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96화 (197/379)

196화. 백대고수 (3)

한편, 담장 밖으로 나온 음무기와 결효.

이 둘은 성격이 성격인지라, 일단 입싸움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하. 이거 참. 미안해 죽겠네. 발차기 잘못하면 이빨이 후두둑 나가게 생겼는데?”

음무기가 살짝 도발하자.

“그렇게 자신 있으면 덤벼봐. 내 이빨이 나갈지, 네 다리가 잘려나갈지. 넌 나보다 더 키가 작아질 거다.”

결효는 코웃음을 치며 되받아쳤다.

“하.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하긴 기병 드는 애새끼들 중에서 구라랑 허세가 안 심한 놈이 없어요……. 너도 결국 그쪽이네?”

또다시 음무기가 도발했고.

“아이고. 그렇게 내 건곤권이 무서우셔? 그럼 잠깐 넣어둘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기도 그렇고.”

결효는 그에 더하게 받아쳤다.

들고 있던 건곤권을 아예 자신의 등 뒤로 돌려 버린 것이다.

철컥.

“허.”

등짝에 무슨 기관이 있었는지, 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휘르르륵.

바람이 불었다. 입싸움으로 시작된 기세 싸움이 점점 더 농도를 짙게 만들었다.

그렇게 둘의 눈빛이 살벌하게 가라앉을 무렵.

팟. 팟.

싸움이 시작되었다.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동시에 달려들었고 충돌했다.

쩌엉! 쩡! 쿵! 쿠웅!

사정없는 발길질과 막아내는 손.

결효가 병기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음무기 또한 각법만 썼다. 자연히 싸움은 초근접전의 박투 양상으로 펼쳐졌다.

바바박. 휘휙!

속도는 음무기가 조금 더 빨랐다. 하지만 결효는 무거웠다.

내력을 놓고 보면 과연 백대고수에 들 만한 수준.

타악.

방어에 물샐 틈이 없었다.

한참 공방을 주고받던 음무기가 한 발 뒤로 물러서서는.

“하앗!”

기합과 함께 크게 힘을 담은 돌려차기로 결효의 얼굴을 노렸다.

부웅!

결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손으로 상반신을 방어할 뿐.

그 모습에 음무기는 속으로 웃었다.

지금 그는 1갑자의 내력을 쏟아부었다. 그렇기에 억지로 막았다간 막아도 막은 것이 아니게 될 터였으니까.

투욱.

“……?!”

그런데.

벼락처럼 뻗어나간 돌려차기가, 너무도 손쉽게 막혔다. 거리를 두고 날린 회심의 일격이 막히자 음무기의 표정에 놀람이 깃들었다.

“잡았다. 쥐새끼.”

결효는 밀려나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분명 방어로 둔 손으로 음무기의 다리를 붙잡은 그는.

푸확!

다른 손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근접거리에서 날아드는 권풍(拳風).

“잇!”

음무기는 급하게 몸을 틀어 피해냈다. 하지만 피해내고 난 직후 소름이 오싹 돋았다.

‘뭐야?’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 권풍이, 아지랑이처럼 희미한 기류를 흘렸다. 기막히게도, 그렇게 허공으로 솟구친 기류는.

패애액!

마치 실을 매달고 잡아당긴 듯 음무기의 등을 강타했다.

펑!

“큭!”

정타였다. 음무기는 충격으로 지면에 처박혔다가 도로 튕겨 올랐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예상했는지, 결효가 왼손을 뻗어 그의 머리채를 잡아 왔다.

타악! 휘익!

간발의 차. 정신을 차린 음무기가 급히 그의 손을 붙잡고, 다가온 방향대로 팔목을 돌려버렸다.

동추수(銅錘手).

예전에 백혼 장로에게 개 맞듯이 두들겨 맞은 경험이 그를 살렸다.

머리가 아니라 몸에 밴 금나수법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펼쳐진 것이다.

“억!”

휘르륵!

허를 찔린 결효의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앞으로 내던져졌다.

탁. 타닥!

하지만 그 판국에도 재빠르게 자세를 잡아, 큰 타격 없이 착지하는 결효.

“와. 이 새끼 봐라. 너 몸에 두른 거 뭐냐?”

음무기가 한숨 돌리며 코 밑을 쓰윽 훔쳤다. 그 손에는 흥건하게 피가 묻어났다. 쌍코피.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휘어지는 기공. 상대가 백대고수라고 하니 내기 발현 정도는 미리 상정해 둔 범위 안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자신이 내력을 담뿍 담아 날린 돌려차기가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하고 막힌 것이 더 어이가 없었다.

“하. 보는 눈은 있구만. 이런 거다.”

촤악.

결효가 웃으며 겉옷을 찢었다.

번뜩.

그러자, 온몸을 두른 방어구가 드러났다.

마치 용린갑처럼, 은빛 비늘로 감싸진 가슴과 팔. 딱 보아도 웬만한 호심공 이상의 방어력을 제공하는 기물이었다.

특히 두 손에 끼고 있는 수투는 매우 세밀하게 제작된 모습이었다.

“와. 시발. 옷 안에 그런 걸 감춰? 음침한 놈. 어째 생긴 거부터 작달막한 게 야비하게 생겼더라니.”

“아이고. 수련회 오셨나? 싸움에 야비한 거 정당한 거 가려서 찾는 순진한 분이셨네~?”

음무기가 도발해 보지만, 결효는 강호에서 닳고 닳은 몸이었다. 화내기는커녕 웃어넘기는 모습에 여유가 가득했다.

스르릉.

결국 음무기는 병기를 빼어 들었다. 이미 설휘로부터 충분히 경고를 들었음에도, 마냥 진심이 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며.

“너를 얕봐서 미안하군. 이제부터 진지하게. 진심으로 간다.”

“뭐.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나는 아직도 네가 우습게 보이니까.”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 결효.

철컥.

그는 드디어 등에 차고 있던 병기를 꺼내 들었다.

‘저런 걸 휘두르는 싸움이라. 처음이군.’

음무기는 상대의 기병을 보며 머릿속으로 공방을 그려보았다.

건곤권. 외견상 원반처럼 생긴 병기.

크기는 마차의 바퀴 정도이고, 중앙에 지지대이자 손잡이인 것이 있다. 크기와 무게가 꽤 되어 보이는데, 마치 가시가 죽죽 돋은 방패처럼도 보였다.

저런 걸 손에 든 채로 휘두른다면, 그 자체로 공방 일체.

허나 정말 무서운 건 저걸 날리는 순간일 터였다.

륜(輪) 바깥으로 죽죽 돋아 있는 예리한 가시.

저건 아마도 날아오는 순간 세차게 회전하며, 엄청난 절삭력을 보일 터였다.

즉. 병기 자체가 회전하는 톱날 같은데, 거기에 내력까지 실린다면?

아주 답도 안 나오는 일격이 될 것이다. 방법은 회피뿐. 하지만 어째 그 일격이 다일 것 같지도 않았다.

‘회수는 어떻게 하지? 저 장갑처럼 생긴 것으로 잡아채는 건가?’

륜형 병기의 장점은 방어가 불가능한 일격이다. 단점이라면 그 일격을 쓴 후 손이 빈다는 것이고.

하지만 상대는 백대고수. 아마 그 정도 단점은 애저녁에 극복했을 터였다. 지근거리에서 벌어진 박투술에서, 상대는 자신에게 근소하게 우위를 점했다.

‘방어가 단단하고 재빨라.’

아마 건곤권을 던진 후에도,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 아까 한 대 허용한 일격. 그게 더욱 신경 쓰였다.

쏘아낸 권풍의 방향을 멋대로 트는 것이.

‘권풍에서도 성미가 보이는데. 어쩌면 아마도 저 원반……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겠지.’

이미 손을 떠난 건곤권이, 방향을 바꿔 추적해 오는 것. 거기까지 예상해 둘 필요가 있었다.

스윽.

스윽.

두 사내의 눈빛이 허공에 얽혀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달려갈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파앗. 파앗.

조금 전처럼 동시에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던지는 지점을 노려야…….’

달려드는 음무기의 생각은 오로지 병기에 가 있었다. 조종이 가능한 병기라면, 내력으로 그 조종을 비튼다.

놈이 저것을 던지는 그 순간에, 마령지도법으로 후려쳐 내면 단번에 승부를 볼 수 있다.

휘릭!

‘……어?’

하지만 상대는 음무기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던져야 할 무기를 끝까지 쥔 채. 근접전에서 병기로 활용했던 것이다.

쇄애애액!

‘그래. 쉽게 가지 않겠다?’

수세로 변환한 음무기가 놈의 일격을 피했다. 그런데 놈은 집요했다.

팟! 휘익! 파밧!

쭉 내민 건곤권을 들고 몸을 회전시키며, 물러서는 그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타악!

너무 좁혀지자, 결국 급한 마음에 음무기가 자리에서 도약하며 거리를 벌렸고.

“걸렸다!”

그 찰나, 놈이 드디어 건곤권을 크게 휘둘러 날렸다.

쾌애애액!

속도가 엄청났다.

일 장 가까운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 음무기의 목을 노렸다. 허공으로 도약한 상태라 도저히 피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상황.

“큿!”

그에 음무기는 급히 몸에 내공을 돌렸다. 허공에서 잠영투체술을 사용. 갑자기 몸이 3척 아이의 그것처럼 변했고.

휘이익!

작아진 몸으로 간발의 차로 건곤권을 피할 수 있었다. 보통은 생각도 못할 기지였다.

“뭐가 걸려, 새끼야.”

쌔액!

성가신 건곤권이 사라지자, 곧장 음무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유엽도에 내력을 불어 넣어 도기를 쏘아냈는데, 그 색이 은은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이건……?!”

덕분에 결효의 표정이 굳어졌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녹광. 그 안에서 위험하고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쿠쿠쿠쿵!

“……?!”

헌데, 그렇게 회심의 일격을 날렸던 음무기는 어이가 없어졌다.

도기를 막으려는 듯, 허우적거리는 결효. 그의 손짓에 갑자기 바닥에서 암석들이 치솟더니, 자신의 공격을 무위로 돌려버렸다.

염력을 쓴 건지, 공능인 건지. 어떻게 저런 상황이 발생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 이런 개같은…….”

쐐애액!

황망하던 중에 뒤에서 예리한 기파가 느껴졌다.

날아드는 건곤권. 혹여 하고 예상했던 공격이, 하필이면 기막히게 적절한 시기에 다가오고 있었다.

“칫!”

휘리리릭!

건곤권이 세차게 회전하며 음무기를 따라왔다.

조금 전 잠영투체술을 보고 조작을 가한 것인지, 이번엔 피하기 어렵게 가로가 아닌 세로로 달려들었다.

음무기는 급히 잠영투체술을 풀고, 본래의 몸으로 돌아와 검을 세웠다.

카카카카카캉!

하지만 늦었다. 건곤권이 불꽃을 튀기며 막은 검을 내리눌렀다. 강한 압력을 담은 회전 톱처럼, 결국 비스듬이 세운 검을 비껴가며 음무기의 어깨를 찢어발겼다.

“크악!”

털썩!

지면에 쓰러지다시피 한 음무기가 어깨를 붙잡았다.

상대가 연속으로 공격해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자칫 이 일격으로 생을 마감할 뻔했으니까.

“이거…… 마교놈이었다니. 정말 놀라운데?”

투욱.

결효는 돌아온 건곤권을 간단히 다시 잡으며 실실 웃었다.

도효이굉.

그 악랄한 손속에도 불구하고, 강호에서 정사지간이라 불리는 고수.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다.

사파나 마교 중 흉악한 놈들을 골라 명문정파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엔 ‘돈’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네놈은 산 채로 데려가야겠다. 무림맹으로.”

“시발. 너 뭐 마교랑 원한 있냐?”

꾸욱. 으으윽.

어깨 어림을 당겨 급히 지혈하며 묻는 음무기.

“원한. 그것보다 돈이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참 많은 세상 아닌가.”

그에 실실 웃으며 답하는 결효.

돈에 움직이는 낭인이지만, 그럭저럭 사마외도 척결에 진심을 보이는 태도.

그것이 이제껏 손속이 잔혹함에도, 강호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래? 목적이 오히려 시원해서 좋다. 마침 나도 돈을 모으는 중이니…….”

음무기는 그에 따박따박 대꾸했다.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조금 전 입은 충격에서 몸이 회복하도록.

“네놈을 잡으면 그만큼 더 많이 얻을 수 있겠지?”

휘르륵! 피르르륵!

일부러 세차게 건곤권을 빙글빙글 회전시킨 결효. 그가 시익 웃으며 음무기를 향해 손짓했다.

“잡소리 그만하고. 아직 멀었어? 회복할 때까지 좀 더 기다려 줄까?”

“…….”

음무기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 보니 속내를 다 파악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성격이 말 많은 놈인 줄 알았는데.

“좋아, 어디 한번…….”

그게 아니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음무기는 꾸욱, 손에 쥔 검파를 붙잡으며 특수 기술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신병이기가 어떤 건지 맛 좀 보라고!”

스으윽. 파아앗!

어차피 죽이면 그만. 더는 숨길 것도 없어진 그는, 오랜만에 마공을 최대한도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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