림의 오권은 본디 용(龍)과 호(虎), 표(豹), 사(蛇), 학(鶴)을 본뜬, 형의권 중 하나.

그 움직임은 천지인의 삼재(三才)를 두고, 권을 내지를 때는 오행을 따른다. 보통 다섯 갈래로 나뉘는데 벽권, 찬권, 붕권, 포권, 횡권이 바로 그것이다.

슈슈슉!

그렇게 석정은 오행권을 각기 다르게 휘둘렀다.

주먹을 쥐는 법과 내지르는 방법이 조금씩 차이가 났지만, 보는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자신만이 아는 깊은 오의.

“후우우웁.”

한바탕 땀을 흘린 다음 석정은 기운을 거둬들였다. 소림오권을 할 때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게 기분 좋게 기운을 갈무리할 때였다.

“다한 거요?”

“……?!”

석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한 가운데서 들려온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누구냐!”

석정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비무 상대 측에서 야습을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며.

그런데.

“아. 오해하셨나 본데, 나는 그대와 같은 편에 선 사람이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한 남자를 보았다.

눈빛이 날카롭고, 체구가 깡마르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특색이 없었다.

그를 본 석정은 대충 짐작했다.

“당신은…… 혹 오늘 소가주께서 데리고 온 분이시오?”

“뭐, 그렇소.”

“쯧쯧쯧.”

석정은 곧장 혀를 찼다.

“듣기로 소가주께서 모신 마지막 분이라고 하던데…… 우려가 현실이 됐군. 이처럼 기본이 되지도 못한 자가 가문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오게 되다니…….”

석정은 냉담하게 반응했다.

한밤중에 예의를 차리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고, 자신의 무공을 엿본 것도 그러했다.

소가주가 마지막 분에 대해 말을 계속 돌리는 게 의아했는데, 이렇게 되먹지 못한 자가 왔을 줄이야.

“뭐, 그건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내 부탁을 하나 할까 하는데 말이오.”

“……?”

“거기 몸 좀 빌립시다. 하루 정도 푹 쉬다가 깨어나면 될 거요.”

“그, 그게 무슨 말인가?!”

그제야 상대에게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석정. 그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기를 끌어올렸다.

파파팟.

상대는 대답 없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찰나라고 할 짧은 순간에, 그는 성명 절기라 할 수 있는 붕권을 내질렀다.

“하앗!”

허나, 허공으로 발산되었고.

“미안하지만, 그건 아까 봤소.”

퍽!

빛살처럼 날아든 손이, 그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석정의 시야가 삽시간에 흐려졌다.

‘엄청난 고수…….’

그것이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는 툭 하고 죽은 나뭇등걸처럼 쓰러졌다.

“읏샤.”

설휘는 그를 어깨에 멨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살펴본 뒤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객방이라 하나, 앞에 공터도 있고 고급스러운 전각으로 지어진 곳.

거기에 한 사내가 잔뜩 긴장한 채 서 있었다.

“강원태라니…….”

추야성은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조금 전, 종리헌이 다녀가며 흘린 말에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식겁한 듯 두근두근 떨렸던 것이다.

“허, 이거 그냥 내빼야 하나…….”

그도 나름 수향 바닥에서 해결사를 자처해 온 몸이었지만, 강원태 같은 고수는 예외였다.

강남 일대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검객이 아닌가.

더욱이 상대측에선 그자보다 더 강한 자도 데리고 있다는 말에,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쯧…… 한동안 욕을 달고 살겠군. 그래도 할 수 없지. 개망신을 당할 바에야…….”

주섬주섬.

그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이제껏 대접을 후하게 받긴 했지만, 그게 목숨 값이 될 만큼은 아니었다.

추야성은 종리가로 들어올 때 보았던 길을 떠올렸다.

두 개의 관문, 그리고 담 하나.

그것만 넘으면 도망갈 수 있었다.

딴에는 예의를 갖춘다고, 선금으로 받은 금자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문 앞으로 다가갔을 때.

“도망가는 건가?”

“헉?!”

그는 눈을 의심했다.

낯선 사내가 책자 하나를 편 채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아, 저 틈으로 들어왔어.”

사내는 태연하게 문 사이를 가리켰다. 종리헌이 나갈 때 살짝 닫히지 않은 틈이었다.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건가?”

“뭐, 안 믿어도 상관없지. 잠영투체술이라는 건데…… 네놈이 알 수 있을 리야 없고.”

“…….”

등골이 서늘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대화가 불가능함을 느끼고.

스릉.

양쪽 허리춤에 맨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 단도는 암살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짧고 기형도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나직이 숨을 몰아쉬고, 온몸에 투지를 끌어올렸을 때.

“조금 늦게 올 걸 그랬나…….”

“……?!”

“이렇게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알았다면 말이지. 어이, 그냥 모른 체해줄 테니 그냥 가지 그래?”

“…….”

상대의 말에 추야성은 고민했다.

실제로 어차피 도망가기로 한 몸. 이자가 누구든, 굳이 그와 싸울 필요는 없었다.

“……아쉽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내가 도망치는 걸 본 증인은 없애는 게 낫지 않겠나?”

어차피 더럽혀질 이름이라도, 그건 자신의 선택이어야 했다.

아니, 정확히는 기분이 나빴다.

이런 걸로 한바탕 드잡이도 하지 않고 물러서는 건, 꽁지 빼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저런! 그거 좀 아쉽구만.”

그 말에 음무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패애애액!

추야성은 들고 있던 단도를 한 바퀴 회전시키며 필살의 수법을 준비했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지금껏 자신을 수없이 살렸던 회심의 한 수.

그런데.

퍼억!

달려드는 순간에 상황은 끝났다.

마령지도법.

마교에서 손꼽히는 도법으로, 백혼 장로가 쓰는 기술.

고작 강호의 해결사 따위가 받아낼 수 없는 일격이었다.

너무도 빨라 한순간 빛을 보게 된다는 그 출수법 중 하나가 그에게 펼쳐진 것이다.

“……여긴 이런 바보들만 있는 건가?”

음무기는 혀를 차며 몸을 숙였다.

그리고 쓰러진 그를 어깨에 둘러메고는 태연하게 방문을 나섰다.

***

“내일…… 내일이다.”

한편, 종리헌은 운명의 새벽을 기다리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지든 이기든, 명가의 후예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러다가 여전히 각등이 켜져 있는 설휘의 저택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차. 그러고 보니 말……하는 게 도리일 것 같은데.”

상대가 강남삼검 중 하나라고.

이미 앞서 모신 두 분께는 전했던 얘기였다.

‘아냐. 어차피 알아봤자 걱정만 더 들 것이다. 지금은 그대로 놔두는 게 맞겠다.’

종리헌은 곧 자신의 생각을 고쳤고, 이내 침상에 들었다.

반쯤 열린 창가에는 달 옆으로 먹구름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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