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199화 (200/379)

199화. 무당파 명진도장 (2)

스르륵.

명진도장은 팔을 뻗어 검으로 반원을 그렸다.

그러자 부드러운 기류가 끌려오듯 움직였는데, 그 유려한 모습은 잠깐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솨아아아.

발갛게 노을이 지는 시각. 검신 주위에 몰려든 작은 입자가 반딧불처럼 빛을 발하는 현상은 실로 신비롭게까지 보였다.

어쩌면 거기에 정신이 팔렸던 것일까.

명진 도장이 기류를 한데 모아, 설휘를 향해 찌른 뒤 겨우 두 호흡 정도 지났을 무렵.

지이이-----치치칫.

부지불식간에 생성된 검강이 자신을 노렸다.

“……!”

[기류의 묘를 사용합니다.]

분명히 나름 준비를 했다.

반응 또한 늦지 않았다.

그럼에도 설휘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명진도장의 검강이 딱 1촌(3cm)을 남겨놓고 설휘의 가슴에 도달했다.

“크읍!”

전력을 다해 밀어냈지만, 검강은 밀리긴커녕 오히려 더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설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밀어내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좌우로 피할 것인지, 아래나 위로 비틀 것인지.

그의 선택은 아래였다.

쿠아아앙!

허벅지를 관통한 검강은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이나 깊이 들어간 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비, 비틀었어?”

명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사형 명진이 펼친 건 태극혜검의 정수를 담은 검강. 보통의 검강을 한 차원 넘어선 기운이다.

밀어내려고 하면 오히려 말려들어가는 성질까지 띤 검강.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그 기운을 비틀어냈다.

“허…….”

명진도장 역시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지 그저 말문이 막힌 표정이었다.

‘왜 뜨지 않는 거지.’

한편 설휘의 머리는 복잡했다.

꽤 중상을 입었지만, 그걸 생각 못 할 정도였다.

어쩌면 상대의 초식을 겪으면 태극혜검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주르륵.

허벅지의 부상을 점혈로 늦추는 설휘.

‘혹시 저 녀석이 속인 게 아닐까?’

불현듯 의심이 일었다. 하지만 상대로서는 굳이 태극혜검을 속이려고 할만한 근거가 없다.

방금 일검은, 특수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초마의 극의 경지로서는 막을 수 없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뭔가 부족하다는 건가?’

태극검의 요채는 태극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태극혜검은 태극검에서 왔다고 생각해, 태극검부터 익혔다.

하지만 지금 결과를 보았을 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다.

“이놈. 뭔가 한 수가 있는 녀석이었군.”

명진도장의 얼굴에 냉기가 서렸다.

방금 그는 자신이 아는 최상위의 무공을 펼쳤다. 그럼에도 일격에 죽이지 못한 걸 보면, 놈은 애초에 보통 재간이 아니라는 것일 터.

생각해보면, 잠룡재라는 일개 왈패집단에서 온 자가 태극혜검을 견식하려 하는 일 자체가 어이없는 말이긴 했다.

아마도 실력을 숨긴, 상당한 수준의 고수일 터.

“뭐, 그건 그렇고. 태청단을 어서 내놓거라.”

“지금 이대로는 드릴 수 없습니다.”

“뭐라?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냐?”

명진도장이 쌍심지를 켜자, 설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어르신 아닙니까? 저는 분명 태극혜검에 대한 견식을 부탁드렸습니다. 헌데 노인장께서는 제가 알아볼 수도 없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네놈의 자질이 떨어지는 것을 어쩌라는 것이냐. 그걸 노부에게 책임을 지라고?”

“그냥 일격이었다면 저도 납득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방금 소인의 목숨을 취하려 하시지 않았습니까?”

스윽.

설휘는 이미 지혈을 했음에도 아직도 피가 흥건한 허벅지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다시 명진도장을 보았다.

“한번 여쭙겠습니다. 무당의 제자들은 방금 어르신의 일격을 맞고, 바로 태극혜검의 정수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

명진도장의 입이 틀어막혔다.

사실, 방금 그가 펼친 수는 지나치게 수준이 높은 일검이었다.

아무리 무당의 제자라 한들, 그냥 죽으면 죽었지. 조금 전의 그 한 수를 맞고 태극혜검의 요체를 깨닫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것이냐?”

“소인이 과한 욕심을 부려 도장께서 제 목숨을 취하려고 한 건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허나. 정 그렇다면 셈은 제대로 치러 주셔야지요.”

스윽.

설휘는 들고 있는 검을 치우며, 무방비한 가슴과 배를 드러냈다.

“태극검에서 태극혜검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무엇. 그걸 소인에게 알려 주십시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양의신공은 문외불출의 절기다. 이 파락호놈이?”

명진도장은 기도 안 찬다는 얼굴로 거절했다.

‘역시 있었군.’

하지만 그건 오히려 설휘에게 확신을 주었다.

태극검에서 태극혜검을 익히기 위해 더 필요한 조건.

그게 있다는 걸.

“문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도장께서는 어차피 이 자리에서 소인을 죽일 셈이셨지 않습니까?”

“…….”

“아무리 하찮은 신분이라 한들, 저 역시 목숨은 하나. 도를 닦으시는 분이 어찌 생 목숨의 가치를 낮게 매기려 하십니까. 조금 전에 제게 저승길 노잣돈이라고 하셨지요? 그럼 셈을 바로 해 주십시오. 어찌 망자의 노잣돈을 싸게 치려 드십니까.”

“……정녕 네놈이 죽고 싶은 것이냐? 그렇게 죽으면서까지 집착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명진도장이 해괴하다는 얼굴을 했다.

방금 지적받은 대로, 그는 어차피 여기서 설휘를 죽일 생각이었다. 괜히 후환을 남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상대는 그에 살려달라고 빌기는커녕-사실 빌어도 살려줄 생각이 없었지만- 죽어도 좋으니 기왕 죽일 바에야, 태극혜검을 볼 수 있게 하나 더 가르쳐 주고 죽이라고 하는 것이다.

“검을 든 자, 출신이 어떻든 무당의 태극혜검을 견식하고 싶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차피 제가 이 자리에서 죽을 몸이라면, 죽기 전에 보기나 하고 저승길로 가겠다. 이뿐입니다.”

“하. 정말이지…….”

명진도장은 피식 웃어 보였다.

고작해야 강호의 삼류 파락호 주제에, 딴에는 무인인 양 하는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태극혜검을 이해할 수 있게 알려 달라고? 알려준다고 알 수나 있을까?

그건 고된 수련과 수많은 가르침에 깨달음까지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명문이 어디 달리 명문이던가.

“그걸 알려줘 본들, 너 따위가 감히 이해할 리……. 아니지, 아냐.”

설휘의 행동을 꾸짖으려 하던 명진도장은 생각을 빠르게 바꿨다.

‘뭐, 오히려 잘되었다.’

명진도장은 가슴이 후련해졌다.

방금 그는 최선을 다해 일검을 날렸다. 그런데 놈은 그 일격으로 죽지 않았다.

이제 태청단만 돌려받으면 되는 일인데, 그로서는 마뜩지 않았다.

상대의 수준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방금 무당의 절예 중 하나를 건넸으니까.

실력을 보아하니 후환이 될 법하다. 그렇다고 후환이 남을까 봐 거래를 끝낸 상황에서 기어코 죽인다면…… 그게 어디 무당의 도사가 할 짓인가.

그래서 조금 심사가 복잡했던 것이.

제가 죽겠다고 부득불 기를 쓰지 않는가.

“좋아. 가르쳐 주지. 태극검에서 태극혜검으로 넘어가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본파의 양의심공이라 한다.”

명진도장이 해석한 태극혜검의 정수.

그건 태극을 기초로 한 몇 가지 무공에서 얻은 심득을 기반으로 했다. 그중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이 양의신공(兩儀神功)이다.

애초에 하나인 마음을 태극에 맞게 두 가지로 나누어, 공력을 운용하며 수법을 펼치는 방식에선 만결(萬結)과 지결(地結)을 이해해야 한다.

만결은 태극검 한 초식이 담긴 만 가지의 방식이라 이것을 천결, 백결…… 종국엔 어떤 움직임을 펼쳐도 상관없는 무결 상태에 만들어야 한다.

지결은 태극검 초식이 어떤 상황에 펼쳐질지를 대응하는 것.

이 만결과 지결을 조합하기 위해선 마음을 두 개로 나눠야 하고.

이것을 양심공과 함께 운영해야 비로소 태극혜검의 정수를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알겠느냐?”

가히 일각여.

심오한 구결과 파생내용까지 다 알려주고 난 뒤에 명진도장이 물었다.

처음에는 문외불출의 절기를 외인에게 가르치는 것이 찜찜했지만, 어차피 저승 갈 놈 노잣돈이라고 생각하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제자를 가르치듯 상세하게 풀어서 다 알려준 것이다.

“…….”

질문을 받은 설휘는 바쁘게 머리를 정리했다.

일단 요결과 구결을 죄다 듣기는 했는데, 그게 바로 머리에 들어가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었다.

굳이 무당의 자존심을 건드려, 무당파의 진신절예를 얻었지만, 이걸 바로 쓰고 익히기엔 기나긴 소화의 과정이 필요할 듯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상대는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걸로 노부는 약속을 지켰다. 그럼 이제 받아 가도록 하지. 하앗!”

말과 함께 번뜩하고 달려오는 속도를 보고 설휘는 순간 생각했다.

‘죽는…….’

상대의 움직임이 말도 안 되게 빨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촤아아아아악.

설휘의 몸이 베어짐과 함께 다섯으로 불어났다.

“역시 한 수가 있었구나!”

명진도장은 설휘의 대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나 보였다.

그때부터 그의 신출귀몰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사사사삭.

삽시간에 환영 넷이 베이며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설휘는 기겁했다.

‘씨발, 이걸 어떻게 막아…….’

무공을 파악하고 자시고 할 그런 단계가 아니다. 칼끝 하나만 스쳐도 온몸이 잘려나가는 검강 줄기.

그걸 물 쓰듯 쓰면서도 체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으하하하하!”

명진도장이 살계를 열고 마구잡이로 달려드는데, 설휘는 손 하나 뻗지 못하고 도망만 다녔다.

일단 태극혜검 때문에 버티기를 해야 하는데, 죽을 맛이었다. 혹시나 하여 한번 막아볼까 하고 검을 들이밀었더니.

캉! 파아아아-

막는 순간 온몸이 진탕되는 기운을 받았다.

“에라이, 미친 노친네…… 헉!”

바닥을 뒹굴며 일어서는 설휘 앞에서 신형이 나타났다.

이거, 구종명과는 다른 의미로 미친놈이었다!

‘그땐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가.’

한편 그 둘을 보던 명정은 심경이 복잡했다.

대사형 명진은 무당파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다. 그를 상대로 저 정도로 버티다니.

육안으로 쫓기 힘든 수준이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공격을 흘려내고 피하고 막아내는 건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체 누구지, 저자는?’

명진이야 태청단과 죽여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그렇다지만, 그는 다소 냉정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잠룡재에 저런 고수가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겠구나.’

물론 변수는 없었다. 지금도 대사형인 명진도장은 전력을 쓰지 않고 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본신전력을 끌어내리라.

그리고 그 전에 놈은 쓰러질 것이다.

캉! 캉!

쿵! 퍼퍼퍽. 쿵!

“으아아아! 야이 씨발아!”

출신은 못 속이는지 설휘는 그만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제껏 도사를 상대하느라 점잖은 척했지만, 더는 못 참은 것이었다.

“하앗!”

하지만 놈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그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감로수를 사용합니다.]

중간에 여러 군데 칼이 꽂혀, 황금 벨트를 사용해 체력을 한 번 회복했다.

그런데 이렇게 버티다가 다 소모해버릴 바에야, 그냥 뒈지고 다시 살아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죽어! 죽어라!”

명진도장도 눈이 돌아갔다. 무공을 쓰는 건지, 그냥 패악질을 해대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커억!”

그러다가 다시 놈에게 허벅지를 찔리고선 주춤하자.

“자. 이제 뒈질 준비하자.”

눈앞에 멈춰선 명진의 눈빛이 보였다.

설휘는 급히 그가 이성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약속된 얘기를 꺼냈는데.

“어르신, 양의신공은…….”

“그게 뭐냐.”

‘이 씨발 새끼.’

알려줘야 할 무공을 까먹은 모습에, 설휘는 결국 칼을 꺼내들었다.

[무극초풍신을 사용합니다.]

“……?!”

그동안 너무 몰아친 탓일까. 아님 설휘의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일까.

명진은 설휘의 공력을 보면서 피하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쩌정!

빛처럼 빠른 뇌전이 먼저 쏘아져 그를 감전시켜버렸고, 뒤이어 일어난 검은 폭풍이 그를 감쌌다.

“뒈지긴. 너나 뒈져라!”

[무극초풍신을 사용합니다.]

[무극초풍신을 사용합니다.]

설휘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과거 무극초풍신에 맞은 상대가 폭풍에 휘말릴 때 틈이 생기는 걸 인지했고, 그에 연속해서 무극초풍신을 때려 넣은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하아앗!”

검은 폭풍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설휘는 놈에게 접근하여 검을 그었다.

[천어빙화폭을 사용합니다.]

드드드득!

폭풍의 기류가 새하얀 얼음으로 변했고, 뒤따라 생성된 화공에 닿자마자 화약처럼 폭발해버렸다.

검은 구름 속에서 일어나는 얼음과 열기 폭발은 거의 장관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아직이다!”

설휘는 천천히 사라지는 검은 폭풍 속으로 다시 들어가며 또 하나의 기운을 펼쳐냈다.

[생지멸절공을 사용합니다.]

아주 잠깐. 보라색 불꽃이 폭풍 안으로 스며들었다. 기이한 굉음이 계속 그 안을 울렸고 이내.

쿠와아아------앙!

설휘가 튕겨 날아갈 정도로 강한 압력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헉. 헉…….”

이제야 숨이 가빠졌다.

여전히 흙더미와 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 설휘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손에 감각이 있었다.

비켜 맞았다 하더라도 분명 피해를 줬다.

운이 좋다면 대 무당파의 고수를 해치웠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최고의 신공들을 모두 때려 부었으니, 제아무리 화경의 고수라 하더라도…….

“하, 씨바.”

하지만 연기가 걷히자, 설휘의 얼굴이 점점 흑빛으로 변했다.

바닥에 누워서 골골대야 할, 아니면 숨이 끊어졌어야 할 놈이 너무도 태연하게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런 천하에 찢어죽일 놈을 봤나……. 너, 마교의 잡것이었구나.”

명진은 살아 있었다.

치명적인 상처는커녕, 작은 생채기 몇 개만 입혔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있었다.

[양의신공을 익혔습니다.]

[태극혜검의 묘리를 이해했습니다.]

놈의 밑천 중 하나.

생각해보면 꼭 막아야만 놈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거듭된 필살 공격에 놈은 양의신공을 계속해서 운용했고, 그러다 보니 종국엔 태극혜검의 묘리까지 이해하게 되는 큰 수확을 얻은 것이다.

“저기…….”

그래서일까.

설휘는 이제 솔직해지고 싶었다.

얻을 건 다 얻었으니, 그에게 호소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 싸우지 않을래?”

물론 설득이 되는 눈빛이 아니었다.

“갈(喝)!”

놈은 입에 게거품을 문 채로 또다시 달려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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