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85화 (186/379)

185화. 비무 (1)

“거기 계시더냐?”

“없었습니다. 혹 주변에 있는가 싶어서 살펴봤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 침상에서 일어난 종리헌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침 식사를 들고 손님방을 들린 하인들이, 객방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다른 이들은 뭐라 하든가?”

“모두 본 사람이 없답니다. 아무래도 장원을 떠나신 듯합니다.”

“이런…….”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이번 비무대에 서주기로 약속한 귀인 둘이 동시에 없어진 것이다.

종리헌은 재빨리 하인들을 풀어 그들을 찾기 위해 나섰지만, 손님들의 종적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혹여나 하여 객방과 떨어진 곳이나 빈방을 살펴봤는데도 허사였다.

“밖을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노구가 하인들을 모아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주게.”

홍(紅) 노대의 말에 종리헌은 힘없이 대답했다.

내부에는 없는 게 확인되었으니, 외부로 나가 봐야 하는 것이 당연.

그렇게 홍 노대가 사라지고 난 뒤, 그는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주마등처럼 한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강남삼검이라는 강원태를 언급했던 당시 석정의 우려스러웠던 태도.

그리고 의외로 담담했던 추야성의 목소리.

어제 본 그들의 반응 중에 자신이 혹시 뭔가를 놓친 게 아닐까 하는, 괜한 자책이었다.

‘설마하니 도망……? 아니야. 추야성은 몰라도 석정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지나친 충격은 현실 부정으로 이어졌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근처 의원댁에 가셨을지도.

아니면 수련을 위해서 잠시 뒷산으로 가신 것일지도.

하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정말 그렇다면 당당히 밝히고 정문으로 나가면 되었을 터인데…….

“이걸 이제 어찌해야 하나.”

종리헌은 두 손을 펼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가문의 명운을 결정하는 오늘.

적통이 누구냐 하는 대소사를 결정할,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신뢰하던 두 명의 고수를 잃었다.

야속한 사람들. 차라리 말이라도 해 주면 좋았을 것을. 이제는 밖에 나가서 새로운 귀인을 모셔올 시간조차 없었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벌떡.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종리헌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거기엔, 정말 보기 싫은 녀석이 떡 하니 서 있었다.

‘자명…….’

아버지의 측실. 지금은 대부인이라 불리는 여인의 소생 자명이었다.

“아침부터 하인들이 엄청 바쁘게 움직이던데…… 무슨 일 있나?”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내게 말을 놓았느냐?”

“아니. 왜? 꼴에 한 달 먼저 나셨다고, 형. 님. 소리를 그렇게 듣고 싶어? 어차피 그런 기 싸움도 오늘이 마지막인데?”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비비는 자명. 그 태도에 종리헌은 이를 갈았다.

‘이 새끼.’

아마 소문을 들었을 터.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왔으면서도 이렇게 재수 없게 묻는다. 일부러 자신의 신경을 긁는 것이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줄까 싶은데……. 듣자하니 하인들이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것 같더라?”

“……이미 다 알고 왔으면서 물어보는 의도는 뭐냐?”

“오. 정말? 사람이 사라진 거야? 누가? 혹시 네가 데리고 온 식객들께서?”

“…….”

“아니, 난 정말 그냥 물어본 거야. 물어볼 수는 있잖아. 크크큭.”

자명은 그렇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며 종리헌은 울컥했다. 주먹을 내지를까 고민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싸우면 무조건 진다는 걸.

애초에 문에 치중해서 자라온 자신과, 한량처럼 법도도 모르고 커온 자명은 체격부터가 달랐다.

“아 참.”

가려고 돌아서던 녀석이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혹 그 얘기 들었어? 원로분들이 이번 비무 때 공정한 심판을 내려주실 분들을 모셔 왔다고.”

“……누군데?”

“남궁세가.”

“……!”

순간 종리헌의 눈이 커졌다.

설마 잘못 들은 것인가? 안휘의 제일가라는 남궁세가. 그들을 모셔왔다고?

“맞아. 네가 아는 그거. 중원제일가.”

“어떻게…….”

“그만큼 오늘이 중요한 날이니까? 그럼 일 보라고. 아. 겁먹어서 도망간 무인분들도 빨리 찾길 바라.”

“…….”

자명은 결국 마지막까지 조롱을 하며 사라졌다.

종리헌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참을 수 없는 허망함이 몰려온 것이다.

무(武)에 대해서 제대로 몰라, 하나씩 배워갔던 지난 노력들.

아버지에게 했던 숱한 약속들.

그들의 비무 제안에 자신 있게 중원으로 나섰던 두 달간의 노력.

그게 산산이 조각났다고 생각하니, 그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끝난 건가…….”

이젠 무를 수도 없었다.

비무의 심판으로 남궁세가까지 나타났으니, 이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한 줌의 희망이, 손아래 잡고 있던 것들이 흙처럼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흠흠.”

그런 그의 귀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렸다. 힘없이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에 데려온 소년무당이 서 있었다.

“안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것이…….”

소년을 힘없이 바라보던 종리헌은 잠깐 고민하다 속내를 털어놓았다.

오늘 아침. 비무자로 모셨던 두 분이 사라졌다고.

“이런!”

송화는 크게 놀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소가주,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게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해결 방법이요? 혹 그분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그보다 더 좋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종리헌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지금 상황에서 더 좋고 확실한 방법이 있었던가.

“마침 제가 데리고 온 분이 있습니다. 제 사부이지요. 그럼 두 명이 될 거고. 제가 나가면 딱 인원이 맞지요.”

“아…….”

잠깐, 지금 무슨 상황인가 눈을 껌뻑이던 종리헌은.

“그분은 강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걸 확인했다.

어차피 모두 강할 필요는 없었다. 두 명이 쓰러져도 적 세 명만 쓰러트리면 되니.

“음, 강하다라. 참으로 추상적인 질문이군요.”

송화는 거기서 한 번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이내 밝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제 사부께서는 천하를 굽어보시는 분입니다. 강하다는 말로는 부족하지요. 소가주께선 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천하를…… 굽어본다고요?”

“그렇습니다.”

송화의 말에 종리헌은 다시 한 번 눈을 껌뻑였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그에겐 시간이 꽤 필요한 상황이었다.

***

“그래서. 이분들만으로 비무를 치르시려고요?”

객방 앞에 선 종리미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종리헌에게 물었다.

어렵게 모신 무인들이 사라진 마당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비무를 열지 못하게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도 종리헌이 강행하려고 하니 잔뜩 화가 난 것이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약속한 상황이다. 거기다 원로원에서 남궁세가까지 불렀어. 그들을 돌려보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하지만 이제껏 그런 말도 없었잖아요?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그녀는 울분을 터트렸다.

방계 쪽의 횡포가 너무 심했다.

남궁세가가 심판 자격으로 오는 것은 사전에 약속된 바가 아니었다.

물론 중원제일가쯤 되는 가문이면, 고작해야 남의 가문 비무에 일방적으로 편을 들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마구잡이 진행을 하다니.

“그럼 어찌하느냐.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지 않느냐.”

“하아…….”

종리헌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비무를 하면 질 것이 너무 뻔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어린 소년, 난봉꾼처럼 생긴 남자, 그리고 비실비실한 청년이 음식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

이번에 데려온 비무자들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대충 눈치가 있으면 자신들의 상황이 어찌 흘러가는지도 알 텐데.

그들은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알겠어요, 오라버니. 저는 혹여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찾아볼게요.”

종리미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뭔가를 하기에는 이미 시간적으로 너무 늦었다. 무언가 큰 양보를 해서라도 물릴 수밖에.

“하아.”

그렇게 그녀가 떠나고, 종리헌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자신이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 무슨 일 있소?”

“비무는 언제 시작하오?”

음식을 먹던 음무기와 설휘가 차례로 물었다.

종리헌은 크게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잠시 뒤, 우린 중정으로 갈 겁니다. 규칙은 간단해요. 한 사람씩 연무장에 올라 대련한 후, 진 쪽은 내려가고 이긴 쪽은 계속 싸우면 됩니다.”

“음.”

알겠다는 듯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승부는 한쪽이 졌다고 얘기하면 끝나게 됩니다. 단, 상대를 죽이면 진 것으로 간주합니다.”

비무를 하는 자들에겐 죽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야 했다.

물론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남궁세가가 참관한 이상, 위험하면 그들이 개입하게 될 터.

“다 먹었는데…… 이제 일어날까요?”

“그럴까?”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친 설휘와 음무기, 송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본 종리헌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애써 훔치며,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따라오시죠.”

***

중정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가득 차 있었다.

보통 종리가 사람의 수는 백오십 정도였지만, 방계의 인원이 늘어나 지금은 사백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중정이 제법 큰 공간임에도 겨우 전부를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문의 대소사를 결정짓는 일전인 만큼 모든 장로와 원로원이 참여했다.

또한 중정 끝, 중앙 기준으로 좌측에는 직계 쪽 사람과 그를 따르는 식구들 스무 명.

우측에는 방계 쪽 사람과 그들을 따르는 식구 서른 명이 위치해 있었다.

“오…….”

“시작되려나 봐.”

중정 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게, 이 비무 대결로 종리가의 권력이 대폭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고수들의 싸움이라 흥미 요소도 충분했다.

“모두 조용히 해주시길.”

중정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일 장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비무대회가 열리기 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곳에 계신 분들. 이미 들으셨겠지만, 이번 비무대회를 연 것은 바로 우리 종리가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었음을 미리 알려드리오. 병상에 계신 가주께서도 승낙한 사안이오.”

웅성웅성.

지켜보던 사람들. 그중에는 문인과 무인들이 섞여 있었다.

다만 행색은 그저 보통 종리가의 복장이었는데, 대부분은 낮에 제조나 야금, 방직을 짜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본업이 따로 있는 와중에 참여한 상황이니, 그만큼 이 비무대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럼, 양측의 비무에 참가하는 무인들은 입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우측부터 인물들이 걸어들어왔다.

피부가 검고 인상이 험악한 거구 하나.

어깨에 붉은색 매듭을 하고, 상의와 하의를 정갈하게 입은 인물 하나.

그리고 파란색 도복을 입은 인물 하나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어? 저 어깨에 붉은색 봐봐. 저 복장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어디 도가에서 나온 도사님이신가?”

“한 명은 뱃사람인가. 피부가 탄 것 봐.”

그들을 보며 종리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독특한 차림새에 눈길이 갔던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좌측에서도 사람들이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대쪽에서 들어온 사내들과 달리, 이쪽은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게 한 명은 어린 소년.

또 하나는 어디 유흥가에서 호객행위를 할 것 같은 사내.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곧 쓰러질 것 같은 남자였다.

“이건 뭐…… 끝났네.”

한쪽에 앉아 있던 가주의 첩, 자비가 짧게 말했다.

상대방 측 무인들의 첫인상을 보고 내린 그녀의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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