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다른 미래, 다른 결과 (3)
그날은 다른 여느 날처럼 평화로웠다.
점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고, 음무기는 잠룡재에서 위장한 채 바쁘게 돈을 빼돌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도착한 서신을 보고, 설휘는 한참을 망연하게 앉아 있었다.
“무슨 내용이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설휘에게 건네는 바람에,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송화가 물었고.
답하는 설휘의 목소리엔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곤마께서 별세하셨다는구나.”
“아…….”
송화의 탄식에 설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도록 맑은 하늘.
차라리 이런 소식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세상이 참으로 무상했다.
누군가가 죽어도 세상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잘도 굴러간다.
설휘는 우울한 감상에 한참 빠져 있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후우…….”
서신을 보낸 건 사령대 조장들이었다.
설휘의 제안대로 곤마는 일제자와 밀담을 나누기 전에 이제자의 진영으로 들어갔고, 수하들은 뒤로 물렀다.
그리고 마후와 대면한 장소에서 전투를 벌였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범주였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면하던 자리에는, 이제자 마후만 있는 게 아니라 그의 수하들이 매복해 있었다고.
설휘는 이 대목에서 눈을 의심했다.
‘대체…….’
마후를 따르는 극마고수 하나와 십수 명의 초마고수.
기기아대 대장급 둘.
미확인 고수 여섯이 죽었다.
곤마가 이 많은 고수들을 홀로 격살했다는 얘기였다.
설휘는 그저 서신을 보았을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후 녀석, 그 정도까지 함정을 파고 대비를 했던 건가…….’
마후.
음흉하며 치밀하기 짝이 없는 자.
그는 겉으로는 손을 잡자고 하면서도, 곤마가 단신으로 들어서는 회담장에조차 수하들을 숨겨놓았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고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안배를 했다는 것.
한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함이다. 동시에 그는 곤마의 무력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했다.
그런 마후의 치밀한 안배를 무시하고, 단신으로 상대 세력의 대부분을 몰살시켜버린 자.
그 많은 준비에도 마후는 결국 죽었다.
왜 다들 천살성이라고 하면 두려워하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대목이었다.
“하면 앞으로 전황은 어찌 되는지…….”
송화가 물어오자 설휘는 담담히 말했다.
“사령대 조장들을 모두 부르거라.”
“예? 그들이 올 수 있습니까?”
송화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제자의 죽음. 한 세력의 중심이 소멸했다.
일제자는 패권을 쥐고 모든 병력을 흡수하려 할 것이다. 그게 예정된 수순이다.
“아니. 아마 일제자께서는 아량을 베푸실 것이다. 물론 사제자의 유언을 무시할 수도 있겠으나…….”
설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사령대 조장들은 풀려날 것이다.”
그가 확신하는 이유는 은영단의 무위 수준 때문이었다.
사령대 조장들이 조금 뛰어나긴 하지만, 일제자 살마. 이제 마교의 패권을 가지게 된 그의 입장에서는 다를 것이다.
그는 이미 수많은 장로, 전각, 원주들을 꿰차고 있는 몸.
고작해야 은영단의 일개 조장들 따위, 굳이 챙겨야 할 만큼 필요한 전력이 아니니까.
물론, 곤마 휘하에 있던 핵심무사나 호위, 비밀무사는 다를 수 있다.
‘곤마 님…… 죄송합니다.’
설휘는 잠시 상념을 접고, 곤마를 추도하며 그를 기렸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며,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간 곤마.
그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눈앞의 모든 것이 끝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수하들을 위해 미련 없이 삶을 내던질 수 있었을까.
“아직도 낭만이 있으십니까?”
“하하. 그런 걸 바라는 게 삶의 재미 아니겠느냐…….”
어쩌면 곤마는 ‘삶’에 대해서 확실한 철학을 가졌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반복되던 일상 속에서 자신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비정한 삶을 버티게 해줄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설휘는 생각했다.
***
서신을 보내고 두 달이 흘렀다.
소식이 제대로 전해졌을지, 혹은 갑자기 일제자가 태도를 바꾼 건 아닐까 걱정이 깊어지던 시기쯤에.
“대장!”
“계십니까?!”
“이야, 건물 죽이네요.”
“부자 되셨나 봐요?”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사령대 조장 넷이 모두 항주를 찾아온 것이다.
“어?!”
그들을 데려온 것은 송화였다.
휴식 겸 식사를 위해서 잠시 역참을 들렀다가 한데 모여 있는 그들을 발견했고, 재빨리 설휘의 방까지 안내했다.
“너희들…… 왔구나!”
설휘는 정말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헤어진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체감상 수십 년은 지난 듯했다.
“일단 안으로 들거라……. 저기, 송화야?”
“예. 사부.”
“음무기 좀 불러 오너라.”
“알겠습니다.”
송화는 총총걸음으로 재빨리 사라졌고, 사령대 조장들은 모두 설휘의 방으로 들어왔다.
“솔직히 당시에는 좀 서운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언제 봐도 씩씩한 용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속내를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게, 그 당시 설휘는 중원으로 간다는 결정을 너무 갑작스럽게 통보해왔다.
때문에 사령대 조장들은 스스로 본교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긴 했지만, 당시의 섭섭함이나 그리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뭐, 항주 맛집을 돌아다니며 누구보다 잘 지냈지.”
“와.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우리들 버리고 혼자서 좋은 거 다 즐기면서 살 거라는 거. 캬…… 뛰어난 무공 실력처럼 아주 대단하십니다!”
용진은 비웃듯 과장되게 말을 했지만, 그게 그의 속마음이 아니란 것쯤은 설휘도 알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투정이랄까.
“대장. 복잡한 사정이란 게 있다고 하셨는데…… 이제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적송이 조심히 물어왔다.
당시 수하들과 헤어질 때, 설휘가 했던 말이 그것이었다.
복잡한 사정이 있어 너희들은 알지 못할 거라고.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물어본 것이다.
“음…….”
설휘는 잠깐 침묵했다.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곧 정하며 말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거였다.”
“이 순간요?”
“그래, 너희들이 다른 세력 아래로 들어가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것. 그런 너희를 거두는 것 말이다.”
“그럼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되리란 걸…….”
“짐작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차차 말하마. 그건 그렇고…….”
설휘는 말하다 말고 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이전과 달리 그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조금 특별했다.
‘요림.’
전생에서 자신을 죽였던 이.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그마치 극마에 오른 상황에서도 죽임을 당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때 일이 좀 상처로 남았는지 그를 보는 게 조금 불편했다.
‘대체 이제자가 어떤 술법에 걸었기에…….’
마후가 어떤 지시를 내렸기에 자신을 찾아와 그런 짓을 벌인 것일까. 아직까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대장, 왜 그러십니까?”
설휘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한 듯, 요림이 뭣도 모르고 몸을 낮추며 물었다.
“아니다. 너무 반가워서…….”
설휘는 대충 말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소령이 있었다.
“허…….”
그녀의 모습은 언제 봐도 실로 아름다웠다. 대체 이런 여인이 왜 마교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소령은 그런 설휘를 향해 간단한 눈짓으로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말이다.”
설휘는 그렇게 조장들을 하나씩 일별하며 말을 이었다.
“중원에 미리 온 이유 중 또 하나가, 너희들이 여기에 오면 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그전에 우선 물어보마.”
그의 말에 조장들은 전부 귀를 쫑긋 세웠다.
설휘는 우선 용진을 보며 물었다.
“중원에 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었느냐?”
“무엇이라면…….”
“이를테면 꿈같은 거 말이다.”
“꿈…….”
갑작스런 말.
용진은 더는 웃음기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깐 고민하는 듯 침묵하더니, 자신 있게 말을 내뱉었다.
“저는 조각상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조각상? 네가 무슨.”
뒤에서 듣던 요림이 킥킥 소리 내며 비웃어댔지만, 용진은 제법 진지했다.
“그냥 조그마한 상(像) 하나를 들고 조각해보고 싶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세공하는 데는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설휘는 그의 말에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훌륭하구나. 참고로 나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편이다. 그러니 저기 들어오는 음무기의 취향도 용서할 수 있었지.”
드르륵.
“보고 싶었습니다. 형님들!”
때마침 음무기가 와락 하며 문을 열었다.
설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들은 듯 해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이후, 뒤에 있던 적송이 자신의 차례라 여기며 답했다.
“저는 작은 음식점을 하나 차리고 싶습니다.”
“너, 요리는 할 줄 알고?”
요림이 또다시 끼어들자, 설휘가 조용히 인상을 썼다.
덕분에 그는 더 까불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은영단 시절…… 맛있는 음식을 수하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그때만 생각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하긴, 천성이 선했지.’
설휘는 왠지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는 자신과 같은 백정 출신이다. 끼니를 걸렀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행복을, 그 소중함을 남들과 나눠 과거 자신의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저는…….”
요림의 차례가 오자 그는 조심스레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때.
“대장. 그거 아십니까?”
이번엔 용진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정말 못 볼 걸 봤지 않습니까. 여기 항주로 오는 길에 요림 형님이 소령에게 다가가서…….”
“이놈!”
순간, 그 얘길 듣던 요림이 벌컥 했다.
“그 얘긴 앞으로 꺼내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오는 내내 숱하게 합의하지 않았느냐고!”
“어, 그랬죠. 하지만 형님이 아까 전에 저를 놀리지 않았습니까.”
“야. 야! 인마!”
갑자기 달려드는 요림에 용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저항했다.
“그래도 제가 모든 얘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정도면 거의 다 얘기한 것과 진배없다!”
스릉.
격분에 못 이겨 요림이 칼자루를 잡아들자.
“어? 그렇다고 칼을 꺼내요?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그렇게 속이 좁으니까 이제까지 누구 하나 사귀지 못하는 인생을…….”
“역시. 넌 어디 하나가 없어져야 말을 듣는다!”
“아, 이건 정말 장난…… 아니…….”
둘은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며 방 안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슬쩍 쳐다보던 적송이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대장,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누가 봐도 요림 형님이 잘못한 겁니다. 고백이란 건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당하는 입장에서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요.”
“…….”
“…….”
담담한 목소리라서 분위기는 더 이상해졌다.
설휘는 그저 침묵했고, 소령은 볼이 빨개진 채 시선을 회피했다.
덕분에 그간 전혀 알 수 없던 정보를.
“내가 하지 말라고 그리 말했는데도…… 결국 고백했구만. 쯧쯧.”
방금 들어온 음무기에 의해 모두가 알게 되었다.
“X발, 형님이라고 해주니까……. 아, 내기까지? 진짜로 죽고 싶은…….”
다만 설휘는 장난스럽게 싸우는 요림을 보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가 소령을 좋아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왠지 그것이 이전의 삶.
이제자의 술법과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함께 들었다.
***
수하들이 오고 넉 달이 지났다.
설휘는 일행을 이끌고 전생처럼 해남도로 이동했고, 거기에 터전을 꾸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마인들이 난립하기 전이라, 통행은 쉽게 이루어졌다.
해남도에 도착하자, 요림은 산중에 지낼 거처를 정말 멋지게 꾸몄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원래 목수였다나.
설휘는 그냥저냥 지낼만한 건물만 지으면 된다고 했는데, 요림 본인이 성에 안 차는지 더 번듯한, 더 거창한 집을 원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지 넉 달이나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그는 건물을 넓히고 공간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적송은 본인 말대로 해남도에 가게를 차렸다.
딱히 음식 솜씨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그럭저럭 손님들이 오는 곳이 되어갔다.
거기에는 음무기와 송화의 덕이 컸다.
음무기는 적송 가게 2층에서 술을 팔았는데, 매일 마다 여인들이 들락날락하며 사람들을 채워줬고.
3층에선 송화가 점을 봐주니, 그 손님들이 오가며 배를 채웠다.
덕분에 적송은 수많은 요리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실력 자체가 늘어 가게가 유명해지는 효과도 나왔다.
용진은 적송 가게 맞은편에 세공소를 하나 차렸다. 그는 처음부터 이것저것 만드는 재주가 있었는지, 사람들이 꽤 찾기 시작했고. 지금은 단골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대장. 무슨 일로 여기 나와 계세요?”
요림이 한참 건물을 만드는 가운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설휘 옆으로 소령이 다가왔다.
“그냥 보고 있다. 너는? 수련은 다 끝났느냐.”
“열심히 하는데…… 성과는 그다지 없군요.”
“성취는 원래 하루아침에 얻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큰 성과를 얻게 될 것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과도하게 예를 표하는 소령을 보며 설휘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중간중간 물어올 정도로 열과 성의를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소령은 자연스럽게 설휘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대장.”
“음?”
설휘는 그녀의 말에 시선을 돌려 바라봤다.
“대장만…… 얘기를 해주지 않으셨어요.”
“뭐가 말이냐?”
“꿈요. 대장의 꿈.”
꿈.
갑작스런 말에 설휘는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빠르게 화제를 넘겼다.
“저는 나중에 얘기해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럼 나도 나중에 말해주마.”
“그런 식으로 나오시기 있습니까?”
매우 진지하게 바라보는 소령의 눈빛을 보며 설휘는 피식 웃었다.
적당히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꿈이라…….”
설휘는 멀찍이 떨어진 산 아래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깐 침묵했다.
산들바람. 녹색 빛깔의 숲. 그 너머의 바다.
이 모든 것이 눈앞에 펼쳐지자 마음이 너무도 편안해진 것이다.
어쩌면, 그랬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얘기를 한 건지도 몰랐다.
“그 꿈. 사실 벌써 이뤘다.”
“……예? 이뤘다고요?”
소령이 약간 놀란 듯이 바라봤지만, 설휘는 여전히 드넓은 경관을 눈에 담고 있었다.
“마교를 나오는 것. 그리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사는 것. 마지막으로…….”
“…….”
“이렇게 너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네?”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라 소령이 곧장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게 내 꿈이었거든.”
설휘가 마주 봤을 때에야 비로소 소령은 알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이, 땅거미 지는 붉은 노을처럼 천천히 붉어지고 있었으니까.