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92화 (193/379)

192화. 낯선 손님 (2)

우주상제 길흉화복.

송화가 여는 점집의 깃발에 적힌 글자다.

원래도 광오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는데, 오늘은 거기에 ‘천문(天文)과 관상(觀相)도 봐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추가되어 있었다.

무슨 음식점이 차림표에 새로운 식단을 만든 것처럼.

좀 너무 노골적이지 않냐는 말을 들었지만 송화의 생각은 확고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법. 명성을 얻은 때에 최대한 손님들을 더 붙잡아 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었다.

“자. 다음 분.”

송화가 부르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 넷이 신을 벗고 위로 올라왔다.

좌식으로 만든 자리. 예전이었으면 한 명씩 앉았던 공간에다 지금은 사람 여럿을 한곳에 앉혀놓았다.

역량 확인. 점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다들 송화가 정말 용한 무당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 했고, 매번 역량을 보여주느라 시간 손실이 많았다.

그래서 아예 여러 명 앞에서 한 번에 보이고, 비슷한 사연은 한목에 묶어서 다 같이 처리하려는 생각이었다.

“자. 모두 무슨 일로 왔는가.”

촤라락.

부채를 펼치며 본인의 얼굴을 가린 송화가 물었다.

“관상을 보러 왔습니다.”

맨 좌측에 앉은 중년인 남성이 먼저 입을 열었고.

“사주와 궁합을 보러 왔습니다.”

다음으로 중앙에 앉은,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제 앞일을 보러 왔습니다.”

마지막. 우측에 앉은, 젊은 여염집 처자로 보이는 여인이 대답했다.

스윽.

그리고 다들 사전에 들은 대로, 자신들 앞에 놓인 조롱박에 조심히 돈을 내려놓았다.

달그락. 달각.

통에 들어간 동전 개수는 달랐다. 손님이 어떤 걸 보느냐에 따라 금액이 다르게 책정된 까닭이었다.

“어디 보자…….”

송화가 손님과의 적당한 거리와 경계를 위해 천장에서 드리운 주렴을 치웠다. 복채를 챙기면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것인데.

“크헉!”

쿵! 쿠다탕!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문 앞에 있던 하인이 거칠게 밀쳐져서 들어오더니, 사정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쿵!

뒤이어 벽에 주먹을 박아 넣으며 요란하게 등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험악한 인상.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한 것이, 두말할 것 없는 동네 왈패다.

“허억!”

“억!”

그냥 점이나 보러 온 손님들은, 죄다 겁에 질려 한쪽 벽에 주르륵 붙었다.

요란하게 등장한 사내 둘은, ‘신을 벗으시오’라는 편액을 본 척 만 척, 좌식으로 된 실내를 흙발로 밟으며 들어왔다.

푸욱.

송화가 한숨을 쉬었다. 어지간한 점복사라면 겁에 질렸을 테지만 그는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다시 보는군요.”

“그래. 꼬마. 다시 보는구나.”

사내 둘 중 상대적으로 더 험악한 사내가 씨익 웃어보였다.

“요즘 보니 장사가 아주 잘되던데? 건물도 새로 단장하고, 손님도 많이 봤고.”

“뭐.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내실은 그다지 대단치 못합니다. 조금만 어설펐다간 곧장 사장되는 장사라…….”

“내가 뭔 장님으로 보이냐. 이 앞에 사람들이 쭈욱~ 줄지어 있는 걸 봤다. 어디서 수를 쓰려고 들어?”

툭. 와그락.

그는 송화가 내려놓은 표주박을 발로 툭 쳤다. 그러자 꽤 많은 동전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벌이가 쏠쏠하구만. 전보다 더 늘었는데. 안 그래?”

“……하실 말씀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우선, 무고한 손님들은 보내고 우리끼리 대화하는 게 어떻습니까?”

“큭. 좋아. 딴에는 무당이라 눈치볼 줄은 아는군.”

스윽.

놈이 뒤돌아보자, 이내 수하로 보이는 사내가 손짓했다.

“어여들 가시오.”

우루루루!

그가 을러대는 말에, 앞서 기다리던 네 명이 급히 문밖으로 나갔다.

드르륵!

사람이 나가기가 무섭게, 수하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닫았다. 곧 방 안은 적막으로 가득 찼다.

스윽.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는 잠깐 주변을 훑어보더니 이내 무릎을 굽혀 송화와 시선을 맞췄다.

꿈틀꿈틀.

얼굴에 뱀이 지나간 듯 흉악한 흉터가 그려진 면상이다. 그는 그 흉험한 얼굴을 잘 활용할 줄 알았다.

“전부터 이야기했지? 우리가 보호해주겠다고.”

“저희는 딱히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어허, 정말 상도덕을 모르네. 이 동네에 너희만 사나? 너네야 필요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이봐, 뒤에 봐주는 거 없는 자들에겐 그 보호가 매우 중요하다고.”

불끈.

보호라는 말에 강조를 두면서 말하는 왈패였다.

“경쟁 가게에서 방해를 한다든가. 돈을 떼먹고 도망가든가. 혹은 힘으로 굴종시키려 하든가. 그런 난장판을 막는 게 우리 일이야. 그리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고.”

“……그러니까. 이 동네의 관습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관습. 잘 알아듣잖아? 굴러온 돌은 굴러온 돌답게 이 지역 전통과 역사를 존중해야지. 물 흐리지 말고.”

불끈불끈!

갑자기 보호세를 전통과 역사로 바꾸는 기적의 어법이었다. 송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쪽에 놓인 수납장으로 향했다.

“알겠습니다. 그 보호세……. 매달 금 10냥이라고 하셨지요? 내겠습니다.”

잘각. 잘각.

수납장에 있는 금화를 집어 세면서 두 손으로 건넸다. 그에 슬쩍 인상이 변한 녀석은.

투욱.

송화가 내미는 손을 슬쩍 옆으로 치워보였다.

“아이고. 이렇게 소식이 느려서야……. 수하 녀석 한 놈을 보냈는데, 말을 안 했나 보군?”

“……예? 어떤 말씀을.”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너희 수익의 반. 그걸로 정했다.”

송화가 눈을 껌뻑거리자 그는 씨익 웃어보였다.

“아니, 왜 갑자기…….”

“왜 갑자기는 무슨. 요즘이 어떤 시대냐.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발전해가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도 네 상황에 맞게 이문을 남기는 게 맞는 거지.”

“……말씀이 다르지 않습니까. 법도와 규율에 따라서 보호세를 받는 거라면서요? 헌데 벌이의 반을 내놓는 보호가 어디 있습니까. 약탈이나 다름없지요.”

“약탈? 하, 이 새끼가.”

쾅!

가벽을 때리며 올라서는 장한. 품속에 있던 단도를 꺼내며 달려들려 하자.

“그만.”

대장이 그의 앞을 손으로 막아섰다.

그리고 입만 헤 하니 벌린, 그의 생각으로는 잔뜩 얼어붙었어야 할 무당을 향해 말했다.

“진짜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거냐? 내 구역에서, 내 땅에서 장사를 하면서 규율? 법도?”

“…….”

“약탈이라 그랬지? 그래, 그 약탈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네 모가지를 똑 따버리지 않는 것만 해도 크게 봐주는 거야. 몰라?”

너무 쉽게 눈앞에서 금자 열 냥을 봐서인가, 왈패 대장은 더는 탐욕을 숨기지도 않았다.

송화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렇게 나오면 저도 어쩔 수 없군요. 형님, 사부님. 이제 나오시면 됩니다.”

“뭐, 이 새…….”

드륵. 스슥.

순간 놈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송화의 말과 함께, 병풍 뒤에서 두 사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이고…….”

툭툭.

병풍 좌측에서 설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허리를 두드렸다.

“기다리느라 한참을 숨 고르며 쪼그리고 있었네. 무기야. 굳이 이렇게까지 연기를 해야 하는 거냐?”

스륵.

병풍 우측에서 나온 음무기가 대꾸했다.

“애들 장난 같지만 그래도 이런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명분이라는 게 그렇거든요. 그럼…… 바로 작업 시작할까요?”

“여기서 하려고? 아직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지 않느냐?”

“칼 안 쓰면 되지요. 그리고 모가지만 돌려놓으면 바닥에 핏자국도 안 남습니다. 송화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하…… 그것이…….”

세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

반면, 맞은편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쯧쯧쯧. 하긴, 가끔 이렇게 주제 파악 못 하는 놈들이 있곤 했지. 딴에는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놈들.”

행동대장 서열 11위인 유적(劉籍)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그런 그에게 이런 일은 일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꼬마야. 상대를 잘못 골랐어. 아직까지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를 보면 모르겠느냐?”

그의 경고에 송화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저냥 설휘와 음무기가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에만 신경을 둘 뿐.

“음, 좋아. 목을 돌리는 것으로 하자. 그런데 꼭 죽여야 하나. 그냥 불구로 만드는 게 더 낫지 않냐?”

“어이구 사부님. 저놈들 행실을 보니, 죽어야 할 이유가 스무 가지가 넘던데요? 가만히 놔두면 힘없는 민초들 여럿 죽어 나갈 듯합니다.”

“그래? 그렇게는 안 되지. 알겠다. 각자 한 명씩. 빨리 끝내자.”

“옙.”

“하……. 이거 정말 재밌네.”

스캉.

유적은 허리춤에서 검을 꺼냈다.

그의 뒤에 있던 자신의 직속 후배. 서열 12위 권람(權覽)도 단검을 쥔 채 좌식 공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권람. 저기 젖비린내 나는 놈은 네가 처리해.”

“예. 형님.”

터벅터벅.

단검을 역방향으로 쥔 권람이 곧장 움직였고, 조금 늦게 유적이 움직였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딱 멈췄다.

“……!”

한 발짝 앞에 있던 사내들이 이미 그들의 목을 돌려버린 것이다.

“어…….”

“이 뭔…….”

특히 유적은 자신이 죽는 것도 늦게 알아차렸다.

이상하게도 방 안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오더니, 이내 극심한 고통과 함께 시야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

사박. 사박.

점집 뒤의 으슥한 공터.

설휘와 음무기는 시체를 내려두고 열심히 땅을 팠다.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창문을 타고 나갔고, 곧장 이곳으로 온 것이다.

퍽! 퍽! 퍽!

적당히 담벼락과 나뭇등걸로 그늘진 공터.

점집을 구할 때부터 이번 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두었기에, 행동은 빨랐고 절차는 자연스러웠다.

“얼굴 잘 봐 두십시오, 사부. 이게 유적이라는 놈입니다.”

땅을 다 파자, 음무기는 시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력 수준은 그냥 떨거지…… 아니, 이류와 일류 사이이고, 이곳 항주의 북쪽. 송화가 있는 가게뿐만 아니라 십 리 근방의 가게의 자릿세를 맡고 있습니다.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음.”

뚜두둑.

설휘가 역용술로 얼굴을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대가, 다음으로는 얼굴 근육이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눈썹과 표정이 바뀌자 음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십니다. 체구는 굳이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유적. 모가지를 뱅그르르 돌려버린 놈의 체격은 깡마른 체격이었다. 마침 설휘도 아직 신색을 회복하지 못했으니, 몸을 늘리거나 줄이는 잠영투체술까지 펼칠 필요는 없었다.

“옆에 놈은 누구냐?”

“이름은 권람이고, 유적과 함께 행동하는 자입니다. 싸움 실력은 비슷. 단검을 역방향으로 쥐고 싸우며, 시체를 유린하는 걸 즐기는 녀석입니다. 아, 여기에 유적의 검이 있네요.”

음무기는 유적의 허리춤에 있는 검집을 내밀었다.

“음.”

설휘는 검을 받아들였다. 당분간 유적의 행세를 할 때 쓸 검이다.

음무기도 시체가 된 권람의 단검을 꺼내 품속에 집어넣었다.

퍽. 퍽. 퍽.

둘은 삽을 다시 들고 천천히 흙으로 덮기 시작했다. 깊이가 일 장 가까이 되게 땅을 팠으니, 덮는 것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한참 삽질을 하던 중 설휘가 물었다.

“그런데…… 이놈들 조직체계는 어떻게 되는 거냐?”

오면서 잠깐 들은 적이 있었다. 이놈들의 상관 녀석이 수뇌부 백인 중 한 명이라고.

퍽! 퍽!

음무기는 잠시 삽을 흙더미에 박아 넣고, 숨을 가다듬었다.

“이 녀석들의 조직은 잠룡재. 항주 시내를 반으로 나눠 북쪽을 쥐락펴락하는 놈들입니다.”

대장 이름은 범달(氾達). 무공은 절정. 나름 실력자다.

잠룡재는 총 100명의 무인을 움직이는데, 제일 위의 최종결정자 3인. 조직의 모든 의사 결정은 이들이 정하고.

다음으로 27인의 이른바 ‘관리사’. 이들이 각종 명령과 지시사항을 아래로 전파한다.

마지막으로 일선 행동 대장격 70명. 이들은 인사라 불리며, 범달이 그중 하나다.

“잠룡재라는 놈들은 보통 자릿세만 거두는 거냐?”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하는 놈들이지요. 사채업에다 밀수를 하는 애들도 있고, 더러는 인신매매를 하는 놈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 정말.”

설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전형적인 사파. 어차피 치기로 한 조직이다. 그런 곳이 저 정도로 더러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복잡했다.

나쁜 놈들을 털어 돈을 구한다. 팔자에도 없는 명문 정파의 협객이나 할 일을 하게 생긴 것이다.

“어디까지 가실 생각입니까?”

“……그건 상황을 봐가면서 판단해야 할 것 같구나.”

음무기의 말에 설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는 그냥 이곳에서 조용히 몸을 숨긴 채, 강호가 돌아가는 꼴을 관람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무는 가만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리 두지 않는다던가.

형편이 펴지나 했더니, 되도 않는 사파의 무리와 엉키게 생긴 것이다.

그러다 돈을 벌기 위한 방법을 그쪽으로 트는 계기가 되었다.

“기왕 하시는 김에 최상위까지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사부의 실력이라면…….”

“그러면 좋긴 하지만, 과정에서 너무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원.”

투욱. 투욱.

다시금 흙을 덮고 지반을 평평하게 만든 다음 설휘가 물었다.

“좋아. 나는 범달을 죽이고 그로 변장하면…… 넌 누구로 변장하려고?”

“범달을 호위하는 진소(晉炤)라는 놈이 있습니다. 그놈으로 하면 됩니다.”

계획은 간단했다.

더 높은 수뇌부로 올라갈 때까지 중요인물만 제거하여 몸을 감추기로.

그리되면 소란도 없이 최종 100인의 한 명. 수뇌부에 입성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역용술과 잠영투체술을 익힌 두 명이라 가능했겠지만.

“내 나이는?”

설휘가 물었고.

“서른둘. 저는 서른입니다.”

음무기가 답했다.

그렇게 잠룡재 소속인 유적과 권람이 사망하고, 그 둘로 변한 설휘와 음무기가 태연하게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행동대장들이 주로 모이는 임시 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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