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육성 시물레이션-203화 (204/379)

203화. 급변하는 정세 (4)

‘천어빙화폭.’

설휘는 최고의 절초 중 하나를 한 번 펼쳐 보았다.

츠츠츠츠측.

검은 느리게 움직였다.

하지만 천어빙화폭의 현상은 정확히 구현해냈다.

스르르륵.

검이 이동한 곳에서 서리가 일며 단숨에 얼음으로 변했다.

뒤이어 불꽃이 따라붙으며 강력한 폭발을 생성했다.

콰콰콰콰쾅!

‘이게…… 완전히 내 것이 되었구나.’

설휘는 검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전에는 특수 기술로 펼칠 수 있었던 기예다.

하지만 지금은 원하면 언제든 어떻게든 펼칠 수 있다.

그간의 수많은 사용이 연습과 숙련이 되어, 소신수마공 중 최정점의 무공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이게 소신수마공의 최고의 무공인가?

아니다.

위에 하나가 더 있었다.

“빙원핵축압(氷原核縮壓).”

소신수마공의 마지막 장에 적힌 초식.

설명에 따르면 한정된 공간 안의 모든 만물(萬物)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만물.

한 범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

땅과 허공, 공기. 지금이라면 주변의 산천초목.

이런 것을 완벽히 통제한다니?

‘빙공극저하와 닮은 면이 있지만……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비교할 수조차 없어.’

단순히 시간을 결박하는 것과, 지역 한정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주변에 병기가 있으면 전부 설휘의 마음대로 휘날릴 수 있을 것이고, 적이 있으면 그가 원하는 즉시 그 생명을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무지막지하게 난이도가 높았다.

‘하단전만 아니라 중단전, 상단전이 동시에 작용해야 펼칠 수 있는 절학.’

설휘가 초마에 올랐음에도, 이 절학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이유였다.

하단전으로 자신을 통제하며, 상단전으로 만물을 통제하고, 완벽한 결박에서 중단전으로 나아가는.

즉 정(精), 기(氣), 신(神).

하-중-상단전의 모든 힘이 개입되어야만 가능한 무공이었다.

“한번 해보자.”

설휘는 자신감이 있었다.

과거면 몰라도 지금은 충분히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크게 호흡을 내쉬며 집중했다.

“후우.”

모든 단전의 힘을 순환시키며 소신수마공에 나와있는 내용대로 기운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리고.

번쩍!

설휘는 먼저 상단전의 힘을 눈빛으로 쏘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단전으로 범위를 설정하며, 중단전에 힘을 불어넣자.

피이-----

한순간 귓가에 아주 가느다란 이명이 울렸다.

‘이건!’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런 이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설휘는 깨달았다.

‘소리가…… 사라졌어.’

아까까지 귀찮을 정도로 잘 들리던 자잘한 소음들. 귓속에 속삭이던 풀벌레 소리. 동물의 발걸음이나 거친 호흡 등이 들리지 않았다.

혹시 그냥 소리만 차단된 건 아닌가 의문이 들었지만, 그게 아님을 곧 알 수 있었다.

스으으윽.

몸이 천천히, 극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건…….’

한 걸음 발을 내디딘 설휘는 더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을 완벽히 통제한다.

소신수마공에는 그렇게 적혀 있을 뿐, 이게 정확히 어떤 무공인지는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떤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부터 전부 설휘가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느릿느릿.

그렇게 물속에서 움직이듯, 세 발짝쯤 걸었을 때.

솨아아아-

거짓말처럼 힘이 풀리며, 다시금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빙원핵축압을 익혔습니다.]

‘아!’

활자로 보자마자 설휘는 자신이 펼친 게 빙원핵축압임을 깨달았다.

동시에 이어지는 글귀들.

◆ 소신수마공 특수 기술표 ◆ [최종 단계]

[빙원핵축압]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AB

“……아주 죽여주는구만.”

특수 기술표를 보자마자 입에서 빈정댐이 절로 나왔다.

이건 뭐 쓰지 말라는 거 아닌가.

내공이 완전히 바닥이 나고, 상대가 기다려주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장황한 동작을 펼치는 건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뭐, 얻은 건 맞으니까.”

주변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빙원핵축압.

나중에 한 번 단단히 사전 준비를 하고 펼쳐봐야, 어떻게 쓰고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설휘는 이제 다른 무공으로 눈을 돌렸다.

생지멸절공.

본래는 이것이 화온마공을 대표하는 최고의 무공이었다.

하지만 이 바로 뒤에.

역시 하나가 더 있다.

“지옥멸절공(地獄滅絶功)…….”

화온마공에 쓰여 있는 대로라면, 현세에는 존재할 수 없는 지옥불이 응축되어 폭발한다고 되어 있었다.

스쳐가는 모든 것을 공멸시킨다고 하니, 그 힘은 가히 측정불가였다.

“이것도 해보자.”

설휘는 검을 들었다.

이것은 빙원핵축압과 달리, 검을 사용하면 더욱 좋은 무공이었다.

***

화르르륵!

설휘가 내공을 주입하자, 검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화공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

“스으으읍.”

설휘는 집중하며 가일층 힘을 주입했다.

화온마공에 기술된 지옥멸절공의 구절을 떠올렸고, 심상을 뚜렷이 했다.

스팟. 파파팟.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검화가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고, 화염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쉬이이잇…….

한참을 그렇게 버티자, 다시 생성된 불꽃은 새파랗게 타올랐다.

청염. 조용하지만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

하지만 이건 원래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빙원핵축압과 달리 한 번에는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후우우.”

설휘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금 집중했다.

지옥멸절공. 이것 역시 상단전의 힘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상단전과 하단전을 충분히 순환한 뒤에 중단전을 여는 빙원핵축압과 달리.

지옥멸절공은 동시에 세 단전을 극도로 끌어올려서, 일거에 힘을 써야 했다.

정기신이 모두 정확히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지옥멸절공의 진정한 효능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스으으읍.”

몇 번의 실수를 반복한 설휘는, 약간의 요령을 잡았다. 세 단전에 정신을 집중하여 다시 내기를 검 끝에 발산했다.

타다다닥!

콩을 볶듯이 불꽃이 다시 튀기 시작했고, 이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후웃!

다시금 나타난 불꽃은, 어둑어둑한 보랏빛이었다.

‘된다!’

이 불길은 찬란한 광채도, 맹렬한 움직임도 없었다. 그저 안개처럼 검신을 타고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불길을 정신을 집중해 한곳으로 쏘아내자.

쿠오오오오!

기괴한 소리를 내며 뻗어 나갔고, 이내 ‘쩌엉!’ 하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그 사라짐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마치 두 기운이 맞물리다 공멸하는 듯한, 진한 보랏빛을 남기며 사라진 것이다.

“허억. 허억.”

설휘는 휘청거렸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허옇게 변했다.

순간적으로 사용 가능한 모든 내력을 소모한 탓이다.

끔찍할 정도의 힘을 필요로 하는 절초였다. 이미 강기를 쉽게 생성할 수 있는 몸인데도, 고작 불러내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이걸로…….”

설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실전에서 적에게 펼쳐봐야 알겠지만, 느낌상 강기보다 한 차원 높은 위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구종명은 이길 수 있으려나…….”

[지옥멸절공을 익혔습니다.]

때마침 눈앞에 뜨는 글귀.

방금 펼친 것이 지옥멸절공임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미친…….”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 화온마공 특수 기술표 ◆ [최종 단계]

[지옥멸절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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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 표시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다음 날.

일행은 거처를 해남도 해구의 산 중턱으로 정했다.

인적이 아예 없는 깊은 곳은 피했다.

수련도 중요하지만, 지난번 폐관 때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너무 깊이 빠져들었다가 시기를 놓치게 되면 곤란하지.”

그렇게 잡은 거처는 위치가 적당했다.

안으로 한 식경만 들어가면 정말 인적이 없는 심산유곡.

아래로 반시진만 내려가면 해저촌(海底村)과 동채항(東寨港)이 존재했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거나, 바깥의 동향을 알기에도 좋았다.

“여기 목수 일 좀 할 사람 없소?”

음무기는 그 마을에서 사람 서넛을 고용했는데, 웃돈을 얹어주며 집을 빨리 지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단 사흘 만에 뚝딱 완성해버렸다.

“……당신들 어부 맞소? 목수 아니오?”

황당해진 음무기가 묻자 어부(?)들이 웃었다.

“크하하하. 뱃일이 어떤 일인지 모르시는군.”

바다 위에서 배도 고치는데, 든든한 땅 위에서 집 짓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라며.

어쨌든 어부들은 부수입을 올렸고, 음무기는 고생과 시간을 절약했다. 서로서로 좋은 거래였다.

그사이 송화는 설휘에게 술법 강의를 진행했다.

교육받던 설휘는 이전과 달리 맨몸이었다.

앞으로 쓰일 일이 크게 없겠다고 판단하여 풍운극마검과 황금 벨트, 신발을 도구함에 넣어두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죠.”

송화는 설휘에게 이론적인 교육은 딱 한 번만 알려주었고, 곧장 실전 수업을 시켰다.

기문둔갑.

둔갑술(遁甲術)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것은 술법의 기초라 불리며, 고대에는 나라를 세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수(數) 배열 원리 및 이를 이용한 건착도(乾鑿度)의 태을행구궁법(太乙行九宮)을 그 원형으로 한다.

송화가 선보였던 천문법, 점복술, 은신술, 축지법, 변신술, 포진법 등의 이론들이 모두 여기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설휘는 그의 설명들이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익히는 데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천문법을 익혔습니다.]

[점복술을 익혔습니다.]

[축지법을 익혔습니다.]

[변신술을 익혔습니다.]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몸에 체득해버린 것이다.

‘이 술법들은…… 펼칠 수 없겠구나.’

하지만 설휘는 이런 능력들이 그다지 자신에게는 맞지 않다고 보았다.

특히 축지법은 공간을 이동시키는 절대의 절학이라지만, 자신에겐 적용하기 힘들었다.

펼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극마에 오르고 나니 상단전의 힘을 필요로 하는 절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좋은 건 있었다.

[강시, 실혼인 제어술을 익혔습니다.]

이건 제법 유용하게 쓰일 듯했다.

이지를 잃은 광마나 강시, 그리고 실혼인들을 제어하는 술수.

‘이거라면…….’

이제자 수하 중에서 강력한 전력인 기기아대. 그들이 강시와 실혼인을 부리는 놈들이니, 훗날 만나게 되면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 대단합니다. 사부,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익힐 수 있는 겁니까?!”

“…….”

송화가 경악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설휘는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애초에 설명한다고 해서 이해시킬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송화는 송화대로 극마에 오르면 다 가능하구나 하는 범주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잠깐의 휴식시간.

설휘는 하늘을 보며 시간을 가늠했다.

“우리가 얼마나 한 것이냐?”

“대충…… 사흘 정도를 지낸 것 같습니다.”

“……그렇게나?”

“모르셨습니까? 사부님은 가끔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십니다. 지금도 대략 두 시진 정도를 자리에 앉아서 배운 것을 확립하고 계셨습니다.”

“그랬었나.”

설휘는 머리를 긁적였다.

좋게 말해서 집중력이 좋다는 거지, 한 번 꽂히면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었으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사흘이라니.

어째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동시에 고작 사흘 만에 송화의 진전을 다 얻었으니 엄청 이득이라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 노숙하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그간 집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러 가자.”

“예. 그렇지 않아도 음무기 형님이 오늘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래?”

송화가 말을 받자 설휘는 아래를 향해 손짓했다.

“가자꾸나.”

“아, 사부님. 실은 전해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갑자기 송화가 손목을 잡아당겼다.

설휘가 바라보자 그는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이게 뭔가 하고 내용을 살피자.

[대장, 요림입니다. 저는 지금 쫓기고 있는 몸입니다. 자세한 상황은 직접 찾아뵙고 알려드릴 테니…… 어디 계신지 알려주십시오. 참고로 저는 마교를 벗어난 상태이니 나흘 뒤 아래 위치로 전서구를 보내주십시오.]

“이건?!”

낯익은 필체에 설휘가 경악하며 송화를 보았다.

“언제 온 것이냐? 아니, 그보다 어떻게 소식을 받은 것이냐?”

“그게 말입니다.”

송화는 과정을 소상히 알려주었다.

일행이 해남으로 이동하기로 했을 때, 송화는 그동안 연락을 취하던 사령대 조장들에게 마지막 전갈을 보냈다.

역참에 훈련된 매를 준비해 둘 테니, 혹여 여건이 되거든 다시 연락하라고.

그랬는데 운이 좋았는지, 며칠 밤이 지나 이렇게 빠르게 도착했다고 했다.

“왜 빨리 말하지 않았더냐!”

“그게…… 약속된 위치로 연통을 보내려면 하루 정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련 중이시기도 했고, 입장도 들어봐야 했기에…….”

“아…….”

설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도망쳐 나온 수하들을 자신이 도울 수 있다는 희망에 기분이 들뜬 것이다.

“그래. 그럼 어서 빨리 이곳을 알리거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설휘의 말에 송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반가운 사령대 조장들을 볼 생각에 꽤나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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