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급변하는 정세 (5)
“어떠십니까!”
음무기는 완성된 집 앞에서 자랑스럽게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어떠냐를 연신 물으며 본인이 대부분 했다는 설명을 빼놓지 않고 말했다.
“요림이 온다고요?!”
그러다 전 동료들의 합류 이야기에 매우 놀라워했고, 빨리 전서구를 보내자고 누구보다 성화였다.
다음 날.
송화는 아랫마을에 내려가 전서구를 보냈다.
목적지는 운남.
왜 요림이 그곳에 있는지, 그리고 다른 조장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흘 뒤.
전서구가 돌아왔다.
요림이 소식을 잘 전달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다리에 묶었던 종이를 제거한 걸 보면 적어도 전서구가 제 목적지에 도착은 잘 한 것 같아 보였다.
보름 뒤.
음무기가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왔다.
아침부터 항구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그는, 돌아올 때 혼자가 아니었다.
깡마른 체격에 낯익은 얼굴의 사내.
요림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그와 합류한 것이다.
***
“일단, 우선 이것부터 드시지요.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쪼르륵.
요림을 방에 들이자마자, 송화는 따듯하게 데운 차 한 잔을 내놓았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느니,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었냐느니 하는 것을 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후우…… 후우…….”
덜덜덜.
원래도 깡말랐던 요림은, 얼굴이 눈에 띄게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거기에 몸까지 간헐적으로 떨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 번씩 소스라치듯 놀라는 모습이, 척 보기에도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다.
“요림. 괜찮으냐?”
조심스레 그의 용태를 살피며 설휘가 물었다.
“그. 그. 그것이…….”
그랬더니 온몸을 떨며 말까지 더듬거리는 요림.
후르륵. 콜록콜록!
그는 급하게 송화의 차를 마시다가 사레가 걸렸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찻잔을 놓칠 뻔했다.
“진정해라. 그래. 일단 그것부터 들고, 충분히 숨을 들이마시거라. 여기는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고.”
“안전…… 예…… 예…….”
어딘지 모르게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요림.
그는 더듬거리는 손놀림으로 차를 마셨다.
후우…….
그러고 나니 조금은 진정되는 걸로 보였다.
송화의 말처럼 이 차가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대장. 조장들이…… 조장들이…….”
흑. 흐흑. 으으윽…….
첫 말을 꺼내자마자 오열하기 시작하는 요림.
“…….”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뒷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요림의 말뜻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꾸욱.
설휘는 자연스럽게 주먹이 말아졌다.
혹시나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적송, 소령, 용진.
본교로 돌아가면 언제든 그 자리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 편히 떠나올 수 있었다.
헌데 그 수하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다니.
이것이 AI가 지켜보라 했던 예고된 미래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한복판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무엇보다 지독한 자책감이 있었다.
‘버린 것이 아니지만…….’
그들이 죽게 될 것을 알았다면, 그냥 두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생각해보면 자신에겐 큰 소득이었다. 이 일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후욱. 후욱.
설휘는 한참 동안 그렇게 속으로 삭인 뒤, 손에 힘을 풀고는 나직이 물었다.
“사제자께선 어찌 되셨느냐?”
“……일제자와 상잔하셨고, 두 분 다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질끈.
설휘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이 또한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이제자가 천마의 다른 제자를 죽이고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 과정에서 설휘의 수하들은 죽고, 사제자도 죽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졌다.
스스로 죽을 줄 알면서도 가야 했던 사제자.
그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마지막 천살성의 힘을 개방했을 때에,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헌데…… 사제자의 수하 중에 너 말고 살아남은 자는 없느냐? 이제자와 협상을 했으면 적어도 휘하의 수하들은 살려주는 게 거래에 맞지 않느냐.”
“녀석은 밀담에서 나눈 약속을 어겼습니다.”
빠드득!
설휘가 묻자 요림은 이를 갈았다.
갑작스럽게 차오르는 분노 때문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증스런 놈들! 사실…… 이 협상을 처음 주도했던 건 이제자가 아닌 일제자였습니다. 네 휘하의 수하들을 모두 살려줄 테니, 이제자를 죽이라는 이야기를 했다지요. 이제자는 어디서 그걸 전해 들었는지 사제자께 똑같은 제안을 했다고 했고요.”
“……허.”
“사제자께서 오랜 기간 고심하신 까닭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는 다른 제자들을 죽이고 우뚝 설 수 없는, 천살성이란 저주. 결국 본인이 죽지 않으면 이 상황은 어떤 식으로도 해결되지 않음을 알고 계셨던 것이죠. 그래서 그나마 어느 쪽의 손을 잡을지 재단을 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런가. 헌데 왜 이제자인가. 그 사갈 같은 놈을 사제자께서 왜!”
“이제자놈이 곤마 님을 어떻게 꼬드겼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저 추측하기로는…… 일제자보다는 이제자를 더 믿었다고밖에…….”
‘화산파 때문이구나!’
그걸 듣자 설휘의 머릿속에 한 단체가 떠올랐다.
본인도 이제자가 음험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과연 곤마가 그걸 몰랐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정작 일제자를 믿지 못한 건, 과거에 그가 했던 행위.
일제자 살마는 본교의 사람들을 팔아, 적인 화산파와 내통하며 이익을 얻은 자다.
같은 교인들도 팔아넘기는 놈이, 사제자 자신이 산화하고 난 다음 약속대로 수하들을 손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야 상황이 대략 머릿속에 그려지는구나.’
설휘는 일전의 소식지를 떠올렸다.
- 지침이 떨어졌습니다. 대장. 곤마께서 핵심무사와 호위무사, 비밀무사를 대동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은영단 역시 그 선봉에 섰습니다.
곤마가 모든 병력을 모아 움직인 건, 일제자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일제자 휘하의 감시자들에게 ‘이제자의 전선에 병력을 넣었다’는 걸 보여주는 연기였을 뿐.
실제로는 병력을 이제자의 전선에 밀어 넣은 뒤, 자신만 홀로 적군에 갔을 거라 보는 게 맞았다.
앞서 일제자가 제의한 것도 있으니 직접 대면하려 했을 것이고, 거기서 목숨 줄을 끊어놨을 터.
또한, 일제자 입장에서 보면 이 역시 납득이 가능한 행위였다.
그는 ‘이제자를 치기 위해 병력을 밀어 넣은 뒤, 최종 보고를 위한 대면 자리’로 생각했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일제자의 수많은 수하들 속을 가로질러 곤마가 살마를 직접 죽일 수 있었을 터.
‘그렇게 일제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제자는 바로 곤마의 병력을 제거했을 거고…….’
이제야 아귀가 들어맞는다.
이제자. 그 사갈 같은 놈이라면 능히 가능한 일이다. 보통은 살려줄 수 있음에도, 사제자의 수하들을 무참히 죽인 행동.
그건 과거 자신이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제길.”
음무기가 분함을 삭히지 못해 연신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런 얘길 들으면 누구나 그러지 않을 것인가.
자신의 무력감. 절대고수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어찌 처분될지 모르던 시절.
설휘 역시도 한동안 잊고 있던 분노가, 올올이 되살아나 타오르는 더러운 기분인데.
“그리고 대, 대장님.”
문득, 요림의 눈에 다시 총기가 흐려지는 것을 느끼고 설휘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거라.”
“따로 드. 드. 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따로?”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송화와 음무기. 이 두 사람은 기존에 함께하던 사람들이다.
딱히 이제 와서 무언가를 숨기고 말고 할 사이가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를 담아 바라보자, 요림이 바들바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말도 엄청 심하게 더듬었다.
“예. 제. 제. 제. 제가…… 시. 시. 실은. 제. 제가…….”
“…….”
“저희가 잠시 자리를 비키겠습니다.”
보다 못한 송화가 일어섰다.
“굳이…….”
“그게 낫겠습니다, 대장. 요림이 차마 드리기 어려운 말이 있나 봅니다.”
음무기도 거들며 따라 일어섰다.
꼬박꼬박 사부라 부르던 녀석이 ‘대장’이라고 강조하는 걸 보면.
아마도 눈앞의 요림이 더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터.
“……그래. 고맙구나.”
그렇게 자리를 일어서는 두 사람.
송화는 괜히 미안해하는 기색이었고, 반면 음무기는 씁쓸한 듯한 얼굴이었다.
무언가 짐작이 간다는 듯.
‘……그래. 그 말을 하려는가 보군.’
설휘 역시 왠지 모르게, 요림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혼자 살아온 요림.
그리고 오지 못한 다른 이들.
아마도 그에 관한 이야기리라.
“윽…… 으윽…… 윽…….”
“휴…….”
요림은 그렇게 한참을 다시 오열했다.
나이 먹은 남자가 크게 울지도 못하고 소리죽여 흐느끼는 모습은, 설휘의 가슴에 더욱 불을 질렀다.
“대장…….”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요림이 조금 진정이 된 듯 했다.
“제가…… 보여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잠시…… 뒤를 보아 주시겠습니까?”
“뒤?”
“예. 제가……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알겠다.”
설휘는 의아했지만 곧 끄덕였다.
뭔가.
정말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수치가 가득한 그런 얼굴이었기에.
스윽.
대체 무슨 일인지, 그리고 뭐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설휘는 몸을 돌리고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
스륵.
요림이 주저하며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돌아보라는 말을 기다릴 때.
퓨욱!
“……어?!”
갑자기 머릿속에 경종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설휘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엔 갑자기 몸을 관통한 기공 다발들이 보였고, 이내 그 주위가 피로 물들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쿨럭!
동시에 흘러내리는 입가의 피.
“탈혼소마경……?”
제아무리 등 뒤에서 펼쳤다곤 하나, 기껏해야 초절정 수준.
그럼에도 반응하지 못했다.
완전한 방심.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배신.
특수 무기만이 가지고 있는 기척 없는 발현.
“어떻게 네가…….”
허탈한 표정으로 몸을 돌린 설휘의 눈에, 요림의 얼굴이 보였다.
기습을 해놓고 그는.
무슨 이유인지 더없이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컵. 커컵.”
상처가 수습이 되지 않았다.
심장을 정확히 관통해 숨 쉬는 것도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양 가슴에 있는 중단전까지 다친 상황이라, 기(氣)로 잠깐의 수명을 늘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체…… 왜…….”
점점 흐려지는 설휘의 시야 속에서 뭔가 웅얼거리는 요림이 보였다.
그리고 눈앞은 곧 어둠으로 물들었다.
마지막으로 청각만 남아, 그의 목소리의 마지막을 쫓았다.
“존경하는 마후 제자님의…… 거룩한 영광이 천하를 누리기를…….”
‘당했구나.’
설휘는 의식의 끝이 끊어질 때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구멍이 뚫린 듯한 허망한 눈.
요림이 보였던 그것은 단순히 동료를 잃은 슬픔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적인 개입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