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97화 (198/379)

197화. 백대고수 (4)

도토는 승리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 그가 쏘아낸 것은 무려 강기다.

도토의 본래 실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초검기. 하지만 그의 애병인 금전자파는 그 이상을 가능하게 했다.

십의 내력을 부어 넣으면 이십, 삼십.

어쩌면 그 이상의 위력도 낼 수 있는 신병이기였으니까.

검기와 검강은 확연하게 다르다. 방어구나 기운을 담은 병기로는 막아낼 수 없다.

닿는 순간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내가기공의 결정체. 그런 것을 광범위하게 뿌렸기에 이걸로 상대를 바로 격살시킬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런데.

“어…… 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갑자기 환영처럼 불어나던 놈의 몸이, 모두 여섯이 되었다.

펏. 피싯!

신병이기가 쏘아낸 강기에 맞고 서서히 사라지던 환영. 그것이 또다시 여럿으로 늘어났다.

쉬이이익!

그렇게 자신이 쏘아낸 강기가 허공만 가르며 사라지자, 그제야 하나가 되어 나타난 놈은.

“흠, 그거 하나 믿고 날뛰었나?”

팔짱을 낀 채 물었다.

‘피했단 말인가? 그 범위를 다?’

도토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심적으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라면 저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제법 고급의 환영신법이긴 한데……. 너야말로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마라.”

하지만 그럼에도 담담할 수 있었다.

도토는 분명 저런 대단한 경신술을 쓸 수는 없었지만, 아직 다른 것이 남아 있었다. 방금 쓴 강기는 도토의 최강의 패도 아니었다.

“오히려 고맙군. 나도 이걸 실전에서 한번 써보고 싶었거든?”

다시 자세를 고쳐잡는 녀석. 그런 자신감에 설휘의 시선이 오히려 흥미롭게 변했다.

‘또 뭔가 있나?’

장병기 형태의 신병이기. 그리고 몸을 둘러싼 방어구.

여기서 뭘 더 보여주려고 저리 자신만만한지 궁금했다.

그 순간, 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간다. 역리보법(逆理步法)!”

스슷!

도토의 모습이 일순 설휘와 같은 환영으로 변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설휘가 순간 멀어지려고 했지만.

“흥!”

너무도 쉽게 자신과의 거리를 좁혔다.

‘허어!’

설휘는 속으로 놀랐다. 빠른 것도 그렇지만, 환영을 만들어낸 것. 저건 극도의 내력을 쏟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 현상이다.

그걸 그는 너무도 쉽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쉬쉬쉭! 쉬쉬쉬쉭!

자파 형태의 신병이기가, 수십 개의 검기를 쏟아냈다.

‘이…… 뭔!’

검기다발.

이전에는 최대의 내력을 불어넣어 일격필살의 공격을 했다면, 이번에는 딱 필요한 만큼의 진기를 사용. 자신의 신병이기가 검기를 형성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는 검으로 치면 신검합일. 병기를 자기 몸처럼 다룰 수 있는 이들이 쓸 수 있는, 무기의 성능을 최대한도로 끌어내는 전법이었다.

쉭! 쉬쉬쉭! 쉬쉬쉬쉭!

“쥐새끼처럼 계속 피해 다닐 거냐!”

둘의 공방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설휘는 피해 다니고, 도토는 계속 접근하며 교전을 유도했다.

사실 설휘로서는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지근거리에서 쏘아내는 검기 다발. 하나하나는 어찌 쳐 내고 막아낼 수 있겠는데, 동시에 쏟아져 오는 수가 무려 수십이다.

그런 가운데서 필살의 일격 한 방으로 끝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자신도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공격을 망설이게 만들고 있었다.

칙! 치직! 칙!

계속해서 수세에 몰렸지만, 설휘는 오히려 더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상대의 공세. 그 근원은 발이었다.

‘저…… 신발!’

설휘의 눈이 좁혀졌다. 아까의 대치에서 상대는 이런 연속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마, 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뭔가 하려고 하면서 갑자기 쏟아진 공세다.

‘역리보법이라 했던가?’

계속해서 쏟아져 오는 검기의 소나기. 아무리 백대고수라 해도, 이런 내력 소모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장대비 같은 공세는 역시 신병이기.

사용자의 내력을 몇 배로 강화시키는 금전자파와, 신체 움직임을 극도로 빨라지게 만드는 미확인된 신발. 거기에 역리보법이라는 도토의 신법이 함께 어우러져 만든 결과였다.

스스슥. 파바바밧!

연관관계를 깨닫게 되니 설휘의 눈은 자연히 상대의 발, 그것도 발끝의 움직임에 쏠렸다.

그렇게 한참을 뛰고, 구르고,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기를 거의 일 각.

스슥.

“하핫! 이제 포기한 거냐?”

설휘가 거리를 벌리는 걸 멈추자, 도토의 신형도 지근거리에서 멈췄다.

그는 이미 승리를 확신한 얼굴로 상대를 보며 비웃었다.

“제법 괜찮은 보법인데, 한계가 왔나 보지?”

헌데, 돌아오는 대답은 놀라웠다.

“오히려 반대야. 네 보법이 무엇인지 알아냈으니까.”

설휘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앞머리를 쓸며 푸후 한숨을 내쉬었다.

“건곤감리주오정왕. 팔괘의 여덟 변화를 다시 여덟 번 변화시킨 총 64방향이 전부군. 그 역리보법이라는 것.”

“……뭐라고?”

“64괘를 역으로 뒤집은 거라고. 하지만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이미 다 익혔으니까.”

순간적으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도토.

저벅. 저벅. 스슥.

하지만 곧이어 설휘가 내디딘 걸음을 보고, 그는 눈을 부릅떴다.

“어때, 이거 맞지?”

“……!”

[역리보법을 익혔습니다.]

애초에 설휘가 공격을 하지 않고 계속 피해 다녔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상대의 특이한 보법. 그걸 보면 볼수록 인식 중이라는 말이 계속되었다.

그걸 통해 확신했다.

놈의 신발이 어떤 신병이기라도, 사용하는 도토 본인의 보법을 완전히 읽게 되면 신발과 상관없이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저 신발로 인해 움직임이 최대 세 배까지 증폭된 거군.’

팔괘의 여덟 번. 총 64회.

그걸 모두 보아야 했기에 시간이 제법 걸렸다.

처음에는 암담할 정도로 빨랐지만, 하나둘 규칙성을 보고 나니 빠를 뿐, 정해진 길로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알게 된 다음은 쉬웠다. 많은 수의 조합일 뿐. 특히나 습관, 그것이 컸다.

“너, 오른발을 크게 내민 다음 왼발을 짧게 디디는 경향이 있더군. 무기의 무게 때문이지?”

“……!”

팔팔이 육십사. 하지만 도토는 그 모든 변초를 다 쓰지는 않았다.

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방향. 가장 익숙한 밟기가 몇 개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 어떻게…….”

“오른손잡이, 병기의 무게, 길이가 긴 장병, 그리고 무엇보다.”

설휘는 까닥까닥 손가락을 접어 보였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실전에서 이걸 써 보고 싶었다고 했지. 너, 사람을 상대로 써 보는 건 처음이겠군?”

“……!”

어찌 보면 도토는 억울할 수도 있었다. 그는 분명 강호 백대고수 중 일인이나, 상대가 너무 나빴다.

하필이면 설휘.

그는 시스템의 보조를 받고 있는 몸이었다.

“개, 개 같은……. 뭔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하앗!”

파밧! 바바박!

그 담담한 시선에 자극받은 것일까. 도토가 발작적으로 돌격해왔다.

휘이이잉!

금전자파에 휘황한 강기가 어렸다.

보법을 읽혔다면, 그냥 알고도 막을 수 없게 하면 그만이다.

그는 지근거리에서 초검기를 쓰면 강기의 위력이 나오는 신병이기, 애병인 금전자파를 믿었다.

허나, 그는 설휘란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무극초풍신을 사용합니다.]

휘익!

설휘는 그가 그렇게 달려들 줄 이미 알고 있었다.

섬전처럼 파고든 뇌전이 도토의 몸을 경직시켰고, 뒤이어 파고드는 검은 바람은.

그의 온몸을 공중으로 잡아채 올렸다.

“크아아악!”

공중으로 한참을 치솟았다가 돌처럼 떨어진 도토.

쿠구웅! 터엉! 쿵!

그는 끔찍한 굉음을 내며 두세 번 튕겼다.

그러고도 아직 죽지 않았다. 몸에 착용한 신병이기, 갑옷 때문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놈의 정신을 잃게 만든 설휘는.

[금전자파를 도구함에 넣을까요?]

[패왕어갑(覇王御甲)을 도구함에 넣을까요?]

[천잠단화를 도구함에 넣을까요?]

입고, 차고, 신고 있던 신병이기를 야무지게 챙겨 도구함에 집어넣어 버렸으니까.

***

한편.

‘어? 이거…… 형님이 밀리는데?’

담장 위로 빼꼼 얼굴을 내미는 송화.

싸움이 계속 길어지자 걱정이 되어 음무기 쪽을 살폈다. 물론 사부인 설휘 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쪽은 어차피 결과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앗!”

“크압!”

음무기와 괴인의 전투는 치열하게 진행 중이었다.

서로 공수를 주고받다가 한 번 밀리기 시작하더니, 연신 뒤로 물러나는 음무기.

그는 계속해서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왜 저러나 싶어 살피던 송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술법인가?’

근접전에서 나타나는 기묘한 상황들.

바닥의 돌들이 제멋대로 상대에게 날아가거나, 음무기가 공격을 할 때 돌벽이 치솟아 막거나.

혹은, 놈의 손을 따라 바람이 제멋대로 움직이거나 하는 광경이 보였다.

‘술력은 없고…… 그럼 신병이기인가.’

송화는 주술사다. 그것도 나이에 걸맞지 않은 고위급 주술사다.

그런 그가 딱히 주술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주술에 가까운 현상이 일어난다면, 남은 것은 내공이거나 신병이기의 힘이다.

치익!

‘어? 위험해!’

헌데 거기서 음무기의 허벅지가 베이고 피가 튀었다.

참지 못하고 담을 뛰어넘어 합세하려고 한 순간.

“그냥 있거라.”

턱, 하고 어깨를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사부…….”

설휘였다. 그는 진작에 도토를 처리하고, 음무기의 싸움을 보러 와 있었던 것이다.

“나름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니까. 괜히 개입했다가는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거다.”

설휘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러다간 위험……!”

“크윽!”

송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음무기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공격을 계속하는 결효. 그에 손해를 본 것이다.

비이잉! 위이이잉!

건곤권이란 신병이기는, 그가 무공을 펼치는 데 많은 제약을 가져왔다.

가까이에서는 가시 달린 방패였고, 거리를 두면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드는 톱니바퀴였다.

“상성이 별로 좋지 않구나. 하지만…… 애초에 상대가 한 수 위다.”

음무기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걸 보며, 설휘는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신병이기의 위력 때문에 격차가 더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결효란 놈은 기본기가 매우 탄탄해 보였다.

‘도토와도 실력차가 그리 나지 않아.’

설휘조차 잠깐 애를 먹었던 도토. 그와 거의 비슷한 실력의 결효다.

음무기가 고전하는 것도 당연.

‘그럴수록 음무기의 천재적인 능력을 볼 수 있을 테니.’

설휘는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과연 음무기가 어떤 싸움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

“제기랄. 제기랄!”

음무기는 막막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상성이 너무 안 좋았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영 투지가 보이지 않는데?”

위이잉!

음무기를 가지고 노는 재미가 각별했던 것일까. 결효는 건곤권을 던지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 짧게 회전하거나, 위로 날리면 아래로 고꾸라진다거나.

변화가 무쌍해, 륜이 암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천신만고 끝에 저 지랄맞은 건곤권을 떨쳐내고 나면.

파바박! 파바바박!

철벽처럼 단단한 방어가 있었다. 상대하면 할수록, 어째 이놈은 원래 박투술을 하던 놈이 뒤늦게 건곤권을 든 게 아닌가 싶었다.

칭! 칭!

아무리 베고 찌르며 공격을 이어보려 해도, 결효의 움직임이 너무 좋았다. 분명히 자신보다 느린데, 한바탕 부딪히고 나면 부상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한 번, 딱 한 번을 노린다.’

온몸이 상처로 가득했지만, 음무기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위기일수록 단순하게 가야 한다. 과거 백혼 장로가 누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할 수 있는 단순함은 무엇인가?

패애애액.

건곤권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음무기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맹렬한 파괴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내던졌다.

“아……!”

송화가 눈을 부릅떴다. 세차게 회오리치는 건곤권에 몸을 던지는 음무기.

이대로는 영락없이 몸이 갈갈이 찢겨 나가게 된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사부님! 저……?”

“허어.”

거기서 놀라운 장면을 목도했다.

휘릭!

건곤권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음무기는 유엽도를 재빠르게 찔러 넣었다.

치잉!

그러자 낭창낭창한 유엽도의 날이 직각으로 휘어지며 건곤권의 중심, 결효가 손잡이로 쓰는 구멍으로 슉 하고 끼어든 것이다.

츠츠츠츠츠츠!

“으아아…….”

건곤권의 막중한 힘에 유엽도의 자루가 부들부들 떨렸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그 반발을, 음무기는 모든 내력을 짜내.

피이이잉!

기어코 방향을 틀어 저 멀리 날려버렸고.

“간다 개---자식아.”

그 반발력을 이용해 결효를 향해 달려들었다.

“웃……!”

타닥!

이제껏 여유만만하던 결효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그는 급하게 두 팔을 내밀어 몸을 보호하려 했고.

반 장 가량, 코앞까지 다가간 음무기는 전력을 다해.

“흣자! 흣자!”

두 다리를 벌리며 개구리 뜀 뛰는 시늉을 했다.

“이, 뭔……?”

“……어???”

송화의 입이 따악 벌어졌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갑자기 혼자 개구리 뜀을 뛰는 음무기. 그 모습은 당황을 넘어서서 아예 황당했으니까.

“아이고, 이런.”

설휘는 실소하며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남이 보기엔 어처구니없는 촌극이었지만, 음무기는 한없이 진심이라는 것이 더욱 뿜게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생은 마태룡을 구하기 전이었지?’

지난번에 그는, 음무기가 특수 기술 쓰는 법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그건 꽤 뒤의 일이다.

설휘가 예전보다 훨씬 전으로 회귀하면서 특수 기술 사용법을 다시 알려주지 못했고, 그러니 음무기는 저게 당연한 준비 동작으로 알고 있을 터였다.

‘무슨 짓이지? 사술인가?’

그런데 우습게도, 음무기의 해괴한 동작에 당황한 건 송화와 설휘만이 아니었다.

결효는 직전까지 죽일 듯이 달려오던 음무기가 갑자기 개구리 뜀을 뛰며 빈틈을 훤하게 드러내자, 오히려 주춤주춤 물러서게 되었다.

‘좀 전의 추진력, 보통이 아니었어. 그런데 달려오다가 멈춘다면…….’

똑똑한 사람일수록 상식 밖의 일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건, 완전히 상식 밖의 일이었다.

이건 분명히 무슨 꿍꿍이, 사술 같은 것을 발동시키려고 하는 행동이다. 결효는 그렇게 생각하고 음무기의 뜀뛰기를 내버려 두었다.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크흐흐흐! 받아라!”

음무기가 검을 휘두르자, 결효는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긴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내가고수의 움직임에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기민함이 있었다.

팟. 팟. 팟. 팟.

“억?!”

하지만 그건 소용없었다. 특수 기술의 발동으로 동서남북에서 나타난 네 명의 음무기.

환영이 아닌 실체의 네 인영이 동시에 나타나 도를 휘둘렀다.

“크아악!”

파바박! 퍼벅!

결효는 급하게 온몸을 웅크려 보호했지만, 창졸간에 수십 번의 칼질에 후려 맞고 말았다.

신병이기인 갑옷 덕에 출혈은 없었지만, 충격량은 누적되어 고스란히 몸에 쌓였다.

“큭. 내가…… 중수법…….”

풀썩!

자세가 무너지며 바닥에 쓰러진 결효.

날카롭게만 보인 찌르기에는 실제로 어마어마한 무거움이 담겨 있었다. 그게 명치에 쑤셔 박히자, 결효는 숨통이 꽉 막혀 더는 일어나지 못했다.

“하아…… 이, 이겼…….”

부우우웅!

허나, 음무기도 위태로웠다.

분명 멀리 쳐 냈던 건곤권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자신을 노린 것이다.

“제, 젠장!”

특수 기술을 쓰는 동안 가만히 있기만 한다 했더니, 어찌어찌 자신을 향해 다시 불러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알아차리긴 했지만, 이미 너무도 가까워진 상태라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츠츠츠츠측. 콰콰콰콱!

음무기가 막 찢어 발겨지려던 순간, 검으로 건곤권을 막아내며 나타난 인영이 있었다.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사부, 설휘였다.

“고생했다.”

“아, 감사…….”

음무기는 평소처럼 태연스레 답하려고 했지만 그건 무리였다.

풀썩.

한계를 넘어 힘을 쓴 그는, 몸이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기절하고 말았다.

***

“죄송합니다. 눈이 있어도 고인을 몰라뵙고 함부로 설쳤습니다. 부디 실수를 용서해 주시고 훔쳐 가신…… 아니, 보관 중이신 병기도 되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설휘의 거처.

신병이기를 모두 털린 도토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진지하게 사죄의 말을 올렸다.

그러다 괜히 옆에 있던 결효를 보고 호통쳤다.

“너 뭐하냐! 어서 이분들께 사과하지 않고!”

“…….”

엉뚱하게 불똥이 튀어 잔뜩 찌푸리는 결효.

그의 눈빛은 한쪽에 서 있는 음무기를 보고 사나워졌다가, 설휘를 보고 다시 얌전하게 수그러들었다.

“제가…… 경솔했심다.”

짧은 단답형.

패배를 인정하기는 하는데, 좀 억울하다는 투였다.

“알면 됐다. 그건 그렇고…….”

설휘는 그런 행동을 딱히 문제 삼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이 많은 신병이기를 도대체 어떻게 구했냐?”

“중원 각지를 돌며 하나씩 샀습니다.”

도토가 냉큼 대답했다.

“사? 돈으로?”

“예.”

“허…….”

어이없어하는 설휘를 보는 도토의 눈에는 간절함이 뚝뚝 떨어졌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공능을 가진 신병이기들. 저것들을 구하러 중원 각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자린고비처럼 돈을 모았던 세월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에게 신병이기는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저 기병을 구하고, 손에 맞게 익히고, 수련하고 싸움을 하는, 인생 그 자체.

천문학적인 금액은 둘째치고, 그 개고생을 다시 하라고 하면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을 터.

“뭐. 내가 시키는 것 하나만 하면, 너희 물건들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도 있다만.”

“……?”

“……!”

그 말에 두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일말의 희망을 가지기는 했다. 쓰러진 후 깨어나 보니 죽지도, 팔다리를 잘리지도 않았으니까.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 쉽게 내어주겠다니.

“저희에게 무엇을 시키시려는 것입니까?”

“간단해. 우선 내일 저녁쯤, 강용이란 녀석을 찾아가서 태청단을 무당에 넘겨줬다고 전해라.”

“예? 벌써 넘겨주셨습니까?”

“그건 네놈들이 알 거 없고. 그렇게 전하기만 하면 된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으음…….”

도토는 고민했다. 확실히 어려운 일도, 큰 요구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의아했다. 자신들의 신병이기. 그건 백만금을 넘는 귀품들인데, 말 전하는 심부름 하나로 돌려준다고?

하지만 저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해, 지금으로선 믿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가봐라. 시간 끌지 말고.”

“어…… 지금요?”

“정말 가도 됩니까?”

그 말에 도토와 결효가 의아한 듯 물어왔고.

“그럼 계속 있을 거냐?”

설휘가 되묻자 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엄청난 속도로 이곳을 벗어났다.

“사부.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정말 신병이기를 넘겨줄 생각입니까? 무당파 놈들에게 태청단도요?”

놈들이 사라지자 송화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음무기도 차례로 물어왔다.

“전혀. 이 귀한 걸 왜 그놈들에게 넘기냐?”

“허면 왜…….”

“신병이기를 준다고 해야 놈들이 움직일 거고, 그놈들을 직접 대면해야 강용은 그 말을 신뢰할 터.”

설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잠룡재는 도효이굉의 말을 들었으니, 태청단을 이미 넘겼다고 생각할 거다. 그런데 무당은 받지 못했지. 내가 놈들과 대면한 뒤에 튈 생각이니. 이제 이들이 어찌할 것 같으냐.”

“……잠룡재에 쳐들어가겠군요.”

“난장판이 벌어질 거고요.”

음무기가 말하고, 송화가 뒤를 이었다.

“그래. 그 난장판이 된 잠룡재의 수뇌부로 쳐들어가서 돈이란 돈은 다 빼내오는 거다.”

설휘가 간략하게 정리했다.

“……세상에.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셨습니까?”

음무기는 기막혀 했고.

“잠룡재는 끝장이겠네요. 좋은 계책이라 생각합니다.”

송화의 질린 얼굴에 설휘는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걱정되긴 했다.

내일 무당파 놈들을 만나 태청단을 내세워 태극혜검을 견식한 후, 냅다 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제대로 튈 수 있겠냐는 거다.

‘뒈질 수도 있어…….’

상대는 화경의 고수.

자칫 잘못하면 목숨 하나가 날아갈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번 건은 도박해볼 만했다.

화경, 또는 극마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단추가 태극혜검이 될 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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