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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육성 시물레이션-206화 (207/379)

206화. 다른 미래, 다른 결과 (2)

그 이후로의 흐름은 전생과 거의 비슷하게 흘러갔다.

잠룡재의 진입.

음무기가 27인 중 한 명으로 위장하는 것.

모든 것이 설휘가 기억하는 대로 진행됐고, 결과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는 동안, 설휘는 극마에 오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전생에는 거의 1년 가까이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번에는 그 시기를 훨씬 더 당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지난번에는 시행착오로 헤매느라 몇 달을 버린 것도 있고, 지금은 머릿속에 의념의 상(想)을 펼쳐놓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곧장 극마에 오르는 수련에 들어갔고, 그날 이후로 석 달쯤 지났을 때 변화가 찾아왔다.

쿠쿠쿵!

환골탈태. 온몸의 뼈가 뒤틀어지며 육신을 재구성하는 과정.

설휘는 이것만큼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다 끝나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 고통에 치를 떨어야 할 만큼 버거웠다.

그나마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벽에 몸을 부딪치며 고통을 감내하려 하는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결과적으로 큰 수확을 얻은 것이다. 이곳에 온 지 반 년 만에 극마에 올랐으니까.

***

“아직 소식이 없느냐?”

그날 저녁.

설휘는 송화를 불러 조심스레 물었다.

극마에 오른 뒤, 문 앞에 놓인 서신과 소식을 찾아봤지만, 어떤 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사부께서 지시한 내용대로 이행했습니다만…… 그 뒤로 몇 달째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

그 말에 설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곤마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보낸 서신의 내용은 너무나 앞서나간 얘기였고, 그러니 검증하는 시간도 필요할 테니까.

다만.

“조장들의 서신도?”

“그것도 그렇습니다.”

“어디 보자…….”

설휘는 잠깐 눈을 감고 전생에서 보내온 연락을 시간 순서에 맞게 정리해보았다.

과거 극마에 오를 때 허비했던 시간은 1년.

그 사이 온 서신은 곤마의 죽음까지 담고 있었다.

지금 시간상, 그때의 내용이 뭐가 있었던가를 떠올려본 것이다.

‘그래, 일 제자가 총단에 입성해 중원을 치겠다는 부분이었어.’

그렇다면 소식을 보내오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아직까진 곤마가, 일제자가 삼제자를 죽인다는 상황에 맞닥뜨리지 못한 것으로 보였으니까.

“할 수 없지. 좀 더 기다려보자꾸나.”

“예. 사부.”

설휘는 조용히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송화야.”

나가려던 그를 다시 불렀다.

“예. 사부님. 말씀하세요.”

“일전에 네가 말한 사도성이란 거 말이다.”

“……예.”

한순간 어두워지는 송화의 표정이 보였다.

아마도 입 밖으로 내는 게 두려운 것처럼 보였다.

“다른 게 아니라. 나의 죽음은 2년이라고 했는데…… 2년 안에 발생할 수도 있는 거냐. 아무리 버텨도 2년 뒤에는 죽는다는 것이냐.”

설휘는 이게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자신의 삶.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진행되는지라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사부님의 별자리 중 스며들어 있는 사도성은 총 두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큰 위기가 두 번의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 겁니다.”

“……그렇구나.”

최선의 수를 놓지 못하면 2년이 아니라, 그전에도 절명하는 그런 운명이란 말이다.

“죄송합니다.”

송화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누군가의 운명을 점찍는 일. 특히 친인의 죽음을 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다. 고맙다.”

하지만 설휘는 되려 웃어 보였다.

현생의 삶이 어렵다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

송화와 만나고 두 달쯤 더 지났을 때였다.

“사부님.”

어느 날, 송화가 급히 설휘의 방에 들어와 서신을 내밀었다.

[엿새 뒤. 황가산. 이곳에서 보자.]

지도가 그려진 곳. 과거 도부꾼이 버리고 간 모옥이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드디어…….’

설휘는 그것을 보자마자 손을 불끈 쥐었다.

곤마가 어떤 생각이든, 우선 대화할 기회는 생긴 것이다.

“송화야. 잘 듣거라.”

설휘는 송화에게 당부하듯 말을 꺼냈다.

“너와 음무기는 내가 올 때까지 모든 걸 정리하고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거라.”

“예? 무슨 일인지……”

“얘기하자면 길다. 혹여나 내가 나타나지 않거든 이곳을 빨리 떠나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음무기 형님께도 잘 말해놓겠습니다.”

“그래.”

설휘는 그 말을 남기고 채비를 했다.

엿새라면, 지금 빠르게 움직여야 여유롭게 당도할 거리였다.

***

‘이번 생은 어떤 변화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춰야 할까.’

황가산에 도착하기 전 설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이번 삶에서 해야 할 것은 바로 운명의 추를 다른 방향으로 기울게 하는 것이다.

수하들이 살아남는 미래.

그것이 사도성도 피하고, 자신도 사는 길이다.

‘결국 곤마와의 회담이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이제자의 밑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일제자에게 붙더라도 자신의 운명은 결국 이제자에 의해서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테니까.

결국, 자신이 살려면 이제자가 패권을 쥐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생긴다.

사제자가 스스로 설 수 없다면, 이제자와 사제자가 상잔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후우.”

설휘는 황가산 내 지도에 그려진 모옥에 도착했다.

그는 이곳에 오는 동안 마차나 보통의 이동 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다. 보통은 걸어가며, 밤엔 투숙을 하며 이동했다.

‘이곳은 과거 수하들과 왔던 곳이구나…….’

당시에도 안에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안도하던 도중에 갑자기 선택지가 떠서 당황했었지.

“너무 빨리 왔나?”

약속된 시간임을 한 번 더 확인한 설휘는 방 안에서 혼자 조용히 머물렀다.

곤마의 반응은 어떻게 될까.

생각 외로 매우 자신을 반길 수 있다.

천미려의 제자라 알고 있기도 했고, 그동안 자신이 세웠던 공도 있으니, 믿을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날을 어찌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송화가 점을 쳤다고 둘러댈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을 극도로 불신할 수도 있었다.

예컨대 누군가의 첩자로 잠입해 곤마를 이용해 먹으려는 큰 그림을 그렸다든가, 혹은 중간에 변심했다든지 하는 것으로.

앞날도 앞날이지만, 설휘는 제자들 간의 민감한 정보를 너무 깊이 알고 있었다.

당장 일제자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를 다 알고 있다는 건, 나쁘게 보면, 비밀리에 일제자와 내통했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가정하지 말자. 어차피 직접 만나서 풀어야 할 문제야.’

설휘는 생각을 정리했다.

최악의 경우 곤마가 강제적으로 제압하려고 해도 쉽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 자신은 극마에 오른 고수였으니까.

‘이제…… 오는구나.’

꽤 멀리서 접근하는 기척에 설휘가 감각을 일깨웠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거리를 계산했고.

‘넷? 다섯?’

호위무사와 함께한 모양이었다. 가까워지자 설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명목상은 한때의 주군이었던 몸 아닌가.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곧 낯익은 얼굴, 곤마가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자신을 보자마자 밝게 웃어 보였다.

“설휘. 오랜만이구나.”

“오셨습니까.”

설휘는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어찌 보면 자신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랬던 그의 쓰라린 죽음까지 알게 된 설휘는, 감정이 여러모로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음? 뭘 그런 감상적인 눈으로 보느냐.”

“아, 죄송합니다.”

“녀석도 참. 그래…… 자리에 앉을까?”

설휘는 급히 의자를 뺐다. 그리고 곤마가 앉자마자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곤마는 씨익 웃어 보였다.

“역시나로군.”

“예?”

“마침내 그 거대하고 단단한 벽을…… 뚫었구나.”

“……느껴지십니까?”

곤마가 단번에 알아보자 설휘가 놀라 물었다.

“그럼. 이미 범인의 수준이 아니란 걸, 널 보자마자 알았다.”

곤마는 아직 힘을 개봉한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극마고수에 오른 자신을 알아볼 정도라면, 천살성이란 능력이 알려진 것보다 더욱 유용하고 강력하다는 것이리라.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최근에야 오른 모양이니까.”

곤마는 설휘의 상태를 너무 쉽게 꿰뚫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비정상적이긴 했다. 네 무공의 성장 속도는 매번 마주할 때마다 놀랄 정도였으니. 그래도 극마라니? 과연 천미려 님의 제자답게, 너 역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 부럽다고 해야 하나.”

“…….”

설휘는 그 말에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가만히 긍정하기도 어려웠다.

곤마가 보기에는 자신이 엄청난 행운아로 보일 것이다. 그는 정작 재능이 있어도 천부적인 제약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 테니.

“설휘야.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예?”

그래서 좀 뻣뻣하게 굳어있자, 곤마가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만약 내가 너를 의심했다면…… 이렇게 보자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를 아는 것. 처음에는 놀랐지만, 네 옆에 기려사대의 송화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더구나.”

“……감사합니다. 믿어주셔서.”

사실과 달랐지만, 설휘는 굳이 반박하진 않았다.

“다만, 하나 궁금한 게 있다. 너는 왜 굳이 나를 도우려 하느냐?”

“……예?”

“네 말이 전부 맞다면 말이다. 굳이 나의 편에 설 이유가 없지 않느냐. 네가 이 소식을 이제자에게 가져다주면…… 엄청난 부와 영예를 얻을 텐데?”

“…….”

설휘는 여기서 잠깐 침묵했다.

이내 창가로 잠깐 시선을 두었고, 다시 곤마를 쳐다보았을 때 입을 열었다.

“이제자가 바라는 미래가, 제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라서요.”

“……무슨 의미냐?”

“삭막하고 버려진 삶이라 해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게 삶입니다. 이제자는 굳이 보지 않아도 될 피를 보며, 남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옆에서 저 혼자 부와 영예를 누린들, 즐거울 수가 있겠습니까.”

“허. 갑자기 늙은이처럼 말하는구나. 그게 전부냐?”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그것 말고도 또 하나가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래 사는 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건 무슨 뜻이냐?”

“천기를 들여다보면 뜻하지 않은 걸 알게 됩니다. 곤마 님의 운명도, 제 운명도 비슷하게 흘러가더군요.”

“그건 아니지. 미래를 안다면 충분히 바꿀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미래에 저는 없더군요.”

“후후. 그런 건가.”

곤마는 여기서 더 묻지 않았다.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이라는 게 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자도, 그 미래의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잠깐 침묵하던 곤마는 곧 뜻밖의 물음을 해왔다.

“……강호는 어떻더냐.”

“예?”

“그냥. 궁금해서 말이다.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抗)이라 하지 않더냐. 항주는 밤이고 낮이고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는데.”

“…….”

설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곤마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의 위치, 그의 재력으로 보아, 얼마든지 누릴 것은 다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맛있는 음식에 좋은 경치를 보며, 좋은 술로 하루를 마치는 것. 정말 멋진 삶이지 않을까.”

“아직도 낭만이 있으십니까?”

“하하. 그런 걸 바라는 게 삶의 재미 아니겠느냐…….”

이번엔 침묵이 길었다.

곤마도 설휘도. 창가를 보면서도 한동안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이제 말해보거라.”

곤마가 물었고, 설휘가 그를 바라봤다.

“나를 어떻게 설득시킬 것이냐.”

이 제자와 싸우라는 것.

그걸 왜 행해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일제자의 통치라는 허울뿐이 아닌, 더 확실한 게 있어야지.”

그 말에 설휘는 이곳에 오면 준비해왔던 답을 내놓았다.

“남은 수하들의 삶입니다.”

“……그거라면 충분하구나.”

스르륵.

곤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뒤돌아서 나갔다.

‘설득이 된 건가.’

너무도 쉽게 일이 진행되자, 초조함과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던 그때.

“……설휘야.”

곤마가 멈춰 서서 다시 불렀다.

“예. 사제자님.”

“어쩌면……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

“별자리는 너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 말을 끝으로 곤마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

설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곤마가 했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곤마께서는…….’

그의 마지막 언질.

그것은 설휘에게 미묘한 심상을 남겼다.

별자리를 볼 줄 안다는 건, 자신의 운명 역시 보았다는 말인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

설휘는 또다시 깊은 의문에 빠졌다.

곤마가 본 그 미래에는 대체 무엇이 있었기에 저렇게 말을 하는 건지.

적어도 이때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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