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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90화 (191/379)

190화. 무공학습 (2)

태극검을 습득하자, 일순 시간이 멈추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략 3초 정도.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설휘에겐 충분한 시간이었다.

[기류의 묘를 사용합니다.]

시간의 경직이 풀리자마자, 적이 생성한 내기가 눈앞에 와 있었다.

너무도 가까이 다가와, 피할 수도 없고 막아내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길이도 범상치 않았다. 보통의 검기라면 검신에서 길어봤자 한 자 정도 나오는 수준인데, 명정이 쏘아낸 건 무려 석 자에 달했다.

너비도 3촌이 넘는, 무형의 검기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구우우우우-

하지만 기류의 묘를 쓰기 시작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설휘의 기류는 적이 쏘아낸 내기를 거짓말처럼 붙잡았고, 곧이어 설휘의 손을 따라 도도하게 흘렀다.

“……!”

명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는 장면이었다.

분명 상대를 베었어야 할 검기가, 상대의 기류에 휘말려 꿈틀거리더니 자신에게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되돌아온 검기는, 검사(劍絲) 수십 가닥으로 퍼졌다. 피할 공간을 주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크헉!”

명정은 호신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려 방어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파바박! 스팍!

결국 명정은 사방으로 쏘아진 검사 다발을 몸에 맞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투욱. 풀썩!

동시에 설휘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커헉!”

분명 피해는 없어 보이는데 끔찍한 비명을 지른 후, 명정과 똑같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휘이이잉.

싸움이 끝났다. 바람 소리가 다시금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무대에 쓰러진 두 남자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스. 승리하신 분은…….”

일 장로는 뜸을 들였다.

혹여나 명정이 일어나서 자신들의 승리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으……으음…….”

‘헉.’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정은 미동조차 없었고, 오히려 상대편이 뭔가 일어날 듯 말 듯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질끈 눈을 감고 재빨리 끝을 냈다.

“없습니다. 마지막 판은- 무승부입니다!”

오오오오.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끊어졌다.

그렇게, 직계와 방계의 대결은 직계 측 비무자들이 이긴 것으로 결정지어졌다.

짝짝짝!

“와!”

“대단하다!”

“정말 놀라운 걸 봤어!”

좌중에서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비무대로 다급히 달려가는 의원들의 모습이 모두의 시야에 잡혔다.

“이. 이걸 이제 어떻게…….”

“쓰읍.”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자미부인과 방계 쪽 사람들.

반면 종리헌과 종리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종리미의 눈가에는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음…….”

달각달각.

설휘는 대법을 해제하며 슬며시 눈을 떴다.

“정신이 드십니까?”

정신이 들고 보니, 송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깜박깜박.

설휘는 그를 지나쳐 옆에 있던 음무기를 보며 물었다.

“……잘 끝났냐?”

그 말에 송화가 끄덕였다.

“예. 사부. 음무기 형님과 사부의 활약으로 직계 식구들이 승리했습니다. 그것보다 지금이라도 의원을 모시고…… 어? 어엇!”

송화는 말하던 도중 흠칫 놀랐다.

설휘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내 뭐랬냐. 사부께서 쓰러지신 건 모두 연기라니까.”

음무기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정말입니까. 사부?”

그 말에 설휘는 피식 웃었다.

“그래. 어디 그것뿐이겠냐. 이렇게 쓰러져 줘야…… 돈을 좀 더 받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

“아…… 허허.”

송화는 눈을 깜빡였다.

찰나간, 머릿속으로 ‘돈에 미친’이란 단어가 지나갔지만 직접 내뱉지는 않았다.

“아무튼, 나는 괜찮다. 남궁세가가 있기 때문에 귀식대법을 쓴 것뿐이야.”

설휘는 그런 기색을 모르고 간결하게 말해 주었다.

귀식대법. 살수나 암살자들이 쓰는, 반 가사상태에 빠지게 되는 극도의 호흡법.

명정과의 승부를 마친 후, 설휘는 일부러 기감을 닫고 껍질 속의 거북이처럼 자신을 숨겼다.

그냥 기진한 척 쓰러지는 것만으로는, 의원들의 눈이나 남궁세가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아. 그렇군요.”

송화는 그제서야 감탄을 터뜨렸다. 매사에 두 번 세 번 두들겨 보고 지나가는 사부의 모습에, 참 철저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나저나 밖의 분위기는 어떠하느냐?”

설휘는 음무기를 보며 물었다.

“뭔가 고요하던데요?”

“그래? 시끄럽지 않고?”

“예.”

“흐음.”

설휘는 팔짱을 꼈다. 뭔가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직계가 이겼으니 방계를 모두 내쫓지 않을까요?”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게다.”

그러자 설휘가 아닌 음무기가 대신 답했다.

“이제껏 파벌 싸움으로 대척했다 한들, 그 세력을 모두 내치면 종리세가의 무력이 너무 약해져. 포용력이 없다는 소릴 듣겠지. 나중엔 좋을지 몰라도, 당장은 인근 다른 세가들의 표적만 될 거다.”

“그렇긴 하겠네요.”

“아쉽지. 직계 식솔 중 뛰어난 무인이 몇 명만 있어도 기틀을 바로 세웠겠지만…… 뭐. 알아서 잘들 하겠지. 우리 일도 아니고.”

음무기는 생각을 접고 다시금 설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사부. 어제 창고에 숨겼던 놈들은 어찌할까요?”

“꺼내줘라. 적당히 겁을 줘서 입막음하는 걸 잊지 말고.”

“그러지요. 제가 잘~ 하겠습니다. 흐흐.”

음무기가 실실 웃는 것을 보고 설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호에서 때가 타면 탈수록 영 이상해져 가는 음무기인데, 묘하게도 그런 것이 되게 자연스럽고 어울려 보이는 것은 왜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보다 그 명정이라는 자는 어디에 있지?”

설휘는 뒤를 맡기고,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다.

“간단한 치유를 마치신 후, 본래 머물던 객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떠날 채비 때문이지 않을까…….”

약방으로 가니 명정은 자리에 없었다. 그 대신, 거기에 있던 의원 한 명이 설명을 해주었다.

‘뭐. 그럴 만한 실력이었지.’

설휘는 그에 딱히 놀라지 않았다.

기류의 묘를 운용할 때, 치명적인 급소를 피해 공격했으니까.

분명 강한 일격이 들어가긴 했지만, 명정의 실력도 보통이 아니니 애초에 큰 부상은 입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계시오?”

그렇게 설휘는, 곧 그가 기거하는 객방에 도착했다.

“…….”

인기척이 느껴지던 방에서 갑자기 침묵이 일었다. 그러다 조금 뒤, 문틈으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들어오시오.”

드르륵.

설휘는 그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명정은 한쪽 탁자를 끼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표정을 보니 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승리를 축하드리오. 그래서, 이제는 날 욕보이러 오신 거요?”

아니나 다를까, 상대의 말투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대외적으로 무승부.

하지만 명정 정도의 실력자라면 뻔히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졌다는 걸. 그리고 설휘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는 것을.

“그저 대화를 하러 온 것이오. 당신을 욕보일 의도가 있었다면, 비무대에서 당신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게 더 손쉬웠겠지.”

“…….”

설휘의 말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사량발천근이라는 수법도 쉬운 것이 아니지만, 한번 쏘아진 검기를 수십 개의 검사로 쪼개어 되돌리는 기예는,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명정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그럼 여기 왜 온 거요?”

“말했다시피 대화.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소.”

드르륵.

설휘는 담담히 말하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 모습에 명정은 팩! 소리 나게 고개를 저었다.

“물어도 대답해줄 건 없을 거요. 그냥 돌아가시오.”

“그건 모르지. 혹 그대가 원하는 걸 내가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원하는 것?”

“이건 어떻소.”

덜컥.

설휘가 탁자 위에 금원보 다섯 개를 올렸다.

“…….”

그에 명정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애초에 그가 이번 비무에 참여한 것은, 우선은 돈 때문이긴 했다. 자존심에 다소 상처가 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객기를 부려봐야 아무 이득이 없는 것이다.

‘확실히, 뭔가 사연이 있군.’

그리고 그런 그를 보고 설휘는 눈을 좁혔다.

그가 상대한 명정의 실력은 아마도 무당의 일대제자, 그 이상이다. 그것도 어설피 배운 것이 아닌, 정통으로 배운 가닥.

그런데 그런 인물이 일부러 머리를 깎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돈에 팔린 비무를 한다?

물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설휘는 호기심을 드러내기 전에 우선 포장부터 했다.

“우선 먼저 말해 두리다. 귀하와 손을 섞어보고 난 후, 나는 내가 아는 태극에 대한 견식이 짧았던 것을 깨달았소. 내 눈이 부족해서 벌인 실례. 이건 그에 대한 작은 사과요.”

“으음…….”

명정의 얼굴에 갈등이 서렸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곧 헛기침을 하며 탁자위의 금원보를 슬그머니 받아 챙겼다.

“사과는 받겠소. 나야말로 손속이 거칠었으니 사죄하리다. 헌데.”

명정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작은 재간 따위는 되돌려서 흩어버리시는 고수께서, 무엇이 궁금한 게요?”

일단 돈을 받았기 때문인가, 확실히 태도가 유해졌다.

설휘는 대충 상대의 안색을 살펴본 후 입을 열었다.

“태극검에 대해 묻고 싶소. 솔직히, 저자에 퍼진 태극권은 그리 상승무공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소. 헌데 귀하가 쓰는 태극검은 그 안에 진체가 숨어 있는 것도 그렇고……. 이유가 무언지 알 수 있소?”

설휘의 고민은 그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태극검을 훑어보고 분석해본 결과 초식 중에 강력한 위력이 강한 건 없었다.

보통 무공에는 기승전결처럼, 뒤로 갈수록 강한 무공들이 있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태극검은 궤가 달랐다. 쉼 없이 흐르고 흐르기만 하는 검법. 그 검법으로 상대는 강렬한 공격력을 보였고, 자신은 그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어보러 온 것이다.

“뭘 말하시나 했더니……. 귀하가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으나, 당신의 태극에는 무당의 정신이 빠져있소.”

명정이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으며 고개 저었다.

“무당의 정신?”

“격살 대신 제압, 공격 대신 지키는 것이지. 원래 태극검은 조화를 목적으로 하는 무공이오. 수세로 버텨야 하는 초식을, 억지로 공세로 끌어 보았자 아무 위력이 나오지 않소.”

“허…….”

어찌 보면 오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나, 명정은 그것을 손쉽게 말해 주었다. 설휘는 의아했지만, 일단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태극은 음양의 조화. 공수의 합의에 주를 두오.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강물을 검으로 베어 보았자, 무엇이 달라지겠소? 거세게 후려쳐 본들 기운만 빠지고 옷이 젖을 뿐이지.”

“음. 하지만…….”

“뭐. 믿기지는 않겠지. 하지만 귀하가 나를 꺾기는 하였으나, 그건 태극을 꺾은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한 역량을 꺾은 것이오. 유능제강이라는 말이 있으나, 거꾸로 강능단유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오.”

“흐음…….”

설휘는 명정의 말을 두 번 세 번 곱씹은 후 물었다.

“혹, 그대는 태극혜검(太極慧劍)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있소?”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거요?”

명정의 눈빛이 달라진다.

하지만 설휘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상승무학이 깃들어 있는 태극의 무공. 초마의 극에 오른 자신을 화경으로, 또는 극마로 안내해줄 수 있는 비급서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뭐 가르쳐달라고 해도 알려주지 않을 걸 알고 있소. 난 그저…….”

설휘는 여기서도 잠깐 뜸을 들인 후 말했다.

“태극검의 상승무공이란 얘기가 있어서 말이오. 혹여 무공을 익힐 기회가 있다면, 그걸 파보는 것이…….”

“형장. 그건 매우 잘못된 길이오.”

“……!”

설휘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무도 확고한 그의 말에. 정확히 말하면 대놓고 틀린 길이라는 일침에.

“태극의 중심은 태극검 안에 모두 담겨 있소. 또한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삼재검법 안에 있소.”

“삼재검법? 하지만 태극혜검이란 건, 무당의 최고검법…….”

“틀렸소. 최고의 검법은 태극검이오. 물론 태극혜검이 더 뛰어나단 평가를 받고 있는 건 맞소. 상대의 적의나 살의에 맞대응하는 순간, 태극은 무한에 가까운 힘을 쓸 수 있으니까. 허나. 형장은 명심하시오. 무당의 태극은 태극검 안에 모든 게 들어있소.”

“결국 높은 곳을 바라보려면 기본을 다져야 한단 말이오?”

“그렇소.”

설휘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가 강조하는 것.

진체는 상승무학이 아닌 보통의 무학에 있다는 것.

모든 건 기본.

자신의 내공을 태극으로 돌리는 것도 오로지 기본으로 돌아갔을 때 가능한 것이다.

‘빠른 길은 아니지만…… 훗날 크게 도움이 되는 길이었지.’

설휘는 그렇게 정리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씀 감사하오. 오늘 이 자리가 나에겐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소.”

“그렇다면 뭐 다행이오.”

설휘가 나갔다. 명정은 그가 나간 자리를 한참이나 보고 있던 중에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나도 참 미쳤구나. 외인에게 진산절예를 함부로 전하다니…….”

설휘도 왜 그러는지 몰랐지만, 명정 역시 스스로를 모르는 가운데 전하고 말았다.

무당의 핵심. 장로급만 아는 태극검에 대한 진실을.

“하지만 이상했단 말이야……. 흉포하면서 도도히 흐르는 것이, 마치 사부님 같은 기운. 대체 저런 자가 재야에 머물러 있는 까닭은 또 무언가…….”

그가 말하는 사부는 장문인의 숙부. 진월 원로였고, 전대 오양전주였다.

즉, 설휘가 상대했던 명정.

그는 한때 무당의 장로였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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