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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198화 (199/379)

198화. 무당파 명진도장 (1)

웅성웅성.

항주의 저잣거리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각종 채소를 바구니에 담고 흥정하는 상인. 좌판에 각종 물품을 깔아놓고 파는 주인. 물물교환을 시도하며 흥정하는 손님.

한곳에 몰려 있는 작은 도박판의 사람들까지.

풍류객, 선비, 고승 등 복장이나 출신도 사는 방식도 각각 다른 사람들이 눈에 띄게 보일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저잣거리를 걷던 설휘는 사람들을 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다.

매번 목숨을 걸고 위기상황을 넘기며 살아가던 예전의 삶과, 지금처럼 사람들 속에 부대껴서 살아가는 삶. 아무리 생각해도 현생의 삶이 훨씬 좋았다.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강해지고 싶어 했던 것도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였어…….’

비참한 출신과 변변찮은 능력.

그래서 살기에만 급급했던 게 어릴 적의 기억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몸담은 곳이 마교다.

하지만 거기서의 삶도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상급자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하고, 납득이 가지 않아도 목숨을 버려야 했다. 그렇게 교육받았다.

마공이 수명을 갉아먹는 것임을 알면서도, 반드시 익혀야 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주어진 운명에서 조금 비껴간 삶인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가.

“여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3층으로 된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서화객잔.

편액에는 오늘의 목적지가 정확히 쓰여 있었다.

촤라락.

문 앞에 내려진 주렴구슬을 치우고 들어가자, 넓은 공간에 북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탁자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는 몇몇 점소이가 눈에 띄었고.

“어서 옵쇼!”

자신을 발견한 점소이 하나가 예를 갖추며 다가왔다.

“혹시 예약하셨습니까?”

“그렇소. 잠룡재에서 왔다고 하면 된다고 하더군.”

“아.”

점소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기로 가시면 됩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가 이동한 곳은 2층이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보니 1층이 전부 보이는 구조로 지어져 있었다.

2층은 좌우측 벽에 별도로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점소이가 설휘를 안내한 곳은 맨 끝 방이었다.

‘사람들 눈을 의식한 거겠지.’

안내에 따라 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즈넉한 분위기에 마차 서너 배 정도의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탁자 하나를 두고 좌우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

“먼저 차 한잔 드리겠습니다.”

점소이가 나가자 설휘는 자리에 앉아 잠깐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깐 고요 속에서 있던 중에.

“팔자 좋게 늘어져 있군.”

냉랭한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여는 이가 있었다.

키는 오 척에서 육 척 사이. 긴 백발을 뒤로 묶고 나타나는 노인.

척 봐도 눈에 기광이 번들거리는 걸 보면, 웬만한 무인들은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실력자다.

이자가 명진도장이리라.

“어?”

그리고 뒤이어 따라 들어온 인물.

설휘가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자, 그 역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에 먼저 들어온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면식이 있느냐?”

“……예. 얼마 전에 종리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쯧. 아무리 돈이 급하다 하더라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알아야지. 일개 세가의 알력 다툼에 끼니 저런 왈패 같은 놈들과 엮이는 것이 아니냐.”

“…….”

노인은 명정뿐만 아니라 설휘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하지만 그도 그렇고, 설휘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투욱.

요란스럽게 등장한 명진과 명정.

설휘는 맞은편에 앉은 둘을 보면서도 전혀 마음이 동요하거나 들뜨지 않았다.

이제껏 절대고수를 숱하게 봐온 경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이전과는 비교도 못할 높은 경지에 오른 탓이리라.

“노부는 네가 누군지 알 생각도 없고, 말을 섞을 생각도 없다.”

서로 얼굴을 맞대자마자 또다시 목소리를 높이는 명진도장.

대화를 하기도 전에 그의 표정에는 불쾌감이 가득 실려 있었다.

“네놈 같은 한미한 출신과 이리 대면하는 건. 평생에 오늘뿐일 것이다. 그마저도 오점이겠지만, 그래도 절차란 것이 있기에 이리 마주 보고 얘기하마.”

휘리리링 투웅.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탁자 위에 뭔가를 내밀었다.

동전 한 닢.

설휘가 그걸 보며 시선을 내리자.

“내가 너희에게 해줄 최고의 예우다.”

설휘는 다시 시선을 올렸다.

“왜? 불만 있는가?”

호전적인 말투.

농은 아닐 것이다. 무당파 도사들에게 일개 왈패 따위는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존재다.

실제로 죽여도 상관없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불만이 있냐라……. 예. 있습니다. 어디 한두 개여야 말이지요.”

설휘는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초면에 다짜고짜 모욕을 주시는 걸 보면, 예의는 밥 말아 드신 건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한 세가의 고통을, 알력 다툼이란 단어 하나로 평가절하하는 모습에 견문이 그리 넓지 않다고 느꼈지요. 마지막으로 동전 한 닢을 던져 주면서 이게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우다. 라는 말에, 무당파 장로들의 인성이 아주 밑바닥이란 것도 느꼈지요.”

“뭐라?! 이 도둑 새끼가 감히…….”

당황스러움이 점점 분노로 바뀌는 노인.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설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둑이라……. 예, 뭐 틀린 말은 아니지요. 태청단은 우리 잠룡재에서 훔쳤습니다. 그런데 세상 어느 도둑이 훔쳐간 물건을 다시 돌려주려고 오겠습니까?”

“큰돈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도인. 상인은 아무리 부유해도 이윤을 남겨 먹는 법입니다. 태청단은 멋대로 양가보의 사람을 죽이고 탈취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먼저 행패를 부렸지요.”

“뭐? 양가보가 행패를 부렸다고?”

설휘의 말에 명진도장이 조금 당황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객잔에서 비싼 요리를 주문해놓고, 밥맛이 없다며 밥값을 못 내겠다고 사달을 냈습니다. 그래서 저희 형제들이 그들을 잡아 밥값 대신 소지품을 털다 나온 것이지요.”

설휘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잠룡재가 무턱대고 양가보의 사람들을 턴 게 아니라, 처음 양가보 쪽에서 이런저런 시비로 음식값을 내지 않으려 한 것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범달이 그놈들을 제압하고 물품을 싹 털어간 것이다.

“애초에 객잔에서 행패를 부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무공도 별로인 주제에, 무당과의 연줄만 믿고 거만해 진 놈들.

자업자득이다. 명진도장은 몰랐던 모양인데, 옆에 있는 명정이란 자는 아는 눈치였다.

어쩌면 그가 종리가에서 돈을 얻으려 했던 건, 태청단을 들고 갈만한 명분을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그건 우리와 상관없고. 태청단만 내놓으면 끝나는 문제다.”

“그럼 우리가 왜 태청단을 줘야 하는지 이유를 한 번 대보시지요.”

“네놈, 나하고 말장난하려는 것이냐? 애초에 우리 것이니 당연히 달라고 하는 것이지!”

“이게 무당의 것이라고 어디 쓰여 있습니까?”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쾅!

단순에 죽여버릴 정도로 기세를 발휘하는 명진도장.

하지만 곧 그의 눈빛에 약간의 의아함이 깃들었다.

눈앞에 있는 자. 이 정도 기세를 쏘아내는데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범인이 아니란 소리였다.

“좋다. 그럼 너희들 방식대로 하지. 내가 네놈을 죽이고 가져가면…… 우리 것이 되겠지?”

“사형. 그건 좀 그렇습니다.”

명정도장이 거기서 나서 말렸다.

“왜? 저놈들 하는 짓이 원래 그런 건데?”

“그럼 우리가 저들과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무당의 이름을 삼류 왈패와 같은 반열에 두시려 하십니까?”

명정이 점잖게 일침하자, 살짝 얼굴이 붉어진 명진. 그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침착함을 다시 찾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한 번은 들어주기로 했다.

이놈이 뭘 믿고 이렇게 당당히 나오는 건지.

“어르신. 무당은 명문 정파로서 지키셔야 할 위신이 있습니다. 이번에 귀하신 분들이 오신 것 자체가 무당의 이름 때문이실 터. 그렇지 않습니까?”

설휘가 살짝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자세를 취했다.

명진도장의 얼굴은 여전히 찌푸려져 있었지만,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저희 같은 시전 바닥의 삼류 왈패들도, 낯짝이라는 게 있습니다. 무당의 어르신들이 오셨다고 그냥 내어 드렸다간, 해먹던 벌이도 못 해먹게 되고 맙니다. 태청단을 드릴 테니, 그 값을 쳐주십시오.”

“하. 같잖은 것이 감히 무당의 보물을 돈으로…….”

“그런 무례를 저지를 수야 없지요. 어찌 감히 무당의 것을 값으로 따지겠습니까?”

명진도장이 발칵하려는 순간, 설휘는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럼?”

“일단은 그저 드리겠습니다. 대신, 어르신께 무당의 검을 견식해보고 싶습니다. 그 정도의 가치는 되어야 태청단을 돌려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

갑자기 노인의 표정이 변했다.

그가 이제껏 화가 난 것은, 태청단을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잠룡재의 태도였다. 무당의 보물이 한갓 재물로 취급되는 상황 자체였다.

그런데 막상 나온 녀석은, 그냥 주겠단다.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물이니, 돈이 아닌 무당의 무공을 견식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자는 것이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면, 명진도장이 화를 낼 이유가 없어진다. 더군다나 양가보 그들이 한 실수까지 있었다.

그들이 멋대로 무당의 이름을 팔고 다녔다는 게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 사실이라면 오히려 치도곤을 놓아야 할 일인 것이다.

“그래. 받아낼 수는 있고?”

“자신이 없지요.”

“그런데도 하겠다?”

“그렇습니다. 태청단의 가치는 받아내려고 왔습니다.”

설휘의 노림수.

놈은 전혀 모를 수밖에 없는 게, 어떤 무공이든 견식하는 순간 자신의 무공으로 만들 수 있다.

만약 그게 태극혜검이라면 태청단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터.

“무슨 꿍꿍이인 줄 모르겠으나…….”

이곳에 온 내내 노기등등하던 명진도장이, 처음으로 표정을 풀었다.

“좋다. 자리를 옮기지.”

***

서화객잔의 뒷골목을 쭉 따라 올라가면, 작은 산 하나가 나온다.

높지는 않으나 산세가 거친 지역이라 사람들이 잘 올라가지 않는 장소.

사람 높이만 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쯤이 좋겠군.”

험한 산길을 한참 걸어 평평한 지대가 나오자, 노인은 곧장 순식간에 기광을 뿌려댔다.

그러자, 눈앞에 거친 나무와 잔풀들이 순식간에 제거되는 모습을 보였다.

‘미친…….’

그걸 보던 설휘는 말문이 막혔다.

강기를 너무도 쉽게 뿌려대는 모습이,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귀하는 무슨 의도인 게요?”

명진도장이 산을 평탄화하는 중에 명정이 다가와 물어왔다.

앞서 말한 설휘의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듯 보였다.

그만큼 어이가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보시는 대로. 서로에게 원하는 걸 주기를 바랐소.”

“그대가 태극혜검을 보고 싶어 했던 건 알고 있소. 그건 그렇게 이해하면 되지만, 당신이 태청단을 어찌 들고 있는 게요?”

“어쩌다 보니 손에 넣게 됐소.”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거요?”

“뭐, 그건 상관없고.”

설휘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걸었는데, 이전처럼 가시 돋친 질문은 아니었다.

“……당신은 죽을 게요.”

“괜찮소. 그럼 또 도전하면 되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때마침 평탄화 작업이 끝난 명진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자, 우선 태청단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 보거라. 날 속일 수도 있으니.”

명진은 먼저 물건을 확인하길 바랐다.

다행히 도구함이 열렸고, 상대와 조금 거리를 떨어트린 후 태청단을 꺼냈다.

“여깄습니다. 보시죠.”

그러고는 조금 뒤에 바로 도구함에 집어넣었다. 놈이 우격다짐으로 달려와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건은 잘 있군.”

명진은 만족한 듯 보였다.

아마도 설휘가 본인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고 자신하는 모양이었다.

“보고 싶다는 게 태극혜검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크음. 도중에 죽는다 해도 억울한 게 없다고 먼저 말해라.”

본래 왈패 놈들과는 말을 섞기도 싫은 명진도장.

하지만 상황이 이쯤 되자, 어느 정도 풀어지는 것이 있었다.

“저는 비무 중에 죽어도 탓을 하지 않을 것을 천지신명께 선언합니다.”

명진은 설휘의 승낙이 떨어지자 더는 지체하지 않았다.

푸르르르.

온몸에서 진기가 솟구치고, 의복이 팽팽하게 부풀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드디어 비밀이 풀어지는 건가.’

설휘는 긴장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태극혜검만 익힌다면, 화경 또는 극마의 비밀을 분명 풀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태극혜검이라는 건 사실, 별도의 초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

명진도장은 척 하고 검을 세로로 세워, 가르침을 주듯 말을 이었다.

“태극을 기준으로 유능제강의 묘리가 극대화된 무공이다. 네가 이걸 해석할 수 있을 리 없다만…… 우선은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마.”

그러고는 길고 복잡한 구결을, 또박또박 설휘가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설휘는 당황했다. 명진도장이 무당의 직전제자에게만 가르치는 오의를 다 알려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갑자기 왜 이런 친절을?’

“단 일 검으로 모든 걸 표현하마.”

스륵.

그와 함께 명진도장의 눈이 흉험해졌다.

당연히 설휘는 어리둥절했다. 태도는 친절한데 기세는 살기등등하다니?

“……단 한 초식이란 말입니까?”

“아니, 이건 초식이 아닌 일수다. 최상승의 묘리가 숨어있지. 태극의 시작이자 끝이며, 일변이 곧 만변이라.”

명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에서 휭휭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보여주마. 저승길 노잣돈으로 잘 받아 가도록.”

“허…….”

설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명진도장은 무당의 도인답게, 약속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과할 정도로, 설휘에게 태극혜검의 정수를 알려주고 보여줄 셈이었다.

일격필살로.

그러니 태극혜검의 정수를 일러주는 것도 부담이 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주고 나서 여기서 죽여버리면 그만이니까.

설휘는 이제 그의 앞에서 어찌 대응할지를 심각히 고민하게 되었다.

‘일 검이라고?’

딱 한 번. 그걸로 얼마나 얻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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