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94화 (195/379)

194화. 백대고수 (1)

잠룡재.

항주를 쥐락펴락하는 사파 조직의 본거지.

화려하게 지어진 3층 전각은 상당한 위용을 자랑했다.

항주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건물로,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의 공간도 화려함의 극치였다.

인공연못, 잘 다듬어진 분묘, 체계적이고 섬세한 세공이 가해진 여러 조경들.

여러 채의 전각 사이로, 외담과 정원 곳곳에 호위무사로 보이는 무인들이 순시를 돌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부. 이곳에 사는 자는 항주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돈을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쾅!

“뭐라?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고급스러운 자단목의 의자에 앉아 탁자를 내리치는 노인.

그의 이름은 강용. 이 건물의 주인이자 잠룡재 27인 중 하나.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잠룡재의 실세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의 장기는 뛰어난 무공이 아니라 눈썰미와 지략, 인맥에 기인함이 컸다.

항주에 들어오는 좋은 물품을 눈여겨본 뒤, 뛰어난 배수(扒手, 소매치기)꾼이나 편자(騙子, 사기꾼)들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중요 물건들은 객점을 터는 소투(小偷, 도둑)꾼에게 지시한다든가 하는 것이었다.

멀게는 관(官)에게 관시를 주고, 가까이는 정파의 수장들까지 포섭하니 발이 매우 넓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봐라. 소식이 닿지 않는다고?”

“그게…… 정기적인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이상함을 느껴 사람을 보냈는데, 도통 찾지를 못했습니다. 유적과 진소 역시 행방불명이 되었는지라.”

보고하던 가신 매길(梅吉)은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침에 보냈던 호요범은 소식이 없었고, 행동대장 범달이란 놈은 행방불명된 상태.

다 좋았다. 어차피 소모품처럼 언제든 자리를 채워 넣으면 될 놈들이 사라지는 거야.

하지만 문제가 된 태청단을 회수하지 못했다는 건, 일이 심각하게 꼬이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대체 일을 어찌 처리하는 거야!”

강용의 호통에 방 안에 있던 가신과 다섯의 무사가 고개를 숙였다.

씩씩대며 한참 동안 열을 내던 강용. 그는 얼마 후 옆에 있던 호위무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위천(爲天).”

“예. 주군.”

“네가 어찌 된 일인지 책임지고 알아와라. 혹여나 수상한 놈이 발견되면 여기로 데리고 오고.”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그는 곧장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수하들 넷이 묵례를 해 보였다.

위천.

왈패와 삼류 무사가 절반인 잠룡재의 인원 중 진짜로 고수인 인물로, 내기 발현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무인이었다. 강용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가 나서서 일을 해결하곤 했다.

“가자!”

위천의 말에 수하들이 곧장 따라나섰다.

그들이 사라진 후, 강용은 옆에 있는 가신에게 물었다.

“무당파에서 움직인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태청단의 위치는 철저하게 보안에 부치고 있습니다. 개방이라 해도 정확히 누가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모를 것입니다.”

가신이 장담했다.

이번 일이 불거지고 난 뒤, 잠룡재는 자기네 구역에 있는 거지 새끼들을 죄다 밖으로 내몰아 버렸다.

아무리 정보력으로 최강이라 불리는 개방이라도, 아예 거지 자체가 없는 곳에서의 소식은 알 수 없을 터.

“하오문이 있지 않나?”

하지만 그 정도로 정보가 원천 봉쇄되리라고는 강용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잠룡재의 근본이 왈패와 삼류 무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주점의 기녀,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점소이 등.

입 가벼운 머저리들은 술 한 잔 들어가면 언제 중요한 기밀을 흘릴지 모른다. 그리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법. 주변에 도사리는 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가신은 픽, 하고 웃기만 했다.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무당파가 하오문에 공조를 부탁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소림과 쌍벽을 이룬다는, 무예와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무당파다. 자존심도 높고 꼬장꼬장하기 짝이 없는 도사들.

그들이 지분 냄새나는 기녀나 비굴하게 손바닥 비비는 점소이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하며 정보를 얻어내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어려웠으니까.

“하긴. 그럼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거지…….”

강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싸한 그런 느낌.

이번에도 그런 경고 신호가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주군. 명진도장과의 만남 시간은 변경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가신 매길이 묻자, 강용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그리한다면 뭔가 술수를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미 한 번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았나.”

이미 무당의 물건을 훔친 상황.

하지만 명진도장이 길길이 날뛰며 하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곧장 그와 접촉했다.

물건은 다시 돌려주겠으니, 어느 정도 금액을 쳐달라고.

그렇게 겨우겨우 성사된 약속이 내일 오후. 서화객잔에서 보기로 한 상황이다.

이래놓고 갑자기 물건이 사라졌으니 다음으로 미룬다고 하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매길.”

“예. 형님.”

“도효이굉(陶曉二宏)은 뭐하고 있느냐?”

잠깐 멈칫하던 매길이 놀라며 되물었다.

“그분들까지 부르려고 하십니까?”

“그래.”

“상당한 돈을 요구할 텐데요…….”

“그래, 엄청난 출혈이 생기겠지.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다. 그놈들이라도 보내서 찾아와야지. 일이 잘못되면 내가 아니라 잠룡재 전체가 박살 날 수도 있어!”

도효이굉.

정사지간의 인물이지만, 사파로 분류된 두 사내.

한때 중원을 떠들썩하게 했던 놈들로, 특이한 병기를 쓰며 이름을 날렸던 초고수들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번 일을 조사하라 이르겠습니다.”

매길은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내 명을 받아들였다. 그 역시 아는 것이다.

명진도장.

무당파 삼대고수 중 하나인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잠룡재 정도는 단번에 없애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

거처로 돌아온 설휘는 이번에 얻은 수확을 확인하고 있었다.

[도구함] 19,312G

벌어들인 돈은 금 2만이 조금 안됐다.

이 정도 금액도 상당한 수치였지만 전에 보았던 물건들, 백만 냥으로 살 수 있는 신병이기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적게만 느껴졌다.

“그럼, 내역 좀 볼까?”

다음으로 설휘는 도구함에 든 다른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육합권(六合拳)]

설명 : 권법의 일종으로 모든 방위(하늘, 땅, 동, 서, 남, 북)를 막아낸다는 소림의 외가권법.

효과 : 삼류 무사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편찬된 무공서가 저잣거리에 돌아다니나, 진체(眞體)를 읽을 수 있는 자구(字句)는 여기 육합권에만 있음.

“소림의 육합권, 무당의 삼재검법…….”

기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기본을 잊지 않고 연마해서가 아닌가.

설휘는 육합권을 머릿속에 한 번 떠올려 본 뒤, 다음 물품을 확인했다.

[군자산(君子散)]

설명 : 군자처럼 사람에게 별다른 해를 입히지 않고, 그 효과도 부드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효과 : 무공 고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한 시진 동안 공력을 일으킬 수 없는 효과를 보인다.

[학령초(鶴靈草)]

설명 : 피마자에서 추출한 독.

효과 : 칠보사(七步蛇)보다 한 수 위라 평가받은 극독으로, 중독 속도가 빠르고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마비독에다 극독이라는 거군.”

설휘는 두 독을 머릿속에 다시 한번 각인했다.

강호인들에게 독은 두려움과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조심해야겠지만, 그런 만큼 언제고 유용하게 쓰일 일이 있을 터였다.

‘그건 그렇고, 과연 난 어디까지 학습이 가능할 것인가.’

물건들을 정리한 후, 설휘는 명정이라는 자와 비무하던 때의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그가 펼쳐낸 태극검의 모든 초식을 경험하자마자, 순식간에 태극검의 전체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검을 사용할 때 팔과 다리의 위치, 시선을 어디에 두며 어떻게 호흡하는지까지.

‘시스템’의 독특한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무공이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알아내야 해. 시스템의 비밀을…….”

설휘는 지금 알아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삶, 의도, 결과 등 행동하는 모든 것이 ‘시스템’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거꾸로, 자신이 얼마나 이것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알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송화의 술법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술법사가 되려면 타고난 술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범주.

자신이 극마든 화경이든, 지금의 벽을 뚫게 되면 상단전의 개안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송화가 부리는 모든 것을 똑같이 구현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설휘의 머릿속에 또 다른 가정 하나가 떠올랐다.

아직 확신할 단계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무한의 목숨.”

이제껏 목숨의 개수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AI를 만나고, 그의 얘길 듣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허. 너 같은 멍청이가 이걸 해냈다고? 내가 3,212번 환생하고서야 겨우 펼친 걸 똑같이 구현하다니. 이 새끼 진짜 또라이네?

3,212번.

이건 누군가를 죽이거나, 어떤 특정 이벤트를 달성해서 얻은 목숨의 수가 아니다.

더욱이 그가 언급한 건, 최종적으로 얻은 목숨의 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무한으로 목숨을 얻을 수 있는 구간이 존재한다.’

아마도 특정 조건, 특정 상황에 한해서겠지만 분명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AI를 만나 물어볼 생각이다. 하지만…… 그가 알려주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내야 하는가…….

“대장.”

때마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음무기였다.

“들어오거라.”

드르륵.

설휘가 허락하자마자 문을 잽싸게 연 음무기가 곧장 입을 열었다.

“놈의 말이 맞았습니다. 유시(酉時)에 무당파 일행이 서화객잔을 찾는다고 합니다.”

“흠.”

호요범에게 들은 정보. 혹여 그가 엿 먹으라고 거짓을 고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음무기는 하오문에게 정보를 받았고, 교차 검증까지 마쳤다.

“알겠다. 만약을 대비해 너는 송화 옆을 지켜주거라.”

“예? 저도 같이…….”

“경험상, 강용이란 놈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진 않구나. 조금만 조사해 봐도 송화와 연관이 있다는 건 금방 밝혀질 터. 아직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니 네가 옆에 있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하긴.”

설휘와 음무기가 제거한 놈들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주요 인물들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조금만 수소문해 보고 돌아보아도, 사건의 발단이 송화의 가게에서 일어났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 안에 있느냐?”

그때였다. 낯선 목소리. 누군가 이곳을 찾은 것이다.

설휘와 음무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

밖으로 나간 설휘와 음무기가 멈칫했다.

칼을 찬 낯선 사내들 앞에서 송화가 싱글싱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다름이 아니라…… 가게 문을 닫고 있는데 사부님과 형님을 보고 싶어 하기에, 이렇게 모시고 왔습니다.”

그 말에 음무기는 어이없어했고, 설휘는 미소를 보였다.

“잘했다.”

“자,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쇼.”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송화.

그를 바라보던 낯선 무리 중 한 명. 위천은 너무 태연자약한 태도에 잠깐 말문이 막힌 듯 바라보더니 이내 인상을 썼다.

“누구냐. 유적과 진소를 처리한 자가.”

스윽.

그 말에 설휘는 음무기를 바라보았다.

후우.

음무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정말이지…… 매번 귀찮은 건 제가…….”

“그럼 누가 하겠느냐.”

“윽. 사령대원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네…….”

투덜거리며 걸어가는 음무기. 위천은 그를 보고서 살짝 경계하며 말했다.

“너냐?”

“그래. 나다, 어쩔래?”

“허…….”

그리고 어이가 없는지 잠깐 음무기를 노려보다, 이내 눈에 불을 켜며 말했다.

“당장 죽이지는 않으마. 반쯤 죽여 데리고 가서 나머지 반을 죽여버리겠다.”

“그러시든가.”

파앗.

말과 함께 돌진하는 음무기. 순간적으로 상대가 다가오자, 위천은 급히 검을 꺼내 들었다.

헌데, 그 순간 번쩍하고 머리 위에서 다리가 아래로 쏘아졌고.

퍼억!

한 대 맞은 위천의 자세가 휘청였는데, 그때부터 음무기의 더욱 빠른 각법이 쏟아졌다.

퍼퍼퍼퍼퍼퍽!

어깨를 가볍게 한 번 툭 치다가, 힘을 담아 허벅지를 때렸고.

다시 허리를 후려치는 척하다가 머리.

그리고 복부를 찍어 누름과 동시에 무릎으로 턱을 찌르는 것까지.

각법의 교과서를 보는 것처럼 정신없이 밀어붙이자, 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한 위천이 정신을 잃고 삼 장이나 밀려 나갔다.

와당탕!

“…….”

호위무사들은 얼어붙었다.

자신들의 지척에 있는 음무기를 보면서도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대장이 검 한 번 쓰지 못하는 판국이니, 대응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일어나. 죽을 정도는 아닌 거 아니까.”

“크으으윽.”

음무기의 말에 그는 복부를 부여잡았다.

아픔은 둘째치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각도 하기 힘든 공격. 상대가 월등히 고수라는 것만 겨우 머릿속에 아로새겨졌다.

“계속할 생각인가?”

설휘의 물음에 위천은 대답을 유보했다.

그는 방금 음무기에게 제대로 된 대응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 깡마른 자가 사부란다.

계속 싸웠다간 개죽음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고.

“철수…… 컥!”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에 허물어졌다.

누군가 그의 몸에 뭔가를 쑤셔 박은 것이다.

‘누구지?’

음무기의 시선이 뒤로 이동했다.

뒤늦게.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끌끌끌. 뭐야……. 이딴 놈이 호위무사질을 하고 있었어?”

“원래 잠룡재 수준이 그렇지, 뭐. 그래서 우릴 불렀던 것 아니었냐?”

위천을 죽인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기괴했다.

민머리에 해골 장신구를 목에 건 채 반쯤 떨어진 붉은 장삼을 입고 있었고, 또 다른 자는 주렴 구슬에 넝마처럼 오래된 무명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강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개조된 장병기인 금전자파(金錢刺耙), 다른 녀석은 건곤조구권(乾坤鳥龜圈)을 쥐고 있었다.

건곤조구권은 건곤권의 일종으로, 쟁반 형상의 암기였다.

도효이굉.

강호 백대고수라 일컬어지는 놈들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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